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최고급 시계 ‘오데마 피게’ 일라리아 레스타 CEO 단독 인터뷰
서울 청담동 AP 플래그십 문열어
“나는 사고의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CEO로서 결국 중요한 것은, 회사를 경영해본 경험이다. 27년간의 글로벌 기업 경영 경험은 꼭 시계 제조가 아니더라도 CEO로서 필요한 전문성이다.”
149년 역사의 스위스 고급 시계 제조사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AP)의 일라리아 레스타(Ilaria Resta) CEO는 온유하면서도 단호했다. 최근 서울 청담동에 ‘AP 플래그십’을 선보이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다른 업계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오는 것이 흥미로운 도전이었다”면서 “뜨거운 열정이 이 자리까지 오게 했다”고 말했다. 지난 1월부터 공식적으로 오데마 피게를 이끌게 된 그녀가 국내 매체와 인터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데마 피게는 대형 명품 그룹인 리치몬트나 스와치 그룹, LVMH 등에 속하지 않고 150년 가까이 독립적인 가족 소유 형태를 유지하는 몇 안 되는 회사 중 하나. 미국 대형 투자 은행 모건 스탠리에 따르면 지난해 추정 매출 26억 달러(약 3조 7265억원)로 롤렉스·까르띠에·오메가 등에 이어 고급 시계 분야 전체 4위를 기록했다. 고가 시계 분야 중에서도 최고가 제품군을 생산하는 회사로 꼽히는 데다, 고도의 복잡 시계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여서 새로운 수장(首長)에 대한 업계에 관심이 상당했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대부분의 예상과는 달리 시계와는 전혀 관계없는 분야 출신. CEO 사관학교라 불리는 미국 P&G에서 23년간 근무한 그녀는 2020년 세계적인 조향회사 피르메니히 CEO를 역임했다. 초창기 그녀의 부임에 대해 각종 매체는 ‘놀랐다’는 반응을 쏟아냈지만, 1년이 지난 현재 브랜드 문화와 조화를 이루며 연착륙한 CEO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시계업계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컬렉터이기도 한 ‘레볼루션 워치’ 매거진의 웨이 고 편집장은 미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레스타 CEO 임명은 오데마 피게가 시계 업계 1위로 올라서고 싶다는 강인한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식적으로 업무를 맡은 지 거의 1년이 다 돼 간다. AP에 처음 왔을 때 인상과 지금의 소감은.
“이 분야가 흥미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중독성이 있는 분야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호기심이 많기도 하지만, 더 자극한다. AP뿐만 아니라 다른 브랜드들도 역사가 깊고 인사이트가 풍부해서 잠시도 놓치고 싶은 순간이 없다. 역사, 문화, 기계와 혁신 사이의 매혹적인 단어들로 가득하다. 특히 시계 제작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업계가 독립성, 상호 의존성, 협업이 많다는 점이 정말 마음에 든다.”
―외부인이 거의 없는 시계 업계서 매우 드문 외부 업계 출신이다.
“스위스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시계 제조 산업에 항상 관심이 있었다. 다른 업계에서 온 리더는 분명 신선한 시각과 색다른 경험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각종 경영을 경험하면서 여성, 남성을 포함한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배경을 비즈니스 동력으로 받아들이는 포용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생각과 관점의 다양성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낳는다.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같은 생각,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발전할 수 없지 않겠는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건 사회적으로 옳은 가치일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를 구축하고 확대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업계에서 또 드문 여성 CEO이기도 하다. 특히나 시계 등 기계쪽은 여성들이 관심이 적을 것, 혹은 잘 모를 것이란 편견이 있기도 하다.
