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지 100인 ‘스타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 이 남자 없이는 패션도 없다
입력 2024.08.16 00:30 | 수정 2024.08.16 00:30

‘로에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 단독 인터뷰
한국 단독 매장 ‘까사 로에베 서울’ 직접 큐레이션
’수집가의 집’ 콘셉트로 각종 아트 작품도

로에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 /로에베 제공

‘미국 타임지가 뽑은 ‘2024 올해의 영향력 있는 100인’, 영국 유명 패션 플랫폼 Lyst 선정 2024 상반기 최고의 핫(hot)한 브랜드 1위, 영국 패션협회 선정 올해의 권위있는 디자이너상(2023) 수상….’
현재 패션계에서 가장 화제되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스페인 럭셔리 하우스 로에베(LOEW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이다. 여기서 ‘화제되는’을 ‘뛰어난’이라는 단어로 바꿔도 이의를 달 사람은 그다지 없어보인다. 각종 유명 셀럽은 물론 패션에 민감한 1020 세대부터 전 세대를 넘나드는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최근 각종 뉴스를 장식했다. 올초 국내 K팝 스타들이 입어 화제가 된 노팬츠(하의를 입지 않은 듯한 스타일) 패션이나 소셜 미디어에서 열풍을 일으킨 픽셀레이트(컴퓨터 그래픽처럼 보이는 착시 디자인) 패션 등 흔히 말하는 파괴적 혁신(disrupt)을 패션으로 선보이며 마니아 팬층을 일궈냈다.
까사 로에베 서울 오프닝에 참석한 유명인사들. ①임지연 ②세븐틴 에스쿱스 ③에스파 지젤. ④까사 로에베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영국 유명 도예가 존 워드의 화병(1980). 존 워드의 도예작품은 절묘한 공간감과 균형감으로 영국 빅토리아앤 앨버트 뮤지엄을 비롯해 전 세계 여러 미술관·박물관 등에 전시되고 있다. ⑤지승(紙繩·종이끈) 공예로 유명한 이영순 작가의 ‘코쿤탑 시리즈-1’(2019). 한지를 꼬아만든 화분(바구니)를 쌓아올렸다. /로에베 제공

하지만 이 질문을 10년 전에 했더라도 결과는 비슷했을 것이다. ‘타임지 100인’같은 고전적인 권위의 목록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패션계에선 가장 기대되는 디자이너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2008년 런던 패션위크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단 브랜드를 처음 선보인 이후 각종 패션계 신인상을 휩쓴 그는 2013년 스페인 왕실 공인 가죽 전문 브랜드로 알려진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아 세계 무대에 자신을 알렸다.
1846년 설립된 로에베는 1905년 스페인 왕실로부터 왕실 임명장을 수여받으며 스페인 왕족을 위한 고급 가죽을 생산했고, 1996년 창립 150주년을 맞아 글로벌 럭셔리 그룹 LVMH에 인수된 바 있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로에베 단독 매장 ‘까사 로에베 서울’ 외관. 초록색 스페인산 핸드메이드 타일로 장식한 파사드(외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장 주목해야 할 디자이너’에서 자신의 패기와 줏대, 감을 잃지 않고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로 성장한 조나단 앤더슨. 하루가 멀다하고 뜨고 지는 브랜드가 허다한 패션계에서 한 브랜드를 10년이나 이끈 그가 디자인 역사를 새로 쓸 ‘작품’을 한국에 선보였다. 지난달 25일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국내 최초 단독 매장인 까사 로에베 서울(CASA LOEWE Seoul)이다. 수집가의 집(Collector’s home)이라는 공간 콘셉트로 패션, 예술, 공예, 디자인 가구가 어우려진 이 건물은 그가 직접 큐레이션한 국내 유일 매장이기도 하다.
