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클리프 아펠’과 춤을… “정밀하고 아름다운, 보석과 무용은 닮았다”
입력 2025.10.17 00:30

한국서는 최초… 내달 8일까지 ‘댄스 리플렉션’ 이끄는
세르쥬 로랑 ‘반클리프 아펠’ 댄스·문화 프로그램 디렉터

춤은 인간의 태고적 욕망을 드러내는 실천적 언어다. 입으로 소리 내지 않고도 눈빛과 손끝, 발놀림 등으로 분노든 환희든 사랑이든 구현해낸다. 아니 별다른 움직임 없이 숨을 내쉬는 것만으로도 무대를 꽉 채워낸다. 고도의 숙련된 기술은 기본. 고통과 인내, 번민과 극복의 순간들이 맞물리며 최적의 동작은 형상화된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듯 극한에 내몰거나 해탈한 듯 동작의 번잡함을 덜어내면서 예술성을 축적한다. 무용은 그런 점에서 보석과도 가닿아 있다. 촉망받는 아티스트들을 통해 그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창작과정은, 원석을 발굴해 어디서든 빛나는 제품으로 탈바꿈시키는 것과 상당히 닮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반짝이는 아티스트들의 창작의 향연이 16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한국에서 펼쳐진다.
바로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 페스티벌(이하 ‘댄스 리플렉션)’을 통해서다. 전 세계 여섯 번째이자 한국에서는 최초로 선보이는 페스티벌로, 세계적인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함께한 9개 작품을 소개한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와 협업해 진행하는 이번 페스티벌은 창작, 전승, 교육이 지닌 가치를 반영하는 공연과 각종 워크숍, 관객과의 토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이번 이니셔티브를 이끄는 세르쥬 로랑(Serge Laurent) 반클리프 아펠 댄스 및 문화 프로그램 디렉터와 일간지 단독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세르쥬 로랑 반클리프 아펠 댄스 및 문화 프로그램 디렉터 /반클리프 아펠 제공

―서울에서 선보이게 된 계기는?
“2년 전부터 SPAF를 후원해왔다. 한국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자못 느끼게 됐다. 서울은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는 글로벌한 도시다. 각종 미술·디자인·건축 등 다양한 국제 전시가 한국에서 펼쳐진다. 그만큼 한국 관객들이 예술 작품에 대한 열린 자세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처음 펼쳐지는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 페스티벌’을 통해 현대 무용의 넓은 바다를 한국 관객에게 소개하게 되어 의미가 남다르다. 페스티벌을 기획한다는 것은 물론 예술적 선택이지만, 내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핵심 가치(철학)를 관객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 핵심 가치(철학)를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준다면. 특히 올해의 페스티벌에선 한국의 허성임 안무가의 작품도 포함된 걸로 알고 있다.
“이번에 9개의 아티스트가 창작한 10개의 작품을 선보인다. 사실 ‘현대무용’이라는 용어는 창작의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콘셉트다. 이 콘셉트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티스트들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창작의 자유라는 이 개념이 아주 마음에 든다. 이번에 다양한 문화를 기반으로 한 아티스트를 만나보실 수 있는데, 공통분모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자신의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다. 동시에 자신만의 언어와 목소리를 만들어간다. 유산(heritage)이라는 것은 철창처럼 갇혀 있는 방식이 아닌 그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단계라고 생각한다.”
―작품으로 예를 든다면?
1. 1도씨 2. 허성임 안무가 3. 올라 마시에예프스카 4. 로이 풀러: 리서치

