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강렬하게 맛있는 애니메이션 오프닝을 본 적 있던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는 첫 3분 만에 모든 예상을 깨뜨린다. 타이틀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인 만큼 화려한 대규모 콘서트나 악령을 물리치는 액션 신으로 오프닝을 열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시청자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 잡은 장면은 걸그룹 헌트릭스(HUNTR/X)의 폭풍 먹방! 침샘을 폭발시키는 K-푸드의 향연이 화면을 압도하며, 식욕 도파민을 먼저 터뜨렸다.


김밥, 순대에 냉면까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K-푸드 폭풍 먹방 오프닝
전세계는 비행기 먹방 신에 등장한 메뉴들에 열광하고 있다. 김밥, 어묵, 순대, 컵라면, 과자 정도 있는 줄 알았는데, 호떡과 계란이 얹어진 물냉면까지 놓여있다. 게다가 한국인에게 익숙한 분식집 ‘국룰’ 아이템인 녹색 접시, 스테인리스 밥공기, 뚝배기 등 디테일이 실사급이다. 소파를 뒤에 두고 바닥에 앉아 음식을 먹는, 지극히 한국적인 일상 식문화까지 담아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감독 겸 작가인 매기 강과 크리스 아펠한스는 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다고 말했다. 특히 매기 강은 인터뷰를 통해 “한국 문화에서 음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맛있는 한국 음식이 등장하는 장면을 많이 넣고자 했어요”라고 밝혔다. 매기 강은 미국 웹매거진 ‘살롱(Salon)’과의 인터뷰를 통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음식 장면 탄생 비하인드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김치는 제외시켰어요. 한국 대표 음식이 김치가 되는 건 너무 진부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는 한국 음식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한국의 풍성한 음식 문화를 알리고자 하는 매기 강의 노력은 국민 힐링 푸드 설렁탕 신을 탄생시켰다.

헌트릭스의 메인 보컬인 루미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어려움을 겪자, 멤버들은 뚝배기에 담긴 설렁탕을 함께 먹으며 루미를 격려 한다. “한국인의 컴포트 푸드를 생각하면 언제나 탕, 찌개, 국이 떠오르죠. 그래서 그 순간에 설렁탕이 딱 맞는 음식이라고 생각했어요. 따뜻하고 편안한 음식이니까요.” 또한 이 설렁탕 신에서 깍두기, 어묵 볶음, 데친 브로콜리 등이 담긴 스테인리스 접시들과 수저 밑으로 냅킨을 까는 깨알 고증으로, 한국인들 사이에 더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불닭소스 등장! 젠지 세대의 ‘K-핫소스 챌린지’ 놀이 문화 오마주
그리고 전세계 SNS에 수없이 많은 밈과 댓글을 창조 시키고 있는 보이 그룹 ‘사자보이즈’의 ‘매운맛 챌린지(Spicy Challenge)’ 신! ‘사자보이즈’ 멤버들이 K-핫소스를 먹으며 매운맛에 도전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메가 히트 신이 됐다. 이 ‘매운맛 챌린지’ 장면이 수많은 밈(Meme: 다양한 형태로 재창조되어 SNS 상에 퍼지는 재밌거나 흥미로운 이미지, 영상, 문구)을 일으킨 매력 중 하나는 ‘사자보이즈’ 멤버들이 각각의 개성에 따라 K-핫소스 챌린지에 참여하는 모습이다.

모두 ‘까르보 불닭소스’ 병을 연상시키는 핑키한 의상을 입고, 진우(JINNU), 애비(ABBY), 베이비(BABY), 미스테리(MYSTERY), 로맨스(ROMANCE)란 이름이 새겨진 턱받이를 걸치고 매운맛에 도전한다. 이때도 애비는 캐릭터 시그니처인 초콜릿 복근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고, 미스테리는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핫소스를 들이키고 있다. 평소 캐릭터대로 매운맛 도전을 하는 모습에 폭소를 터뜨리게 된다.

무엇보다 베이비 사자가 이 ‘매운맛 챌린지’ 장면의 스타였다. 자신의 이름처럼 아기가 젖병을 쥐듯 양손으로 핫소스 병을 잡고 즐겁게 매운맛을 즐긴다. 챌린지 승리 후에는 ‘응애응애(Goo Goo Ga Ga)’라고 아기 옹알이를 흉내내기까지 해서, 온 얼굴과 동공까지 빨개진 다른 멤버들과 대비된다. 한국어 버전으로는 ‘응애응애’로 더빙 됐지만, 해외에선 ‘구구가가(Goo Goo Ga Ga: 영어권의 아기 옹알이 의성어)’ 버전으로 베이비 사자의 ‘매운맛 챌린지’ 신이 밈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이게 단순한 개그신이 아니다. 놀라운 한국 문화 고증으로 찬사 받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제작진들은 이 장면에 또다른 진짜 K-푸드 문화 코드를 정교하게 심어 놓았다. 챌린지의 중심에 놓인 건 불닭소스다. 전 세계 젠지(Gen Z) 세대에게 ‘K-핫소스’가 일종의 놀이가 된 지금, ‘매운맛 챌린지(Spicy Challenge)’ 장면은 명백히 그 ‘밈 문화’를 향한 유쾌한 오마주다. 유튜브와 틱톡에서 수십억 뷰를 자랑하는 ‘K-핫소스 챌린지’를 알고 있다면, 이 장면이 얼마나 정교한 메타 개그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매운맛 챌린지(Spicy Challenge)’ 전에 ‘우리랑 놀자!(Play Games With Us!)’란 타이틀을 내세우므로, 불닭소스가 젠지 세대들의 놀이 문화와 결합된 챌린지 콘텐츠로 진화 중임을 정확하게 표현해냈다.

이전 세대들에게 매운 맛이 스트레스 해소용이었다면, 젠지 세대는 놀이의 방식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누가 더 잘 참는지, 누가 더 귀엽게 괴로워하는지, 누가 가장 창의적으로 또는 엉뚱하게 불닭소스를 활용하는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 흐름을 정확히 짚어낸 셈이다.
매기 강과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은 캐릭터들이 “매우 현실적이고 음식을 사랑하며 엉뚱하고 재밌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어요”라고 설명했다. 김밥, 순대, 냉면, 설렁탕이 한국인의 정서를 상징하는 음식이라면, 한국의 맛있게 매운 맛을 상징하는 불닭소스는 오늘날 젠지의 유쾌하고 창의적인 ‘소셜 플레이’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진화 중이다.
이쯤 되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K-푸드 컬처 글로벌 앰버서더’로 공식 임명해도 될 듯하다. 빌보드 글로벌 차트 1위를 거머쥔 타이틀곡 ‘골든(Golden)’부터 조선 민화 ‘호작도’에서 영감 받은 ‘호냥이(고양이 같은 호랑이)’ 더피와 까치 수지 캐릭터, 헌트릭스의 사인검·곡도·신칼 같은 악령 퇴치 무기까지, 이야기 속에 세심하게 스며든 한국 문화의 디테일은 거의 백과사전 수준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반전은, 바로 ‘K-푸드’에 바치는 이들의 유쾌하고 진심 어린 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