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되 자만하지 않는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것, 150년 이끌어온 ‘힘’
입력 2024.12.13 00:30

스위스 하이엔드 시계&주얼리 ‘메종 피아제’ 벤자민 코마 CEO 단독 인터뷰

좋은 회사가 최고의 회사로 향하는 중요한 동력 중 하나는 바로 사람이다. 자본·기술력·창의성·위기관리·리더십 등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겠지만 그 지휘봉이 누구의 손에 달려있느냐에 따라 그 회사는 후퇴할 수도, 반대로 예측을 뛰어넘어선 퀀텀 점프를 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올해로 150주년을 맞은 스위스 하이엔드 시계&주얼리 메종 피아제(Piaget)는 1970년대 화려함과 탁월함의 상징이었던 브랜드의 최전성기를 다시 구가할 수 있게 됐다. 바로 이 남자, 벤자민 코마(Benjamin Comar) CEO 덕분이다. 1992년 프랑스 까르띠에에서 출발해 2004년 샤넬 워치&주얼리 워치 디렉터를 거쳐 이탈리아 주얼리 브랜드 레포시 CEO를 역임한 그는 업계에서 손꼽히는 시계&주얼리 전문가다.
벤자민 코마 CEO. /피아제 제공

2021년 CEO로 부임한 코마 CEO는 브랜드의 정수(精髓)인 최고급 주얼리를 강화하는 한편, 150주년을 맞아 1979년 탄생한 오리지널 폴로(Polo) 타임피스를 45년만에 현대적으로 재현한 리-이슈 모델, 피아제 폴로 79를 선보였다. 마니아를 열광케한 이 제품은 최근 글로벌 시계 업계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GPHG(제네바 시계 그랑프리)에서 ‘올해의 아이코닉 시계 상’을 수상했다. 지난 11월 27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워커힐 애스톤 하우스에서 창립 150주년을 기념해 열린 최대 규모의 글로벌 프라이빗 전시 ‘Essence of Extraleganza(에센스 오브 엑스트라레간자)’를 선보이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와 단독으로 만났다.
마그네틱 체인 네크리스. 18K 로즈 골드에 약 21.23캐럿의 쿠션 컷 오렌지 스페사틴 가넷, 79개의 바게트 컷 오렌지 커넬리언(약 73.52캐럿), 10개의 옐로우 사파이어(약 1.32캐럿), 108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약 6.64캐럿) 세팅됐다. /피아제 제공

―150주년이란 기념비적인 순간을 맞았다. 고객이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지 브랜드가 고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it’s the customer that chooses the product, not the brand that chooses the customer)라고 말해왔는데, 한국에서 행사를 열고자 한 계기는 무엇인가.
“파리에 이어 한국에서 이러한 규모의 이벤트를 열기로 결심 한 건, 서울의 영향력을 특히 고려했기 때문이다. 한국 고객은 전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고객 중 하나다. 한국의 후광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트렌드를 선도하고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다. 피아제가 한국을 택한 것도 중요하지만, 전 세계에 우리가 한국에서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만큼 투자를 하는 건 당연하다.”
글로잉 위브 네크리스. 18K 화이트 골드와 21개의 콜롬비아산 그린 에메랄드(약 30.38캐럿) 등 바게트·스퀘어 컷 등 그린 에메랄드(약 30.81캐럿), 다이아몬드(약 25.28캐럿) 등으로 화려하게 구성됐다. /피아제 제공

―그 동안 리치몬트, 샤넬, LVMH 그룹 등 각자 특색있는 그룹사를 경험했다. 어떤 것을 배웠고, 어떤 것이 도움됐는가.
“모든 브랜드들이 젊은 경영진을 위한 훌륭한 브랜드이자 모범이 되는 학교였다. 창의성, 역사, 유산을 강화하는 방식에 대해 배웠다. 무엇보다 엔트리 가격(입문용 제품)대 제품 역시 고가 제품을 만드는 것 만큼 같은 품질과 에너지, 가치를 들여야 한다. 통상 ‘엔트리 제품’으로 표현하긴 하지만, 고객에겐 매우 큰 투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경험을 추적할 순 있어도, 모방하지 않는 것이다. 독창성은 제품뿐만 아니라 리더로서의 사고 방식에서도 절대 불가결한 필수 요소다.”
글로잉 위브 링. /피아제 제공

