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곗바늘, 정지된 시간… 현재 이 순간을 조금 더 누리세요
입력 2025.05.30 00:30

에르메스 시계

에르메스 컷 르 땅 서스팡뒤. 에르메스 매뉴팩처 인하우스 무브먼트 H1912에 르 땅 서스팡뒤 모듈이 탑재된 39mm 사이즈의 에르메스 컷 르 땅 서스팡뒤. /에르메스 시계 제공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가끔 우리에겐 마치 영원할 것만 같은 순간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 속에서 따스한 숨결을 느끼거나, 방금 태어나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첫 아이의 손끝이 내 손을 닿아 온기를 전할 때, 몇날 며칠 아니 몇 년을 빌고 또 빌어 그렇게도 염원했던 승리를 거머쥔다거나, 혹은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이들이 세상과 곧 이별을 준비하며 마지막 안간힘을 내어 내게 웃어줄 때 같은 순간들 말이다. 천국이 어떤 진 몰라도, 천국 ‘보다 아름다운’ 현생이 그런 것 아닐까.
아니 이렇게 극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견고한 아스팔트 바닥 사이의 틈을 뚫고 기어이 꽃을 피워낸 야생화가 마치 내 모습 같아 넋 놓고 바라볼 수도 있다. 비록 언젠간 짓밟힐 지 몰라도 그 불굴의 아름다움은 어느 것과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다. 화려하거나 특이할 필요도 없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그 어떤 스트레스나 잡념도 없이, 상처 입은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보챔도 조바심도 두려움도 물린 채, 평온한 고요 속에서 나만의 온전한 시간을 즐기는 순간을 살면서 몇 번이나 맛봤을까. 어쩌면 이러한 시간의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여유가 요즘 같은 혼란과 불안정성이 가득한 시대에 최상의 사치일 지도 모른다.
‘시간을 멈추는 것’은 미국 마블스튜디오의 인기 캐릭터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시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멈추고 조정하는 마법을 갖기 전에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에 도전한 것이 바로 에르메스 시계가 지난 4월 세계적 시계·보석 박람회인 워치스&원더스에서 선보인 ‘아쏘 르 땅 서스팡뒤’(Arceau Le temps suspendu)와 ‘에르메스 컷 르 땅 서스팡뒤’(hermès Cut Le temps suspendu)다. 이름부터가 ‘정지된(suspendu) 시간(le temps)’이란 개념을 탑재했다.
이는 지난 2011년 에르메스 시계가 출시한 ‘르 땅 서스팡뒤’에 새로운 재해석을 더한 것. ‘르 띵 서스펑뒤’는 전용 푸셔를 누르면 시계가 흐름을 멈추고 시침과 분침은 12시 방향의 ‘잠시 멈춤’ 공간으로 향한다. 버튼 하나로 마치 시간을 멈춘 듯한 ‘느낌’을 주는 것아다. 시계 다이얼 속 시간은 정지한 듯 보이지만, 정확한 시간은 메케니컬 매뉴팩처 무브먼트를 통해 계속해서 측정되고 있다. 푸셔를 누르면 다시 정확한 시간을 가리킨다.
물론 현실에서 진짜 시간을 멈추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나마 시간의 압박과 강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에르메스 특유의 유쾌하면서도 매혹적인 시선이다. 한 개인으로의 인간에겐 유한하지만, 인류 전체로서는 영속적으로 흐르는 ‘시간’이라는 개념에 우리가 이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관계성’을 부여한 철학으로 ‘르 띵 서스펑뒤’는 2011년 당시 시계 분야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GPHG(제네바 시계 그랑프리) 남성 시계상을 받았다.
올해는 특별한 컴플리케이션을 탑재해 각종 상을 휩쓴 ‘아쏘’ 컬렉션과 지난해 선보여 전 세계적으로 인기 끈 ‘에르메스 컷’과 결합해 42mm의 아쏘 르 땅 서스팡뒤(3가지 모델)와 39mm 에르메스 컷 르 땅 서스팡뒤(3가지 모델)로 선보였다. 2011년 처음 등장할 당시에는 에르메스 자사 무브먼트가 아니었지만, 이번 모델들은 에르메스 인하우스 무브먼트에 르 땅 서스팡뒤 모듈이 더해졌다.
에르메스 매뉴팩처 무브먼트 H1937에 르 땅 서스팡뒤 모듈 탑재된 42mm 화이트 골드 케이스의 아쏘 르 땅 서스팡뒤. /에르메스 시계 제공

아쏘 르 땅 서스팡뒤는 직경 42mm 케이스와 르 땅 서스팡뒤 독점 모듈을 감상할 수 있는 오픈워크 다이얼을 결합했고, 에르메스 인하우스 무브먼트 H1837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투명한 케이스백도 탑재됐다. 화이트 골드와 로즈 골드 버전으로 선보인다. 화이트 골드 케이스는 선버스트 브룬 데세르 혹은 루즈 셀리에 다이얼이 있으며, 로즈 골드 버전은 선버스트 블루 갈바닉 다이얼로 선보인다.
9시 방향의 푸셔를 눌러 기능을 작동시킨다. 시침과 분침은 레트로그레이드 스윕을 통해 12시 방향 근처로 이동하며, 날짜 창의 핸즈는 플랜지 아래로 숨겨진다. 그러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는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해서 시간은 계산된다. 스트랩은 루즈 셀리에, 매트 에토프, 그리고 블루 어비스가 장착된다.
에르메스 컷 르 땅 서스팡뒤는 지난해 에르메스 컷이 36mm였던 것에 비해, 컴플리케이션을 탑재하기 위해 39mm로 사이즈가 조금 커졌다. 로즈 골드 케이스에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버전과 그렇지 않은 버전으로 돼 있으며, 오팔린 실버톤 다이얼은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버전과 세팅되지 않은 버전으로, 선버스트 레드 다이얼은 다이아몬드가 세팅되지 않은 버전으로만 선보인다. 시침 분침과 함께 ’24초 인디케이터’가 특징. 반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독특한 기능으로 ’24초’는 프랑스 파리 에르메스 플래그십 주소인 포부르 생토노레 24에서 착안한 것으로 에르메스 정신을 시계에 담아낼 수 있는 현대적 어휘이자 에르메스다운 위트다. 에르메스 매뉴팩처 무브먼트 H1912로 구동되며, 8시 방향의 푸셔를 눌러 ‘서스팡뒤’ 모드를 활성화할 수 있다.
에르메스는 ‘잠시 멈춤’이라는 제언을 통해 물리학적 기계적 시간이라는 개념의 틀에서 살짝 벗어나 시간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한다. 에르메스 시계가 ‘정지된 시간’ 동안에도 관념적 시간과 관습, 디자인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에르메스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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