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와 함께, 다시 제주에 폭삭 빠져보다
입력 2025.03.25 08:00

‘오널도 폭삭 속앗수다(‘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의미의 제주 방언). 과거 제주공항 국내선 탑승창 유리창에 새겨져 있던 문구다. 이 유명한 제주 방언 인사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타이틀 ‘폭싹 속았수다’가 됐다. 제주어 표기법에서 ‘ㅆ’ 받침이 인정되지 않지만, 드라마 타이틀로는 ‘폭삭 속앗수다’가 아닌 ‘폭싹 속았수다’가 사용됐다. 그리고 ‘요망진 반항아’ 애순이와 ‘팔불출 무쇠’ 관식이의 이야기가 디지털을 넘어 AI의 새 시대에 들어선 2025년, 전 세대 마음에 레트로 아날로그 감성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의 글로벌 흥행이 그간 침체됐던 제주 여행에 봄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넷플릭스 코리아.

지금은 사라진 제주 공항 국내선 유리창의 '오널도 폭삭 속앗수다(‘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의미의 제주 방언)' 문구.

동시에 드라마 속 제주 풍경이 한동안 잊고 지냈던 제주에 대한 그리움의 바람을 일렁이게 한다. 이번 봄,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글로벌 흥행 붐을 일으키며, 전세계 팬들이 다시 제주의 매력에 폭삭 빠져들어가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는 ‘폭싹 속았수다’가 일으킨 제주 바람을 타고, 그간 침체됐던 제주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25 지금, 제주 여행-제주에 폭삭 빠졌수다’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기도 하다.
애순과 관식의 청춘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성산 유채꽃밭
드라마 속에서 애순과 관식의 어린 시절 제주 풍경에 성산일출봉이 종종 등장한다. 에피소드 4화 시작에서 보여지는 성산일출봉 전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다. 봄날 제주 여행 코스에서 성산일출봉 아래 샛노란 유채꽃 바다가 일렁이는 성산 유채꽃밭은 놓치지 말아야 할 목적지다. 드라마 속에서 연출된 ‘6시 내고향’ 프로그램에서 ‘사랑이 꽃피는 유채꽃 축제’가 등장하기도 했다.
에피소드 4화 시작에서 보여지는 성산일출봉.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성산일출봉을 병풍처럼 드리운 성산 유채꽃밭. 비짓제주.

어린 애순과 관식, 엄마 광례, 그리고 잠녀 이모들의 김녕해변
어린 애순과 관식의 순수한 추억이 바다향처럼 아득하고 가득한 김녕해변. 열살 애순이 바다에서 전복을 따다 매일 가장 늦게 뭍으로 나오는 억척 엄마를 동동대며 기다리던 바닷가다. 김녕 바다는 제주에서도 손꼽히는 에메랄드 물빛을 자랑한다. 엄마 광례와 동료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소라를 구워 먹으며 몸을 녹이던 ‘불턱’도 이곳에 제작 됐다. 김녕 어촌계에서 해녀 체험도 할 수 있고, 물때를 잘 맞추면 김녕 바닷길에서 ‘폭싹 속앗수다’의 명장면 같은 멋진 인생샷을 남길 수 있다.
열살 애순이 엄마 광례, 잠녀 이모들과 함께 했던 바다는 김녕해변이다.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김녕 어촌계에서 해녀 체험도 할 수 있다. 비짓제주.

애순과 관식의 가족들이 걷던 제주 오름
제주에는 많은 오름이 있다. 드라마 속에서 애순과 관식이 제주 오름을 걷는 장면을 보면, 저 뒤를 따라 걸으며 힐링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오름은 주로 제주 동쪽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계절에 따라 만나는 유채꽃, 수국, 억새는 오름이 주는 특별 선물이다.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는 ‘백약이오름’과 ‘안돌오름’을 추천한다. 약초가 많이 자생해 ‘백가지 약초가 자라는 오름’이라 의미를 지닌 ‘백약이오름’은 경사가 완만해 초보자들도 걷기 좋다. 특히 탁 트인 파노라마 전경이 아름답다.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안돌오름’은 비밀의 숲이 유명한 SNS 포토존이다. 하늘을 가리는 울창한 삼나무에 들어서면 그 풍경 자체가 로맨틱 무비가 된다.
제주 동쪽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오름. 계절에 따라 유채꽃, 수국, 억새 등을 함께 감상하는 특별함이 있다. 비짓제주.

구좌읍 송당리에 있는 ‘안돌오름'의 비밀의 숲. SNS 포토존으로 유명해졌다. 비짓제주.

