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큰 별이 졌다. 지난 9월 16일, 향년 89세로 별세한 로버트 레드포드. 골든 할리우드 시절 수많은 패션 아이콘들이 탄생했지만, 그들 중에서도 로버트 레드포드는 단연 우아함의 상징이었다. 아메리칸 클래식에 기품을 더했던 로버트 레드포드의 멋은 화려한 장식보다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에 있었다. 반항아적이거나 눈에 띄게 꾸미지 않는 그의 스타일은 한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스타일이기 보다, 점점 스며들게 만드는 ‘조용한 럭셔리’에 속한다. 그래서 로버트 레드포드의 스타일은 ‘에포트리스 쿨(effortless cool)’로 정의된다.
현대에서 로버트 레드포드의 스타일을 재현하려면 특정 아이템을 복제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재단과 소재, 색의 농도와 질감의 대비, 그리고 몸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여유를 먼저 배워야 한다. 레드포드식 우아함은 계산된 자연스러움에서 출발한다. 패션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 옷과 함께 호흡하며 조화되는, 로버트 레드포드만의 애티튜드와 스타일링을 배워본다.
레드포드의 우아함을 입기 위해 먼저 주목할 영화는 ‘위대한 개츠비’다. 그는 1920년대 미국의 광란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댄디즘을 완벽하게 재해석한다. 개츠비 역을 위해 디자이너 랄프 로렌이 제작한 크림 또는 오프 화이트의 쓰리피스 수트는 여름 맞춤 정장의 정수로 남아있다. 크림 톤이나 밝은 베이지의 여름 수트는 레드포드의 개츠비 스타일을 가장 현대적으로 연출해준다. 소재는 가벼운 울이나 울과 실크와 리넨이 섞인 혼방이 좋고, 어깨는 딱딱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떨어지도록 선택한다. 라펠은 지나치게 좁지 않게, 팬츠는 허리를 편안히 감싸며 밑 위가 너무 짧지 않도록 맞춘다. 셔츠는 연한 블루가 세련되고, 타이는 머스터드나 샴페인 톤처럼 미세한 온기만 더하는 색이 균형을 잡는다. 액세서리는 최소화하고 구두의 광택은 과하지 않게 한다. 햇살이 강한 낮에는 주머니 각을 살짝 느슨하게 만들어 움직임을 살리고, 실내에서는 버튼 한 칸을 열어준다. 동일한 수트라도 이 작은 디테일들이 전체 수트 룩에 여유를 선사한다.
도시의 일상 룩은 영화 ‘대통령의 사람들’과 ‘콘돌’의 로버트 레드포드 룩을 참고한다. 1970년대 이 두 걸작에서 로버트 레드포드는 ‘인텔리전트 캐주얼’의 교과서가 된다. ‘대통령의 사람들’에서 워싱턴 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Bob Woodward)를 연기한 그는 과시적인 화려함을 버린다. 슬림하게 재단된 네이비나 그레이 수트, 혹은 코듀로이 블레이저를 착용하고, 여기에 좁은 넥타이와 클래식한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를 걸쳤다.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신뢰감을 주는 저널리스트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그의 옷은 세련되면서도 기능적인 ‘조용한 럭셔리’ 그 자체였다.
