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도르나노 ‘시슬리’ 부회장 인터뷰
수상자 곽소진 개인전 14일까지 서울 한남동서 선봬
“한국 신진 작가에 대한 시슬리 그룹과 제 관심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합니다. 5년전 파리의 아트 페어 ‘아시아나우’를 통해 한국 작가들 작품에 매료됐고, 그 결과 2년 전에 파리 시슬리 본사에서 8인의 한국 작가 전시를 열였습니다. 이제 한국의 신진 작가를 직접 선발해 서울에서 전시를 선보이게 됐습니다. 위대한 서사의 한 페이지 위에 선 것 같아 설레고, 행복합니다.”
프랑스 고급 화장품 브랜드 시슬리(Sisley)의 크리스틴 도르나노 부회장이 최근 한국을 찾았다. 시슬리 창업주 위베르 & 이자벨 도르나노 백작 부부의 막내딸이자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크리에이티브 관련 총책임자인 그녀는 2017년 설립된 시슬리의 문화재단 ‘트로아 상크 프리들랑드(trois-cinq friedland)’를 이끌며 전 세계의 유망 작가와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협업하는 등의 일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녀가 한국을 찾은 건 한국 작가를 대상으로 한 ‘시슬리 젊은 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된 곽소진 작가를 시상하고 축하하기 위해. 그녀는 “젊은 아티스트들을 발견하고 만나고, 작업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매우 고무적인 영감을 준다”면서 “새로운 매체를 다양하게 다루며 한가지 유형의 예술에 고정되지 않아 여러가지 세계관을 보여주는 데 곽소진 작가의 작품 세계가 그 적확한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일부터 다음달 14일까지 서울 한남동 한화 손해보험 한남사옥에서 열리는 곽소진 개인전 ‘클라우드 투 그라운드’에서 영상·설치작품·조형물 등으로 구성된 역동적인 현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 상은 지난 2019년 시슬리가 미술계 젊은 인재를 발굴해 활동을 지원하고자 파리 국립 고등예술원과 파트너십을 맺어 ‘시슬리 젊은 작가상’을 제정한 것의 글로벌 확장판이다. 그 첫 대상이 한국이 된 것이다. 시슬리 젊은 작가상을 통해 배출된 파리 국립 고등예술원 출신 수상자 5인(카롤리나 올젤렉, 이만 샤비-가라, 클레디아 푸르니오, 바르바나 보자치, 니나 자야수리야)은 이후 세계적인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거나 전속 계약을 맺는 등 미술 시장의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그녀는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풍부한 예술성과 한계를 두지 않는 가치를 발산하는 현장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미술상을 도입하는 데 적극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면서 “심사위원을 구성하고, 작품을 심사하기 위해 다양한 토론을 나누는 모든 순간이 기쁨으로 가득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공식 출범한 이번 ‘시슬리 젊은 작가상’ 한국편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졸업생을 대상으로 수상자를 선발하는 방식을 취했다. 심사위원장인 크리스틴 도르나노 시슬리 글로벌 부회장, 홍병의 시슬리 코리아 사장, 임민욱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니콜라 부리오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곽준영 리움미술관 전시기획실장, 윤혜정 국제갤러리 이사, 노재명 아트 오앤오 대표, 박혜원 두산 매거진 부회장, 정일주 ‘퍼블릭 아트’ 편집장, 손란 손스마켓메이커즈 대표 등 10명의 전문가 심사위원단이 구성됐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시슬리 젊은 작가상’의 수상자로 곽소진 작가를 선정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 좋은 작품이 많았고, 심사위원단의 철저한 논의를 거쳤다. 나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란 얘기다.(웃음) 많은 이들이 곽소진 작가의 작품성을 높이 평가했다. 매우 명상적이면서도 자연과 연계돼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마음을 사로잡았고, 무엇보다 다양한 매개체(medium)를 사용해 다각도로 시도한 창의성이 신선했다.”