최근 오프닝 현장을 찾은 그를 국내 일간지 단독으로 만났다. 미술은 물론 음악, 영화, 책 등 각종 문화를 비롯해 어린 시절부터 매력을 느낀 공예 분야에 특히 진심인 그는 2016년부터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국내 공예 작가를 세계 무대에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번 오프닝을 겸해 오는 9월 3일부터 8일까지, 2023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후보자로 선정된 바 있는 이재익 작가의 특별 전시 ‘Shape of Life’ 를 까사 로에베 서울에서 개최한다. ‘프리즈 위크 서울 2024(Frieze Week Seoul 2024)’의 공식 프로그램인 이번 특별 전시는, 이재익 작가의 기존 작품뿐만 아니라, 로에베와의 특별 협업으로 제작된 가죽 브로치 시리즈를 새롭게 선보인다. 누구나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수집가의 집’이라는 콘셉트로 마련된 까사 로에베 서울은 다양한 미술·공예작품으로도 마치 갤러리 같은 느낌이다. 건물 내부의 설치작인 치쿤사이 타나베 IV의 ‘창조의 원천’(2024). 호랑이 대나무를 엮어 만든 것으로, 1층 중앙 아트리움에 자리한 나무 줄기 형태의 원기둥 두 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패션과 예술을 상징한다. 이 나무 줄기는 2층까지 뻗어 올라가면 조화로운 형태로 얽히고 설켜 융합된다. 작가가 현장을 찾아 몇 주동안 완성했다. /로에베 제공

럭셔리는 죽었다. 럭셔리 그 이상의 문화를 만든다.
―1~2년을 버티기 힘들다는 패션계에서 지금 가장 핫한 디자이너로 손꼽힌다. 로에베를 이미 10년이나 이끌고 있다. LVMH가 소유한 브랜드 중에서도 가장 장수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기도 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한다. 온전히 헌신해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역사 속에 남는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이 하룻밤 사이에 완성될 수 있는 일도 아니기도 하다. 중요한 건 ‘꾸준히 발전하는 것’이고, 단기간에 너무 빠르게 성장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장을 건설하고 장인들을 양성하며, 적절한 매장을 적절한 시기에 오픈하는 방식으로 일관성 있는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 프로젝트에 헌신하는 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 로에베는 이제 막 여정의 출발선에 서 있을 뿐이다. 이제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 한국에 오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①2층에서 만날 수 있는 정다혜 작가의 2022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대상 수상작 ‘성실의 시간(A Time for Sincerity)’(2021). 한국인 최초 수상작으로 말총을 꼬아 만들었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찬사를 받았다. ②③④⑤까사 로에베 서울의 내부 매장 모습. /로에베 제공

―이번 까사 로에베 서울이 당신이 걸어온 로에베 10년을 기념하는 기념작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까사 로에베 서울은 우리에게 큰 이정표다. 로에베 브랜드의 본질을 아주 잘 보여주는 이 멋진 매장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개인적으로 한국을 사랑해서 한국 방문을 늘 즐긴다. 특히 한국 가구는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가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매장을 열 때마다 정말 내 개인 작업을 하는 것처럼 많은 신경을 쓴다. 올바른 로케이션을 선택하고, 올바른 아티스트와 협업하고, 동시에 훌륭한 한국 앰배서더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우리의 세계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로에베가 1846년부터 이어져온 브랜드임을 알리고 싶었고, 까사 로에베 서울을 통해서 전 세계인들에게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을 보여주고,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고 싶었다. 로에베가 어디로 가는지 그 시작점을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기 때문에 의미가 큰 프로젝트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를 보니 처음 로에베를 맡았을 때, LVMH 관계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럭셔리 대신 문화적인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 ‘럭셔리는 의미를 잃었다. 럭셔리 소시지 처럼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럭셔리를 아무데나 갖다 붙일 수 있기 때문에, 이보다는 문화에 집중하고 싶다( Luxury lost its meaning. You can get luxury sausages. You put ‘luxury’ on something, and that just means it’s worth more)’고 말한 바 있다.
“나에게 로에베는 럭셔리에 관한 브랜드가 아니라 오히려 문화에 관한 브랜드다. 로에베는 어떻게, 왜 제품을 만드는지 항상 고심하고, 품질과 전통을 중시한다. 소비자들은 로에베가 장인정신, 진정성에 관한 브랜드임을 이해하기 때문에 우리 제품을 구매한다. 나는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로에베 고객들은 브랜드 충성도가 아주 높다. 로에베가 소위 말하는 기타 명품 브랜드와는 매우 다른 무언가를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를 계속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 뒤 로에베는 스페인 특유의 유머와 유쾌함, 눈부신 햇살이 반영하는 총천연색의 보석 같은 색감, 구조적인 도형미, 또 영국 클럽씬(scene)에서 느끼는 전위적이고 진취적인 감각을 동시에 녹여냈다. 코끼리 가방 같은 각종 동물 미니백부터, 퍼즐백, 조약돌(페블)이 인상적인 버킷백, 플라멩코 스커트처럼 주름을 잡을 수 있는 플라멩코 백 등 예술적이면서도 상업성있는 제품을 선보였다.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이끄는 LVMH 그룹에 속해있다. LVMH에 속한 브랜드들은 경쟁이 심하고 매출 향상을 재촉하기로 소문나 있다. 그런 곳에서 10년이나 브랜드 디자인을 총괄했다.
