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계 에르메스’를 탄생시킨 남자, 그 비결은?
입력 2024.03.22 10:12

[단독인터뷰] 세계적 쇼콜라티에 피에르 마르콜리니
“최상의 로컬 재료 발굴이 세계적 품질 만드는 기본 원칙 ”
”아이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사물 바라보는게 필요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쇼콜라티에 피에르 마르콜리니(Pierre Marcolini)가 최근 한국을 찾아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에 문을 연 자신의 매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큰 키에 샤프한 눈매, 넉살 좋은 미소를 지닌 영화배우 같은 모습의 피에르 마르콜리니가 인터뷰실로 성큼 걸어왔다. 간편한 슈트 차림이었는데, 악수를 건네는 손이 따뜻했다.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쇼콜라티에인 마르콜리니의 모습을 포착한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은 뒤라고 했다.
그가 한국 내 첫 매장인 서울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 ‘피에르 마르콜리니’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젊은 행렬이 밀려들었다. 지난달 15일 문을 연 이후에도 초콜릿 애호가들 열풍에 ‘오픈런’이 계속됐던 곳인데, 서로 사려고 했던 ‘그 유명한’ 초콜릿을 탄생시킨 주인공이 직접 눈앞에 있다니 ‘인증샷’ 요청이 끊이지 않은 것이다. 그의 매장이 국내에 들어오기 전부터 해외 입소문을 통해 ‘초콜릿계 에르메스’니 ‘프리미엄초콜릿 상위 1%’라는 등의 수식을 달고 다녔던 브랜드를 탄생시킨 인물이다. 그를 둘러쌌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았기 때문인지, 세계적인 명성의 스타가 주는 아우라 때문인지 당당하면서도 익숙한 풍모가 인터뷰 실을 가득 메웠다. 자신이 만들어낸 상품에 대한 믿음과 확신에서 오는 자신감의 태도였다.
피에르 마르콜리니의 ‘프랄린 오 쇼콜라’.직접 로스팅한 견과류의 바삭함과 카카오의 부드러움이 만들어내는 상반되는 식감의 조화로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초콜릿이다. /피에르 마르콜리니 제공

그가 만든 초콜릿을 맛보면서 인터뷰를 진행한 건 아니지만, 최상의 초콜릿을 만들기 위한 세계 일주이자 야생 모험기 같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달고 쌉싸름하면서 진한 풍미의 언어들이 대화 중에 솟구쳤다.
그는 “한국에서 마스터클래스(전문가가 소수에게 고난도의 강의를 하는 것)를 해보니 디저트류 자체뿐만 아니라, 초콜릿 원산지나 초콜릿 빈의 맛 차이, 어떤 퓨레(으깨거나 체에 받친 걸쭉한 것. 과일 갈은 것 등을 말한다)를 쓰는 지 등의 원재료에 대한 관심은 물론 배우려는 열의 역시 대단하다고 느꼈다”면서 “앞으로 한국에서 디저트 시장이 양적·질적으로 더욱 발전하겠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보였다”고 평했다. 쇼콜라티에를 꿈꾸는 이들뿐만 아니라 보통 소비자들의 초콜릿에 대한 이해 수준도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이미 그의 브랜드가 진출해 있는 여러 각국과 비교해도 한국인의 관심도와 학습 욕구는 예상을 뛰어넘는다고 했다.

<자신의 50번째 매장이자 한국 첫 매장인 서울 신세계 강남점 ‘메종 피에르 마르콜리니’를 찾은 피에르 마르콜리니. 한국을 찾은 소감과 자신의 초콜릿 특징, 추천 제품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초콜릿 외에도 가볍게 먹기 좋은 쿠모, 에끌레어 등을 추천하고 싶다”면서 “매장에 와서 한두 가지만을 골라야 한다면 머랭 위에 초콜릿 크렘 레제르를 올린 메르베이유와 직접 만드는 아이스크림을 추천하며 특별함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피에르 마르콜리니 초콜릿 박스 25개입. 메종의 상징적인 크리에이션들을 엄선하여 한 눈에 담아냈다. 고운 카카오 파우더가 얇은 쉘 속 크리미한 가나쉬를 감싸고 있는 ‘트뤼플 오 쇼콜라’, 직접 로스팅한 견과류와 카카오가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프랄린 오 쇼콜라’를 모두 맛볼 수 있다.

