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뚫고 나온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처럼 무대를 장악하는 블랙핑크.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가상 걸그룹 ‘헌트릭스’의 현실판 같은 이 아이코닉 걸그룹이, 마침내 완전체 월드 투어 ‘데드라인(DEADLINE)’의 막을 화려하게 올렸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듯한 블랙핑크 월드 투어의 대서사는 이제 막 첫 장을 펼쳤을 뿐이다. 지난 7월 5일 고양을 시작으로, 미국,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 총 16개 도시에서 31회 공연을 예고한 블랙핑크는 다시 세상을 지배할 준비가 되었다.

블랙핑크의 귀환은 콘서트 뿐 아니라 스타일의 귀환이기도 하다.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팬들이 시선을 사로잡은 건 파워풀한 패션이었다. 대형 무대 위에서 펼쳐진 블랙핑크의 강렬한 패션은 그 자체가 퍼포먼스이자 하나의 시각적 내러티브였다. 오프닝은 디두(Di Du)가 커스터마이즈드한 코르셋 룩과 함께 시작됐다. 고전적 란제리와 미래적인 갑옷의 경계를 유려하게 오가는 스타일이다.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한 중국 출신 디자이너 브랜드 디두(Di Du)는 여성성의 자유로운 표현과 강렬한 실루엣, 테크니컬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블랙 레더와 과감한 컷아웃 디테일, 스터드 장식으로 록 시크의 정수를 보여주며 무대 위 여전사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지수는 버클 디테일의 뷔스티에로 강인함을, 제니는 바이커 시크 무드의 홀터넥 세트로 절제된 카리스마를 담아냈다. 리사는 빛을 반사하는 텍스처와 조각처럼 조여진 허리 디테일로 엣지를 더했고, 로제는 누드 레이스로 고딕 로맨스를 표현했다. 블랙핑크의 오프닝은 부드럽지만 강렬했고, 여성성에 대한 현대적인 정의이기도 하다.


새 싱글 ‘뛰어(Jump)’가 공개된 이후, 무대는 또다른 스타일의 어드벤처가 펼쳐졌다. 서울 기반 디자이너 그레이스 엘 우드(Grace Elwood)의 손길이 닿은 룩은 무대를 하이 패션의 최전선으로 만들었다. 가죽과 레이스, 텍스처가 충돌하고 융합하는 각기 다른 룩은, 패션이 퍼포먼스와 완벽히 일체화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이들의 스타일링은 그룹 퍼포먼스에서 끝나지 않았다. 각 멤버의 솔로 무대는 캐릭터에 맞춘 커스터마이징으로 또 다른 하이라이트를 완성했다. 제니는 르쥬(Leje)의 커스터마이즈드 룩을 입었는데, 레이싱 재킷을 벗으며 드러난 애플 레더 보디 수트와 드레이핑 스커트, 모터 부츠로 ‘프리티 걸’의 새 정의를 선보였다. 한지와 비건 가죽 등 지속가능한 소재의 구성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리사는 오스트레일리아 레이블 카톨릭 길트(Catholic Guilt)의 메탈 링 10만 개가 엮인 스테인리스 코르셋과 주름 스커트를 착용해, 갑옷처럼 단단하면서도 피부처럼 움직이는 룩을 완성했다. 반면 지수는 갈리아 라하브(Galia Lahav)의 드레스를 중심으로 한 환상적인 화이트 룩에 베트남 브랜드 팬시 클럽(Fancì Club)의 페플럼 스커트를 더했고, 디올의 힐 부츠로 몽환적인 로맨티시즘에 록 감성을 얹었다. 로제는 신예 디자이너 김규리의 체인 보디수트에 시스루 메시와 반바지를 레이어드하고, 생로랑 벨트와 안 드멜미스터 부츠로 쿨한 어반 고딕을 구현했다.
‘데드라인’ 월드 투어와 함께 공개된 뮤직비디오 ‘뛰어(Jump)’의 패션도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비주얼 쇼크’, ‘K-팝의 초현실적 진화’라는 극찬을 받으며 블랙핑크의 새로운 패션 유니버스를 열었다. 이 뮤직비디오는 기존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비틀고, 위트와 과장을 선택하며 스타일에서도 파격을 보여주었다. ‘뛰어’ 뮤직 비디오의 패션은 라텍스 의상과 풍선 수트(inflatable suits), 그리고 그래피티 벽화를 배경으로 한 스타일링이 핵심이다. 특히 ‘JUMP’ 문구가 선명하게 프린트된 다채로운 컬러의 라텍스 스타일링은 멤버별 개성을 살리면서도 강렬한 통일감을 준다.

‘점프’ 뮤직 비디오의 파격적인 패션에는 새로운 디자이너들의 실험 정신이 담겨있다. 리사는 첫 신에서 벤트 키하나(Bent Kahina)의 블랙 글로스 퀼팅 푸퍼(puffer) 재킷과 LV X TM데님 세리즈 스퀘어 90 스카프, 팬시 클럽(Fancì Club)의 웨지 부츠로 파워풀한 스트리트 글램 룩을 연출했다. 또한 김규리의 풍성한 소매와 로맨틱 디테일의 리본 튤 블라우스와 보우 파피용 진주 목걸이로 새로운 로맨틱 룩을 연출하기도 했다. 로제는 코페르니(Coperni)의 독특한 시스루 데님 톱과 누아르 케이 니노미야(Noir Kei Ninomiya)의 인조 가죽 재킷을 매치시켜 또다른 여전사 룩을 보여주었다. 지수는 바케라(Vaquera)의 실버 데이 게레 에디션 20 참 목걸이와 베트멍X 뉴 락스타(Vetements X New Rockstar) 부츠를 매치시켜 반항적인 분위기를 완성시켰다. 제니는 지스타(G-Star)의 독특한 위빙 디테일 장갑으로 임팩트를 더했다.






무엇보다 이번 뮤직 비디오에서 화제를 일으킨 건, 딩윤 장(Dingyun Zhang)의 푸퍼 패딩 재킷이다. 패딩의 장인이라 불리는 딩융 장은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졸업 후 실용성과 예술성을 넘나드는 푸퍼 점퍼로 패션계의 슈퍼 루키로 급부상했다. 제니는 딩융 장의 슬립 디스크 보머(Slip Disk Pupper), 리사는 스카이 블루의 리플렉스 코쿤 재킷(Reflex Cocoon Jacket), 로제는 세이지 그린의 슬립 디스크 푸퍼(Slip Disk Puffer)를 입었다. 지수는 준태킴(Juntae Kim)의 실험적인 펑쿠튀르(Punkouture) 패딩 재킷을 착용했는데, 준태킴 역시 센트럴 세인트 마틴 출신이다.




블랙핑크는 ‘뛰어(JUMP)’ 뮤직 비디오를 통해 패션을 하나의 자율적 예술 장르로 끌어올렸다. 스타일링만으로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하며, K-팝이 글로벌 패션 신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교차할 수 있는지를 우아하게 증명한 순간이다. 이번 비주얼은 뮤직 비디오의 차원을 넘어 경계를 허무는 예술적 실험의 연장이자, 블랙핑크가 왜 시대를 움직이는 크리에이티브 아이콘인지를 다시금 증명한다.
무대 위에서든, 스크린 속에서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용맹한 스타일의 여전사 들은 음악과 패션에서 독보적인 하나의 장르가 됐다. 지금은 완전체로선 마지막이 될, 블랙핑크의 스타일 어드벤처를 마음껏 즐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