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클리프 아펠 Van Cleef & Arpels
때론 단순함에서 가장 위대함이 탄생하는 법이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동그란 구슬. 아이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지고 노는 공이나 어린 시절 입안에 굴리고 굴리다 깨물어 먹게 되는 동그란 캔디같이 흔하고, 친숙하며 익숙한 모양새다. 하지만 그 구슬의 소재가 금으로 바뀌고, 거기에 좌우대칭 완벽한 세공으로 균형감을 선사하고 빛을 내는 장인들의 손길이 더해질 때 비로소 그 평범한 구슬은 예술이 된다.
뻬를리(Perlée). 프랑스어로 진주구슬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프랑스 하이 주얼리 & 워치메이킹 메종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을 통해 경쾌하면서도 발랄하고, 풍요로워보이면서도 환상적인 주얼리&시계 컬렉션으로 재탄생했다. 가장 기본적인 조형중 하나인 원형(圓形)이 예술성 감수성과 상상력이 풍부한 반클리프 아펠에게 창작의 원형(原形)이 된 셈이다.
지난 2008년 첫선을 보이며 반클리프 아펠 메종의 대표적인 컬렉션 중 하나로 자리잡은 뻬를리가 이번 9월 ‘새로운 뻬를리’로 다시 한 번 진화했다. 구슬의 일상성에서 영감을 받아 평소에도 편하게 착용할 수 있는 ‘데일리 주얼리’ 콘셉트였던 뻬를리가 희소 가치 높은 라피스 라줄리, 다루기 까다로운 코럴(산호), 고감도의 색감을 뽐내는 터키석 등 컬러스톤을 만나 한결 화려해졌다. 공급량에 비해 수요가 급증하며 가격 역시 천정부지로 뛴 루비와 에메랄드, 사파이어 등 고도의 품질을 지닌 프레셔스 스톤(고가의 보석)까지 결합하며 뻬를리의 세계관을 확대했다. 엄격한 품질 기준에 따라 최상급 다이아몬드를 포함해 지속가능 환경과 윤리적 채굴 모두를 고려했다. 국내에도 새로운 뻬를리 작품 론칭을 기념해 오는 22일까지 서울 갤러리아백화점 이스트 1층에서 팝업을 열었다.
◇”창의성을 외형적으로 선포하는 나만의 지상낙원”
새로운 뻬를리가 공식 론칭하기 이전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5월 프랑스 칸(cannes)에서였다. 터키석빛 하늘과 라피스 라줄리 같은 짙은 쪽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빨레 뷜(Palais Bulles)에서다. 우리말로 거품 궁전(영어로 bubble palace)이란 뜻의 빨레 뷜은 프랑스의 전위적인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1922~2020)이 마지막 여생을 보냈던 공간. 이름에서 연상되듯 거품이 알알이 연결된 듯한 그곳은 피에르 가르뎅이 직접 건축가와 증축과 개축으로 완성했다. 마치 세포 분열하 듯 방과 방은 서로 연결되며 절벽 위 거대한 ‘궁’을 선보였다. 현대 아티스트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관이자 자신의 창의성을 완결짓는 곳이기도 했다. 가르뎅이 생전 “자신의 창의성을 외형적으로 선포하는 곳”이자 “나만의 지상낙원(paradise)”이라 불렀던 곳이기도 했다.
메종의 상징성을 띄는 골드 비즈(beads) 모티브를 품은 뻬를리의 새로운 세계를 소개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장소였다. 자연에서 탄생한 보석이 인간의 창의성과 만나 천상의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건, 낙원을 향한 인간의 끊임없는 구애를 반영한다. 동굴처럼 연결된 방에서는 뻬를리를 구성하는 라피스 라줄리, 말라카이트, 코럴, 오닉스, 터콰이즈 등 원석이나 광물의 원형이 완제품과 함께 선보였다. 라피스 라줄리의 경우 자체로 희소해 원석을 얻는 것도 쉽지 않지만, 세공 과정 역시 그 가치를 더한다. 자연적으로 생기는 내포물 없이 최상의 색감과 품질을 구현하기 위해 순수 결정체를 감지해 상당부분을 깎아내야 한다. 그만큼 작업 완성도를 높이면서 완벽을 기하면서도, 쓰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단지 장식적인 요소가 아니라 진정한 주얼러로서의 의지와 결단, 자부심을 담고 있는 모습이다.
