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패션기업 한섬과 손잡고 플래그십 스토어 ‘키스 서울’ 오픈… 키스(KITH) 창업자 로니 파이그
입력 2024.09.06 00:30 | 수정 2024.09.06 00:30

“지난 몇 년간 서울이 패션계에 미치는 영향 눈여겨봐 왔다
일에 매우 열정적이고 아주 디테일한 것까지 신경쓰는 모습들이 큰 영감을 준다”

미국의 키스가 국내 현대백화점그룹의 패션 전문 기업 한섬과 손잡고 서울 성수동에 선보인 대형 단독매장 '키스 서울' 내부. 뉴욕을 필두로 런던, 파리 등에 있는 키스 단독 매장은 독특한 인테리어로도 유명하다. /한섬 제공

지난 5월 31일 서울 성수동의 한 건물 앞엔 수백 미터 넘는 줄이 이어져 있었다. ‘MZ들의 성지’로 불리는 성수동이기에 아주 새로운 풍경은 아니었지만, 전날부터 밤샘 ‘불침번’을 서는 건 드문 일이었다. 미국 뉴욕 기반의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키스(KITH)’가 국내 패션 기업 한섬과 손잡고 성수동 선보인 플래그십 스토어 ‘키스 서울’이었다.
총 4개 층 1487㎡(약 450평) 크기로, 한국은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에 이어 키스의 4번째 해외 진출국. 자체 상품을 비롯해 다양한 브랜드 등 남·녀·아동 라인, 액세서리와 신발 등을 판매하며 국내에선 파리와 유사하게 식음료 매장까지 갖췄다. 시리얼 아이스크림으로 잘 알려진 ‘키스 트리츠(Kith Treats)’와 레스토랑 ‘사델스(Sadelle’s)’까지 한국에 첫선을 보였다.
2011년 미국 뉴욕에 키스를 선보인 창업자 로니 파이그(Ronnie Fieg·42) CEO는 13살 때 삼촌이 운영하던 뉴욕의 인기 스니커즈 편집매장 ‘David Z’에서 일을 익히면서 자연스레 트렌드를 접해갔다. 운동화 마니아였던 로니에게 매장 ‘알바’는 그토록 원하던 생일 선물이었다. 스니커즈에 대한 애정은 10년 여만에 그를 매장 수석 바이어 자리에 올려놨고, 그가 뜯고 붙이고 칠하고 고안한 독창적인 스니커즈 디자인에 반한 브랜드 측에서 적극적으로 협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로니가 독립해 세운 매장 키스(KITH)는 영어 고어(古語) ‘Kith & Kin’(요즘 말로 Family & Friends)에서 따온 말.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미다. 거리문화(스트리트 컬처)’ 마니아들의 성지에서 뉴요커들의 삶, 어린 시절의 추억 등 일상 전반을 전달하고 재해석하는 컬트 문화 생산지로 확장하고 있다. 이번 오픈을 맞아 파이그 CEO와 온라인으로 인터뷰를 나누었다.
미국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키스(KITH)를 성공시킨 창업자겸 CEO 로니 파이그.

―밑바닥부터 시작해 요즘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인물이 됐다. 예전 인터뷰에서 24시간 KITH만 생각하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13살 때부터 매일 일에 헌신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쉽사리 이야기하진 않지만, 본인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기술에 진정으로 집중하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러나 10년 이상이 지나고 꾸준히 성장하면서, 그 희생이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 ‘내 가족’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은 두 명의 아주 예쁜 딸과 사랑스러운 아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가족들과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 예측하는가. 한국에선 이걸 ‘촉’라고도 하는데, 당신의 촉에 따라 회사의 운명이 달라지기도 한다.
“신발 산업은 내 첫 열정이며, 30년간 그 안에서 살았고, 2007년부터는 다양한 신발들을 직접 작업했다. 모든 흐름과 사이클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이런 흐름과 관심들이 언제 이동할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소비자로서 업계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제품은 나 자신과 내 옷장을 위해 만드는 것이었다. 2011년에 내 브랜드를 시작한 이유는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직접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이후로도 많은 사람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로니 파이그의 명성이 패션계를 뒤흔든 건 그가 KITH를 세우기 전인 2000년대 후반. 지금은 협업이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거의 없던 개념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요즘도 ‘전설’로 불리는 아식스X로니 피그 시리즈다. 어린 시절 밑창이 닳도록 신었던 젤라이트3 모델을 선택했다. 당시 단종된 모델로, 요즘 유행하는 패치워크(여러 컬러·소재 제품을 이어 붙인 것)처럼 과감한 컬러를 입혔다. 800족을 실험적으로 내놓았지만, 트렌드란 때로 너무 앞서도 외면받는다. 파격이 재고라는 실패를 낳을 즈음, 한 고객이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신발 한 족을 구매했다. 다음날 로니 파이그는 이전에 보지 못한 광경을 마주한다. 요즘 말하는 ‘오픈 런’이다. 전날의 그 고객은 미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였고, 신문에 실린 리뷰를 보고 아침부터 몰려들었다. 남아있던 756켤레는 만 하루 만에 동났다.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해외 론칭하면서 직진출 대신 현지 패션 기업과 손잡고 론칭한 것도 이례적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서울이 패션계에 미치는 영향을 눈여겨보기도 했다. 오랜 기간 도쿄를 좋아해 왔는데, 지금 서울에서 그런 감정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우리 브랜드가 이 곳 서울에서 인정받고 그 지역에 독특한 무언가를 더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또 함께 선보인 사델스(Sadelle’s)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런치 레스토랑인데, 전 세계 어디에 있든 팬들에게 진정한 뉴욕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 가장 큰 만족을 준다.”
'키스 서울' 외관. /한섬 제공

―K콘텐츠 종사자 혹은 콘텐츠 등을 통해 느낀 한국의 이미지, 문화, 성장력 등에 대해 말해준다면?
“2년 전 서울 프로젝트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을 때가 기억난다. 서울이라는 독특한 도시의 문화와 세계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이렇게 멋진 새로운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블랙핑크의 리사(Lisa)가 떠오르는 데, 직접 만나기 전부터 그녀가 해온 수많은 작업을 좋아했다. 이후 실제로 만나보니 일하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부분들이 꽤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매우 재능 있고 아주 섬세하다.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고 최근 말리부 오프닝 만찬에서 만났을 때 자신의 뮤직 비디오를 보여주었는데, 그 작업물을 함께 보면서 그녀가 자신의 일에 얼마나 열정적인지 알 수 있었다. 이런 부분 또한 내가 한국에서 영감을 받는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자신이 하는 일에 매우 열정적이고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모습들이 큰 영감을 준다.”
―주문형 의류제조회사 레조넌스(Resonance) 창업자 로렌스 레니한이 미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Cool is a depreciating asset. The more you use it, the faster it depreciates. Surprise collaborations are only exciting while they remain surprising. As more of these collaborations happen, the energy disappears,”(쿨하다는 것은 감가상각되는 자산이다. 더 많이 사용할수록 더 빨리 감가상각된다. 깜짝 협업은 놀라움이 유지되는 동안에만 흥미진진하다. 이러한 협업이 더 많이 이루어질수록 에너지가 사라진다). 협업도 새롭지 않은 요즘, 어떤 점이 가장 중요할까.
“동의한다. 시장이 협업으로 과포화 상태가 되었다고 여러 번 말한 적이 있다. 협업을 일종의 트렌드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파트너십이라는 진정한 목적을 이해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협업은 각 브랜드가 단독으로는 만들 수 없는 독특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시장의 빈틈을 메우고 매우 독특하며 또 다른 느낌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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