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버리 조나단 아케로이드신임 CEO 인터뷰
맥퀸, 베르사체 등 성장부활시킨 ‘파워맨’
런던에 이어 전세계 두번 째로 서울 성수동 입성
신임 다니엘 리 CD의 23겨울 컬렉션 선봬
‘누구나’라는 단어는 그 자체가 지니는 대중성과 민주적인 속성과는 달리 ‘누구나’ 소유하긴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 ‘누구나’가 되기 위해선 독보적이어야 한다. 누구나 알아보는 브랜드, 누구나 알아채는 배우, 누구나 기억하는 작가, 누구나 따라부르는 가수….
그런 점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 버버리는 패션계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창업자인 토마스 버버리(1835~1926)가 발명한 개버딘(gabardine·면섬유나 실크 등으로 짠 옷 감)이란 원단과 특유의 체크 무늬 특허를 지닌 회사다. 오랜 역사를 지닌 패션회사면서도 창의적이고 진보적인 혁신을 끈임없이 시도하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누구나 알아보지만, 누구나 따라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남다름’을 향해 버버리가 향한 곳은 바로 한국 서울이다. 10월 화창한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성수동 한복판. 태양빛과 저녁 어스름이 연출하는 듯한 노랑과 보랏빛의 장미가 그려진 대형 프린트가 건물들을 장식했다. 런던 본드 스트리트에서 시작된 글로벌 프로젝트인 ‘버버리 스트리트’였다.
지난해 버버리의 신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된 다니엘 리의 첫 버버리 컬렉션인 23겨울 컬렉션을 선보이는 ‘성수 로즈’ 팝업이다. 다음 달 5일까지 열리는 이번 팝업은 전체 컬렉션을 소개하는 메인 공간 ‘성수 로즈’에 이어 신발만 따로 선보이는 ‘성수 슈’, 핫 워터보틀 컬렉션을 선보이는 ‘성수 보틀’까지 3개의 매장이 따로 구성돼 있다 . 성수 로즈 팝업 입장은 온라인 예약을 오픈하자마자 일주일치가 완료될 정도로 인기다.
변화의 중심에서 변화를 주도한 버버리의 조나단 아케로이드(Jonathan Akeroyd) 신임 CEO를 국내 단독으로 만났다. 런던의 상징인 해로즈 백화점 임원 출신으로 영국 천재 디자이너로 꼽힌 알렉산더 맥퀸(1969~2010)과 함께 CEO(2004~2016)로 브랜드 설립과 성장을 주도하고, 2016년부터 베르사체 CEO로서 브랜드의 부활을 책임지는 등 럭셔리 업계의 ‘파워맨’으로 지난해 4월 1일 자로 버버리 CEO에 공식 부임했다. 그는 “서울의 활기가 브랜드의 창의성을 더 확장시키고 알리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브랜드의 위기 극복에 탁월한 것으로 정평나 있다.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이 갑작스레 사망한 이후에도 브랜드 명성이 꽃피울 수 있게 실력 있는 디자이너를 선임하고 글로벌 유통 기반을 확대하는 등 조직을 재빠르게 안정화시켰다. 로이터는 당신의 버버리 부임에 대해 ‘quiet revolution(조용한 혁명) 진행 중’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버버리 CEO를 맡으면서 어떤 각오였나. 가장 처음 변화시키고 싶은 건 무엇이었나.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버버리는 이미 강력한 브랜드고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브랜드다. 하지만 우리가 1856년 설립돼 167년 역사를 지녔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만큼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유산(heritage)이 풍부하다.
오히려 더 큰 기회라고 생각했다. 4~5년 전부터 상승 기류를 타고는 있었지만 미세 조정은 필요했다. 내가 부임한 뒤 수개월 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다니엘 리가 선임되면서 우린 또 한 번 새로운 전진을 하는 중이다. (같은 영국 출신인) 다니엘 리는 매우 수줍다고 알려졌지만, 막상 대화를 나누니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버버리에 대해 서로 흥미진진한 점을 이야기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너무 많은 비전이 서로 일치했다(talk the same language).”
