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지(Gen Z)들의 국중박(국립중앙박물관) 사랑이 답십리 고미술 상가까지 확장됐다. 젠지 수백년 세월이 누적된 옛 물건들로 가득한 이곳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답십리 고미술상가의 화려한 부활은 단순히 ‘레트로’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하기 부족한, 이 시대의 문화적 현상을 관통하고 있다.
젠지 세대에게 답십리 고미술 상가에 매료된 이유는 박물관 유리창 너머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어서다. 가까이 보고 직접 만져보며 셀렉트할 수 있음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 표준화된 대량생산 제품에 피로감을 느낀 이들에게,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의 시간을 견뎌온 물건이 뿜어내는 세월의 깊이와 아름다움 그 자체를 힙하게 여긴다. 투박한 옹기의 질감이나 세월에 마모된 나무 소반의 결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커스텀 아이템과 다름없다. K-빈티지 문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답십리 고미술상가는 정교하게 큐레이션된 갤러리와 다르다. 미로처럼 얽힌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수천 점의 물건이 쌓여 있는 가게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젠지 세대에게 이러한 탐험은 흥미진진한 보물찾기 게임과 같다. 자신만의 취향을 깊게 파고드는 ‘디깅(Digging) 소비’를 즐기는 이들에게, 수많은 가짜와 진짜 사이에서 자신만의 눈으로 보물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흥미진진한 경험이 된 것이다. 물건에 담긴 유래를 듣는 아날로그적 경험이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신선한 오프라인 콘텐츠가 됐다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전통적인 골동품 상점의 틀을 깨고 젊은 감각으로 무장한 이른바 ‘힙한’ 골동품 숍들이다. 고가구를 현대적인 주거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쇼룸 형태를 제안하는 ‘고복희’는 젠지 세대가 고미술에 입문하는 중요한 관문 역할을 한다. 특히 토요일에만 한정적으로 운영되는 소품 상점은 오픈 전부터 대기 줄이 생길 만큼 큰 인기를 끈다. 성수동의 기획자 최원석 대표가 운영하는 ‘오프(OF)’ 역시 고미술을 박제된 유물이 아닌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생활 기물로 제안하며 방문객들이 도자기와 목기의 촉감을 직접 느껴보게 함으로써 진입 장벽을 낮추었다. 빈티지 패션과 전통 민화를 과감하게 믹스매치한 ‘호박아트갤러리’나, 귀한 청자 잔에 차를 대접하며 환대의 미학을 보여주는 ‘예명당’ 같은 공간들이 답십리를 하나의 복합 문화 체험장으로 탈바꿈시켰다.
답십리 고미술 상가는 크게 세 개의 주요 건물로 나뉜다. 가장 대중적이고 다양한 물품이 섞여 있는 제2동은 입문자들이 거쳐야 할 메인 코스다. 인테리어의 중심이 될 만한 묵직한 고가구를 찾는다면 제5동이 적격이며,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도자기와 서화를 감상하고 싶다면 제6동이 훌륭한 선택지가 된다.
성공적인 보물찾기를 위해서는 몇 가지 요령과 매너가 필요하다. 초보자라면 처음부터 고가의 물건에 도전하기보다는 1인용 찻상으로 활용하기 좋은 작은 소반이나 문고리, 구리 그릇 같은 빈티지 소품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또한 고미술품은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취약한 경우가 많으므로 물건을 만지기 전에는 반드시 상점 주인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사진 촬영 역시 사전에 허락을 받는 것이 예의다. 가구 구매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배치할 공간의 치수를 미리 재어 오고 줄자를 지참하는 치밀함이 필요하다.
환경 문제에 민감하고 가치 중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젠지 세대에게 고미술품은 윤리적인 선택지이기도 하다. 새로운 자원을 끊임없이 소모하여 물건을 생산하고 버리는 방식 대신, 이미 존재하는 물건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수리하여 사용하는 행위는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철학에 잘 부합된다. 동시에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퇴색되는 공산품과 달리 고미술품은 세월이 더해질수록 그 가치가 상승하여,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자산이 된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투자처로 인식되기도 한다.
젠지 세대는 고미술을 무겁게 숭배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감각으로 자유롭게 즐긴다. 먼지 묻은 오래된 소반 위에 최신형 노트북을 올려두고 작업하거나, 조선시대 항아리에 화려한 꽃을 꽂아 방을 장식하는 이들의 모습은 현재의 젊은 세대가 보여주는 세련된 풍경 중 하나다. 답십리의 낡은 복도를 메우는 젊은이들의 활기찬 에너지는 우리 고유의 미학이 미래 세대와 공존하며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어, 더욱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