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요리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멋진(incredible) 일”
입력 2023.05.26 10:43 | 수정 2023.06.02 15:37

루이 비통 메종 서울
팝업 레스토랑 ‘이코이 at 루이 비통’ 제레미 찬 쉐프

[Interview Lounge]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요리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멋진(incredible) 일”
‘당신이 먹는 건 단순히 음식이 아니다 ‘아름다움’ 그 자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면 아마 이 남자의 요리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영국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이코이’를 이끄는 제레미 찬 쉐프. ‘영국 요리는 맛 없어도 영국에 있는 요리는 전 세계 최고 중 하나’라는 평가처럼 영국의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제철 식재료를 중심으로 세계 각지의 다양한 향신료로 풍미를 살린 창의적이고 현대적인 메뉴로 전 세계 미식계의 찬사를 독차지하고 있는 주인공이다. 중국계 변호사 아버지와 캐나다 출신 발레 강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동·서양과 논리와 감성의 이질적인 요소 사이에서 탁월한 균형감을 보인다. 현란하고 사치스러운 눈속임이 아니다. 미각에 대한 본능을 자극하는 그만의 향신료는 지극히 간결함 속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코이의 총괄 셰프이자 공동창업자인 제레미 찬(Jeremy Chan).이번 팝업 레스토랑에서 다채로운 제철 식재료를 아름답게 구현한 요리들을 선보인다. /루이 비통 제공
‘지금 이 순간’(moment in time)에 가장 충실한 요리를 선보인다는 그가 한국을 찾았다. 다음달 15일까지 서울 강남구 루이비통 메종 서울에서 팝업 레스토랑인 ‘이코이 at 루이 비통(Ikoyi at Louis Vuitton)’을 위해서다. 현장에서 만난 그는 “한국의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동시에 또 새로운 문화를 소개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우리의 요리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멋진(incredible) 일”이라며 즐거워했다.
-팝업 레스토랑을 연 소감은?
“26살 때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사실 조금 늦게 시작한 편이다. 거의 무급으로 주방의 가장 막내로 일했다. 불과 6년 전까지만 해도 동업자의 부모님 집 지하에서 단둘이 요리를 연구하면서 ‘우리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걸까?’ 하고 고민하던 것이 생생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이렇게 서울까지 와서 팝업 레스토랑을 연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간 노력의 결실이 정말 뿌듯하고 만족스럽다. 열심히 일한 보람이 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언어, 철학(비교문학)을 전공하고 스페인에서 금융사에 다녔다. 왜 요리에 빠졌는가.
“늘 같은 것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큰 것 같다.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다른 일을 하다가 전혀 다른 일인 요리를 시작한다는 것은 분명 도전적인 일이었다. 근데 막상 요리를 시작하고 보니 아무도 내가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내 배경이 어떤 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양파를 깎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러한 사실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 20대에 학력과 배경을 떠나서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로 다시 나 자신을 증명해 나가는 과정은 정말 즐거웠다. 나는 요리를 안 할 때에나 또는 다른 일을 할 때면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다고 느낀다. 요리는 나에게 최고의 도피처(distraction)이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든다. 늘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추가할 수 있는 재료가 있다. 때로는 요리법을 정교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요리엔 언제나 ‘더’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코이 at 루이 비통 팝업 레스토랑 내부 사진. /루이 비통 제공
-프로필만 보고 굉장히 까다로운 미식 칼럼니스트인가 했다. 편한 길을 박차고 나와 직접 요리를 한다.
“요리는 굉장한 정신적인 노동(mentally rigorous)을 요하는 작업이며, 많은 생각과 고뇌(deep mind)를 요리에 담는다면 사람들에게 정말 놀라운 요리/창작물을 선보일 수 있다. 나는 근본적으로 불안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요리가 나에게는 매우 유익하다. 24시간 내내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 2시까지 요리에 대해 생각하다 잠들어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 매일 집을 나서는 목적의식을 주는 일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삶에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다른 것들은 그저 무료하게 느껴졌다. 요리에는 모든 것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코이 at 루이 비통’ 메뉴는 한식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쪽파를 올린 참치 토스트’가 포함된 전채 요리부터, 디너 코스에서는 ‘조기젓 브랑다드(brandade·소금에 절인 생선-보통 대구-을 데친 뒤 올리브유, 우유 등을 첨가하여 혼합한 퓌레 질감의 음식)와 ‘스렌키 캐비아(schrenckii caviar·황금빛을 띄는 고급 품종 철갑상어알)와 사프란을 곁들인 인삼 크림 캐러멜’, ‘양배추절임과 된장 뵈르블랑(beurre blanc· 샬롯에 식초와 화이트와인을 넣고 졸인 뒤 버터에 섞는 것) 소스로 풍미를 더한 대구 요리’ 등 더욱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루이 비통 제공
- 한국 식재료나 향신료, 식료품 중에 신기했던 것이나 재밌었던 경험은?
" 한국 고춧가루로 고추기름도 만들고, 직접 김치도 담갔다. 직접 무김치를 30kg나 만들었다. 내가 직접 만든 양념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의 매운 김치와 맛은 비슷하지만 보이는 건 백김치다. 나만의 레시피로 쌈장도 만들었다. 또 이번에 조기젓을 사용하는데 살아있는 싱싱한 조기로 직접 젓갈을 담갔다. 어렸을 때 먹어봤던 절인 대구와 비슷해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조기젓으로 프랑스식 감자와 절인 생선 요리인 브랑다드를 만든다. 주꾸미도 정말 재미있는 재료다.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재료이다. 한번 데친 후에 직접 만든 쌈장을 발라 구워낸다. 맵고 맛있다. 봄 채소들도 너무 좋았다. 특히 두릅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스스로 당신의 요리를 ‘deep thinking on a plate’ 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향신료를 많이 쓰는 것도 같다. 향신료는 큰 반응을 일으킨다. 나는 무언가를 만들 때 ‘기쁨’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 ‘이 일이 나에게 기쁨을 주는가’, ‘우리로 하여금 춤추거나 소리치고 싶게 만드는가’ 나는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요리를 하고 싶다. 이코이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제되었을(refined) 뿐이다. 사람들이 내 요리 때문이 신났으면 좋겠다. 단순히 화려해서(fancy)가 아니라,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맛 때문에 신이 났으면 좋겠다. 시각, 후각, 미각으로 즐기고 손님들의 기분이 좋아졌다면, 나는 내 일을 한 것이다.”
-앞으로 목표는
“이번 팝업 레스토랑을 연 것은 어떠한 면에서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다. 몇 년 후에는 지금과 같은 야심찬(ambitious) 요리들은 내려놓고, 더 많은 사람들과 내 요리를 나누고 싶다. 다만, 요리에 지금과 동일한 수준의 ‘진정성(integrity)’을 담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정직한 요리(integrity with food)를 만드는 것은 결국 값비싼 과정이고, 정교한 작업이다. 많은 시간과 돈이 요구되기 때문에 보통 소수만이 맛볼 수 있다.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궁극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동일한 퀄리티의 정직한 요리를 나누는, 유의미한 방향으로 사업을 성장시키는 방법을 찾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재료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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