“아르노 회장은 단기적인 반응을 하지는 않는다. 로에베는 지난 10년의 여정 동안 매우 일관되게 성장해 왔다. 루이 비통도 지난 30년간 매우 일관된 성장을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한마디로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단기적 성장이 아닌 장기적 성장에 집중한다. 나는 그의 접근 방식을 좋아한다. 브랜드의 가치와 향후 발전에 대해 생각할 때 이미 10년 후를 내다보고 그 때의 브랜드는 어떤 의미를 가질지 생각한다. 굉장히 현명한 비즈니스적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현명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베르나르 아르노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웃음).”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도 선보이고 있는데, LVMH 아르노 경영 스타일에 영향을 받았는가.
“내 비즈니스를 베르나르 아르노에게 팔았고, 그 이유는 그가 장기적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비즈니스의 중심에 창의성이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엔 특히 더 그렇다. 명품이 현재 굉장히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제 사람들이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제 양질의 제품을 구매하길 원한다. 더 이상 브랜드 로고가 1순위가 아니라는 뜻이다.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서 만들어졌으며,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지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로에베가 자신감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마케팅, 언론, 매장 오픈, 카펫 디자인, 가구 디자인 그 어느 영역이든 차별을 두지 않고 최대의 노력을 기울인다. 로에베에게 패션 쇼는 브랜드 전체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생태계의 총합이다.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를 보니 ‘3년 주기’로 일한다고 했다. 3년이라는 통계는 어떻게 나오는가.
“맞는 말이다. 항상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3년 주기를 선호한다. 사업 계획은 3년이 가장 적당하다. 5년은 너무 길고, 3년이라는 기간 내에서 시작, 중간, 끝이 명확하게 나눠지는 점이 좋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새로 시작해야 브랜드가 지루해지지 않는다. 브랜드는 진화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3년 주기가 매우 중요하다. 처음에는 기초를 다지고, 그 다음에는 다양한 것을 탐구하며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밟는다.”
아침마다 읽는 세 개의 신문… 세상을 알아야 패션이 완성된다.
―럭비 코치인 아버지는 당신에게 패션이란 ‘포목장사(rag business)’라고 언급했다고 말한 바 있다. 부풀리기 보다는 우선 핵심부터 집중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근본적인 지점으로 돌아가, 당신은 왜 옷을 만드는가.
“직접 (내가 만든 옷을) 입게 되면 새로운 영감을 떠올리고 새로운 것을 투영시키는 게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패션에 너무 몰두하게 되면 패션을 만드는 것이 어려워지고,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고정된 틀에 갇히게 된다. 나는 브랜드 안에서 나 자신을 재해석하려고 패션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브랜드에 맞는 미적 요소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나는 ‘진정성’이 럭셔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 무언가를 만들고, 왜 무언가를 판매하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등 다양한 질문들이 존재한다. 젊은 소비자들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점점 더 원하고 있다. 한마디로 단순히 브랜드 로고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원하는 것이다. 브랜드가 어떤 가치를 지지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로에베는 원자재에도 많은 투자를 해 왔다. 특히 로에베 백은 최상의 원자재만을 사용해서 제작한다. 나는 로에베가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트렌디함만을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의미가 있어야 한다.”
