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게
그레고리 키슬링 CEO 인터뷰… 창립 250주년 맞아 ‘레인 드 네이플 컬렉션’ 공개
“브레게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움직이는 유산(Legacy in Motion)’입니다”.
최근 한국을 찾은 스위스 하이엔드 워치메이킹 하우스 브레게(Breguet)의 그레고리 키슬링 CEO가 ‘브레게의 정체성’에 대해 강조한 문장이다. 올해 창립 250주년 기념 월드 투어의 여섯 번째 목적지로 방한해 가진 단독 인터뷰 자리에서 밝힌 바다.
2024년 10월 브레게의 수장으로 취임한 키슬링 CEO는 “브레게는 움직이는 유산”이라며 “우리의 DNA와 기원을 존중하는 동시에 혁신을 계속 추진하며 이 유산을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철학은 250주년 기념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단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닌, 1년 내내 9개 도시에서 9개의 다른 이야기를 담은 제품을 출시하며 브랜드의 다채로운 역사를 조명하고 있다. 파리, 상하이, 뉴욕, 제네바, 런던을 거쳐 서울에 도착한 키슬링 CEO는 이번 방한에서 새로운 레인 드 네이플 컬렉션을 공개하며 브레게의 여성 워치메이킹 헤리티지를 재조명했다. 이는 브레게에게 한국 시장이 갖는 중요성을 보여주는 행보로, 브랜드의 CEO는 한국이 브레게에게 매우 중요하고 강력한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Legacy in Motion- 현대에도 유효한 창업자의 통찰력
올 초 파리 방돔 광장에서 시작된 250주년 기념식의 여정은 각 도시마다 브레게의 서로 다른 챕터를 조명한다. 항공 시계의 역사를 기리기 위해 대서양 횡단 비행의 도착지였던 뉴욕에서 ‘타입 XX’를, 그리니치 표준시의 상징인 런던에서 가장 지적인 GMT 워치 ‘오라문디’를 공개하는 식이다. 이처럼 각 도시의 상징성과 역사성, 제품의 서사를 연결하는 전략은 브레게의 유산이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에도 살아 숨 쉬는 이야기임을 증명하는 획기적인 기획이다. ’250년 동안 감정의 움직임을 만들다, 한 번에 하나의 발명품씩(Crafting emotions for 250 years, one invention at a time)‘이라는 슬로건 아래, 브랜드의 방대한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려는 시도다.
키슬링 CEO는 250주년 기념 컬렉션의 첫 번째 제품으로 ‘클래식 서브스크립션 2025’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건넸다. “서브스크립션 워치는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프랑스 혁명 후 사업을 재건하기 위해 고안한 것입니다. 그는 실제로 프로모션을 한 최초의 시계 제작자였고, 최초의 시계 전단지, 최초의 시계 카탈로그, 최초의 서브스크립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요즘 우리는 크라우드펀딩 모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만, 그는 이미 18세기 말에 그것을 했습니다.” 그는 “서브스크립션 모델이 없었다면, 우리는 250년 후에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여기 앉아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웃으며 “천재적인 발명가이면서도 사업가적인 수완 덕분에 그는 투르비용 시계와 같은 과학적 시계에 투자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중 키슬링 CEO는 반복적으로 “브레게 덕분에(Thanks to Breguet)”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오늘 날 복잡 시계가 탄생하게 된 대부분의 발명품이 창업자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손과 머리에서 탄생한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시계를 떨어뜨려도 여전히 작동한다는 사실, 이것은 파라슈트(parachute) 발명 덕분에 브레게 덕분입니다. 크라운을 통해 무브먼트를 수동으로 감을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은 브레게 덕분입니다. 손목에 시계를 착용할 수 있다는 사실, 브레게 덕분입니다.”
중력으로 인한 오차를 상쇄하는 ‘투르비용’ , 시계에 가해지는 충격으로부터 무브먼트를 보호하는 ‘파라슈트(parachute)’ , 시계의 정확도를 높이는 ‘브레게 스프링’ , 다이얼에 미학적 깊이와 가독성을 더한 ‘기요셰’ 패턴, 그리고 1812년 나폴리의 여왕을 위해 제작한 인류 ‘최초의 손목시계’ 까지. 그의 발명품 목록은 현대 시계학의 교과서나 다름없다. 키슬링 CEO는 ‘시계 디자이너’로서 브레게의 미학도 강조했다. “창업자는 당시 파리에서 신고전주의의 영향을 받아 핸즈와 아라비아 숫자를 다시 디자인했다”며 “여전히 브레게 스타일 아라비아 숫자가 다양한 분야에서 사랑받는 건 과학자이면서 예술가였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고 설명했다.
◇고객을 위한 혁신을 지향한 창업가의 정신
브레게는 이와 함께 지난달 말까지 서울에서 ‘시간의 서랍(Les Tiroirs du Temps)’ 전시도 함께 진행하며, 브랜드의 역사적 발명과 기술 유산을 조명했다. 키슬링은 “브레게는 창조적 발명품과 예술적 디자인을 통해 현대 시계학의 기준을 만든 브랜드”라며 “우리는 단순한 기념이 아닌, 매달 새로운 제품을 통해 브랜드의 각 챕터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창업자 정신은 브레게에게 계속 흐르는 정체성이다. 브레게는 2010년 ‘자성 피봇(magnetic pivot)으로 특허를 취한 바 있다. 자성 피봇은 밸런스 축이 되는 탄소강 바와 보석 뒤에 있는 ‘희토류’로 만든 두 개의 자석으로 구성돼 있는데, 한 개의 자석이 다른 한 개의 자석보다 강력해 밸런스 축이 다이얼 옆의 보석과 지속적으로 닿음으로써 고정되어 있는 듯 하게 설계됐다. 축과 보석 사이의 인력이 중력보다 강하게 작용해 시계 위치에 관계없이 축이 동일한 보석에 고정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밸런스 축의 회전력과 로테이션, 안정성이 유례없이 개선됐다.