―국내 유명 시계 커뮤니티 등을 보니 피아제 폴로 마니아도 상당했다. 자신들을 ‘폴로당’ 당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CEO로 부임했을 때부터 브랜드의 상징적인 폴로를 다시 출시하고 싶었다. 정사각형, 원형, 비대칭, 쿼츠, 기계식 등 모든 선택지를 두고 고민했다. 이브 피아제 회장에게 프로토타입(시제품)을 보여줄 때, 마치 어린아이가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는 것처럼 두근거리면서 떨리고 또 설레면서도 기뻤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브 피아제는 정말 좋아했고, 올해 GPHG 상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Extraleganza(elegance and extravagance)란 표현은 창립자 4대손이자 현 회장인 이브 피아제가 만들었다. 피아제가 표방하는 DNA 그 자체인 듯하면서도, 우아하면서도 극도의 화려하다는 표현은 어쩌면 굉장히 조화롭기 어려운 단어인 것 같기도 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 단어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이를 꼽자면.
“나는 마음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어디서 볼 수 없는 디자인을 만든다는 것은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소유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가 발휘하는 미학을 즐기고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자세를 말한다. 그것이 바로 이브 피아제가 강조한 것이다. 세상은 마음 먹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녹록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삶에 열광하고,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 최종 승자이자, 살아있는 ‘엑스트라레간자(extraleganza)’다.”
―150주년 역사의 장인 정신 브랜드지만, 1940년대 이후 주얼리와 자체 시계브랜드를 생산한 것을 보면 또 ‘젊은’ 브랜드이기도 하다. 1967년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의 협업은 또 한번 예술과 상품의 경계를 허물기도 했고, 이브 피아제 회장은 아티스트 앤디 워홀 등과 교류하며 피아제 소사이어티 등을 만들어 시계·주얼리·패션·현대미술 등을 넘나드는 지평을 열었다.
“지난 7월 이브 피아제는 장인들과 직원들을 모두 모아 150주년 기념 파티를 열면서 연설을 했다. 그는 회사의 존재 이유인 장인 정신에 대해 추켜세웠고, 400명이 넘는 장인들에게 일일이 친절하게 인사하는 모습 역시 감동이었다. 이브 피아제는 1960~1970년대 사교계의 중심 인물 중 하나였다. 상류층, 유명 사업가, 그리고 배우들과 우정을 쌓았으며 젯셋 소사이어티의 일원이었다. 가장 화려한 중심축 끝에 있는데도, 그에게서 어떤 과시욕도 본 적이 없다. 그는 오히려 노동자의 노고로 완성된 장인 정신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했다. 그를 보면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삶을 즐기는 우아한 태도인지 깨닫게 됐다. 이 점이 바로 좋은 회사가 위대한 회사로 가는 중요한 방향등이라 생각한다.”
글로잉 위브 이어링. /피아제 제공

―당신은 과거 존재했던 ‘피아제 소사이어티’가 다시 부활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피아제 소사이어티가 추구하는 인물은 어떤 사람인가.
“가장 중요한 건 그 사람의 태도다. 친절하고, 차별하지 않으며, 창의적이고 창작에 열의를 띤 인물들을 찾는다. 한국 최고의 글로벌 앰버서더인 이준호도 그 중 한명이다. 이준호는 정말 훌륭한 신사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지만 아마 유럽, 혹은 지구 반대편에서 이준호에 대해 더 열광할 수 있다.
지난달 피아제(PIAGET) 창립 150주년 기념 '에센스 오브 엑스트라레간자' 서울 행사에 나선 글로벌 앰버서더 이준호. 특히 프리이빗 전시 시작인 26일에는 피아제 글로벌 CEO 벤자민 코마와 함께 갈라 디너의 호스트 자격으로 참석하고 브랜드 최초 한국인 글로벌 앰버서더로서 존재감을 발휘했다./피아제 제공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다. 내 비서가 우루과이 출신인데, 그의 어머니가 이준호의 열혈 팬이라고 했다. 이준호의 사진을 보고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사는 그 비서의 어머니가 뛸 듯이 기뻐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울컥할 정도였다. 임원진 중 한 명도 마찬가지다. 레바논 출신인데 이준호의 열혈 팬이다. 이준호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적 파급력과 그 영향력은 당신이 생각하는 상상 그 이상이다.”
엠브로이더드 실버 커프 워치. /피아제 제공

―피아제의 연혁과 브랜드의 역사를 보다보니 시계 주얼리 업계의 연금술사 같다는 생각도 든다. 과거 광고 문구엔 ‘Piaget time only measured in gold’라고 적혀 있기도 하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격언도 생각났다. 150주년을 넘어 200년 250년 등 앞으로를 대비해 어떤 혁신을 또 계획하고 있는가.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잘 만들어내고, 매장 직원들을 포함해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면 브랜드의 명성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경제 상황이 좋을 때 뿐만 아니라 혼란스러울 때도 시장 점유율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멀리 내다보고 미래를 계산한다. 2년, 3년 일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150년이란 시간 동안 자신에 충실하고 창의적인 제품으로 사람들을 놀래켰고, 그들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하는 것이 DNA를 구축하는 방식이었다. 앞으로도 그 정신은 결코 잊히거나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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