―런던의 상징이자 버버리의 상징 본드 스트리트를 버버리 스트리트 역으로 바꾸기도 했다. 약간의 논란이 있긴 했지만 뉴욕 타임스 등을 보면 상당히 성공한 마케팅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 연장선상으로 버버리 성수 로즈를 선보였는데 왜 서울, 성수인가.
“버버리 스트리트는 런던을 시작으로 서울, 상하이, 뉴욕, 도쿄 등 전 세계 주요 5개 지역에 걸쳐 펼쳐질 예정이다. 버버리의 EKD(기마상 디자인·Equestrian Knight Design) 로고처럼 깃발을 꽂듯 도시를 점령한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목표다.
서울이 그 두 번 째다. 한국은 버버리 전체 매출의 9%를 차지하는 시장이다.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 서울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패션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선도적이며, 외국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준다. 그 파급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젊고 활기찬 성수동은 너무 기업적이지 않으면서도 브랜드에 대한 새로운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절충적인 공간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니엘 리 CD는 셀린느 여성복 총괄 출신으로, 보테가 베네타 CD로 3년여 일하면서 성공을 입증한 바 있다. 매우 영리하면서도 특출난 재능으로 소문났지만, 버버리는 이미 ‘버버리 체크’라는 공고화된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지금 당신이 그 변화의 현장에 있지 않은가. 일단 색상이 다채로와 졌다. 보라색은 다니엘 리의 취향이고, 우리가 ‘나이트 블루’라고 부르는 푸른 색은 다니엘이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것이다. 당신도 알겠지만, 가방과 신발 등 액세서리 부분에서 그의 탁월한 실력은 누구도 감히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독보적이다. 버버리는 이 부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기에 앞으로 성장시킬 여지가 상당하다.
그런데 그의 놀라운 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가 합류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영국 북부에 있는 원단 공장으로 향한 것이다. 우리의 DNA부터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는 장인들이 작업하는 방식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이 천을 좀 더 가볍게 만들 수는 없는가’ ‘색상을 바꿀 수는 없는가’라면서 다양한 주문을 하고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수년, 수십년 동안 같은 개버딘을 짜던 직공들이 그와 함께 새로운 버전의 레인코트, 트렌치코트를 선보이기 위해 스스로 혁신을 하고 개발하고 있었다. 대단한 변화라고 생각했다”
―이제 1년 남짓이지만 특히 기억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보다 다니엘 리의 데뷔 컬렉션이다. ‘쿨 버버리’ ‘쿨 브리티시니스(Britishness)’를 재정립하는 주춧돌이 됐다. 지속가능 서비스(ESG)를 위한 애프터케어 서비스에도 열정을 다했다. 지난해 트렌치코트 등을 포함해 전 세계 4만5000여 제품이 수선(repaired)되거나 새것처럼 리폼(refreshed)됐다. 버버리를 사랑하는 고객이 그렇게나 많다는 게 남다르게 느껴졌다.”
―이미 30대 초반 런던 해로즈 백화점 럭셔리 총괄 임원을 맡으면서 업계 시각을 넓혔다. 글로벌 리더를 만나면서 배운 것도 많았을 것 같다.
“매우 좋은 질문이다. 수많은 경험을 했지만 특히 랄프 로렌을 만났을 때가 기억이 남는다. 자신이 하는 일에 그렇게나 열정적이면서도 항상 신이 나 있고, 성격까지 유쾌했다. 너무나 많이 배웠다. 일과 정말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그를 통해 깨달았다.”
―정열을 바치다 보면, 화가 날 때도 있을 텐데 어떻게 조절하는가.
“사람들이 나보고 포커 선수해도 되겠다고들 한다. 내 패를 잘 감추니(포커페이스) 말이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