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경매 이끄는 까르띠에의 하이 주얼리 '뚜띠 프루티'
  • 윤성원 주얼리 스페셜리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입력 2024.01.26 10:14

①플래티넘 소재, 사파이어,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뚜띠 우단 이어링 Maxime Govet ⓒ Cartier ②하나의 네크리스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착용할 수 있는 뚜띠 우단 네크리스 Maxime Govet ⓒ Cartier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세상을 뒤흔들기 시작한 2020년 4월,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1930년에 제작된 까르띠에의 뚜띠 프루티(Tutti Frutti) 팔찌를 소더비 뉴욕에서 과감히 온라인 경매에 올려버린 것이다. 뚜띠 프루티는 제일 비싸게 팔리는 아르데코 시대의 주얼리인데다 까르띠에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주얼리다. 어쩌다 한 번 경매나 박물관 전시에 등장할 때마다 비행기로 날아가서 지켜봤던 그 뚜띠 프루티가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날이 오다니! 게다가 이 주얼리는 한 번도 경매에 나온 적이 없는 처녀작이어서 직접 볼 수 없는 아쉬움이 더욱 컸다.
경매에서 고가의 주얼리는 철저한 프리뷰가 선행되는 섬세하고 까다로운 품목이다. 하지만 모든 행사와 모임이 취소되던 ‘금지의 시기’에 실물을 확인해보는 일은 불가능했다. 결국 이 팔찌는 다섯 명의 응찰자가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추정가의 두 배에 낙찰되며 온라인 주얼리 경매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소더비는 고난의 상황에서도 파워 주얼리는 건재하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나는 터치 한 번에 역사적인 주얼리의 소유자가 바뀌는 현실에 격세지감을 느꼈다. 뚜띠 프루티는 이탈리아어로 ‘모든 과일’이라는 뜻으로 보통 컬러풀한 디자인을 지칭한다. 주얼리에 이런 상큼한 이름이 붙은 것은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를 열매와 나뭇잎, 꽃 문양으로 조각해서 다이아몬드와 함께 플래티넘 위에 오밀조밀하게 세팅했기 때문이다. 1920~30년대에 까르띠에에서 제작한 뚜띠 프루티는 20세기 주얼리 역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명성에 걸맞게 탄생 과정부터 예사롭지 않다. 뚜띠 프루티는 인도 주얼리의 전통 스타일을 서양식으로 재해석한 주얼리다. 당시에 서양과 동양은 서로 간에 심리적, 물리적 거리감이 상당했음에도 서로에게 매혹되어 영감을 주고받은 결과, 세기의 주얼리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뚜띠 우단 브레이슬릿 Maxime Govet ⓒ Cartier

뚜띠 우단 링 Maxime Govet ⓒ Cartier

영국 왕 조지 5세(King George V)의 아내 메리 여왕에게 판매된 뚜띠 프루티 브로치 Marian Ge rard, Collection Cartier ⓒ Cartier

