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TIQUE LETTER]
1월 밀라노 남성 패션 위크
어쩌면 ‘트렌드’라는 말은 앞으로 사전에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예견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에서, 일정한 방향성을 지니며 발전하거나 변화하는 사상이나 움직임을 뜻하는 ‘트렌드’가 설 자리는 점점 없어져 보인다. 이쪽인 듯싶으면, 저쪽이라 하고, 저쪽으로 향하면 또 다른 곳을 보라고 한다. 유행을 뜻하는 ‘패션’과 유의어로 자주 쓰이는 측면을 고려해도 비슷하다. 정치·경제적 불안에 더해 환경·날씨 같은 변수까지 더해지면, 수요 예측이란 건 ‘희망 고문’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도발과 유혹, 갈망과 갈증, 환상과 도피, 구설과 화제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야단법석으로 가득했던 패션쇼 무대는 점점 차분해지고 있다. 하지만 당신이 잠시 간과한 것이 있다. 혁명이 패션사를 다시 쓰게 했고, 전쟁은 인간성을 꽃피우게 하는 비극적인 역설이었다는 것을. 침잠한 듯한 이 순간에도 디자이너의 스케치는 계속 되고, 장인들의 바느질은 멈추지 않는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내는 ‘생존 본능’이, 패션계에 ‘편안함’이라는 용어를 무대 위로 끄집어 냈다. 잠깐이라도 오롯이 누릴 수 있는 나만의 위로에 가깝다.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2025/26 겨울 남성 패션쇼’는 이를 잘 보여주는 장(場)이기도 했다. 다양한 콘셉트와 철학으로 버무려져 있었지만, 궁극적인 편안함을 구현하기 위한 시도가 옷깃에, 주름에, 실루엣 등에 배어 있었다.
토즈는 최근 선보인 2025/26 가을·겨울 남성 컬렉션에서 ‘패쉬미(Pashmy) 프로젝트’를 내걸었다. 패쉬미는 실크처럼 부드러운 촉감을 자아내는 캐시미어 직물인 파시미나(pashmina) 소재에서 따온 말이다. 고급 스웨이드가죽과 매우 가벼운 나파 가죽 버전의 두 가지로, 이를 마치 실크 같은 느낌으로 가볍고 섬세하게 완성했다. 토즈 측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테오 탐부리니는 봄버(점퍼)와 셔츠 재킷과 같은 클래식한 남성 의상을 패쉬미 가죽으로 재해석해 놀라운 부드러움과 절대적인 편안함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예측할 수 없는 건 정치·경제 뿐만 아니다. 소재 개발 등을 비롯한 창의성 역시 마찬가지다. 일부 전문가들은 “디자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예술적 감각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오감을 동원해 직접 만져보고 경험했을 때의 상상 이상의 감정은 겪어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넉넉하고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디아이 폴리오 백(Di Bag Folio)에서도 ‘멋스러운 편안함’을 엿볼 수 있다. 비즈니스부터 레저까지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멀티 포켓 트래킹 백팩도 선보였다.


돌체앤가바나는 이번 2025 가을 겨울 남성 컬렉션에 ‘파파라치’라는 이름을 붙였다. 파파라치는 1960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으로 유명해진 단어이자 유명인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는 이들을 일컫는다. 이번 쇼에선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쏟아내는 파파라치들이 무대 양옆으로 배치돼 런웨이를 마치 스타의 거리처럼 느끼게 했다. 현실에선 아수라장이 됐을지도 모를 그 공간이 평온 그 자체로 질서 있게 진행되는 모습이 비현실적이기도 했다. 유명인의 겉모습은 화려할진 몰라도 파파라치를 달고 다녀야 하는 삶은 가히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주변에 파파라치 하나 없다는 건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뜻. 따라다니는 사람이나 피사체가 되어 주는 대상이나 공허하긴 마찬가지다.
쇼는 유명인의 낮과 밤으로 나뉘어 밤은 근사하게 재단된 수트를, 낮에는 돌체앤가바나의 화려함을 느끼게 하는 인조 털과 플리츠 혹은 카고 바지 등으로 꾸민 듯, 보여주고 싶은 듯하면서도 과시로 보이지 않으려 애쓴 느낌이다. 극과 극으로 치닫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직·간접적으로 느끼는 심리적 폐허를 압축적으로 담아낸 듯하다. 궁극적인 편안함이란 정신적 건강함을 말하는 것 아닐까.
프라다의 2025 가을/겨울 남성복 컬렉션은 인간의 본성과 본능 탐구에 집중했다. 프라다를 이끄는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는 ‘근본적인 창의성의 도구’로 인간의 본성과 본능을 탐구했다. 프라다 측은 쇼 콘셉트에 대해 “학습되지 않은 자동적인 반응, 원초적인 욕구를 반영했다”면서 “옷을 입으면 안전함과 친밀함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파자마와 구두, 화려한 인조 털과 면바지 등은 평소 같으면 선택하지 않을 조합일지는 몰라도, ‘우리의 선택’이란 것 역시 무의식처럼 보이는 학습 된 의식 중 하나일 수 있다. 무례와 무법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안전과 안정을 갈망하는 우리의 본능을 다시금 일깨운 해석이다. /더부티크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