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명 건축가 나가야마 유코 인터뷰
오사카 엑스포서 까르띠에와 협력한 우먼스 파빌리온 선보여
두바이 엑스포 일본관 재활용, 2년 뒤 요코하마 ‘그린 엑스포’서 선보일 목표
“실제 사는 사람을 고려한 작은 디테일도 챙겨야 좋은 건축”

오는 10월 13일까지 일본 오사카 유메시마섬에서 열리는 2025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는 158개국과 여러 국제 기구가 참여하는 대형 행사다. ‘우리 삶을 위한 미래 사회 디자인(Designing Future Society for Our Lives)’주제에 맞춰 친환경·지속 가능한 발전 등을 목표 삼아 각국의 첨단 기술은 물론 대표 상품, 문화, 건축, 디자인 등 다양한 면모를 선보이는 곳이다.
이러한 엑스포에 국가도, 국제기구를 대표하는 것도 아닌데도 자리 잡은 파빌리온이 있다. 까르띠에와 협력한 우먼스 파빌리온이다. ‘우먼스’라고 돼 있지만 여성들만의 이야기도, 여성들만 입장 가능한 것도, 여성들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남녀 노소 성별을 가리지 않은 모두를 위한 장소다.
까르띠에 문화 및 인류애 프로젝트 의장 시릴 비네론은 우먼스 파빌리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먼스 파빌리온은 세상의 모든 여성들과 헌신적인 남성들이 함께 모여, 우리의 미래를 위해 여성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을 기념하는 공간입니다.” 성별에 관계없이 진정한 평등과 조화 속에서 공존하는 밝은 미래를 향한 강렬한 바람과 선언이 자리하는 것이다.

까르띠에와 협력한 우먼스 파빌리온의 핵심 비전은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의 포괄적인 주제를 확장한 ‘함께 살아가다 (ともに生き, Living Together)’. 몰입형 체험 공간부터 협업 정신이 공명한다. 일본 영화 감독 가와세 나오미가 우먼스 파빌리온의 서막을 여는 영화에서 자신의 연출 노하우를 더하고, 프랑스 배우이자 감독, 아티스트인 멜라니 로랑은 감각적인 초상화와 조각, 사운드 스케이프, 가상 현실을 통해 ‘여성 권한 증진’이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일본 아티스트인 치바 히로가 멜라니 로랑과 협업해 선보인 혁신적인 클로로그래프(Chlorograph) 초상화가 독특한 예술적 느낌을 더한다. 클로로그래프란 치바 히로가 특허 낸 작법의 명칭으로, 불에 탄 사진을 나뭇잎에 입히는 방식으로 추억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미래에 대한 꿈을 몽환적으로 그려낸다.
분야를 넘나드는 아티스트 마리코 모리는 전시장 위층 정원에 우먼스 파빌리온의 주제인 ‘대자연’을 중심으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조경 디자이너 오기노 도시야는 일본의 변화하는 계절을 반영하며 지역 식생으로 만든 지속 가능한 정원을 통해 자연 세계에 초점을 맞추며, 유명 패션 디자이너 아베 치토세는 우먼스 파빌리온의 안내원들을 위한 성 중립적 유니폼을 제작해 조화미와 현대성을 구현한다.

이번 까르띠에와 협력한 ‘우먼스 파빌리온’을 설계하고 지은 나가야마 유코(50) 건축가를 엑스포 현장에서 만났다. 2014년 일본의 유망 건축가로 선정된 바 있는 그녀는 현재 일본 교토 교세라 미술관 관장이자 건축가로 이름 날린 준 아오키 건축사무소에서 일한 뒤 2002년 자신의 이름을 딴 건축 사무소를 열었다. 2020년 두바이 엑스포 일본관을 선보이며 국제적 관심을 받은 그는 도쿄 가부키초에 있는 도큐가부키코타워 등을 최근 선보이는 등 전방위적 건축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1950~2016) 이후 주목받는 몇몇 여류 건축가 중 하나다. 이번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에선 까르띠에와 협력한 우먼스 파빌리온 외에도 파나소닉 파빌리온 설계에도 참여했다.
