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SS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데뷔 쇼 프리미어
입력 2025.10.25 19:07

이토록 많은 패션 하우스들이 한 시즌에, 새롭게 임명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데뷔 쇼를 동시에 펼친 적이 있던가! 10월까지 이어진 2026년 봄, 여름 컬렉션의 여정은 전통 깊은 패션 하우스들의 새 시대를 알리는 프리미어의 향연이었다.
보테가 베네타의 루이스 트로터, 디올의 조나단 앤더슨, 로에베의 잭 맥콜로 & 라자로 에르난데스, 구찌의 뎀나 바잘리아, 샤넬의 마티유 블라지, 발렌시가아의 피엘파올로 피촐리, 질 샌더의 시모네 벨로티 등, 이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은 각자의 무대에서 하우스의 정체성과 미학을 다시 쓰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교차하는 찰나를 연출했다.
같은 배우와 스태프, 시나리오 안에서도 감독의 연출에 따라 영화의 결이 달라지듯, 패션 하우스의 방향성 또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시선에 의해 완전히 새로워진다. 그래서 이번 2026년 봄, 여름 컬렉션 데뷔 쇼는 그들의 비전과 감도, 리더십을 시험하는 무대와 같았다. 하우스의 DNA를 다시 조율하고, 아카이브를 해체하고 재조합 하며, 그 안에 자신만의 정서를 담아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그들의 데뷔 쇼는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전통을 지키고 이어간다는 것, 그리고 이를 다시 창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어느때보다 강렬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2026년 봄, 여름 컬렉션 데뷔 쇼를 지금 프리미어해본다.
보테가 베네타, 루이스 트로터의 조용한 혁명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는 소리 없이 강한 혁신을 택했다. 그녀의 데뷔 컬렉션은 하우스의 기원을 새롭게 해석하며,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의 유산에 ‘소프트 펑셔널리티(soft functionality)’의 정신을 담아냈다. 공예와 실용의 경계에서 균형을 잡으며, 보테가 베네타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하우스의 아이코닉 백인 로렌(Lauren), 놋(Knot), 그리고 까바(Cabat)는 새로운 비율과 구조로 재탄생해 장인 정신의 진수를 드러냈다.
보테가 베네타의 루이스 트로터. @louise_trotter_

트로터는 가죽을 다시 짜고, 선을 다시 세우며, 비례를 다시 설계했다. 루이스 트로터의 보테가 베네타는 이전 다니엘 리가 구축한 모던 미니멀리즘의 잔향을 이어가면서도, 보다 성숙하고 내면적인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매끈한 실루엣 속에 힘 있는 곡선, 기술적 장인 정신을 존중하면서도 일상 속에 녹아 드는 인간적인 럭셔리를 제안했다. 루이스 트로터의 보테가 베네타는 조용한 럭셔리에 새로운 활력과 생동감을 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루이스 트로터는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와 같은 하우스의 유산에 ‘소프트 펑셔널리티(soft functionality)’의 정신을 담아냈다. 보테가 베네타.

보테가 베네타.

디올, 조나단 앤더슨의 재해석된 여성성
조나단 앤더슨의 디올은 완전히 새로운 리듬으로 움직였다.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낭만적 페미니즘 이후, 그는 여성성을 보다 지적이고 실험적인 시선으로 재조립했다. 건축적인 실루엣과 예술적 장식, 그리고 텍스처의 재조합이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현대적 여성의 초상을 새로 그려냈다.
디올의 조나단 앤더슨. 디올.

그의 첫 여성복 컬렉션은 순백의 크리놀린 스타일 드레스에서 시작해 트위드 재킷, 나비처럼 펼쳐진 블랙 샹티이 레이스 드레스, 버블 스커트와 디올의 모자 디자이너 스티브 존스가 디자인한 트리콘(Tricone) 모자에 이르기까지 전통과 실험이 공존하는 무대였다. 조나단 앤더슨은 디올의 상징적 실루엣을 해체하면서도 그 유산을 존중했고, ‘드레싱 업’과 ‘드레싱 다운’ 사이의 긴장감을 통해 하우스의 새로운 감도를 제시했다. 클래식한 테일러링 안에 숨겨진 위트와 예술적 해석은, 그가 단순히 역사를 계승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디올의 다음 장을 써 내려가는 창조자임을 입증했다.
디올의 모자 디자이너 스티브 존스가 디자인한 트리콘(Tricone) 모자와 건축적인 구조까지, 전통과 실험이 공존하는 무대를 선보였다. 디올.

디올.

