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탐험가들을 위한, 희귀 성분 니치 향수
입력 2024.04.24 09:46

하이 엔드의 끝은 향수라고 말한다. 진정한 부의 차이는 눈에 보이는 패션과 주얼리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에서 결정된다. 올드 머니가 로고가 드러나지 않는 패션을 선택하듯, 그들의 화장대엔 우리가 금새 알아차릴 수 있는 향수가 올려져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자신만의 개인적인 향수를 즐기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며, 니치 향수(niche perfume)시장은 놀랄 만큼 확장되어 왔다. 니치 향수로 시작해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 더이상 니치 향수라고 볼 수 없는 브랜드들도 많아졌다. 그래서 니치 향수 애호가들은 계속 자신만의 향기가 될 독특한 향수를 탐험 중이다. 특히 시즌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니치 향수의 세계에서 남다른 독특한 향을 추구하는 모험가라면, 희귀한 향을 품은 니치 향수들로 탐험의 방향을 맞춰야 할 것이다. 유럽이 아닌 남아메리카와 중동에서 향기의 원료를 찾는 희귀 성분의 니치 향수를 만나보자.
청담동 푸에기아 1883 부티크. 남아메리카의 자연에서 얻은 희귀향을 원료로 한 100여 개의 향을 만날 수 있다. 푸에기아 1883.

먼저, 남아메리카 지역의 희귀향을 담은 아르헨티나의 니치 향수 브랜드 푸에기아 1833(Fueguia 1833)를 탐험해본다. 최근 오픈한 청담동의 부티크 안에 들어서면 원형으로 디스플레이 된 100 여개의 향수병을 만나게 된다. 일일이 시향을 하는 데에 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백 개가 넘는 향을 한 번에 시향 하는데도 향기 어지럼증이 생기지 않는다. 그 이유는 푸에기아 1833의 향 노트가 단일향에 가까울 정도로 심플하기 때문이다. 남아메리카의 자연을 거닐면, 그 공기, 대지, 식물의 향기를 느끼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아마존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는 매그놀리아 프라간티시마의 향을 담운 아구아 마그놀리아나 오드 퍼퓸. 매그놀리아, 자스민, 샌달우드로 조화된 플로럴 시트러스 계열 향으로, 익히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매그놀리아 향을 경험하게 한다. 푸에기아 1883.

푸에기아 1833은 창립자이자 조향사인 줄리안 베델(Julian Bedel)은 대부분의 식물 종들을 파타고니아에서 가져왔는데, 향수 업계에서는 생소한 원료들이다. 2016년에는 우루과이에 50 에이커 규모의 푸에기아 가든을 만들어, 100여 종의 남미 지역 허브를 재배하여 향을 추출하고 있다. 푸에기아 1833는 지극히 개인적인 향을 추구하기에 특별한 시그니처 향을 내세우진 않지만, 가장 많이 팔리는 향은 당연히 존재한다. 아마존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는 매그놀리아 프라간티시마의 향을 담은 ‘아구아 마그놀리아나 오드 퍼퓸’이다. 매그놀리아, 자스민, 샌달우드로 조화된 플로럴 시트러스 계열 향으로, 익히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색다른 매그놀리아 향을 경험하게 한다.
푸에기아 1833의 머스크 단일향, 무스카라 페로 제이 오드 퍼퓸. 이 머스크 향의 특별함은 각각의 체취와 만나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고유의 향을 발산한다는 것이다. 푸에기아 1883.

푸에기아 1833에서는 머스크 단일향 ‘무스카라 페로 제이 오드 퍼퓸’도 만날 수 있다. 패션과 뷰티를 가족 문화로 유산 받은 올드 머니 계층, 유럽의 왕실과 귀족, 할리우드 스타들이 고대부터 내려오는 최상급 머스크 향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머스크 향의 특별함은 각각의 체취와 만나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고유의 향을 발산한다는 것이다. 마개를 열어 향을 맡으면 무향처럼 느껴지지만, 몸에 뿌리는 순간 자신만의 고유의 향을 소유하게 된다.
아르헨티나의 니치 향수 푸에기아 1883과 미국 디자이너 가브리엘라 허스트가 협업한 2종 향수 중 푸에기아 1883 뉴욕. 이 향수들을 조향하기 위해 사용된 우수한 성분들은 대부분 푸에기아의 연구 및 증류 시설인 우루과이 마난티알레스의 푸에기아 보타니에서 만들어졌다. 푸에기아 1883.