-까르띠에와 협력으로 탄생한 ‘우먼스 파빌리온’은 일본의 전통 목공예 기법인 쿠미코 기술을 활용해 건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흥미로운 기법이지만, 동시에 워낙 전통적인 방식이라 생소하게 느끼시는 분들도 계실 듯합니다. 특별히 이 ‘쿠미코’ 기법을 파빌리온에 적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파빌리온 디자인을 구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핵심 개념은 바로 ‘연결’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두바이 엑스포의 주제는 ‘마음을 연결하고, 미래를 창조하다’입니다. 그래서 중동과 일본을 어떻게 이을지를 고민하였습니다.
그때 문득, 일본의 쿠미코 기법과 중동의 아라베스크 패턴이 의외로 꽤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두 지역은 실크로드를 통해 이어져 있어, 두 요소를 하나의 디자인 안에서 결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입체적인 형태로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구조물의 삼각형 시점에서 바라보면 두 패턴이 하나의 건축물 안에 함께 표현되어 있는데, 두 요소를 하나의 디자인 안에서 결합한다는 그 지점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2025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는 쓰레기 매립지 위에 세워져서 자원 재생, 순환 등에 더 의미 있어 보입니다. 가부키초 타워 건축 당시 분수에서 영감을 얻어 생명 넘치는 건물처럼 재탄생시켰듯, 이번에 까르띠에와 협력한 우먼스 파빌리온은 두바이 엑스포 재활용 외에도 주변 나무 등을 이용해 바람과 순환 등을 각인시켰습니다. 이러한 영감은 어디서 출발하나요.
“어릴 적 저는 친구가 없어도 혼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설정 안에서 놀 수 있을 만큼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습니다. 좋아하는 영화는 대사까지 모두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봤고,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머릿속으로 영화 한 편을 통째로 재생하곤 했습니다.
특히 좋아했던 책은 찰스 & 레이 임스의 ‘10의 제곱수 (Powers of Ten)’이었는데, 이 책은 제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제 몸 안에 우주가 있고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거나, 오히려 내가 누군가의 몸속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프랙털적인 세계를 상상하게 했습니다. 이런 스토리의 구상과 상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드는 일이 현재의 창작이나 아이디어 원천과도 연결됩니다.
까르띠에와 협력한 우먼스 파빌리온을 생각했을 때는 ‘대지의 어머니’의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정원, 중정, 테라스 가든, 외부 복도, 외부 공간의 식재도 직접 계획했습니다. 이곳에 심어진 식물은 오사카 인근 산에서 가져온 것들로, 엑스포 종료 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파사드의 막 구조가 만들어내는 그늘은 여름의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고 있지요.”

-이번 건축에서 가장 많이 공들인 부분은 무엇입니까.
“까르띠에와 협력한 우먼스 파빌리온은 두바이 엑스포 일본관의 구조물을 재활용한 전례 없는 시도였습니다. 이 과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일본 법규상 구조 자재의 재사용은 원칙적으로는 허가가 어려웠기 때문에, 애초에 이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할지조차 불확실했습니다.
