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음악 산업의 심장부인 로스앤젤레스 크립토닷컴 아레나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K-팝의 열기로 가득했다. 지난 2월 1일(현지시간)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는 음악적 성취를 기리는 시상식을 넘어, 글로벌 패션 아이콘으로 우뚝 선 K-팝 스타들이 전 세계 패션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쿠튀르 런웨이기도 했다. 이 기념비적인 순간의 주인공, 로제, 헌트릭스, 그리고 캣츠아이가 남긴 K-팝 패션신을 캡춰해본다.
로제, 하이패션과 록 시크의 우아한 변주
레드 카펫 위에서 가장 뜨거운 플래시 세례를 받은 주인공은 단연 로제였다. 그녀는 이번 그래미 레드카펫을 위해 지암바티스타 발리(Giambattista Valli)의 커스텀 쿠튀르 드레스를 선택했다. 블랙 미니 드레스에 입체적이고 드라마틱한 아이보리 실크 벌룬 드레이프가 더해진 드레스는, 로제의 시그니처인 금발 헤어와 완벽한 대조를 이루며 독보적인 아우라를 빛냈다. 해외 주요 패션 미디어들로부터 고전적인 우아함과 현대적인 팝 스타의 감각의 만남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또한 K-팝 솔로 아티스트 최초 그래미 오프닝 퍼포먼스로 기록을 남긴 로제는 브루노 마스와 함께 글로벌 히트곡 ‘APT.’를 열창할 때, 다시 한번 스타일 변신을 펼쳤다. 화이트 슬리브리스 톱과 정교하게 재단된 블랙 타이, 그리고 슬림한 팬츠로 구성된 쿨한 생 로랑(Saint Laurent) 룩은 ‘글로벌 팝 스타’로서 로제가 가진 여유로운 에너지와 자유분방한 록 정신을 표현해주었다. 안토니 바카렐로가 그녀를 위해 빚어낸 이 룩은 무대 위 로제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패션 화보의 한 장면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헌트릭스, 가상과 현실을 잇는 패션 서사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가상 그룹에서 현실의 차트를 점령한 스타로 거듭난 헌트릭스의 이재, 오드리 누나, 레이 아미. 이들은 이날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Best Song Written for Visual Media)’ 부문을 수상하며 새 역사를 기록했다. 헌트릭스의 패션 역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적인 시도로 가득했다.
이재는 깊은 밤의 신비로움을 담아낸 미드나잇 블루 컬러의 드레스를 착용해 레드 카펫의 시선을 압도했다. 이 클래식하고 우아한 테일러링의 드레스는 조나단 앤더슨이 디자인한 디올 드레스다. 오드리 누나는 톰 브라운의 구조적인 쿠튀르 드레스를 입었다. 특히 구반치(Guvanch)가 특별히 커스텀메이드한 레이 아미의 드레스가 시선을 끌었다. 한국의 국화이자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무궁화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레이 아미는 ‘가벼운 깃털과 거친 가죽, 그리고 뒷부분의 질감을 통해 이중성을 표현하려고 했으며, 꽃은 무궁화이고, 금속 장식은 다시 태어남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캣츠아이, 레드 카펫의 대담함과 무대 위의 스트리트 쿠튀르
‘베스트 뉴 아티스트(Best New Artist)’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캣츠아이는 레드 카펫과 퍼포먼스 무대에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 매력을 선보이며 패션계를 매료시켰다. 먼저 레드 카펫에서 이들은 대담한 미학을 추구하는 디자이너 루도빅 드 생 세르냉(Ludovic de Saint Sernin)의 드레스로 통일감을 주었다. 여섯 멤버는 화이트 레이스, 실버 스터드, 그리고 정교한 시스루 소재가 어우러진 네이키드 드레스(Naked Dress)를 각기 다른 버전으로 소화했다. Y2K 무드의 초커와 반짝이는 실버 글리터 메이크업은 캣츠아이 특유의 에너제틱하고 관능적인 매력을 극대화하며 최고의 그룹 룩으로 등극했다.
이날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이들이 선사한 압도적인 무대 위에서 펼쳐졌다. 캣츠아이는 그래미 공연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된 오프 화이트(Off-White)의 커스텀메이드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고 버질 아블로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하이엔드 스트리트의 정수를 담아낸 이 의상은 멤버 개개인의 개성을 반영한 해체주의적 디자인이 돋보였다.
강렬한 그래픽 프린트와 기능적인 테크니컬 소재, 그리고 격렬한 안무에도 무너지지 않는 구조적인 실루엣은 오프 화이트가 추구하는 ‘럭셔리 스트리트 쿠튀르’의 정점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캣츠아이의 폭발적인 퍼포먼스와 결합된 오프 화이트의 의상은 음악과 패션이 어떻게 서로를 완성시키는지를 입증한 순간이었다. 이는 럭셔리 하우스가 K-팝의 역동성을 어떻게 브랜드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2026 그래미의 레드 카펫과 무대는 K-팝이 장르적 유행을 넘어 하나의 스타일 세계관이자 패션계의 뮤즈임을 증명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로제의 우아함과 쿨 록 시크부터 캣츠아이와 오프 화이트가 합작한 강렬한 스트리트 쿠튀르까지, 이들은 음악을 시각화하는 가장 영리하고 세련된 방식을 전 세계에 제안하고 있다. 이제 K-팝 패션은 글로벌 패션의 표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