뚜띠 프루티 힌두 네크리스 Nils 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

2020년 4월 소더비 경매에 나온 까르띠에 뚜띠 프루티 팔찌 ⓒ Sotheby’s

◇ 인도, 아르데코, 그리고 뚜띠 프루티의 탄생
인도는 한마디로 축복받은 보석의 땅이었다. 2000 년 이상 세계에서 유일한 다이아몬드 산지였을 뿐만 아니라 사파이어, 루비, 에메랄드 산지가 인접해 있어 다채로운 보석들이 집결했다. 고대부터 인도에서는 최고의 보석과 순금이 악운을 물리치는 강력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 결혼 지참금으로 다산과 행복도 기원했다. 이런 전통과 문화를 물려받은 20세기의 마하라자(인도 각 지방의 통치자)들이 보석에 조예가 깊은 것은 당연했다.
한편 서양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쟁 특수로 인해 급속하게 제조업이 성장하고, ‘광란의 20년대’라 불릴 정도로 대중의 소비 욕구가 폭주하던 시기였다. 예술 문화도 덩달아 번성해 음악에서는 재즈가, 시각예술과 주얼리에서는 아르데코 스타일이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아르데코 디자인의 특징은 강렬한 색상 조합, 흑백 대비, 기하학적 디자인과 대칭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국적인 동양의 모티프도 과감하게 받아들이면서, 현대적인 감각이 무엇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이때 까르띠에는 두 가지로 주얼리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된다. 하나는 인도의 고객들을 위해 서양식으로 개조한 주얼리였고, 다른 하나는 서양의 고객들을 위해 디자인한 인도 스타일에 영감을 받은 주얼리였다. 전자가 마하라자들의 컬렉션이라면, 후자가 바로 뚜띠 프루티 컬렉션이다.
까르띠에와 인도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한 때는 19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까르띠에는 창업자의 손주 세 명이 각각 파리, 뉴욕, 런던 지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중 런던 책임자였던 자크 까르띠에가 중요한 임무를 띠고 인도로 건너갔다. 인도의 마하라자들이 제국의 황제가 된 영국의 조지 5세에게 경의를 표하는 자리였다. 까르띠에로서는 글로벌 브랜드로 입지를 확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자크는 인도의 상류층 여성들에게 소개할 요량으로 섬세한 벨에포크 스타일 주얼리(다이아몬드와 진주로 제작된 리본과 꽃 디자인의 주얼리)만 133점을 챙겨 갔다.
하지만 그는 빠르게 영업 전략을 수정해야 했다. 고급 주얼리를 구매하는 인도의 소비층은 주로 마하라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크가 가져온 여성스러운 목걸이나 섬세한 레이스 팔찌에는 관심이 없었다. 힘과 지위를 강조할 수 있는 강렬하고 인상적인 주얼리를 원했다. 신선한 충격을 받은 자크는 귀국한 후 카빙된 인도의 유색보석과 비드(구멍이 뚫린 보석)를 플래티넘과 다이아몬드에 세팅하기 시작했다.
1925년 파리에서 개최된 ‘장식예술과 근대 산업 국제박람회’에서 까르띠에는 마하라자의 풍요로운 라이프스타일과 프랑스의 현대 디자인을 결합한 뚜띠 프루티를 대중에게 선보인다. 다이아몬드와 진주 일색이던 새하얀 벨에포크 주얼리와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듯, 흑백의 딱딱한 아르데코 스타일에 자연주의 모티프와 강렬한 색상을 불어넣은 독특한 조형미에 서양 사회는 열광했다. “모방하지 말고 창조하라!” 까르띠에의 브랜드 정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교 인사 데이지 펠로즈가 뚜띠 프루티를 착용한 모습 ⓒ Cecil Beaton, by kind permission of Sotheby’s London.