일본관은 부지가 사다리꼴이었지만, 2025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의 까르띠에와 협력한 우먼스 파빌리온 부지는 직사각형으로 형태가 달라졌습니다. 이 다른 형태에 맞게 부품을 재조합하는 일종의 ‘볼조인트 퍼즐’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여 이 부분을 잘 마무리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2020 두바이 엑스포 일본관에서 사용되었던 자재의 상당 부분이 재활용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중동과 일본 간의 연결이라는 의미 뿐 아니라, 지속 가능성과 순환형 디자인 측면에서도 매우 뜻 깊은 시도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이러한 자재를 보존하고 복원해 운송하는 과정은, 특히 보관과 물류 면에서 상당한 비용과 복잡성이 수반되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상황 속에서 이 과정을 어떻게 실현하실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두바이에서 진행했던 작업은 정부 주도의 국가 프로젝트였습니다. 정부 지원으로 구조물을 철거하며 저희가 직접 해결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자재가 손상되지 않도록 작업 하나하나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운 좋게도 두바이 파크의 시공사인 오바야시구미(Obayashi Gumi)와 복잡한 물류를 전문으로 하는 유통사 산쿄(Sankyo) 같은 든든한 파트너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들과의 협력 덕분에 두바이에서 일본까지 구조물을 무사히 옮길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박람회와 같은 이벤트 건축물은 행사 종료 후 철거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구조물을 두바이에서 오사카로 옮겼고, 향후에는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에서 2027년 요코하마에서 개최될 그린 엑스포로 이동할 예정으로 자원을 순환합니다.
이번에 두바이 엑스포의 자재를 오사카 엑스포에서 재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해당 건물이 임시 건축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건축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이동하며 설치된 장소에 맞춰 형태를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도 합니다. 다음에는 어디로 갈 수 있을지, 얼마나 멀리까지 가져갈 수 있을지, 그리고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순환시킬 것인가”에 대한 사고가 보편화되는 미래를 기대합니다.”
-이번 파빌리온은 어떻게 또 재생/재활용됐으면 좋겠습니까.
“이번 까르띠에와 협력한 우먼스 파빌리온의 재사용 가능한 부품을 QR 코드로 일괄 관리하고 있습니다. 오사카 엑스포 이후의 재사용에 대해서도 이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고, 만약 다음 이벤트로 가져간다면 차기 엑스포인 2027년 요코하마에서 개최될 그린 엑스포가 적절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장소에 맞춰 자유롭게 변형시키는 모습, 즉 ‘움직이는 건축(Moving Architecture)’이라 할 수 있는 방식은 매우 매력적이고 새로운 창작 방식입니다. 2년 뒤 요코하마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여러분께 선보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여러 협업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유니폼을 만든 아베 치토세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패션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Cartier Women’s Initiative)처럼, 다양한 재능을 지닌 여성들이 함께한 의미 있는 협업이기도 하죠. 이처럼 여성 간의 협업은 힘과 영감을 주기도 하겠지만, 여전히 편견도 존재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어떤 학술 기관의 여성 총장님처럼 사회 각 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여성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요. 우리는 스스로를 꼭 ‘여성’이라는 관점에서라기보다는, 그저 일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죠. 건축 업계는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들 역시 ‘나는 여성으로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그 일 자체에 몰두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까르띠에와 협력한 우먼스 파빌리온을 설계하고 건축하는 과정에서, 내가 이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인식하게 되었고 그 자각은 제게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2014년에 젊은 건축가상(Young Architect Award)을 수상하셨을 당시, 여성 건축가로서 그 수상이 더욱 뜻깊은 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적으로도 여성 건축가는 여전히 드문 편이고, 자하 하디드(Zaha Hadid) 같은 몇몇 예외적인 인물을 제외하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여성 건축가는 많지 않으니까요. 이번 프로젝트에서 다양한 여성들과 협업하시며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그리고 이 작업이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와 힘이 되었는지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아베 치토세 씨를 개인적으로 무척 존경합니다. 그녀가 ‘나의 첫 번째 컬렉션은 나의 아이, 그리고 다른 아이들을 위해 직접 뜨개질하거나 만들어줄 수 있는 옷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당시 저도 첫아이를 막 출산한 직후였고, 비슷한 시기를 겪고 있었기에 그 말이 더욱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앞으로 얼마나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또 얼마나 아이에게 집중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죠. 사무소를 축소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고려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제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와중에도 지금까지 해온 일을 계속해도 된다는, 깊은 위로와 확신을 얻게 되었어요.