애순과 관식이 백일장 시를 쓰던 제주목 관아
‘바람은 왱왱왱, 마음은 잉잉잉’. 애순이에게 이게 무슨 시냐며 타박 받았지만, 에피소드 9화의 타이틀이 됐던 관식이의 시가 쓰여진 곳. 감성 가득하고 언어 표현이 뛰어난 애순이의 시도 아름답지만, 요즘 세대들의 마음에는 의성어 ‘왱왱왱’과 ‘잉잉잉’ 만으로 모든 감정을 다 담아낸 관식이의 시에 더 열광했다. ‘바람은 왱왱왱, 마음은 잉잉잉’의 한 줄 시는 SNS 세대들 사이에서 하나의 밈(meme)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에피소드 8화에서 1967년 한라춘사제 백일장이 열린 곳은 ‘제주목 관아’다. 조선시대 제주지방의 통치 중심지로, 국가 지정 유산 구역이자 제주의 대표적인 역사, 문화 관광 명소다. 애순과 관식이는 연희당 앞에 걸터 앉아 시를 썼다. 또한 나중 중년의 애순이가 엄마를 그리워하며 시를 쓴 장소이다.
에피소드 8화에서 1967년 한라춘사제 백일장이 열린 곳은 ‘제주목 관아'다.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드라마 속에서 애순과 관식이는 연희당 앞에 걸터 앉아 시를 썼다. 비짓제주.

애순과 관식의 행복한 뒷 모습이 아련하던 제주 오라동 메밀꽃밭
‘폭싹 속았수다’의 1차 티저 예고편에서 애순과 관식이 함께 걸었던 하얀 메밀꽃길은 오라동 메밀밭이다. 애순이 어린 금명을 업고 걸어가던 메밀꽃밭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봄과 여름 사이에 메밀꽃과 유채꽃이 피어나며 아름다운 수채화 풍경을 그려내는 곳이다. 5월부터 6월 초에는 유채꽃과 함께, 9월부터 1월 초까지는 순백의 메밀꽃이 장관을 이룬다. 지난 9월 ‘메밀꽃 오라’ 축제를 펼친 후, 현재 재정비 중이다. 방문 전 제주 오라 메밀꽃밭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오픈 일정을 확인하고 방문 일정을 준비해야 한다.
애순이가 어린 금명이를 업고 걷던 메밀꽃밭은 제주 오라동 메밀밭이다.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제주 오라동 메밀밭. 봄과 여름 사이에 유채꽃이, 가을에는 순백의 메밀꽃이 피어난다. @jejuora

금명 유학을 위해 이사한 낡은 아파트 거리 누웨마루 거리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딸 금명이의 일본 유학을 위해 애순과 관식은 결국 엄마와의 추억이 깃든 집을 판다. 애순과 관식이 이사한 오래된 아파트는 제원아파트를 떠오르게 한다. 제주도민이라면 눈에 익은 옛날식 아파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제원아파트는 누웨마루거리 옆에 위치한다. 누웨마루거리는 제주 쇼핑과 먹거리의 중심지다. 2010년 제주시 연동에 조성된 차 없는 거리다. 제주 로데오거리, 바오젠거리로 불리우다 2017년 명칭 공모에 의해 ‘누웨마루 거리’로 명칭이 변경됐다. 누에처럼 생긴 구 제주 모양을 딴 이름이다.
제주 쇼핑과 먹거리의 중심지 누웨마루 거리. 비짓제주.

‘폭싹 속았수다’의 촬영 로케이션은 제주도가 주를 이루지만, 제주가 아닌 고창, 안동 등에서도 촬영됐다. 많은 시청자들이 궁금해했던 관식과 애순이의 첫 입맞춤 장소도 제주에 위치한 유채꽃밭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전라북도 고창 학원농장에서 촬영됐다. 그러나 타이틀부터 제주 방언을 내세운 ‘폭싹 속았수다’의 전체적인 감성은 제주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가난해도 등장인물들 간의 따뜻한 정과 사랑이 제주 자연 풍경 위에 시로 써지고 그림으로 그려져, 한동안 침체됐던 제주 여행에 봄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시리즈가 다 공개되기도 전 ‘폭싹 속았수다’의 촬영지를 따라 떠나는 순례 여행이 이번 봄 제주 여행 테마 트렌드가 됐다. ‘오널도 폭삭 속앗수다’한 당신, 이 봄 단 하루라도 훌쩍 떠나고 싶다면 애순과 관식이의 추억을 따라 제주를 걸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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