푸에기아 1883과 롤스로이스의 협업 향수인 더 스피릿. 롤스로이스 실내의 가죽을 염색하는 데 사용하는 식물들을 섬세하게 증류한 후 아로마틱한 향수 분자들을 추출했다. 레더리하고 스모키하면서도 애니멀릭한 노트의 향수로, 원료의 희귀성과 한정된 가용성을 감안하여, 한 번에 400병만 생산된다. 푸에기아 1883.

다음 향의 탐험지는 중동이다. 오만의 니치 향수 브랜드 아무아쥬(Amouage)는 처음 왕의 선물로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브랜드가 아니었고, 오만을 방문한 국빈들에게 진귀한 향을 선물했다. 한번 향수를 써본 이들의 구입 요청이 이어지며, 전 오만의 왕 술탄 카보스가 직접 아무아쥬 브랜드를 만들게 됐다. 오만 왕실의 국빈들만을 위한 선물이었기에, 최상급 희귀 원료만을 사용하고 고급 에센셜 오일을 24% 함유해 향이 오래 지속된다.
오만의 니치 향수 아무아쥬(Amouage)를 세상 어디에도 없는 희귀향이게 하는 ‘프랑킨센스’. 그리스 신화, 옛 서적과 종교에도 등장하는 유향인데, 오만 남부의 보스웰리아 사크라라는 나무 껍질의 진액을 고체화시켜 얻는다. 오만 사람들은 이를 ‘신의 눈물’이라며 신성시 한다. 아무아쥬.

아무아쥬 시그니처 노트의 하나인 ‘록 로즈(Rock Rose)’는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장미로, 자발 아크다르 산의 경사면에서 길러진다. 전통적인 고대 방식으로 희귀한 록 로즈 에센셜 오일을 얻는다. 아무아쥬.

아무아쥬의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총괄 디렉터 르노 샐먼(Renaud Salmon)은 아무아쥬 향수의 주원료인 ‘프랑킨센스’를 먼저 이해하고 향수를 즐겨보라고 권한다. ‘루반’ 혹은 ‘올리바넘’이라고도 부르는 유향인데,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하는 옛 서적과 종교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성분이다. 오만 남부의 보스웰리아 사크라라는 나무에서 채취하며 나무껍질을 벗겨 나온 나무 진액을 고체화시키는데, 오만 사람들은 이를 ‘신의 눈물’이라 부르며 신성시 한다. ‘프랑킨세스’는 시트러스 계열 향이 느껴지다 핑크 페퍼나 블랙 페퍼 향이 감싸며, 돌냄새를 맡는 듯한 미네랄 향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생강의 스파이스 향, 유칼립투스의 우디 향도 잠깐 맡을 수 있다. 하나의 원료 안에 다양한 향을 담아, 이를 기본으로 탑, 미들, 베이스 노트를 레이어해 가면 어디에도 없는 마법의 향이 탄생한다고 설명한다.
오만의 고귀한 보석인 프랑킨센스에 대한 경의를 담은 아무아쥬 이스케이프 컬렉션 가이던스. 프랑킨세스(유향)의 신비로운 정수를 머금고, 다채로운 향과 어울려 복합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25%의 퓨어 오일을 함유했다. 아무아쥬.

오만의 공주가 거닐던 오스만투스 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영감 받은 아무아쥬 가이던스. 아몬드 밀크와 프랑킨센스(유향) 향기가 어우러져 달콤한 바닐라 노트와 앰버로 이어지는, 매혹적이고 관능적인 향이다. 아무아쥬.

이 희귀 성분의 니치 향수들은 개인에 따라 다른 향을 완성하기에 모두 젠더리스 향수다. 새로운 향의 탐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무슨 향인지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향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면, 또한 향에 대한 투자를 기꺼이 하는 니치 향수 애호가라면, 남아메리카와 중동에서 온 이 희귀향에 금새 매혹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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