물론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하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여성은 남성보다 더 많은 결정과 복잡한 삶의 선택지를 마주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오사카에서 도쿄로 전근을 가게 되면, 아내는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함께 이사할지, 아니면 홀로 남아 일을 계속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 점에서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제약은 여전히 적지 않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제 주변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늘 큰 용기를 얻습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이어가는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계속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죠. 저 역시 그런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특히 젊은 세대에게 긍정적인 롤모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제가 까르띠에와 협력한 우먼스 파빌리온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일을 그만둘지, 줄일지, 아니면 계속 이어갈지 고민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작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당신도 계속해도 괜찮다’고요. 제 이야기가 그런 분들에게 작은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최근 도쿄 가부키초에 선보인 빌딩은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 작업을 꾸준히 해오셨는데, 2016년 ‘도쿄 하우스 비전’ 전시에서는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 속 짚으로 지은 집이 오히려 이상적인 집일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우화에서 나오는 집 중에선 벽돌집이 가장 튼튼하다고 여겨지지만, 그와는 다른 접근이 인상 깊었어요. 그 당시의 생각에 변화가 있었는지, 또 그 아이디어에 담긴 의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창고를 이상적인 형태라고 말한 이유는 건축물이 자리에 과도하게 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장을 막(membrane)처럼 유연하게 설계한 현재의 구조를 구상하게 되었고, 이런 개방적이고 흐르는 듯한 형식이 여성의 감정과도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건축물은 본질적으로 쉽게 옮길 수 없는 고정 자산입니다.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유럽의 경우 수백 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석조 주택과 건물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그 자리를 지킬 겁니다.
반면, 일본은 조금 다릅니다. 지금도 많은 집이 여전히 목재로 지어집니다. 나무는 돌보다 가볍고 약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바람에 닳고 손봐야 할 곳도 하나둘 생깁니다. 때로는 건물이나 집의 일부를 바꾸기도 하죠. 그렇게 변화와 수정을 거듭하며 살아가는 것이 일본인의 생활 방식입니다.
약하다는 것은 곧 가볍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 가벼움은 변화를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줍니다. 가볍지만 고품질의 자재를 사용한다는 이 개념 덕분에, 우리는 두바이에서 일본으로 구조물을 옮길 수 있었고 이 프로젝트가 실제로 가능했던 이유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를 비유로 들었습니다. 한 마리는 돌집을, 또 다른 한 마리는 벽돌집을, 마지막 한 마리는 짚으로 집을 짓죠. 돌집은 유럽의 오래된 건축물과 닮아 있고, 짚집은 훨씬 가볍지만 여전히 고품질의 재료로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짚집이라는 개념 안에 미래적인 가능성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입니다.”


-일본 건축가분들을 만나면 많이 여쭙는 질문 중 하나이기도 한데, 일본엔 건축계 노벨상이라 하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유명 건축가들이 정말 많습니다. 늘 궁금했습니다. 그 이유가 교육일까요? 부모님의 영향일까요? 아니면 일본의 자연환경 등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분위기 때문일까요? 선생님의 아버지는 물리학자셨고, 그런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성장 배경 속에서, 선생님을 건축가의 길로 이끈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버지는 물리학자셨고, 제 삶에 정말 큰 영향을 주신 분입니다. 아버지는 물리학자로서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믿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이면에 깔린 의미, 일종의 ‘존재의 근거(raison d’être)’를 늘 탐구하셨죠.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그 아름다움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고 무엇이 그것을 아름답게 만드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아버지는 늘 그 이유를 찾고자 하셨고, 제게도 어릴 적부터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는 시각을 알려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 이면의 근본을 들여다보고,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은 제 삶의 중심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저는 언제나 겉으로 드러난 것 너머의 ‘기초’와 ‘근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사카 엑스포와 비슷하게 지난 2014년 당신에게 일본 건축가 신인상을 안겨준 테시마 섬 미술관 프로젝트 역시 폐허의 섬을 예술의 도시로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재생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건축을 어떻게 보존하고, 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용하는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개보수가 필요한 부분들이 생기는데, 그것을 얼마나 관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건축은 물론 물질로서의 역사적 가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소중하게 여겨져 온 건축을, 그 기억과 이야기를 보존하는 장치로서 재생하는 방법도 있지요. 저는 그것을 단순한 ‘재생’이라기보다는, 그 건축만이 지닌 이야기를 ‘편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제 관점에서 엮인 이야기는, 미래의 누군가에 의해 또다시 ‘편집’될 것입니다. 그렇게 시대마다 새롭게 읽히고, 겹겹이 쌓여가며 이어져 가는 것입니다. 더 이상 누구의 것도 아닌, 그 건축 자체가 하나의 ‘1인칭 서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축물은 시대에 따라 흉물도 됐다가 걸작이라는 평가도 받기도 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건축의 정의는 무엇이고, 건축가가 되고 난 이후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인가요?