◇ 동양의 풍요와 서양의 창의가 결합한 세기의 경매
뚜띠 프루티는 서양의 트렌드세터들 사이에서 대히트를 쳤다. 그중에서도 인도 스타일에 흠뻑 빠진 한 여인이 뚜띠 프루티를 독보적인 컬렉션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바로 재봉틀 기업 싱어(Singer)의 상속녀이자 당대의 패션 아이콘이던 데이지 펠로즈(Fellowes)다. 데이지는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으로 요트까지 팔게 되자 ‘스스로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뚜띠 프루티를 주문했다고 전해진다. 카빙된 사파이어, 에메랄드, 루비는 본인의 소장품을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 패션지 ‘보그’는 ‘동양의 화려함과 까르띠에 인도풍 주얼리의 야생적인 특징’이라는 제목으로 두 페이지에 걸쳐 데이지의 뚜띠 프루티를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아마도 유럽인의 눈에는 광채를 살리지 않은 원색의 보석이 날것처럼 신선해 보였던 모양이다.
당시 ‘힌두 목걸이’로 불린 이 주얼리는 데이지의 딸이 물려받았고, 그녀의 사후 1991년에 경매에 나왔을 때 까르띠에가 270만 달러에 되찾아 왔다. 당시 아르데코 주얼리 경매의 신기록을 경신한 금액이었다. 이후 ‘힌두 목걸이’는 까르띠에 컬렉션의 다른 명작들과 합류해 세계 유수의 박물관을 순회하고 있다. 나는 도쿄국립아트센터, 달라스아트뮤지엄, 홍콩고궁박물관의 전시에서 이 작품을 만났는데, 에메랄드와 사파이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우아한 공작새 컬러에 붉은 루비가 포인트로 들어간 매혹적인 색감에 눈을 뗄 수 없었다.
21세기에도 인도 주얼리에 흠뻑 빠진 사람이 있다. 바로 카타르의 왕족이자 기업가인 하마드 빈 압둘라 알 타니(Al Thani)다. 그는 2009년 런던 빅토리아앤드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마하라자: 인도 궁정의 장관’ 전시를 관람한 후 인도에 매료됐다. 그 전까지 인도를 방문한 적조차 없던 이 남자는, 열정과 투자 전략이 맞아떨어지며 인도와 관련된 주얼리 등 총 6000여 점을 단기간에 수집했다. ‘세기의 사랑’ 같은 감성 스토리가 주를 이루던 지난 세기 컬렉팅 개념에서 한층 진일보한 모습이랄까?
그런데 압도적인 수량과 박물관급 퀄리티를 자랑하는 알 타니의 컬렉션 가운데 400여 점이 2019년 뉴욕 크리스티의 ‘마하라자와 무굴의 위대함’ 경매에 출품됐다. 그는 왜 갑자기 이 명작들을 경매에 내놓은 걸까? 때마침 홍콩에서 이 경매의 순회 프리뷰가 열린다기에, 바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운 좋게도 프리뷰 현장에서 크리스티 주얼리의 수장인 프랑수아 퀴리엘을 만날 수 있었다.
“알 타니의 컬렉션이 왜 경매에 나온 거죠? 단순한 변심인가요, 아니면 그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오랜만에 만난 그의 안부는 제쳐두고 다짜고짜 알 타니의 ‘안부’부터 묻자, 그는 예상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 타니 컬렉션 재단에서 파리 해군청 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있어요.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겠죠? 아직 5600 점이나 남아 있으니 걱정 말아요.”
경매를 위한 프리뷰 전시임에도 주얼리, 회화, 중세 고서, 장식품 등 4세기에 걸친 인도의 장식예술사가 망라돼 있었다. 조급증이 난 나는 곧장 아르데코 주얼리 섹션으로 향했다. 알 타니가 내놓은 뚜띠 프루티는 1930년에 제작된 작은 브로치 한 점이었다. 다부진 기하학적 디자인에 다이아몬드의 비중이 현저히 높아서 현재와 과거가 묘하게 중첩됐다. 무굴제국의 ‘타지마할 에메랄드’도 볼 수 있있는데, 이 에메랄드는 까르띠에가 1925년 국제박람회에서 ‘베레니스 목걸이’에 세팅해 출품했던 역사적인 명품이다. 무엇보다 황홀한 마하라자들의 주얼리를 살펴보는 동안 인도와 서양 사회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영감을 주고받았는지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며칠 뒤 알 타니 컬렉션은 12시간의 마라톤 경매 끝에 1억 900만 달러(약 1459억원)의 매출로 ‘세기의 경매’에 이름을 올렸다.
◇아르데코 주얼리를 예찬하는 이유
몇 년 전, 소더비 경매의 주얼리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각자의 주얼리 위시 리스트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어떤 주얼리가 입에 오를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주시했는데 하나같이 아르데코 시대의 뚜띠 프루티를 꼽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주얼리 전문가들이 아르데코 시대에 남다른 애정을 쏟는 이유는 20세기 초의 자유분방한 미술과 디자인, 급변하는 사회적인 풍경, 새로운 과학의 역사가 응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파리에서 태어난 뚜띠 프루티는 ‘광란의 20년대’를 채운 뜨거운 열정과 동서양 간의 로맨스를 완벽하게 담아냈다. 그로부터 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까르띠에는 복고풍의 테두리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정신을 거울처럼 반영하며 21세기 버전의 뚜띠 프루티를 선보이고 있다. 매년 발표되는 하이 주얼리 컬렉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석과 주얼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직업상 나에게는 제품의 실물을 꼼꼼하게 관찰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특히 뚜띠 프루티는 제품마다 사용된 보석의 크기나 비중이 다르고, 카빙된 모양도 다양해서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아르데코 시대의 뚜띠 프루티는 팔찌가 가장 상징적이다. 하지만 경매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 등장하는 편이고, 종종 볼 수 있는 핀 브로치들은 세팅된 보석들이 작아서 아쉬울 때가 많다. 만약, 21세기와 20세기의 뚜띠 프루티 ‘마스터피스’를 만나고 싶다면 가끔씩 개최되는 까르띠에의 박물관 전시를 추천한다.
나는 2월 초에 아부다비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까르띠에, 이슬람의 영감과 모던 디자인’ 전시에서 데이지 펠로즈의 힌두 목걸이를 다시 만날 계획이다. 이번이 네 번째 만남임에도 여전히 설레는 이유는, 나에게 하이 주얼리는 사치품이 아니라 영혼을 풍요롭게 만들고 통찰력을 제공하는 ‘착용 가능한 예술품’이기 때문이다.
▶윤성원 교수는 주얼리의 역사,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 〈젬스톤 매혹의 컬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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