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보·르네 마그리트 협업 Delvaux X Magritte
[Luxury Inside] Brand Story ⑥ 델보
“꿈이 깨어있는 순간들의 또다른 형태이라면, 깨어있는 순간들도 꿈의 다른 형태이다.” -르네 마그리트
어쩌면 이 둘의 만남이 초현실적인지도 모르겠다. 194년 역사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럭셔리 가죽하우스 델보(Delvaux)와 20세기 대중에 가장 큰 영향력을 선사한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Magritte·1898~1967). 벨기에에서 탄생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는 공통점은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넘어 또다른 창의성을 선사하는 전복(顚覆)의 실마리가 됐다. 벨기에의 대표적인 럭셔리 하우스 델보와 벨기에 예술의 심장인 마그리트 재단이 지난 2015년 파트너십을 맺으며 선보인 ‘마그리트 콜렉션’이 바로 그것이다. 마그리트 작품 속 이미지를 차용하고, 마그리트 작품 특유의 트롱프뢰유(trompe l’oeil·착시)에서 영감을 받아 구현해 낸 마그리트 콜렉션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로 유명한 르네 마그리트 작품 속 문구처럼, 핸드백처럼 보이지만 핸드백이란 사물의 목적성에 갇히지 않은 또 다른 예술의 범주로 제품을 위치시켰다.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신비하고 모호성 깊은 시선으로 세상을 그려낸 르네 마그리트처럼 어디까지가 캔버스이고 어디까지가 가죽인지 규정한다는 것이 인간의 상상력을 둔화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르네 마그리트 탄생 125주년 기념 미공개 원작, 국내 첫 공개
작품과 제품을 넘나드는 현장이 서울 한복판에서도 공개된다. 르네 마그리트의 탄생 125주년을 맞아 새로운 컬렉션과 특별 전시를 선보이는 것. 델보의 아이코닉한 마그리트 컬렉션을 확대하는 한편 그가 일생동안 가장 사랑했던 아내 조르제트 베르제(Georgette Berger)와 마그리트의 예술 세계를 기리는 캡슐 컬렉션이 출시된다. 특히 마그리트 익스클루시브 컬렉션의 아시아 론칭에 맞춰 국내에 한번도 공개된 적 없는 마그리트의 상징적인 작품 원작 7점이 18일부터 28까지 신세계백화점 강남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특히 조르제트의 초상을 담은 작품 등은 마그리트 재단에서 보유만 했을 뿐 대중에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벨기에라는 공통점 외에 둘을 잇는 또다른 가치. 미래를 내다보는 태도로 기존의 틀을 벗어난 변혁적 급진성으로 세상을 놀래켰다는 것이다. 지금 당신 곁에 혹은, 거리를 지나가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그리고 지금 이 글의 주제가 되는 ‘핸드백’이 바로 델보가 내놓은 작품이다. 벨기에 왕국이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1830년보다도 1년 먼저 세워진 델보는 1883년 ‘벨기에 왕실 공식 공급업체’로 선정되며 품격을 높였다. 일부를 위한 제품은 통찰력으로 세상을 바꿔놓는다. 교통의 발달로 여행이 대중화될 것을 내다보고 1908년 핸드백 디자인 특허를 내놓은 것이다. 물건을 넣어 열고 닫으며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휴대’라는 개념을 창작하고, 그 역할에 걸맞는 새로운 ‘사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초현실주의 화단을 이끈 르네 마그리트 역시 ‘데페이즈망’(추방하는 것, 낯설게하기) 기법을 통해 생각의 틀을 완전히 비틀어버렸다. 해석하려고 들면 더욱 복잡해지는 작품 세계 앞에서 ‘풋’하고 웃어버릴 수 있다면 당신은 마그리트를, 또 벨기에 특유의 예술 정신을 어느 정도 이해했을 것이다. 자조(auto-dérision)라는 단어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서 폭소에 가까운 유머를 끌어내는 힘이다. 개념과 대상, 그 사이에서의 공간을 쥐고 흔들며 자신만의 상상을 그려내는 마그리트의 머릿 속을 알아내고 작품의 수준을 판단하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감탄하면 그만인 것을! 예술 작품을 품은 가방 역시 마찬가지다. 예술로 바라보면 박물관과 어울릴 법한 작품이지만, 가방은 어디까지나 가방이니 말이다. 얼마나 그 시간을 즐기느냐는 온전히 당신의 몫이다. 누군가의 손에 들리기, 혹은 어느 갤러리 전시장에 오르기 전까지 말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러브 스토리, 이것이 바로 초현실이다.
