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LETTER]
럭셔리 패션계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글로벌 패션 하우스들의 총괄 디자이너들이 교체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 구찌·보테가 베네타·생로랑·발렌시아가 등을 소유하고 있는 케어링 그룹과 구찌는 17일(현지시각) 발렌시아가의 아티스틱 디렉터를 맡았던 뎀나(Demna)를 구찌의 새로운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뎀나는 오는 2025년 7월 초부터 공식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현재 자신의 성인 바잘리아(Gvasalia)를 버리고 ‘뎀나’로만 표기하고 있는 뎀나는 2015년부터 발렌시아가의 아티스틱 디렉터를 맡아 현대 럭셔리의 개념을 재정립하며 글로벌 패션 업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해왔다. 파격적인 도전으로 패션계에 화제성 몰이를 했던 주역이기도 하다.
조지아(구 소련연방) 출신인 그는 벨기에 엔트워프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하고 해체주의와 파괴적 개념으로 주목받았던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여성복 컬렉션을 맡기도 했다. 자신의 브랜드 ‘베트멍’으로 스트리트 감각과 럭셔리의 지위를 전복하며 마치 앤디 워홀의 팝아트 처럼 흔해 보이는 것에 자신만의 창작을 더해 가치를 증폭시켰다. 마니아 층을 만들며 ‘오픈런’이라는 단어가 제대로 성립되기 이전부터 팬들을 ‘줄세우는’ 디자이너였으며, 우아함과 기품의 상징이었던 발렌시아가를 맡아 길고 긴 소매 혹은 한없이 과장된 어깨, 일명 ‘어글리 슈즈’로 불리는 거대한 운동화 등 극한의 ‘오버사이즈’ 스타일 등으로 각종 시각적 충격을 선사하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유지해왔다. 스트리트 럭셔리 개념이 식상해질 때쯤, 발렌시아가의 근본을 되살려 쿠튀르 아틀리에를 다시금 부활시켜 찬사를 받았다. 전위적인 현대미술 작가 같은 그의 시각에, 전통적 장인과 수백 시간의 수작업을 온전히 이해하는 쿠튀리에로서의 가치관이 충돌되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그의 결과물에 패션 전문가들은 물론 팬들도 경의를 표하고 나섰다. 데님, 스웨트셔츠, 네오프렌 같이 캐주얼한 소재의 디자인이 오트 쿠튀르로 재탄생하는 마법이 뎀나의 손에서는 가능해진 것이다. 아니 뎀나가 그 작품을 만들어 내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수긍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전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을 법한 것으로 앞서나가면서도 동시대의 찬사를 받으며, 심지어 상업적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케어링의 브랜드 개발 부문 부사장인 프란체스카 발레티니는 “뎀나는 현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구상해 온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세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성공적인 크리에이터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하며, “그의 아티스틱 디렉터 임명은 구찌의 창의적 에너지를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될 것이며, 스테파노와 함께 브랜드를 새로운 성공의 시대로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구찌 CEO 스테파노 칸티노는 “뎀나의 독창적이면서도 강렬한 크리에이티브 접근 방식을 존경해왔다. 그는 브랜드의 레거시를 존중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접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더욱 견고해진 브랜드 기반을 바탕으로, 구찌를 다시금 패션계의 리더로서 자리매김하고 지속적인 문화적 영향력을 확립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케어링의 회장 겸 CEO인 프랑소아 앙리 피노는 “뎀나는 패션계, 발렌시아가, 그리고 케어링 그룹의 성공에 엄청난 기여를 해 왔고, 그의 창의적인 에너지는 지금 구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요소”라면서 “지난 10년 동안 쌓아 온 성과에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 그가 구찌에서 펼쳐 나갈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비전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10년간의 활동을 마감하고 또 날개를 단 이가 있다. 바로 로에베의 조나단 앤더슨. 2013년부터 로에베를 이끌며 로에베 공예 재단상을 만들어 현대적 의미의 공예를 재정립하고 디자인과의 연결 고리를 공고히 한 주역으로 꼽힌다. 현재 공석인 디올 남성을 맡을 것으로 이미 수개월 전부터 풍문이 돌았던 그의 행보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질 샌더와 OTB 그룹은 발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인 시몬 벨로티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세부적인 요소에 대한 집착과 혁신적인 방식으로 아카이브 자료를 재해석하는 능력을 발전시켰다. 그는 예술, 사진, 음악에서 영감을 얻으며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디자인적 시각을 형성해왔다.

사라 버튼의 지방시 합류와 하이더 애커만의 톰 포드 이직에 이어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베르사체를 떠난 자리에 비탈레가 새로 영입됐다. 또 올해 말 보테가 베네타의 루이스 트로터와 샤넬의 마티유 블레이지의 데뷔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