―14살때부터 초콜릿에 매료됐다고 했다. 벨기에가 초콜릿 강국이어서 자연스레 초콜릿에 빠져들게 된 것인가.
“어릴 때부터 디저트류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내가 좋은 장난감을 갖고 있는데, 다른 친구가 못보던 디저트를 가져오면 이를 바꿀 정도였다.(웃음) 벨기에엔 이런 표현이 있다. ‘당신이 어딘 가에서 편안한 마음을 느낄 때, 그곳이 당신의 자리다’. 그게 바로 내겐 디저트 쪽이었다. 하지만 ‘마르콜리니’라는 성(姓)에서 느끼듯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민자 가정이 그렇듯, 흔히들 보수적인 관점에서 ‘성공’이라 부룰 수 있는 전문직을 택하길 원하셨다. 하지만 결국 내 의지를 꺾지 못하셨고 브뤼셀 제과 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이미 1990년대부터 카카오 원산지에서 카카오빈을 공수하는 ‘빈투바(Bean to Bar)’라는 개념을 확립한 주역이다.
“보통 유명 브랜드에서 사용한다는 ‘커버춰 초콜릿’(couverture chocolate·설탕은 줄이고 카카오 함량을 높이면서 다른 유지 대신 카카오 버터를 사용한 것)에서 한참 더 나아간 진보적인 형태다. 전 세계를 다니며 최상급 카카오 재배 원산지를 찾아다니며 발굴한 농장과 협업해 소싱한 카카오 열매를 직접 가공해 초콜릿을 만든다.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를 다니며 10곳 이상의 농장을 발견했다. 연 3~4회 이상 카카오 열매 생산 농장을 찾고, 이를 통해 제품을 만들며 매장까지 모두 관리하는 것을 ‘빈투바’라고 말한다.”
피에르 마르콜리니 초콜릿 박스 18개입.

―우리도 한때 커피 붐이 일면서 생산지, 풍미와 산미 등을 다 나누기도 했다. 카카오빈도 생산지마다 다른 특성을 보일 것 같은 데 어떤가.
“예를 들어 마다가스카르의 경우 레드베리 향을 머금고 있다. 토양이 ph농도가 높은 산성이라 산미를 좀 더 가하는 역할도 한다. 인도 남서부 케랄라 지역 카카오빈은 좀 더 스파이시한 향을 갖고 있다. 고유의 특성을 바탕으로, 그 자체를 통한 풍미를 강화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방식으로 연구해 기존에 없던 맛을 내놓을 수도 있다.”
―이렇게 카카오빈 자체부터 차별화한 이유는 무엇인가.
“30년 전에, 그러니까 이 일을 시작한 초창기에 초콜릿 브랜드들이 와서 ‘신제품인데 카카오 함량이 70%다’라는 둥의 이야기를 하면서 협업을 제안했다. 생각해보니 가나슈(ganache·초콜릿의 일종으로, 초콜릿 생크림과 버터, 우유 등과 섞어 용도에 따라 경도를 조정한 초콜릿 크림)를 만들 때는 어차피 초콜릿이 50%이상 들어가는데, 아무리 미세한 공정 차이로 가나슈에 뭔가를 집어넣을 수 있다 하더라도 거의 일반화된 풍미 이상을 내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만 해도 유럽에선 올리브 오일이 연두색빛이냐 황금빛이냐 그 정도만 구분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산지나 가공법에 따라 수백 수천가지 종류가 있다. 근본부터 따져보고자 했다.”
―와인도 토양에 따라 테루아라는 용어를 사용하던데, 당신 인터뷰를 보니 카카오빈 생산지를 탐험할 때 테루아, 그랑크뤼 같은 용어를 사용했는데.
“흔히 프랑스 최고급 와인을 그랑크뤼 등급을 이용해 분류하곤 한다. 거기서 착안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전 세계에 같은 등급 분류법을 적용하긴 어렵다. 이탈리아에선 최상급을 수퍼 투스칸이라 부른다. 포르투갈, 스페인, 남아공 모두 각각의 특색이 다르다. 그래도 좋은 와인을 결정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좋은 품종과 토양, 숙성 과정 등이다. 또 바이오다이내믹(유기농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으로 화학 비료, 농약, 제초제 등을 사용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자원을 활용하고 생태 시스템을 이용해 재배하는 것) 등의 농법을 쓰느냐도 중요하다. 카카오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특히 지속 가능한 초콜릿을 지향한다. 카카오 재배 과정에서 제초제인 글리포세이트를 사용하지 않고,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한 CCN-51 품종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유니세프와 국제노동기구가 제언한 정의를 채택해 카카오 농장에서 아동 노동을 금지한다. 우리는 자연과 윤리를 중시하는 브랜드다.”
피에르 마르콜리니가 새롭게 선보이는 디저트 쿠모.

