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겨울 패션 신에 펼쳐지는 흥미로운 트렌드, ‘김장조끼 패션’! K-그래니코어(K-Grannycore)라 해야할까. 블랙핑크 제니의 힙한 레트로 룩, 에스파 카리나의 사랑스러운 촌캉스 패션, 그리고 다비치 이해리와 강민경의 위트 있는 커플 캠핑 룩에 공통적으로 등장한 아이템, 바로 한국의 ‘할머니 옷장’ 속 김장조끼이다.
지난 겨울, K-팝 스타들과 셀럽들에 의해 시작된 김장조끼 물결이 이번 겨울 김장철을 맞아 다시 소환되고 있다. 지난 12월 ‘김장조끼’ 검색량이 최고치(네이버 데이터랩 기준)로 찍고 감소했는데, 이번 겨울 다시 급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 11월 중순까지 검색량이 전달 대비 약 7배 상승했을 정도다. 특히 20대와 30대 여성의 검색 비율이 50대 이상 검색 비율보다 월등히 높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화려한 꽃무늬 누빔 조끼는 이제 더 이상 김장철 방한용 의류가 아니다. K-팝 스타들의 대담한 스타일링을 거치며 김장조끼는 촌스러움이라는 낙인을 벗고, 젠지(Gen Z) 세대가 추구하는 그래니코어(Grannycore)의 독창적이고 아이코닉한 상징이 되었다. 그래니코어는 할머니 세대의 옷장과 라이프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복고풍 패션이다. 레트로 시크와 함께 그래니코어는 그 시대의 감각과 감성으로 재해석되어 꾸준히 유행해왔다. SNS의 패션 해시태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트렌드다. 그러나 김장조끼 룩은 매우 한국적인 K-그래니코어의 탄생이라 말할 수 있다.
김장조끼의 유행은 뉴트로(New-tro) 트렌드와 도시를 벗어나 시골 분위기를 즐기는 ‘촌캉스(촌+바캉스)’ 문화의 창작품이다. 촌캉스 룩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다소 촌스럽지만 편안하고 재미있는 패션 아이템으로, ‘몸빼 바지’와 함께 김장조끼가 가장 상징적인 시골 감성 아이템으로 주목받은 것이다. 김장조끼 룩은 촌캉스 룩에서 힙한 캠핑 룩으로 진화됐고, 곧이어 데일리 패션 아이템으로까지 격상됐다. 스타일 재창조에서 ‘펀(fun)’ 요소를 중요시하는 젠지 세대의 감성이 김장조끼까지 패션 메인 스트림으로 초대한 것이다.
무엇보다 김장조끼의 르네상스는 유명 K-팝 셀럽들의 대담한 스타일링을 통해 웨이브를 일으켰다. 세계적인 아이콘들이 사복 패션에서 꽃무늬 누빔 조끼를 툭 걸쳐 입는 모습은, 이 아이템의 지위를 단번에 ‘힙스터의 잇템’이 되게 했다.
블랙핑크 제니는 지난 겨울, 자신의 SNS를 통해 김장조끼를 활용한 ‘고프코어’와 믹스된 캠핑 룩을 선보였다. 그녀는 긴 태슬 비니와 스머지 패턴(번짐 효과로 얼룩덜룩해 보이는 패턴)의 팬츠, 그리고 편안한 어그 뮬과 함께 꽃무늬 누빔 조끼를 매치했다. 이 조합은 조끼의 농촌 감성을 세련된 아웃도어 무드로 승화시키며 ‘할머니 옷장’ 느낌은 간 데 없고 오히려 힙한 스타일을 완성하는 믹스매치 공식을 제시했다.
에스파 카리나 역시 화려한 색감의 김장조끼를 착용하며 젠지 세대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지난해 자체 예능 ‘에스파티’에서 꽃무늬 팬츠 위에 김장조끼를 입었던 카리나의 촌캉스 패션도 김장조끼 유행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비치의 이해리와 강민경도 커플 룩으로 푸른색 계열의 김장조끼를 착용하고 바라클라바를 매치하여 ‘촌캉스 룩’의 정석을 보여주며 이 트렌드에 힘을 실었다.
그래니코어, 한국에서 ‘할매니얼(할매+밀레니얼)’로 불리는 이 트렌드는 단순히 복고를 넘어선다. 이는 밀레니얼과 젠지 세대가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속도감에서 벗어나, 할머니 세대의 소박함과 아날로그적 정서에서 위안과 힐링을 찾는 심리적 현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편안하고 따뜻하며, 손때 묻은 듯한 질감을 갈망하는 이들은, 가장 비주얼적으로 충격적이면서도 정서적으로 익숙한 김장조끼를 선택했다. 넉넉하고 펑퍼짐한 실루엣은 활동의 자유를 부여하며, 기성 패션계의 타이트하고 규격화된 실루엣에 대한 은밀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또한,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가성비’이자 ‘가심비’ 아이템이라 더욱 사랑받고 있다. 김장조끼를 착용하는 행위 자체에 담긴 위트와 유머 코드는, 이 세대가 패션을 즐거운 놀이로 일상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김장조끼로 연출되는 ‘할매니얼’ 트렌드는 패션계의 지속 가능한(Sustainable) 소비 흐름과도 조화를 이룬다. 오래된 옷을 재활용하거나 빈티지 마켓에서 발굴하는 ‘스리프팅(Thrifting)’ 문화 속에서 김장조끼 역시 버려질 수 있었던 아이템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지속 가능한 패션 아이템이 된다.
이번 겨울 다시 소환된 겨울 시즌 핫템, 김장조끼. 지난 겨울 공효진은 강렬한 꽃무늬 대신 체크 프린트의 김장조끼 룩을 선보이기도 했다. 현란한 꽃무늬가 부담스럽다면, 이번 겨울 체크 프린트의 김장조끼로 K-그래니코어 룩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