로에베, 잭 맥콜로 & 라자로 에르난데스의 듀얼 비전
잭 맥콜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는 듀오 디렉터로서 양극의 조화를 새로운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그들의 로에베는 유기적이면서도 건축적인, 섬세하지만 구조적인 세계를 구현한다. 마치 프린트 카트리지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선명한 컬러와 그래픽적인 실루엣, 그리고 스포츠웨어 감각으로 재해석된 파카, 아노락, 탱크 탑, 폴로, 5포켓 진, 맥 코트, 봄버 재킷, 쇼츠, 미니드레스가 간결하고 직관적인 형태로 돋보인다.
로에베의 잭 맥콜로 & 라자로 에르난데스. @lazro

로에베 하우스의 아이덴티티인 가죽은 가공과 절단, 세공을 거쳐 예상치 못한 모습과 촉감을 지닌 소재로 활용된다. 몰드 기법으로 솔기를 완벽하게 감춘 아이템들은 조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며, 몸을 바라보는 방식을 새롭게 제시한다. 하우스의 아이콘을 재해석한 새로운 아마조나 180은 부드럽게 늘어진 듯한 양면 디자인으로 오픈 또는 클로즈 연출이 가능해졌다. 그들은 로에베의 장인정신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스페인 감성과 뉴욕의 에너지를 혼합해, 현대 럭셔리의 새로운 문법을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린트 카트리지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선명한 컬러와 그래픽적인 실루엣, 스포츠웨어 감각으로 재해석된 의상들의 간결하고 직관적인 형태가 돋보였다. 로에베.

로에베.

샤넬, 마티유 블라지의 우주로 확장한 클래식
마티유 블라지의 샤넬 데뷔 쇼는 ‘우주적’이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쇼의 테마는 ‘갤럭시 비욘드(A Galaxy Beyond). ‘가디언’지는 ‘샤넬이 새로운 궤도로 올라섰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마티유 블라지는 거대하면서도 컬러풀한 행성을 띄우고, 샤넬이란 갤럭시로 모두를 초대했다.
샤넬의 마티유 블라지. 샤넬.

그는 트위드 재킷과 카멜리아, 체인 백 등, 샤넬의 DNA를 더 대담하게 확장했다. 전통을 이어 받으며 이를 보다 젊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했다. 반짝이는 메탈릭 트위드와 구조적인 숄더, 공상적 무드의 실루엣이 어우러지며 ‘샤넬이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코코 샤넬은 당대 앞선 패션의 혁명가였다. 마티유 블라지는 그 정신을 잊지 않았고, 코코 샤넬이 꿈꾸던 ‘해방된 여성’을 21세기 감성으로 재해석했다.
거대하면서도 컬러풀한 행성 아래 펼쳐진 런웨이. 트위드 재킷과 카멜리아, 체인 백 등, 샤넬의 DNA를 보다 젊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했다. 샤넬.

샤넬.

구찌, 뎀나의 구찌 리셋
뎀나 바잘리아의 구찌 데뷔는 예견된 충격이었다. 구찌의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이 리셋되고, 데뷔 쇼 대신 그의 첫 구찌 컬렉션 ‘구찌: 라 파말리아(La Famiglia)’를 입은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 ‘더 타이거(The Tiger)’의 프리미어가 펼쳐졌다. 전통 깊은 패션 하우스의 컬렉션 문법을 뒤집는 뎀나다운 파격이며 도전이다.
구찌의 뎀나 바질리아. 구찌.

‘가디언’지는 구찌가 밋밋해진 시대에 뎀나가 다시 핫 소스를 끼얹었다’고 표현했고, WWD는 ‘창의와 비즈니스의 두 축을 모두 잡은 리셋의 시작’이라 평했다. 이렇게 뎀나의 구찌 데뷔는 파격적이었지만, 뎀나가 ‘구찌: 라 파밀리아’ 컬렉션 의상은 구찌의 아카이브를 지켰다. 뎀나는 역대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톰 포드, 프리다 지아니니,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스타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구찌의 유산에 경의를 표했다. 뎀나의 ‘구찌: 라 파밀리아’ 컬렉션 안에서, 지나온 모든 구찌의 전설적 아이템들이 각각의 스타일을 빛내며 한 패밀리로 모인 듯 했다.
뎀나의 구찌 첫 컬렉션 ‘구찌: 라 파말리아(La Famiglia)’으로 연출된 영화 ‘더 타이거(The Tiger)’. 데미 무어, 에드워드 노튼, 에드 해리스 등 초호화 출연진으로 화제가 됐다. 구찌.

2026 SS 밀란 패션위크 기간에 런웨이 쇼 대신 영화 ‘더 타이거(The Tiger)’의 프리미어를 펼쳐, 뎀나다운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었다. 구찌.