―동시에 당신은 완벽주의자로 유명하다. 사업의 본질을 꿰뚫으면서 미학적인 면 등 모든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디자이너와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로에베는 성장 중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브랜드의 DNA다. 아주 작은 규모의 브랜드였던 로에베를 지금의 로에베로 키우는 과정이 나에게는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한국 시장만 보더라도 처음 한국에 진출할 당시에 10년 후에 우리가 이렇게 단독 매장을 열게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우리 여정을 쭉 지켜본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구축해온 것은 우리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브랜드를 살펴보면 단순히 일차원적인 브랜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단순히 하나의 가방이나 한 가지 제품만을 판매하지 않는다. 유명한 아티스트의 주얼리일 수도 있고, 가죽으로 엮인 가방일 수도 있으며, 손으로 뜨개질한 니트웨어일 수도 있다. 로에베는 항상 모두를 위한 무언가를 갖고 있다. 패션에 관심이 없더라도, 저희 매장에 들어와서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패션은 굉장히 비싸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구매를 할 때 오랫동안 쓸 수 있는, 흥미로운, 의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 곳 까사 로에베 서울 스토어는 매우 자랑스러운 장소다. 한국 고객들에게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로에베만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백화점이 아니다. 로에베의 세계가 담겨 있는, 매우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까사다.”
―수집가의 집이라는 콘셉트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돼 있다.
“현대성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아시아 문화에서 큰 영감을 받아 건축의 현대성을 표현했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옛 문화와 오래된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연결될 수 있을지 항상 고심해왔다. 역사를 이해해야 어떻게 지금 이 순간까지 오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 점에서 한국의 공예 작품은 정말 뛰어나다. 정다혜 작가, 이영순 작가 등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통해 만나게 된 작가들 뿐만 아니라 도자기나 가구 등을 통해 1700~1800년대 고전적인 한국의 작품들이 얼마나 현대적인지 보면서 놀랄 때가 많다. 오늘 아침에도 옛 한국 가구를 조금 살펴보았다. 시대적으로는 과거지만 방식은 굉장히 현대적(모던)이다. 이런데서 즐거운 충격을 느낀다.”
공예 작품 외에도 각종 가구 역시 그가 직접 큐레이션 했다. 맞춤형 펠트를 입힌 베린 클럽(Berin Club) 의자, 게리트 토마스 리트벨트가 디자인한 각진 위트레흐트 및 스텔트먼 의자, 조지 나카시마의 아메리칸 블랙 월넛과 캔버스로 제작된 코노이드 쿠션 의자 등을 엄선했다. 로에베의 시그니처 퍼퍼 벤치 시리즈에서는 브랜드의 정교한 가죽 공예 기술을 볼 수 있다. 공중에 띄운듯한 인상을 주는 블랙 테라조 테이블, 번트우드 소재의 단상과 독특한 질감의 앤틱한 도자기도 엄선되었다. 발 밑으로는 영국의 섬유 예술가 존 앨런의 추상적인 풍경화 ‘언덕 위의 페버릴’, ‘백마와 강’, ‘바다에 닿은 강’ 태피스트리를 재현한 스페인산 핸드메이드 울 카펫이 깔려있어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아침마다 신문을, 또 자기전엔 책을 읽는 게 삶의 습관이라고 했다. 일주일에 책 스무권 정도를 사서 읽는다고 했다.
“그렇다. 주로 영국 가디언 온라인 판을 비롯해 파이낸셜 타임스, 더 타임스 등 종이 신문을 읽는다. 주말에는 매거진처럼 두꺼운 주말판 신문도 본다. 정치에 관심이 많고, 세상의 역학을 이해하고자 한다. 신문을 통해 역학 관계를 파악하다보면 결과적으로 순진한 사람으로만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디자인을 할 때는 순수함이 필요하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에 일어나는 다양한 일이 패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문화 섹션도 좋아한다. 창의성은 매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에 현대 미술, 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정 시대에 사람들이 왜 특정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런 부분을 모르면 현재 패션을 잘 표현하기 어려울 수 있다. 때로는 지정학적 상황 때문에 패션에서 특정 주제를 다루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양한 문화에 무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브랜드 자체는 정치적 입장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정보를 수집해 나가는 여정의 일부인 것이다.”
―까사 로에베 서울을 찾을 고객들을 위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면을 빌어 영상 편지처럼 이야기해달라.
“제 집처럼 여기는 곳이기 때문에…. 제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편안하게 즐기다 가시고, 친구도 데려오세요. 저는 이 공간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굉장히 재미있는 요소가 많거든요. 하지만 재미가 꼭 젊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여러분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매력 포인트는 모두 다 ‘재미’가 될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열쇠고리 같은 물건도 재미가 되죠. 까사 서울에는 고객들이 로에베와 사랑에 빠질 만한 충분한 감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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