다양한 직경의 구는 로스트 왁스 기법으로 만들어진다. 로스트 왁스란 준비된 형틀에 용해된 액체 상태의 금속을 주입하여 물체를 굳혀 만드는 금속 공예 주조법 중 하나다. 옐로우 골드, 로즈 골드 또는 화이트 골드를 주조한 뒤, 보석 장인이 손으로 하나씩 재작업을 한다. 철저하게 균형을 맞춰 완벽한 라운드 형태로 만든 뒤 광택 작업에 들어간다. 광택을 내는 미러 폴리싱의 경우 거친 털부터 극세사까지 수십 종류의 브러쉬(솔)을 바꿔가며 균질하고 균일한 빛반사를 해내야 했다. 단순해 보이는 비즈였지만 다른 보석들과 크기를 맞춰 재단돼야 하기 때문에 수십년 숙련된 장인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단순한 것이 가장 위대하다는 말의 뜻을 다시한번 새기게 된다.
◇새로운 뻬를리 컬렉션의 이모저모
장식용 스톤으로 새롭게 탄생한 5개의 새로운 뻬를리 컬러링은 1968년 메종이 선보인 필리핀 링의 미학을 재해석했다. 브레이슬릿은 스톤과 다이아몬드가 서로 대화를 하는 듯 마주하며 팔목을 우아하면서도 경쾌하게 감싼다.
루비·사파이어·다이아몬드 등 프레셔스 스톤이 줄줄이 장식된 뻬를리 컬러 5개 라인 링은 2008년 컬렉션이 탄생한 이후 최초로 컬러 프레셔스 스톤을 도입했다. 1970년대 후반 반클리프 아펠이 선보인 캐롤라인 링과 브레이슬릿에서 영감을 받았다.
뻬를리 워치의 경우 방사 형태로 뻗은 기요셰 모티브와 골드 비즈가 간결하면서도 화려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테두리의 옐로우 골드에는 미러 폴리싱이 적용되어 아름답게 반짝이는 순간의 감성을 전한다. 볼록한 글래스 아래 배치된 다이얼에 마더 오브 펄, 오닉스, 옐로우 골드를 더했고, 방사 형태로 뻗은 기요셰 모티브는 빛을 품은 후 자신만의 강렬한 반사를 세상에 다시 선사한다. 시간을 설정할 수 있는 푸시 버튼은 케이스 뒷면에 배치됐다. 시계를 착용했을 때 보이지 않게 해 미감을 더욱 높였다. 새로운 모델 5개 중 4개는 케이스의 직경이 23mm, 나머지 하나는 직경 30mm다. 교체 가능한 그로그랭 패브릭 소재의 브레이슬릿으로 돼 있으며 비즈 곡면과 조화를 이루는 브레이슬릿도 선보였다.
주얼리면서도 시계이기도 시크릿 워치 형태도 있다. ‘너와 나’를 의미하는 ‘투아 에 무아’ 주얼리에서 영감을 받았다. 전체 골드 비즈로 구성된 오픈 뱅글에 두 개의 다른 크기의 모티브가 서로 나란히 마주하고 있다. 마치 가면을 벗거나 거울로 가린 얼굴을 보여주듯, 손가락으로 원형 모티브를 살짝 밀면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윗면이 360°로 섬세하게 회전하며 라운드 다이아몬드의 테두리로 둘러싸인 화이트 마더 오브 펄(자개)의 다이얼을 드러낸다.
새로운 뻬를리 제품은 금속 공예가 아서 호프너의 디스플레이와 어우러져 예술적인 미감을 뽐냈다. 금속을 마치 종이처럼 구부려 커브를 주고, 파스텔톤으로 색감을 가해 마치 곡선의 주얼리가 오로라를 그리는 듯 변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