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과 무한을 오가는 시간… 독창적인 디자인에 담다
입력 2023.12.15 10:04

에르메스 HERMÉS 오는 22일까지 메종 도산 파크서 열리는 ‘크래프팅 타임’ 디스플레이 전시


딱 1년전이다. “사실 이 글은 시계 팬들뿐만 아니라 시계 업계 사람들이 먼저 주목해야 한다. 1등 브랜드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에르메스가 시계 분야에서도 드러내기 때문이다….”라고 시작하는 기사를 게재했을 때가.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에서 남성용·여성용 컴플리케이션 부문 2관왕에 오른 에르메스 시계를 두고 작성한 글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주변에선 ‘놀람 반 의구심 반’의 시선으로 “진짜 좋은가”라는 문의가 적지 않았다. 에르메스가 명품 업계를 대표하는 장인 브랜드로 꼽히긴 하지만, 1970년대 뒤늦게 시계 업계에 뛰어들었으니 이제 반세기. 200년 넘게 시계만 파고든 전문 업체와 진정한 경쟁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미술품처럼 단순히 돈으로만 제품 가치를 측정하기 어렵다는 고급 시계 분야에선 브랜드 명성만으로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자체 무브먼트(동력 장치)를 내놓으면서 기술력까지 입증한 에르메스로서는 예술성과 기술력의 필요조건은 충족한 셈이었다. 미학적인 창의성과 예술성, 자체 무브먼트를 구현할 기술력을 바탕으로 초고도 복잡 시계에 접목할 독창성에 대한 꾸준한 도전정신이 ‘예쁜 시계’와 ‘예쁘면서도 좋은 시계’를 나누는 갈림길이었다.

1년 전 그 글의 정당성을 입증해준 건 소비자들이었다. 세계적인 투자회사 모건 스탠리가 발표한 스위스 시계 산업 현황에 대한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에르메스는 지난해 5억2100만 스위스프랑(CHF·약 7848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24% 성장을 기록했다. 모건 스탠리는 “에르메스 시계의 이 같은 성장세를 바탕으로 에르메스 시계는 현재 7개에 불과한 ‘10억 달러(1조3000억원) 시계 브랜드 클럽'에 곧 가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미국 남성패션전문지 에스콰이어는 “‘패션 브랜드'와 ‘좋은 워치메이킹’이라는 말이 웃지 못할 모순(laughable contradiction)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에르메스는 그런 생각을 완전히 뒤엎었다”고 설명했다. 패션 브랜드의 패션 시계는 가능해도 시계 업계에서 인정할 만한 시계를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코웃음칠 이야기라는 편견을 딛고 에르메스가 이를 실현시켰다는 설명이다. 이미 지난해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 컴플리케이션(복잡시계) 부문 2관왕에 오르면서 이를 입증한 바 있다.
에르메스의 장점은 일관된 브랜드 정신. 유쾌하면서 대담한 창의성과 자율적인 스타일이 가방부터, 스카프, 액세서리, 시계까지 확산되면서 에르메스 특유의 장인정신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단지 에르메스의 ‘H’나 버킨백의 버클 장식이 눈에 띄어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에르메스만의 독특하고 독창적인 도안과 디자인, 에나멜링 기법, 각종 공예기법 등을 자유자재로 도입하면서 그간 충족되지 못했던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했다.
프랑스 특유의 시크하면서도 무심한듯한 태도마냥, 고도의 시간과 노력을 들였으면서도 프랑스 고전 희곡처럼 풍자적이면서도 어린아이마냥 동심으로 돌아온 듯한 유머를 살려낸 것이 특징. 에르메스 시계 인기 제품인 H08만 하더라도 0(無), 8(일부 문화권에서 행운의 숫자로 꼽히면서 옆으로 뉘었을 때 무한대를 상징하는 기호)로 해석해 무와 무한을 오가는 시간에 대한 태도를 보여줬다.
에르메스는 오는 22일까지 국내 에르메스 메종 도산 파크 1층에서 그동안 국내에서 보기 어려웠던 메티에 다르, 주얼리 워치, 컴플리케이션 워치를 선별해 선보인다. 일명 ‘크래프팅 타임(Crafting Time)’ 디스플레이 전시. 그중에서도 에르메스의 예술성과 기술력을 함께 볼 수 있는 메티에 다르(Métiers d’art) 시계를 직접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도 하다. 예술(art)적인 일(metier)이라는 뜻으로 패션·공예·시계 등 각종 명품 업계에서 예술적 집약도를 가장 잘 나타내는 분야를 뜻한다. 에르메스 시계의 메티에 다르는 보통 메종의 실크 스카프 프린트에서 착안한 다이얼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해 각종 에나멜링 노하우부터 미니어처 페인팅, 우드 마케트리, 전통 자수 기법, 나아가 유리 공예까지 도입하는 등 매년 다채로운 테크닉의 향연을 보여준다. 이번에 국내 메종에서 볼수 있는 제품은 ‘아쏘 벨리 뒤 멕시끄’와 ‘아쏘 레 폴리 뒤 씨엘’이다.
아쏘 벨리 뒤 멕시끄(Arceau Belles du Mexique)는 1978년 앙리 도리니(Henri d’Origny)에 의해 탄생한 아쏘 시계에 활기찬 생명력을 불어넣은 새로운 시계. 멕시코 할리스코 댄서들이 모자 댄스(멕시코 전통 무용)를 추는 모습을 모티프로 2017년에 선보여진 에르메스의 스카프에서 영감을 받아 댄스, 움직임, 그리고 흥겨움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을 다이얼에 표현했다. 다이얼 위에는 수공으로 제작된 14명의 댄서들이 화려한 색감으로 입체감 있게 표현되었으며, 그 중 시침과 분침 주변을 둘러싼 23개의 다이아몬드 고리를 두르고 있는 일곱 명의 댄서들은 손목 움직임에 맞춰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세팅되어 자유롭고 다채로운 댄서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댄서들의 흥을 담아낸 이 시계는 38mm 사이즈로 출시되며, 24개의 한정된 수량으로 제작됐다.