마그리트 캡슐이 작가의 작품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번 콜라보레이션의 핵심은 작가와 그의 아내 조르제트 마그리트 사이의 영원한 러브 스토리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10대 때 처음 만났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6년간 떨어져야 했다. 1922년 마침내 결혼한 두 사람은 1967년 마그리트가 사망할 때까지 함께했다. 마그리트가 유명해지기 전에는 조르제트가 미술용품점에서 일하며 거의 유일한 생계를 책임졌다. 르네가 자주 물감을 구입하던 곳이기도 하다. 마그리트의 뮤즈이자 피사체, 후원자이자 조력자였던 조르제트는 마그리트의 작품에 직접적으로 또는 비유적으로 자주 등장한다. 마그리트의 작품 대부분에는 두 사람의 조화로운 유대감이 반영된 것이다.
이번 작품과 전시에서 그 교차점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 화려한 장미가 그려진 ‘레슬러의 무덤’(Le tombeau des lutteurs·1960). 마그리트의 그림은 왜곡된 크기를 통해 우리가 습관적으로 갖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인식을 깨뜨리는 동시에 극적인 효과를 강화시킨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비율로 크기가 왜곡된 장미 이미지는 많은 의문을 일깨운다. 이는 대중의 자기성찰을 일깨우기 위한 작가의 다양한 시도 중 하나다. 장미는 마그리트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개념 중 하나로 관능, 사랑, 여성성을 상징한다.
서울에서 전시되는 작품은 그의 스케치성 작품으로 인디언 잉크로 제작됐다. 이 ‘레슬러의 무덤’ 속 장미 모티브는 델보의 맞춤형 가방으로도 구현된다. 고객 주문에 따라 가방 위에 새롭게 그려지는 것. 이번 서울 전시를 통해 주문을 하면, 마그리트 재단의 협업을 통해 6개월의 제작 기간을 거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 속 상당 부문을 차지하는 아내 조르제트의 초상(Portrait de Georgette·1936) 원작도 이번에 처음으로 대중에 공개된다. 마그리트는 자신의 성공은 많은 작품에 영감을 준 위대한 사랑이자 뮤즈인 조르제트 덕분이라고 자주 언급한 바 있다. 평생 아이없이 애완견과 함께 가족을 이루며 조용하면서도 사랑이 넘치는 일생을 보냈다. 자칭 ‘집돌이’(homeboy)로 알려진 르네는 가장 유명한 작품들을 집에서 편안하게 그렸다. 조르제트의 곁에서 말이다. 작품에 몰입하던 르네는 조르제트가 혼자서라도 저녁 식사를 하게 되면 이젤을 옆으로 밀고 자리를 비워줬다고 한다.
죽어서도 이들은 떨어질 줄 몰랐다. 조르제트 사망 뒤 세상을 먼저 떠난 르네 곁에 묻혔으니까. 이 둘의 모습은 폴 사이먼의 노래로도 불렸다. 기이한 행적을 보이거나, 기괴한 여성 편력으로 극한의 예술성의 발판 삼았던 몇몇 예술가에게서는 전혀 찾아 볼수 없는 삶이다. 아니 ‘이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happily ever after)’는 동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조르제트의 얼굴을 그리며 르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랑의 진정성과 깊이를 따져 묻는 건 그의 작품을 해석하려 들려는 것처럼 무모한 일일지도 모른다. 무의식 속 세상과 가장 가까운 것이 사랑일 테니 말이다. 이 둘의 아름다운 사랑이야 말로 극도로 초현실적인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