브레게의 혁신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선다. 키슬링은 “브레게의 모든 발명은 최종 소비자의 실질적 혜택과 연결되어야 한다”며, 브랜드의 철학을 설명했다. “투르비용은 정밀도를 높이고, 파라슈트는 낙하 시 무브먼트를 보호합니다. 기요셰는 시간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다이얼에 구현됐습니다. 우리는 혁신을 위한 혁신이 아닌, 고객을 위한 혁신을 추구합니다.” 창업자의 ‘창업가 정신’은 키슬링 CEO가 강조한 대로 ‘움직이는 유산(Legacy in motion)’으로 브레게의 과거와 현재를 이으며, 시계 업계의 독보적 위치를 다시한번 확인시킨다.
◇여성 시계의 선구자, 한국 시장에서 꽃피우다.
250주년을 기념해 한국에서 전 세계 공개한 타임피스는 ‘레인 드 네이플 9935’와 ‘레인 드 네이플 8925’ 총 두 가지 모델. 일출의 아름다움부터 밤의 신비로움까지 담아낸 다이얼들을 선보인다. 두 모델 모두 브레게 골드로 장식되었으며, 특별히 고안된 ‘쁘띠 트리아농(Petit Trianon)’ 모티프의 수공 기요셰가 로터에 처음으로 적용되었다. “한국은 여성 시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레인 드 네이플 컬렉션에 대한 반응이 가장 강력한 시장입니다”이라면서 “이 시계들은 남성용 시계의 축소판이 아닙니다. 여성을 위해 처음부터 설계된, 기술적·예술적·상징적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레인 드 네이플 9935는 다이아몬드 파베 세팅, 화이트 머더 오브 펄, 아벤추린 글래스 등 총 세 가지 다이얼로 구성됐다. 특히, 브레게 골드 케이스 안에 두 층으로 구성된 아벤추린 글래스 다이얼이 돋보인다. 이 모델은 블루 아벤추린 글래스 아래 타히티산 머더 오브 펄 플레이트를 배치하여 빛에 따라 오로라처럼 변화하여 다채로운 광채를 감상할 수 있다. 문페이즈 인디케이터에서 보이는 달은 머더 오브 펄 소재로 돔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블루 아벤추린 글래스 디스크 위에 장착돼 한층 눈부신 빛을 발산한다.
레인 드 네이플 8925는 시와 분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셀프 와인딩 타임피스로, 화이트 머더 오브 펄, 선버스트 처리된 브레게 골드, 블랙 아벤추린 글래스 다이얼 등 세가지로 구성된다. 오프 센터 챕터 링 안에는 250주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디자인된 퀘드올로지 기요셰로 장식되어 있다. 두 모델은 디자인 도전을 넘어선 철학적 선언이기도 하다. 9935는 아벤추린 글래스와 타히티산 머더 오브 펄을 겹쳐 밤하늘의 오로라를 표현했으며, 8925는 브레게 골드 브레이슬릿과 기요셰 다이얼로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레인 드 네이플은 단순한 여성용 시계가 아닙니다. 1810년 나폴리 여왕 카롤린 뮤라(Caroline Murat)가 브레게에게 최초의 손목시계를 주문한 순간부터, 여성은 브레게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번 레인 드 네이플 신제품은 여성을 위한 워치메이킹에 대한 헌정과 현대적 디자인을 동시에 담고 있다. 레인 드 네이플은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의 동생이자 나폴리의 여왕이었던 카롤린 뮤라가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에게 의뢰한 최초의 손목시계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브레게 아카이브에 따르면, 그녀의 요청에 기요셰 다이얼과 문페이즈 기능을 갖춘 시계를 손목에 착용할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되었다고 한다.
브레게는 기요셰, 에나멜링, 베벨링과 같은 희귀한 장인의 공예 기술, 즉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를 보존하기 위한 자체 교육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기요셰 장인이 되려면 3년이 걸립니다. 내부에서 직접 교육시키는 것이지요. 우리는 기술을 보존하는 동시에 문화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키슬링 CEO는 이러한 투자를 통해 예술과 기술의 명맥을 잇고 보존해야 한다는 의무를 역설했다. 이 역시 ‘움직이는 유산’을 실현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브랜드의 아주 작은 챕터를 담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의무는 명확합니다. 유산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 혁신을 이어가는 것, 그리고 브레게다움을 지키는 것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챕터는 베르사유의 쁘띠 트리아농에서 마무리된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랑했던 공간에서, 브레게는 다시 한 번 왕실과 예술, 발명의 연결고리를 완성한다.
250주년을 맞이한 브레게의 여정은 과거를 기념하는 축제를 넘어, 미래를 향한 출정식과 같다. 키슬링 CEO가 강조한 ‘움직이는 유산(Legacy in Motion)’처럼 브레게는 창립자의 천재적인 정신을 동력 삼아 끊임없이 혁신하고, 그 유산을 현재와 미래로 힘차게 움직이게 하는 살아있는 존재였다. 브레게의 시간은 지금도, 가장 우아하고 역동적인 방식으로 흐르고 있다. 창립자의 천재적인 유산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여 다음 세대로 계승하겠다는 약속, ‘움직이는 유산’은 브레게가 앞으로 써 내려갈 새로운 역사의 서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