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Inside] Legendary Item ⑬ 루이 비통 트렁크
세계적인 명화, 유명인의 회고록과 저서, 박물관에 전시될 빈티지 드레스와 주얼리, 한정판 샴페인과 와인까지, 루이 비통 트렁크는 지난 170년 가까이, 수많은 역사의 순간을 보관하고 운반해 왔다. 프랑스 외제니 드 몽티조(Eugénie de Montijo) 황후, 프랭클린 루즈벨트, 어니스트 헤밍웨이, 주디 갈랜드, 저스틴 비버까지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루이 비통 트렁크는 문화와 역사를 담은 타임 캡슐과도 같다.
갈색 트렁크, 전설의 시작
1837년, 트렁크 장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품고 파리에 도착한 열 여섯 살의 루이 비통. 그의 꿈은 자신의 인생 뿐 아니라 전세계 여행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 놓았다. 루이 비통은 무슈 마레샬(Monsieur Maréchal)의 견습생으로 파리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는 마차, 배, 기차가 주요 운송 수단이었고, 여행 가방을 매우 거칠게 다루었다. 여행객들은 자신의 여행 소지품을 잘 보호하기 위해 튼튼한 트렁크 제작을 전문 장인들에게 의뢰해야 했다. 무슈 마레샬의 파리 공방에서 일하던 루이 비통은 트렁크에 자신의 이름의 도장을 찍기 전까지 17년 동안 트렁크 제작 기술을 익혔다. 그는 뛰어난 재능으로 금새 신임을 얻었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아니에르 공방, 루이 비통의 탄생
일찍이 트렁크 장인으로 명성을 얻은 루이 비통은 1859년 아니에르(ASNIÈRES) 공방을 시작하게 된다. 파리 북동쪽에 위치한 아니에르 공방은 처음 20명으로 시작됐지만, 1900년에 100명, 1914년 225명으로 빠르게 성장해갔다. 공방의 규모가 커지면서 루이 비통 가문의 거처도 아니에르로 옮겨졌다. 아니에르 공방은 현재도 170명의 장인이 전 세계 고객의 맞춤 제작을 책임지고 있다. 또한 루이 비통 가문의 저택은 개인 소유 박물관이 됐다.
가장 귀한 것을 담는 패션 포장 전문 케이스
‘가장 깨지기 쉬운 물건도 안전하게 패키징합니다: 패션 패키징 전문’. 루이 비통의 파리 첫 매장 밖에 붙어 있던 문구다. 루이 비통은 고귀한 럭셔리를 위한 가장 안전한 트렁크로, 프랑스 외제니 드 몽티조(Eugénie de Montijo) 황후를 포함한 왕족과 귀족을 메인 고객 리스트로 올리게 됐다. 루이 비통 트렁크가 엘리트 고객들의 마음을 빠르게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혁신적인 기능성이었다. 당시 일반적이었던 돔형 디자인과 달리, 배나 기차의 수하물 칸에 쉽게 쌓을 수 있도록 평평한 직사각형 트렁크를 만들었다. 또한 트렁크의 무게를 가볍게 하면서 손상에 강한 소재인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를 사용했다. 이후 수십년에 걸쳐 스트라이프 캔버스(1872), 다미에 캔버스(1888), 모노그램 캔버스(1896)를 창조했다.
아무나 열 수 없는 텀블러 잠금 장치
1886년, 루이 비통의 아들 조르주 비통(Georges Vuitton)이 잠금 장치의 혁신을 펼친다. 아무나 열 수 없는 텀블러(Tumbler) 잠금 장치를 기능적, 디자인적으로 정교하게 제작해내며, 루이 비통 트렁크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1900년대 여행객들은 종종 절도범들의 표적이 되곤 했다. 조르주 비통은 두 개의 스프링 버클로 구성된 단일한 잠금 시스템을 도입했다. 수년 간의 개발 끝에 탄생한 이 혁신적인 시스템은 특허 등록됐다.
당시 이 혁신적인 잠금 장치의 방식이 매우 탁월하여, 조르주는 신문에 당대 최고의 탈출 마술사인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에게 루이 비통 트렁크 잠금 장치를 활용해 탈출을 시도해볼 것을 제안했다는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후디니는 그 제안에 응하지 않았고, 루이 비통이 개발한 잠금 장치 기능이 반론의 여지 없이 뛰어남이 증명되는 계기가 됐다. 이 잠금 장치는 현재도 활용되고 있다.
모조품 방지를 위해 탄생한 모노그램 캔버스
루이 비통의 유명한 시그니처 LV 모노그램 캔버스는 1896년, 조르주 비통에 의해 디자인됐다. 4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 루이 비통을 기리며, 이니셜 L과 V, 꽃무니와 별 모티브로 디자인 됐는데, 이 독특하고 복잡한 패턴은 모조품 방지를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당시 루이 비통의 인기가 높아지며 모조품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조르주 비통은 모노그램 캔버스를 세계적인 특허로 등록했고, 이후 모노그램은 하우스의 상징이 됐다. 자신의 이름 이니셜만 새겨 넣은 트렁크를 들고 다니던 고객들로부터 잠시 저항을 받긴 했지만, 1910년대가 되며 모노그램 캔버스는 상류 계층의 여행 트렁크로 명성을 확고히 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레전더리 트렁크
루이 비통 트렁크의 미학과 가치는 맞춤 트렁크 창작물에서 궁극에 이른다. 루이 비통의 첫번째 공방 아니에르 공방에서 1900년대부터 고객의 특별한 희망과 요구에 따라 특별 주문 제작되어온 맞춤 트렁크들은 예술의 극치라 할 수 있다. 하우스 아카이브에 가장 화려하고 특별한 트렁크와 소유자는 2010년에 발간된 ‘루이 비통: 100 레전더리 트렁크’에 기록되어 있다. 그 리스트에는 프랑스 탐험가 피에르 사보르냥 드 브라자가 1905년 탐험에 함께 여행한 트렁크 베드, 1900년대 초 러시아 망명자 로바노프 데 로스토프 공주가 소유한 핑크 새틴 안감과 향수 향이 나는 책상 트렁크 등이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1923년 도서관 트렁크는 작가가 고인이 된 후, 파리 리츠 호텔 지하에서 그의 사후 걸작인 ‘파리는 날마다 축제(A Moveable Feast)’의 분실된 원고와 함께 발견되어 의미가 깊다.
루이 비통은 설립자 루이 비통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며 ‘200개의 트렁크, 200인의 선지자: 전시(200 TRUNKS, 200 VISIONARIES: THE EXHIBITION)’와 함께 세계 주요 도시를 여행했다. 이 전시에는 마크 제이콥스의 스티븐 스프라우스 그래피티 트렁크, 건축가 피터 마리노가 새롭게 디자인한 트렁크, 영국의 DJ이자 프로듀서인 벤지 B가 만든 200트랙 짜리 주크 박스 트렁크 등과 함께, BTS가 재해석한 트렁크도 포함됐다.
루이 비통의 트렁크는 단지 탐나는 럭셔리 여행 가방 이상, 예술적 오브제이자, 보물 창고, 꿈과 비전을 담는 케이스로 사랑받아 왔다. 루이 비통 케이스의 여행과 모험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며, 또한 앞으로도 계속 미래를 탐험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