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럭셔리 패션을 완성하는 라스트 룩은? 캐시미어와 울, 매끈한 레더와 구조적인 테일러링이 계절의 밀도를 만든다면, 그 위에 얹는 워치와 주얼리는 룩의 온도와 리듬을 결정하는 하이라이트다. 소매 끝에서 은은하게 드러나는 타임피스, 목선과 손끝을 따라 번지는 골드와 스톤의 빛은 절제된 스타일에 우아함을 더한다.
225주년을 기념하며 시간을 예술로 끌어올린 브레게의 투르비용, 몸을 두 번 감싸며 새로운 리듬을 만드는 에르메스의 더블 투어, 그리고 핑크 에나멜의 새로운 빛을 입은 반클리프 아펠 알함브라까지, 2026년 가을 럭셔리 룩의 엔딩 신을 빛낼 워치와 주얼리를 만나본다.
워치메이킹 혁신의 역사를 바꾼, 브레게 투르비용 225주년
2026년은 브레게에게 특별한 해다. 1801년 6월 26일, 메종의 창립자 아브라함-루이 브레게(Abraham-Louis Breguet)가 자신이 발명한 혁신적인 컴플리케이션 ‘투르비용’에 대한 특허를 취득한 지 225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브레게는 중력이 시계의 레귤레이팅 장치에 미치는 영향을 평균화하기 위해 이스케이프먼트와 밸런스 휠, 밸런스 스프링을 하나의 회전하는 케이지 안에 담는 독창적인 구조를 고안했다. 포켓 워치가 주로 수직으로 놓이던 시대에 태어난 이 아이디어는 이후 오뜨 올로제리의 가장 상징적인 컴플리케이션 가운데 하나가 됐다. 브레게는 2026년 총 6점의 새로운 투르비용 타임피스를 선보이며 과거의 발명을 현재의 기술과 미학으로 다시 연결한다.
그 중심에는 ‘클래식 투르비용 7357(Classique Tourbillon 7357)’이 있다. 225년의 역사를 가장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7357의 출발점은 1989년 공개된 Ref. 3350이다. 브레게가 최초로 선보인 투르비용 손목시계이자, 오늘날 수집가들에게도 중요한 모델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당시의 전설적인 칼리버 558을 계승해 새롭게 개발된 칼리버 187B가 7357에 탑재되며, 과거의 구조를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현대적인 성능으로 진화시켰다. 매뉴얼 와인딩 방식과 시간당 18,000회, 즉 2.5Hz라는 역사적인 진동수는 유지하면서도 파워리저브를 60시간으로 늘리고, 브레게 니바크론 밸런스 스프링과 실리콘 이스케이프먼트를 적용했다.
특히 골드 버전의 매력은 기술 못지않게 정제된 비례에서 드러난다. 직경 35mm의 케이스 안에 직경 30mm 무브먼트를 담았고, 케이싱 링 없이 구성해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냈다. 실버드 18K 브레게 골드 다이얼 위에는 중앙의 클루 드 파리(Clous de Paris)와 외곽의 그랑 도즈(Barleycorn) 기요셰 패턴이 서로 다른 빛의 결을 만들며, 6시 방향 투르비용은 다이얼보다 미세하게 낮은 위치에 자리해 깊이감을 강조한다. 전통적인 브레게 핸즈와 아라비아 숫자, 플루티드 미들 케이스까지 더해지면서 전체 인상은 화려함보다는 ‘완성도 높은 절제’에 가깝다. 베이지 카프스킨 스트랩을 매치한 브레게 골드 모델은 클래식한 테일러링이나 캐멀, 브라운, 블랙 계열의 가을 룩에 특히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올가을 브레게의 또 다른 시선은 바다와 밤하늘로 향한다. ‘마린 투르비용 에콰시옹 마샹 5887(Marine Tourbillon Équation Marchante 5887)은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프랑스 왕립 해군의 공식 워치메이커였던 역사와 투르비용의 225주년을 한 작품 안에 결합한다. 직경 43.9mm 플래티넘 케이스에 담긴 다이얼은 두 개의 레이어로 구성되며, 블루 그라데이션 그랑 푀 에나멜과 미니어처 페인팅을 통해 1801년 6월 26일 파리에서 관측된 밤하늘의 별자리와 달의 위치를 재현한다. 별과 달에는 야광 에나멜을 사용해 어둠 속에서도 천체의 풍경이 살아난다. 더 특별한 점은 원하는 장소와 날짜, 시간의 하늘을 선택해 맞춤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린 투르비용 에콰시옹 마샹 5887’은 시각적인 아름다움만을 위한 시계가 아니다. 평균태양시와 진태양시의 차이를 별도의 분침으로 직접 보여주는 러닝 균시차(Running Equation of Time), 퍼페추얼 캘린더, 투르비용, 파워리저브가 한 무브먼트 안에 결합된다. 셀프 와인딩 칼리버 581DPE는 4Hz로 작동하며 80시간의 파워리저브를 제공한다. 케이스백에는 18세기 왕실 선박 ‘로열 루이(Royal Louis)’가 수공 인그레이빙되고, 블뢰 드 프랑스 컬러와 플래티넘, 브레게 골드가 어우러진다. 단 25피스만 제작되는 만큼, 7357이 브레게의 본질을 가장 순수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5887은 워치메이킹과 천문학, 항해의 역사를 하나의 미니어처 우주로 압축한 작품에 가깝다.