“내가 인터뷰할 때마다 받는 가장 첫 번째 질문이, ‘외부 업계 출신으로서 워치메이킹 분야 최초의 여성인데, AP는 왜 당신을 임명했느냐’다. 모두가 그렇게 묻는다는 점 자체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다양성뿐만 아니라, 고객 변화와도 일치하지 않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깝다. 점점 더 많은 여성이 기계식 시계를 구매하고 있다. 최근 조사를 보면 2030년까지 구매자의 45%가 여성이 될 것이다. 이미 많은 여성이 여러 시계 회사에서 시계 제작을 비롯해 많은 업무에 종사하며 유능한 인재로 평가받고 있고, 또 STEM(Science·technology·engineering·mathematics) 등을 비롯한 기술공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여학생들도 상당히 많다. 내가 좋은 성공 사례가 되어 다른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
―코로나로 인한 보복 소비 열풍이 줄어드는 등 최근 럭셔리 업계는 여러 가지로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업계 전망도 궁금하다. 큰 고객인 중국 시장에 대한 위축으로 많은 우려가 있기도 하다.
“럭셔리 업계가 이러한 삶의 회복으로 혜택을 받은 건 맞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은 성장이었다. 일부 브랜드의 경우 정상화되기는커녕 가파르게 매출이 감소하기도 했다. 거시적이고 통시적 관점에선 주기적으로 오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스위스 시계 제조 수출은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오데마 피게는 전혀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다. 우리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오데마 피게는 지난 10년간 눈부신 성장을 했다. 모건 스탠리에 따르면 2022년 AP 시계의 평균 판매 가격은 4만5000달러(약 6451만원)로 파텍 필립의 평균 3만6000달러보다 거의 50% 높기도 했다. 오데마 피게의 명성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인가.
“지금은 밀레니얼 세대와 젠지 세대 간의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다. 그들의 요구를 듣고, 세대의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 팬데믹 이후 가격을 보면 솔직히 기하급수적으로 올랐고, 많은 경우 가격이 반드시 품질을 따르지 않았다. 정당한 방식이 아니다. 일반적인 사치품의 경향에 대해 소비자들은 바로 가치를 알아차린다. 계속해서 품질을 높이고, 장인 정신을 높이고, 수준을 높이고, 고객에게 탁월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산업적 위기 상황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왜 구매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급 시계가 주로 3~5년, 길게는 10년 뒤까지 장기 플랜을 갖고 가는 걸 보면 당신의 주도하에선 아마 3년 뒤 이후가 더 꽃필 거 같긴 하다. 그래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제품을 선보여야 한다.
“많은 기업에서 R&D 혁신은 비용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가족 기업이기 때문에, 분기별 재무 실적을 좇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영속성을 추구한다. 이는 위기의 순간에 많은 도움이 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R&D 혁신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명품의 경우 단지 제품을 사는 게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신뢰, 브랜드가 제공하는 각종 보증 등 약속 등을 포함해 진실하고 진정성 있게 제작자의 마음을 함께 구매하는 것이다. 제품 제작 과정을 고객에게 보여주는데, 여기에 한 번 참여하게 되면 우리가 얼마나 품질과 디테일에 집착하는지, 완벽을 위해 수많은 수작업과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오랜 공정을 인내로 참아내는지 등 모든 마음의 상태까지 공유하게 된다. 내가 오데마 피게를 믿는 이유이기도 하다.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선 ‘배우는 리더’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믿는 리더와 구분하기 위해 쓴 말이긴 하다. 최고의 리더는 계속 배우며 정신적으로 민첩성을 유지해야 한다. 내가 몇 년 동안 리더로서 배운 것은, 솔직히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는 것이다. 마케팅과 데이터에 접근하는 방식 등을 포함해 고객이 브랜드와 소통하는 방식도 AI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불과 5년 전엔 해도 됐던 일을 계속하면 회사는 추락하고, 망한다. 대체로 리더의 문제는 과거엔 변화가 너무 느려서 10년, 15년 동안 같은 일을 계속 하는 오만함으로 버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배워야 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배우는 리더’와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 리더’의 차이점이다.”
―내년이 150주년이다.
“지금은 공개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신제품이 출시될 예정이다. 내년 말쯤으로 전망한다. 우리의 전통에 대한 오마주라고 말할 수 있다. 정말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