아쏘 벨리 뒤 멕시끄. 멕시코 할리스코 댄서들이 모자 댄스(멕시코 전통 무용)를 추는 모습을 모티프로 2017년에 선보여진 에르메스의 스카프에서 영감을 받았다. /에르메스 제공

아쏘 레 폴리 뒤 씨엘(Arceau Les Folies du Ciel)은 독특한 구성을 위해 페인팅, 인그레이빙, 애니메이션 기법들이 결합됐다. 공기역학을 기리기 위해 1984년에 로이크 뒤비전(Loïc Dubigeon)이 디자인한 같은 이름의 실크 스카프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늘(ciel)에 대한 folie(광기)라는 뜻으로, 과거 하늘을 나는 것이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상상 속 ‘미친 짓’으로 꼽혔던 일을 역으로 뒤집어 해학적으로 풀어냈다. 마치 프랑스의 고전 희곡의 대가 몰리에르의 작품을 보는 듯, 2차원적인 평면인데도 마치 풍선이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다차원적인 이야기를 전달한다. 탈출, 발견 및 호기심이 이 시계의 철학. 여행의 핵심을 장인들이 시계에 재현했다.

아쏘 레 폴리 뒤 씨엘. 공기역학을 기리기 위해 1984년에 로이크 뒤비전(Loïc Dubigeon)이 디자인한 동명의 실크 스카프에서 영감을 받았다. 독특한 구성을 위해 페인팅, 인그레이빙, 애니메이션 기법들을 결합했다. /에르메스 제공

질감 있는 색조로 표현된 자개 다이얼을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볼 수 있고, 그 위에 네오랄리테 핑크와 그린색으로 구성된 두 개의 열기구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가마에 구운 캔버스는 양각으로 표현되어, 뜨거운 공기가 내부를 채우고 날아갈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각 표면은 빛나는 광택을 주기 위해 수공 폴리싱 처리되었다. 두 개의 풍선은 새 모양의 화이트 골드 곤돌라에 부착되어 있는데, 이는 여행과 이주를 상징하는 것이며, 동시에 미래의 비행선에 대한 인류의 첫 영감이기도 하다. 12시 방향에는 수공으로 색칠하고 장식된 풍선을 볼 수 있다. 평형으로 디자인되어 손목의 움직임에 따라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데, 이는 에르메스 제품 특유의 가볍고 예상치 못한 터치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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