이번 투르비용 컬렉션이 특별한 이유는 ‘225주년’이라는 숫자에만 있지 않다. 브레게에게 투르비용은 박물관 속에 보존해야 할 과거의 발명이 아니라 계속해서 수정하고 발전시켜야 할 살아 있는 기술이다. 7357의 절제된 클래식과 5887의 복합적인 천문학적 세계는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지만, 두 시계 모두 1801년의 아이디어가 2026년에도 여전히 새로운 예술적 미학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의 회전으로 완성되는 에르메스의 리듬, 더블 투어 컬렉션
에르메스 ‘더블 투어(Double Tour)’ 컬렉션은 몸을 감싸는 두 번의 움직임을 주얼리로 옮긴다. 에르메스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 아르디(Pierre Hardy)는 이 컬렉션을 단순한 조형이 아닌 ‘몸짓이자 태도’로 바라본다. 한 번 감싸는 움직임에 다시 한 번의 회전을 더해 반복을 리듬으로, 리듬을 존재감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그 철학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것이 ‘베르티주(Vertige)’다. 로즈 골드를 기본으로 다이아몬드를 촘촘하게 세팅한 링과 커프 브레이슬릿은 매끈한 선을 그대로 반복하기보다 서로 뒤엉키고 교차하며 위로 솟아오르는 듯한 움직임을 만든다. 컬렉션에는 281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와 1.44캐럿 카보숑 컷 에메랄드를 세팅한 로즈 골드 링을 비롯해, 220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링, 547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가 빛나는 커프 브레이슬릿 등이 포함된다. 구조 자체가 하나의 제스처처럼 보인다는 점이 ‘베르티주’의 매력이다.
보다 유연하고 감각적인 스타일은 ‘쉔 당크르 나이아드(Chaîne d’ancre Naïade)’에서 연출된다. 에르메스의 상징적인 체인에 진주를 결합해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표현한 작품으로, 로즈 골드 네크리스에는 372개의 아코야 진주가, 커프 브레이슬릿에는 152개의 아코야 진주가 사용됐다. 매끈한 진주의 광택과 구조적인 골드 라인이 반복되며 만들어내는 대비는 니트나 레더처럼 텍스처가 강한 가을 소재 위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핑크빛을 새롭게 입은 행운의 아이콘, 반클리프 아펠 알함브라
1968년 네잎클로버에서 영감 받아 탄생한 반클리프 아펠의 ‘알함브라(Alhambra)’. 전세계 여성들의 드림 주얼리가 투명하면서도 강렬한 핑크 에나멜이라는 새로운 빛을 만났다. 메종은 반투명 에나멜을 적용한 빈티지 알함브라와 매직 알함브라 작품 5점을 선보였으며, 옐로우 골드의 따뜻한 광택과 선명한 핑크가 만나 기존 알함브라와는 또 다른 무드를 선사한다.
이 신비로운 핑크는 단순히 안료를 섞어 완성한 색이 아니다. 17세기부터 전해 내려온 ‘골드-루비’ 공정에서 영감을 받아, 소재 내부의 미세한 골드 입자를 통해 색을 발현시키는 독창적인 기법을 개발했다. 이를 알함브라 모티브에 안정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메종의 에나멜 공방은 수년간 연구와 개발을 거쳤다. 완성된 반투명 에나멜 안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미세한 기포는 결점이 아니라 오히려 각각의 모티브에 깊이와 개성을 만들어내는 요소가 된다. 곡면으로 마감된 에나멜 위에서 빛이 부드럽게 이동하고, 이를 둘러싼 두 줄의 골드 비즈가 다시 광채를 받아낸다.
새로운 구성에는 빈티지 알함브라 펜던트, 5개 모티브 브레이슬릿, 10개 모티브 네크리스, 20개 모티브 롱 네크리스와 매직 알함브라 이어링 등이 포함된다. 블랙이나 초콜릿 브라운, 차콜처럼 가을을 대표하는 어두운 컬러 위에 올렸을 때 핑크 에나멜의 투명한 채도가 더욱 돋보인다.
코트의 소매 끝, 깊게 파인 네크라인, 혹은 손끝에서 살짝 드러나는 단 하나의 워치와 주얼리. 이번 시즌 럭셔리 스타일의 진짜 ‘라스트 룩’은 바로 그 디테일에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