한때 유행했던 고체 치약
해외 출장이 즐거운 건 한국에서 살 수 없는 제품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구도 있고 글로벌 플랫폼에서 요리조리 보고 장바구니에 담을 수도 있겠지만,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코로 킁킁 냄새를 맡는 기쁨을 어찌 비교하랴. 러쉬에서 일했던 시절, 영국 출장 ‘캐리어 승선’ 1위가 바로 고체 치약이었다. 화장품이 아닌, 의약외품이기에 당시 한국에선 수입하지 않았고, 영국발 신상 소식에 목마른 러쉬 직원이나 기자들에게 선물하면 괜히 내 어깨가 올라갔다.
입 속에 1알 넣고 아작아작 깨물다, 치카치카 칫솔질 후 물로 헹궈내면 양치 끝! 코를 통해 전해지는 상쾌함과 입가에 남는 은은한 향도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튜브 치약의 내용물이 거의 떨어질 때쯤, 한 번이라도 더 쓰겠다는 의지로 손목의 힘을 다해 짰던 그 귀찮은 과정이 없어 좋다. 한동안 출장이나 여행에 챙겨갔지만, 고체 치약은 세면대에 그리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30여 년을 치약을 ‘짜서 사용하던’ 그 오랜 습관을 뛰어넘진 못한 것. 5~6년 전쯤 한국에서도 고체 치약 열풍이 불었지만, 그 인기는 시들었다.

고체 샴푸 사용 이유
고체 샴푸를 애용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얼마 전 킨텍스 전시에 참여했는데, ‘샴푸바’ 없어요? 묻는 소비자가 꽤 있었다. 플라스틱 샴푸 통을 재활용하는 번거로움도 덜 수 있고, 플라스틱 생산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으니 일석이조. 경험상 샴푸바 100g 1개 정도면 300g 액상 샴푸와 비슷한 기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 액체 샴푸 70% 내외가 정제수라고 본다면, 유효 성분이 압축되어 있는 고체 샴푸가 더 경제적일 수도 있다. 여기엔 관리가 필수! 샴푸 바를 무르지 않게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는 정성이 필요하다.
고체 샴푸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계면 활성제다. 크리스마스 지원으로 러쉬 매장에서 근무했을 때 왜 이렇게 설페이트가 많이 들어갔냐고 하소연하는 고객도 있었다. 액상 샴푸나 바디 워시에 들어가는 소듐라우릴설페이트(SLS), 소듐라우레스설페이트(SLES)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설페이트 프리’ 샴푸로 마케팅하는 회사들도 존재한다. 대한화장품협회 소비자를 위한 화장품 상식에 따르면, 피부와 모발 세정제 성분으로 안전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일부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으니 두피와 피부가 민감하다면 피하고 싶은 성분임은 분명하다.
고체 샴푸에 입문 후 액상 샴푸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들에게 물었다. 왜 샴푸 바를 고집하냐고. 그 이유를 두피 트러블로 꼽았다. 우리 엄마도 오랫동안 샴푸바를 쓰고 있는데, 민감한 지루성 두피 때문이다. 내 경우엔 고체와 액체를 병행하고 있다. 바쁜 아침 언제나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긴 머리에는 거품을 만드는 과정이 귀찮을 때가 있고, 뻣뻣한 머리카락을 감내해야 한다. 물론 예전보다 풍성함 거품을 만들도록 진화했고, 린스 바를 선보이는 브랜드도 있다.

고체 뷰티의 원조는 비누
비누는 화장품과 위생용품을 통틀어 첫 주자이자, 인류 위생의 변곡점을 만들어 놓았다. 비누의 시작은 기원전 2500년경 메소포타미아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수메르인이 산양 기름과 나무의 재를 끓여 비누를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200여 년 전 대중화된 비누 덕분에 인류는 이질, 티푸스 같은 경구 전염병과 피부병 등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었다. 내가 ‘커퍼솝(Cupper Soap)’을 창업하면서 브랜드 이름에 ‘솝’을 붙인 것도 그러한 이유다. 인류 위생을 바꿔 놓은 위대한 발명품 비누처럼 우리 삶을 잔잔하게 변화를 주고 싶었다.
여전히 비누는 사랑받고 있는 화장품이지만(내 욕실엔 10개 넘는 비누 종류가 선택해달라고 매일 아우성친다!), 여러 명이 사용하는 공공장소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위생상의 이유로 펌핑 핸드 워시에게 밀린 것이 현실이다. 소중한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면 바디 샤워 대신 비누를 추천한다. 훨씬 뽀독뽀독 닦이고 작은 비누 덕분에 다양한 제품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누 선물을 싫어하는 이를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멀티 밤은 고체 뷰티 리더?!
최근 고체 뷰티를 주도하는 인기 스타는 스틱 타입의 멀티 밤이 아닐까 싶다. 가히 멀티 밤을 시작으로 달바, 조성아뷰티, 동국제약 센텔리아, 여기에 숨37, 샤넬까지 가세했으니 그 시장은 이미 형성되었다. 블로거들도 친절하게도 이들의 장단점을 비교 분석해놓았다. 일부 제품은 미백과 주름 개선까지 받았으니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쓱쓱 문지르면 되는 간편함 덕분에 화장대에 자리를 차지할 만하다(물론 광고와 마케팅도 한몫했지만). 오일 성분이 듬뿍 들어가서 그런지 클렌징 후 토너만 대충 바르고 스틱 하나면 스킨 케어 끝. 휴대하기엔 또 얼마나 편한가! 한가지 아쉬운 점은 플라스틱 패키지다. 종이 패키지 멀티 밤을 보긴 했지만, 뜨거운 여름철 그 오일 성분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10g이라는 작은 양은 금세 그 바닥을 보여준다.
고체 뷰티의 또 다른 영역
바디 로션은 고체가 넘보지 못한 영역처럼 보이지만, 해외에선 제품이 꽤 있다. 러쉬 스파에서 경험했던 마사지 바는 오일 마사지와는 확실히 다른 차원이다. 오일이 끈적임을 남긴다면, 고체 로션 바는 피부에 훨씬 ‘착붙’이다. 치명적인 단점은 보관에 있다. 전용 케이스가 없다면 생활 먼지를 감내해야 한다. 향수는 어떤가? 탬버린즈 고체 향수는 멀티 밤의 향수 버전처럼 보였지만, ‘제니 효과’와 독특한 디자인 덕분에 탐나는 제품이긴 하다.
이렇듯 고체 뷰티의 시장은 넓고도 가능성을 담고 있다. 앞으로는 어떤 행보로 이어질지 기대해 본다. 남은 숙제는 소비자의 습관을 바꿀 정도로 뛰어난 효과를 갖춰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포장할 패키지 이슈다. 물론 친환경적이면 더 없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