곽소진은 영상, 퍼포먼스,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작업하는 작가. 일상적인 산책과 주변 환경에 대한 관찰, 그리고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들에서 촉발된 리서치를 바탕으로 상호 행위적 영상으로 자신의 시선을 구현해낸다. 지금까지 개인전 ‘오-마이-갓-이-건-끔 찍 해 제발 멈추지 마세요(Oh-my-god-this-is-terrible- please-dont-stop·문래예술공장·2022),‘‘검은새 검은색(TINC·2021)’, ‘도끼와 모조 머리들(인사미술공간·2020)’ 등을 비롯해 기획전으로 부산현대미술관(2025),읍/신포커스(2024), 프리즈 필름(Frieze Film·2023) 등에 소개된 바 있다.
이번 작품은 곽소진 작가가 그간 선보였던 작품을 비롯한 최근 작을 선별했다. ‘파라(Para)’는 낙하산이 크게 부풀고 줄어드는 형상 변화 등을 영상으로 추적하는 동시에 ‘비정상적 인,’ ‘옆에 있는,’ ‘이탈한’을 뜻하는 접두사인 ‘파라’ 어원의 궤적을 따라 시간의 형성 과정을 설명한다. 또 2021년 작을 재해석한 ‘체이싱’ ‘검은색 검은색’ 작품 등을 통해 정지와 주행, 빛과 어둠사이의 시간의 경계와 찰나의 변화가 주는 어긋남과 긴장감을 관객과 공명한다. 인터벌 조명과 여러 소재의 끈, 진동 모터, 반사 스크린 비디오 등 다양한 소재를 결합한 ‘이진(二進)탐색’은 낙뢰를 하늘과 땅 사아의 상호작용과 관계성으로 재해석해 연결과 단절, 응답과 침묵, 얽힘의 생성과 소멸 등 구현했다. 작가가 그간 촬영 감독으로, 또 영상 작가로 자신이 쫓던 것과 뒤따라오는 것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빛과 어두움, 그림자와 반사 같은 상대가 있어야 존재하는 신호로 해석해낸다.
―곽소진 작가의 작품은 명상적이기도 하지만, 주로 색이 제거된 명암을 통해 내면의 깊은 어두운 면을 반영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시슬리의 상당수 제품이 밝고 경쾌한 이미지의 작가들과 협업하거나 환상적인 자연을 배경으로 표현되는 것과는 조금 배치되는 듯 하다.
“작품의 명상적인 차분함이 자연과 아주 가까운 면이라고도 느꼈다. 우리에게는 숨기고 싶은 상처나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속내가 있을 수 있다. 반면 너무나 밝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도 있다. 이들의 균형을 잡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고, 이러한 미술 작품을 통해서도 다양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신과의 화해, 명상, 심리적인 치유 그 모든 것이 시슬리와 공명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좋았던 부분이 있다면?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고 시간성을 작품에 도입한 의도 등 모든 면에서 좋았지만, ‘잠시 멈춤’의 순간을 되새기게 하는 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자연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지만, 강제로 바라보는 방식이 아니라 잠시 멈춰서 자신에게 여유를 건네며 천천히 바라보고 사념을 비우거나, 생각의 전환을 시도하는 시간이 정말 중요하고, 요즘 현대인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미술관에 들러 이러한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시간이 마치 느리게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고 영혼에 영양을 공급해주는 것 같은 깨달음의 순간이 온다.”
―무엇보다 프랑스에서 시도했던 젊은 작가상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시도한 것도 놀랍다.
“한국이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상업적인 의미도 있겠지만, 전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의 젊은 창의성을 느끼는 것 자체가 흥미진진하다. 어머니(이자벨 도르나노 백작부인·시슬리 공동창업자) 역시 한국 작가 작품을 많이 좋아하시고, 이미 예전에 김창열 화백 작품을 구매하기도 했다. 그렇게 유명한 작가가 아니더라도 미래가 더 기대되는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삶이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