영화 ‘콘돌’에서 그가 입은 헤링본 트위드 재킷은 패션 역사상 가장 많이 카피된 재킷 중 하나로 꼽힌다. 비구조적인 실루엣으로 편안함을 주면서도, 굵은 흑백의 헤링본 패턴 덕분에 지적인 깊이를 더한다. 여기에 데님 진과 샴브레이 셔츠(chambray shirt: 날실과 씨실 색이 다른 면직물 셔츠. 데님과 유사해 보이나 더 얇고 부드럽다), 그리고 울 타이 등을 믹스매치한다. 하의는 미디엄 워시의 스트레이트 데님이 가장 안정적이고, 신발은 하이킹 부츠나 미니멀한 더비 슈즈로 상황에 맞춘다. 재킷의 포켓에는 불필요한 수납을 피하고, 손목에는 클래식 워치 하나만 찬다. 클래식한 아이템도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세련되게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겨울 스타일 공식도 간결하다. 네이비 피코트와 터틀넥으로 충분하다. 칼라를 세워 목을 감싸고, 스카프 없이도 따뜻할 만큼 두툼한 니트를 고른다. 팬츠는 플란넬이나 코듀로이를 매치하고, 첼시 부츠 같은 클래식 슈즈를 선택한다. 또한 영화 ‘다운힐 레이서’의 시어링 코트나 피셔맨 스웨터 같은 아웃도어 아이템을 착용할 때도 몸에 완벽하게 맞는 핏과 높은 품질의 소재를 선택해 투박함 대신 우아한 실용성을 연출했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스타일 스펙트럼에서 빛나는 또 하나의 스타일은 ‘러기드 아메리카나(Rugged Americana)’다. ‘러기드 아메리카’는 튼튼하고 내구성 강한 미국식 의류 스타일을 의미한다. 주로 미국의 노동자 계층과 서부 개척시대, 군인 등이 착용했던 기능적인 의상에서 영감 받은 스타일로,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낡아가는 멋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유타에 정착하고 선댄스 영화제를 설립하는 등 자연의 삶을 살았다. 그의 일상 스타일은 웨스턴과 아웃도어 룩을 고급스럽게 조화시킨 ‘선댄스 스타일’로 불린다.
그는 새 옷처럼 보이는 것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길이 든 낡은 옷을 선호했다. 바랜 가죽 재킷, 해진 데님 셔츠, 낡은 데님 진이 그의 시그니처 아이템이었다. 이는 옷을 단순히 유행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경험의 연장선으로 여기는 태도를 보여준다. 또한 그는 ‘청청 패션’이 트렌드가 되기 훨씬 전부터 데님 재킷과 데님 팬츠를 함께 입는 더블 데님 룩을 세련되게 소화한 선구자이다. 이 룩의 핵심은 데님 진의 워싱과 셔츠의 톤을 미묘하게 다르게 매치하여 깊이감을 주는 것이다.
로버드 레드포드식 ‘러기드 아메리카나’ 룩을 연출하고 싶다면, 먼저 더블 데님 룩은 상의는 한 톤 연하게, 하의는 한 톤 진하게 두어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부드럽게 흐르도록 한다. 부츠는 굽의 높이가 너무 높지 않도록, 벨트는 얇고 단정한 버클로, 모자는 상황에 맞게 고른다. 페어 아일이나 피셔맨 같은 구조적인 패턴의 니트 역시 세련된 선택이며, 셔츠 위에 레이어드하면 부피감이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근사하다. 단독으로 입을 때는 목선과 어깨선의 비율이 전체 인상을 결정한다. 칼라는 너무 깊지 않은 크루넥이나 적당한 높이의 터틀넥이 가장 활용도가 높다. 색은 얼굴 톤과 충돌하지 않는 중간 농도로 택하고, 하의는 데님이나 울 트라우저를 다양하게 매치한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에포트리스 쿨(effortless cool)’은 사실 매우 철저하게 계산된 노력의 결과였다. 이는 스타일링에 대한 가장 중요한 교훈을 제시한다. 그의 옷은 절대로 과하게 크거나 작지 않고, 몸에 완벽하게 맞는다. 영화 ‘콘돌’에서 입은 리바이스 진의 밑단을 잘라 원래 커프스를 다시 꿰매는 ‘할리우드 헴(Hollywood hem)’을 입은 것만해도 그의 핏에 대한 신중함을 보여준다. 진정한 자연스러움은 완벽한 핏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는 시계, 선글라스, 모자 등 몇 가지 클래식한 액세서리만 착용했다. 특히 에비에이터 선글라스나 플랫 캡은 그의 룩에 시대를 초월한 멋을 더하는 핵심이었다. 액세서리를 많이 사용하기보다, 고품질의 클래식 아이템을 소수만 선택하여 스타일의 정체성을 더 파워풀하게 업그레이드시켰다.
무엇보다 그는 유행에 따라 스타일을 급격히 바꾸는 대신,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옷장을 다듬고 발전시키는 숙련미를 보여주어 왔다. 그의 옷은 수십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퀄리티와 편안함을 통해 그만의 품격을 높여왔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진정한 우아함은 입는 옷의 브랜드나 가격이 아니라, 그 옷을 입고 살아가는 방식에서 나옴을 스스로 증명한, 진정한 우아함의 아이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