―해외 유명 스타 조향사나 세계적 와인 평론가 등을 보면 남들보다 향을 구분하는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 났거나, 입맛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어도 그러한 감각을 타고 나지 않았다면, 감각을 개발시킬만한 특별한 방법이 있는가?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보다 앞선 건 호기심이다. 호기심이 있기에 남과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도전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호기심과 함께 천진난만함이랄까,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사물을 다각도로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 세상에 정해진 답이란 것은 없다.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무궁무진하다. 그들에게 ‘안 된다’는 것은 없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안 된다’에 익숙해져있다. 해보면서 여러 조정이, 예를 들어 가격문제까지도, 필요할 수는 있어도 시도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앞서 짧은 방한 기간 동안 자신이 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빙수 기계를 보여줬다. 망고 빙수가 유명하다고 해서 먹으러 갔는데, 망고 빙수의 맛 그 자체에 감탄하기 앞서 얼음이 미세하게 갈려나오는 빙수 기계를 처음보게 돼 신기했다고 했다. 또 자신의 8살난 딸의 대모(代母)가 벨기에로 입양된 한국인 출신인데다, 역시 한국 출신 벨기에 미슐랭 2스타 셰프인 상훈 드상브르 셰프와도 굉장히 친하기 때문에 본국에 돌아가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고 싶다고 했다.
―빙수 기계를 봤을 때의 즐거운 호기심처럼 한국에서 영감받은 제품을 기대해 봐도 될까?
“기본적인 원칙은 ‘로컬만을 위한 제품’보다는 로컬에서 영감을 받은 제품 역시 전 세계에 똑같이 내놓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고급 와인 페트뤼스를 프랑스에서만 마시는 건 아니지 않는가. 빈티지 별로 다를 수는 있어도, 한국, 일본, 미국, 유럽에서도 페트뤼스는 다 똑같은 페트뤼스다. 피에르 마르콜리니의 제품도 마찬가지다. 다만 최고의 원재료를 찾는 것이 목표이고, 동남아에선 망고나 패션 프루트 같은 과일이 유명하고 일본은 딸기 품종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제품을 개발해 선보일 수 있다. 초콜릿은 글로벌한 공통적인 요소이고, 로컬 재료를 이용하면 이것이 또 하나의 문화적 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콜릿을 통해 다른 나라의 풍미를 이해하고, 마치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상상을 해볼 수도 있다. 한국식 디저트도 선물받은 게 있어 동료들과 나누어 먹으면서 연구해볼 생각이다. 한국에서도 4월쯤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이는 신제품을 기획하고 있다. (눈을 찡긋하며) 당신이 말한 것이 이용될지도 모른다.”
■피에르 마르콜리니
벨기에 출신으로 벨기에 왕실에서 공식 지정한 세계적인 쇼콜라티에다. 1995년 세계 페이스트리 챔피언 대회 우승, 2020 월드 페이스트리 스타즈에서 우승하는 등 세계 최고의 미식 디저트 마스터로 불린다.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벨기에,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주요 국가에 론칭 했으며, 지난 2월 15일 신세계 강남점에 첫 한국 매장을 오픈했다. ‘메종 피에르 마르콜리니’ 50번째 매장이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에 걸쳐 10곳 이상의 농장과 협업하여 소싱한 카카오 열매를 직접 가공해 초콜릿을 만드는 장인 정신이 특징. 농장에서 생산, 매장까지 모든 과정을 관리하는 빈투바(Bean-to-Bar) 초콜릿을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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