“건축은 미래를 만드는 일이자, 건축적 행위는 도시를 만드는 책임을 동반한다고 강하게 느낍니다. 건축가로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인다는 것’이 왜 중요한가, 또 그 장소에 어울리는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늘 고민하고 싶습니다.
직접 설계한 건축이나 인테리어 공간이 완성되었을 때는 물론이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과제들을 마주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냈을 때에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 건축은 팀워크로 이루어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마음을 모아 난제를 함께 극복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그러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건축이 되어야 한다’는 그림이 보이면, 저는 그 건축이 실현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합니다. 독립한 지 벌써 24년이 지났고, 어느새 ‘산다는 것’과 ‘건축을 만든다’는 것이 같은 의미가 되어버렸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위대한 건축가’ 혹은 ‘이상적인 건축가’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리고 만약 선생님이 직접 자신의 집을 짓는다면, 어떤 집을 지어보고 싶으신가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에요. 건축이나 건물은 겉으로 보기엔 아름다워 보여도 그게 전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좋은 건축은 그 건축물이 특정 상황에 얼마나 잘 맞는지, 주변 환경이나 맥락 속에서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저는 특히 ‘스케일’과 ‘질감’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건축 자재와 어떻게 물리적으로 상호작용하는지, 손으로 만졌을 때의 감촉, 재료의 질감 등 이런 감각적인 요소들이 저에게 점점 더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어요.
왜 그런 요소들이 그렇게 중요할까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건축은 결국 인간의 ‘스케일’과 ‘질감’에 맞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몸에 자연스럽게 닿는 감각적 조화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단순히 사람의 크기뿐 아니라, 인간의 감각에 맞춰 설계되어야 비로소 좋은 건축이 될 수 있고, 그것이야말로 건축과 사람이 진정으로 연결되는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크기나 형태를 넘어서서, 그 공간이 우리의 마음, 영혼, 그리고 오감에 어떤 울림을 주는가, 저는 그것이 좋은 건축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는 다양한 부품과 요소들을 사용하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 가상 세계, 특히 컴퓨터 그래픽에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디지털로 먼저 시뮬레이션을 하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거나 구현하곤 하죠.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스케일’을 놓치는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가상 세계에서는 스케일이 적절해 보이지만, 실제 공간에 적용해보면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세한 차이도 현실에서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처럼 가상 도구의 사용이 늘어난 시대에는, 디자인한 것이 실제 공간에서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더더욱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습니다.
단지 인간의 스케일에 맞는 것만이 아니라, 재료의 질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촉, 감각을 자극하는 재료의 결이 진심으로 마음에 울림을 주고 오감에 닿을 수 있어야 좋은 건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마침 오사카의 또 다른 현장에 있었는데요, 실제 크기의 목업(mock-up)을 직접 제작하여 스케일이 정확한지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전 검증 없이 시공된 현장에 가보면, 스케일이 어딘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부분에 특히 신중을 기하려고 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대부분의 작업이 가상 환경에서 시작되고 진행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