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루비 빛으로 물들이며, 제니의 첫 솔로 정규 앨범 ‘루비(Ruby)’가 발매됐다. 지난 3월 7일 발매일까지, 제니의 홍보 활동은 역대급이었다. 미국부터 국내 주요 인기 채널 게스트 출연을 점령하다시피 하여, 유튜브에서 한 번 제니 인터뷰를 클릭하면 알고리즘의 파도가 무한 제니 영상을 쏟아낼 정도다.

그 물결의 중심에 지난 6일과 7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피콕 극장에서 열린 단독 공연 ‘더 루비 익스피어리언스(The Ruby Experience)’의 패션이 있다. 제니의 독립 후 첫 솔로 정규 앨범 오프닝을 여는 공연인만큼, 전세계 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슈 톱을 차지한 건, 제니의 노래나 퍼포먼스가 아닌 무대 패션이었다. 그것도 선정성 논란으로 디지털 세계에서 팬들 간의 치열한 디베이트가 펼쳐지기까지 했다. 논란의 패션은 앨범 수록곡 ‘필터(Filter)’의 무대 의상이다.


오버사이즈의 모피 코트를 걸친 제니는 화이트 블라우스 수트 위로 블랙 코르셋과 스커트를 입고 무대를 시작했다. 모피 코트가 벗겨지고, 댄서들이 제니를 둘러싼 후 코르셋과 스커트도 벗겨졌다. 화이트 블라우스 수트만이 남겨졌는데, 가슴 부분이 V자로 깊게 파인 베테세(VETTESE)의 바디 수트를 입고 가슴 패드를 착용하지 않아 댄스를 하는 동안 노출이 불가피했다. 제니의 ‘필터’ 의상 선택과 옷을 하나씩 벗어내는 퍼포먼스는 모든 걸 벗어 던지고 필터 없는 본 모습을 사랑하라는 가사의 의미를 표현한 것이었다.




이 의상으로 공연한 시간은 1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전세계에 바이럴 됐다. 동시에 제니의 ‘필터’ 공연 패션을 둘러 싼 팬들 간의 치열한 디베이트가 펼쳐졌다. ‘곡을 상징하는 의상일 뿐이다, 해외 가수들은 이보다 더 노출이 심한 의상도 입는데 왜 제니는 안되는가, 아티스트다운 선택이었다, 제니만이 소화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라고 지지하는 팀과 ‘노출이 과하다. 곡의 의미를 표현하는 데 꼭 이런 의상이 필요했는가’라며 비난하는 팀이 팽팽하게 맞섰다.
제니는 세계적으로 공인 된, 글로벌 영향력을 지닌 패션 아이콘이다. 항상 실험적이고 독특한 룩을 시도하는 것을 즐겼다. 또한 인정받는 아티스트이자 슈퍼 인플루언서로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음악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 제니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입고 원하는 표현 방식으로 공연할 만큼 충분하게 성숙해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임희윤은 제니가 K팝 아티스트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미국 아티스트와 다른 노출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K팝이 보수적일 필요가 없으며, 오늘날 K팝 가사와 뮤직 비디오는 많은 미묘하면서도 암시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데, 대중들이 제니의 의상을 비판하고 싶다면 그 주제도 비판해야 한다고 평했다.



LA 공연 패션에 대한 뜨거운 논쟁 이후, 뉴욕 공연의 ‘필터’ 의상은 루비 레드 컬러의 홀터넥 코르셋 톱과 미국 성조기 프린트의 마이크로 쇼츠로 변경됐다. 그러나 의상 논란은 작은 노이즈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하듯, ‘루비’는 발매 첫 주 66만장 넘게 팔렸다. 올해 K팝 여성 솔로 아티스트 앨범 가운데 가장 높은 첫 주 판매량이다. 또한 미국 애플 뮤직 ‘톱 앨범’ 차트 9위, 유럽 애플 뮤직 ‘톱 앨범’ 차트 2위를 기록했다. 타이틀곡 ‘라이크 제니(like JENNIE)’는 글로벌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 ‘데일리 톱 송 글로벌’ 차트 7위에 올랐다.




‘루비’는 제니가 YG엔터테인먼트를 떠나 설립한 1인 기획사 OA엔터테인먼트에서 처음 선보인 앨범이다. ‘루비’는 자신의 팬과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말하고 싶었던 제니 그 자체를 담고 있다. 앨범 수록곡과 함께 모든 ‘루비’ 패션에도 제니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만큼 ‘루비’는 패션을 전면에 내세운 독특한 비주얼 랭귀지라 말할 수 있다.
디플로(Diplo)가 공동 제작하고 지코(Zico)와 공동 작곡한 타이틀 곡 ‘라이크 제니(like JENNIE)’는 ‘안티들은 제니를 좋아하지 않아. 그들은 절대 제니가 될 수 없으니까’라는 대담한 메시지를 담은 전기적인 힙합 트랙이다. 뮤직 비디오에서 GCDS의 실버 키티 브라캡을 혜인서(HEYIN SEO)의 홀터 탑 위에 걸쳐 입고 ‘혜인서’의 2021년 가을/겨울 시즌 카고 워커 팬츠를 입었다.

블록버스터급의 영상으로 화제가 된 ‘젠(Zen)’ 뮤직 비디오에선 르쥬(LEJE)가 커스텀메이드한 신라 고대 왕국에서 영감 받은 예술적 의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신라의 여성 리더인 ‘원화’가 된 제니를 상상하여 디자인됐다. 신비로운 골드 상의는 신라 금관 장식에서 영감 받은 ‘주작’의 비상하는 아름다움을 모티브로 삼았다. 불멸의 여성을 상징하는 제니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작품이다. 전통 투각문 양식을 활용한 바탕에 1천여개의 수공예 금속 장식을 전통적인 수작업으로 연결해 완성했다. 팬츠는 전통적인 한국식 살창고쟁이(조선 시대의 여성용 속바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이다. 신라 금관을 모티브로 한 금속, 곡옥 장식을 더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통해 제니의 대담하고 독보적인 매력을 극대화했다.

‘러브 행오버(Love Hangover)’ 뮤직 비디오에선 ‘인간 샤넬’ 제니의 샤넬 패션쇼가 펼쳐졌다. 2024년 봄/여름 샤넬 컬렉션에서 올려졌던 스카이 블루와 핑크 트위드를 번갈아 입었다. 도이치(Doechii)와의 콜라보로 이슈가 됐던 ‘엑스트라 엘(ExtraL)’ 뮤직 비디오에서 제니는 화이트와 레드의 강렬한 컬러 매치의 파워 수트 룩을 보여주었다. 화이트 수트는 스키아파렐리 제품이며, 모두가 궁금해 했던 레드 비키니는 이탈리아 스윔웨어 브랜드 오세리(Oséree) 제품이다.



첫 솔로 정규 앨범 ‘루비’를 통해 펼쳐진 패션쇼는 단 하나의 정규 앨범만을 위한 패션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컬렉션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모든 패션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각 곡이 지닌 메시지를 표현하는 비주얼 아트로 사용되고 있다. ‘네가 만든 규칙? 필요 없어, 내 스타일 그대로. 내가 등장하면 분위기부터 바꿔.. 길은 열어. 승리는 내 손에. 겁은 안 나. 한 판 붙어. 내 무대 내가 씹어… ’ 엑스트라엘에 담긴 메시지가 ‘루비’의 패션을 그대로 설명해준다. 제니의 패션을 향한 어떤 디베이트가 펼쳐지든, ‘제니는 제니의 길을 갈 것이다’라는 대답이 이미 곡 안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