“이번 페스티벌에는 정말 흥미로운 공연이 있다. 바로 올라 마시에예프스카라는 젊은 폴란드 출신 안무가가 선보이는 ‘로이 풀러: 리서치’라는 작품이다. 20세기 초, 정확히 100년 전의 안무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정말 흥미롭고 마음에 든다. 안무가 로이 풀러는 19세기 말에 미국에서 프랑스로 건너가서 새로운 무용 형식을 창조한 인물이다. 우리가 지금 말하는 모던 댄스의 시초다. 또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의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는 이탈리아 볼로냐의 전통 무용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이처럼 과거와 연결된 아티스트들이 있다는 점이 참 인상 깊다. 많은 분이 꼭 보셨으면 좋겠다.”
―현대무용은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무용과 예술 작품은 모두에게 무언가의 끝이 아닌 시작이다. 공연이나 작품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질문하면 할수록 생각이 깊어지고, 마음의 문이 더욱 열린다. 많은 사람이 어떤 작품을 보고 ‘좋다’ 혹은 ‘별로다’라고 말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좋고, 싫다’는 개인의 의견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 느꼈는지’다. 내가 궁금한 지점은 바로 그 ‘이유’다. 설령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를 서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소통의 도구다.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가장 중요도 있게 고려하는 점은 비록 서로의 의견이 다를 수 있더라도 논쟁이 아닌 대화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무용을 통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
―‘댄스 리플렉션’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 ‘Reflection’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지닌 단어이기도 한데, 그 안에는 여러 층위의 생각과 해석이 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이니셔티브의 제목을 고민할 때, 정말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할 뿐만 아니라, 무용에 대해 생각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무용이 지닌 다양성도 선보이고 싶었다. 이는 ‘성찰’이라는 뜻으로 정신적인 사유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거울에 반사된다’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거울을 통해 어떤 상황 혹은 자신을 바라보듯이, 이 이니셔티브도 오늘날의 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객 각자가 자신의 방식으로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기를 바랐다.”
―리플렉션은 페스티벌 이름이지만, 당신에게 또 관람하는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단어 같다.
“내 일은 결국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기도 하다. ‘왜 이 작품을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가?’ 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고민해야만 한다.
공연 이후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사람들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다. 그를 계기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은 무대 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연이 끝난 후 서로 질문을 나누고 대화를 시작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5.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 6.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

―반클리프 아펠은 무용과 긴밀한 관계성이 돋보이는 메종이다. 특히 20세기 거장 안무가 조지 발란신과의 관계를 통해 클래식 무용, 발레와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고, 또 궁극적으로 현대 무용이라는 세계로 발전시켰다.
“처음 이 이니셔티브를 구상하던쯤, 그때 당시 반클리프 아펠 CEO였던 니콜라 보스(現 리치몬트 그룹 CEO) 회장에게 우리가 무용에 관심을 갖고자 한다면 무용이 진화하는 리듬 또한 함께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클리프 아펠도 메종 자체의 진화 리듬을 지니고 있다.
가끔 메종의 고객들을 만나서 대화할 때면, 무용의 더 넓은 세계도 한번은 경험하시라고 말씀드린다. 물론 최종 선택은 본인의 몫이지만, 페스티벌을 통해 무용은 정말 광범위한 창작의 영역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열정이 있다면 당연히 그것을 공유하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바이며 우리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
―몇 년간 이니셔티브를 이끌면서 무용과 보석 간에 의외로 발견한 공통점이 있다면?
“숙련된 ‘기술’을 요한다는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다. 또 내가 메종에 합류하고 나서 파리 방돔 광장 맨 위층에 있는 워크숍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젊은 장인이 기술을 배우고 있었고, 경륜이 많은 나이 드신 장인이 주얼리를 만드는 것을 제스처, 움직임으로 전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움직임’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커피잔을 집는 것도 하나의 움직임이다. 어떤 것을 하더라도 움직임이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무용과 주얼리 모두 매우 정밀한 움직임과 정교함이 필요하다. 그것이 이 둘의 강력한 연결고리다."
―이번 ‘댄스 리플렉션’을 더욱 즐기는 방법을 독자들에게 추천해준다면?
“마음을 열고, 호기심을 가지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시면 된다. ‘왜 이렇게 하지?’라고 생각이나 이해를 하려고 애쓰지 않으시면 좋겠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본인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연결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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