발렌시아가, 피엘파올로 피촐리의 따뜻한 혁신
이탈리아의 낭만과 프렌치 하이 꾸뛰르의 정수를 아는 디자이너, 피에르파올로 피촐리. 그가 발렌시아가의 새로운 수장이 되어 선보인 첫 쇼는 우아함의 재정의였다. 그의 데뷔는 발렌시아가의 유산을 해체하는 대신 조용히 정화시켜놓은 듯 했다. 1950년대 발렌시아가의 실루엣이 새 감성을 입고 런웨이를 부드럽게 행진했다. 그가 복원한 발렌시아가의 유산은 극단적 실험성 보다는 우아함과 품격이었다.
발렌시아가의 피엘파올로 피촐리. 발렌시아가.

발렌시아가의 유산을 해체하는 대신, 우아하고 부드럽게 이 시대 감성으로 재해석했다. 발렌시아가.

발렌시아가.

질 샌더, 시모네 벨로티의 따뜻한 미니멀리즘
시모네 벨로티의 질 샌더 데뷔는 ‘고요함의 미학’ 그 자체였다. 무채색 팔레트, 구조적인 실루엣, 그리고 예상치 못한 유연함이 런웨이에 조용하게 흘렀다. 그렇게 시모네 벨로티는 질 샌더의 미니멀리즘을 다시 불러냈고, 그 안에 새로운 리듬을 더했다. 절제된 실루엣이 결코 차가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감정적임을 재발견하게 한다. 질 샌더 미니멀리즘의 본질로 돌아갔지만, 시모네 벨로티의 감성이 더해지며 따뜻한 미니멀리즘으로 재탄생 됐다.
질 샌더의 시모네 벨로티. @simonebellotti

질 샌더의 유산에 시모네 벨로티의 감성이 더해지며 따뜻한 미니멀리즘으로 재탄생 됐다. 질 샌더.

질 샌더.

메종 마르지엘라, 글렌 마틴스의 절제된 해체
메종 마르지엘라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글렌 마틴스의 데뷔는 절제된 해체를 보여주었다. 하우스의 시그니처 스티치 디테일을 표현의 억압과 해방을 상징하는 마우스 피스를 통해 연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글렌 마틴스. @glennmartens

그는 아방가르드적 요소를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마르지엘라만의 아이덴티티를 보다 정교한 구조로 번역했다. 니트웨어는 16세기 벽지처럼 중첩된 텍스처로 연출됐고, 전통적인 테일러링은 파편처럼 재조립되었다. 그의 런웨이는 과거의 급진적 해체 대신 장인정신과 실루엣을 통해 ‘불완전함의 우아함을 설계했다’고 평가 받았다. 런웨이 위 모델들은 완성보다는 과정에 가까운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불안정한 아름다움은 마르지엘라가 걸어온 역사에 대한 헌정과 같았다. 이번 데뷔 쇼는 마르지엘라의 정신을 해체하지 않고, 절제하고 정제하여 보존하는 방법을 보여준 컬렉션이었다.
하우스의 시그니처 스티치 디테일을 표현의 억압과 해방을 상징하는 마우스 피스를 통해 연출하며, 절제된 해체주의를 보여주었다. 메종 마르지엘라.

메종 마르지엘라.

베르사체, 다리오 비탈레의 뉴 글래머
다리오 비탈레가 이끄는 첫 베르사체는 지아니 베르사체의 대담함을 다시 이 시대로 불러들여 21세기의 감각으로 재창조했다. 섹슈얼리티가 여전히 중심에 있으나 노출이 아닌 자신감으로 표현되었고, 지아니 베르사체의 파워 글래머도 더 세련되게 연출됐다. 그리스 조각 같은 드레이핑과 금속성 텍스처를 교차시키며, 베르사체 고유의 에너지를 이 시대의 감성으로 진화시켰다. 패션계는 다리오 비탈레의 베르사체 데뷔 쇼를 ‘지아니의 불꽃을 다시 피워 올렸다’라고 평했다.
베르사체의 다리오 비탈레. @dario___vitale

지아니 베르사체의 대담함을 다시 이 시대로 불러들여 21세기 감각으로 재창조했다. 베르사체.

베르사체.

장 폴 고티에, 듀란 란팅크의 새로운 해체적 관능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듀란 란팅크의 첫 장 폴 고티에 쇼는 마치 몽환적인 SF 시네마를 연상케 했다. 장 폴 고티에 특유의 유머와 도발을 미래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코르셋과 재활용된 데님, 메탈릭 소재로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해체적 관능이 돋보였다. 그는 전설적인 하우스의 코드를 맹목적으로 복제하기 보다 비틀고, 변형하며, 자신만의 해석을 더했다. 실험과 실용, 예술과 상업의 균형이 공존 된 컬렉션이었다. 그렇게 듀란 란팅크의 장 폴 고티에 데뷔 쇼는 하우스가 남긴 향수를 나열하기 보다 진화를 통해 패션의 시간을 전진시켰다는,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장 폴 고티에의 듀란 란팅크. @duranlantinkyo

장 폴 고티에 특유의 유머와 도발을 미래적으로 재현했다. 장 폴 고티에.

장 폴 고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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