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xury Inside] Legendary Item ⑧ 버버리 트렌치코트
한 세기마다 패션 천재들은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특별한 패션 작품을 창조해왔다. 그 중에서도 100년이 지나도록 버버리 트렌치코트(trench coat)만큼 변치 않은 패션 창조물은 많지 않다. 탐험가부터 전시의 장교들, 왕실, 전설적인 영화배우, 오늘날의 셀러브리티들과 대중들에게 사랑받으며 버버리 트렌치코트는 불멸의 존재가 됐다.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리(Daniel Lee)가 버버리에서의 첫 데뷔쇼인 2023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위한 선택한 오프닝 역시 트렌치코트였다. 새롭게 재해석된 다니엘 리의 뉴 트렌치코트 버전은 어두운 딥 그린 컬러와 오버사이즈의 실루엣, 인조 모피 장식의 라펠로 재탄생됐다.

변덕스러운 영국 날씨를 위한 아우터에서 전설의 패션 아이콘으로
한때 모든 트렌치코트가 ‘버버리’라 불린 적이 있다. 트렌치코트의 주요 소재인 개버딘과 아이코닉한 디자인의 창조자가 버버리이기 때문이다. 트렌치코트는 본래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제작됐다. 비가 내렸다 갰다를 반복하는 영국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영국인들에겐 우산과 레인코트가 필수 아이템이었다. 포목상 견습생이었던 21세의 토마스 버버리(Thomas Burberry)는 당시의 무겁고 불편한 레인코트가 영국 날씨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이 야외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가볍고 기능적인 아우터를 개발하겠다는 대담한 비전을 품었다.

트렌치코트의 유래는 ‘타이로켄(Tielocken)’에서 시작된다. 1912년 버버리가 특허를 얻은 타이로켄 코트는 개버딘 소재로 만들어졌는데, 버튼 없이 벨트로 앞을 여미는 혁신적인 디자인이었다. 버버리의 개버딘 원단은 처음 남극 탐험가들을 위해 개발됐다. 순모, 순면 등 여러 섬유를 조밀하게 짠 개버딘은 방수와 방한성이 뛰어나 1911년 최초 남극 탐험에 성공한 아문센, 1914년 영국인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 경 등이 버버리 개버딘 제품을 입고 탐험에 성공했다. 남극 탐험가들에 의해 명성을 떨친 버버리의 개버딘은 1888년 특허를 받게 된다. 개버딘 소재의 타이로켄 코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장교들에게 제공되며 뛰어난 활용성으로 사랑받았다. 그 후 다시 여밈 부분을 단추로 고정하는 디자인으로 보완되고, 견장, 벨트의 금속 D링(D-ring), 손목 부분을 조여주는 벨트가 추가되며 전설적인 트렌치코트의 형태가 완성됐다. 트렌치의 이름은 군인들이 몸을 숨기는 참호(trench)에서 유래된 것이다.

영국 장교와 하이클래스들의 코트에서 할리우드 황금기 시대 패션으로
처음 트렌치코트는 장교 계급에만 허용되는 지위의 상징이었다. 이후 부유한 민간인 남성과 여성들도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기 위해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었고, 장교들은 2차 세계 대전까지 트렌치코트를 착용했다. 무엇보다 트렌치코트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전파시킨 건 할리우드였다. 1942년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의 트렌치코트 룩은 할리우드 패션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스타일이다. 영화 홍보 사진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입은 버버리 트렌치코트는 2005년 경매에서 10,000달러 이상에 낙찰되기도 했다. 1964년 영화 ‘쉘부르의 우산’에선 까뜨린느 드뇌브가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었고, 1979년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 메릴 스트립이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고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트렌치코트 룩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또한 그 탄생의 배경과 브리티시 클래식의 정수답게 엘리자베스 여왕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비도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어왔다.


각각의 클래식 버버리 트렌치는 90개의 특별한 모양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칼라만 8개의 천으로 만들어졌다. 영국 북쪽 지역의 캐슬포드(Castleford)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전통적인 테크닉과 최신의 테크놀로지를 결합하여 제작된다. 한 벌의 트렌치코트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100개가 넘는 공정을 거쳐야만 하고 트렌치코트 하나 제작되는 기간은 3주가 걸린다.

다니엘 리가 연 새로운 버버리 트렌치코트의 시대
버버리의 아이코닉 트렌치코트는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리의 시대를 맞으며 영광의 시대를 다시 열고 있다. 최근 구글 기록에 따르면 버버리 트렌치에 대한 검색이 2004년 이후 최고 기록을 세웠다. 2023년 가을/겨울 컬렉션의 데뷔쇼 이후, 지난 9월에 열린 2024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다니엘 리는 트렌치코트의 눈부신 향연을 펼쳤다. 그리고 전세계 패션 미디어와 전문가들로부터 어떤 트렌치코트를 선택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모두 근사하다는 찬사 세례를 받았다. 디자인에 영감을 주는 버버리의 아카이브가 무궁무진하다고 말한 다니엘 리는 하우스의 가장 핵심적인 DNA인 트렌치코트를 다양한 실루엣으로 변주했다. 웨이스트라인을 아래로 내린 로우 웨이스트와 새로운 프린트로 업데이트하고, 어깨에 걸치거나 의도적으로 벨트를 매는 등 새로운 트렌치코트를 입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다니엘 리는 트렌치코트를 어떻게 동시대의 방식으로 엣지있게 스타일링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다니엘 리 버전의 버버리 트렌치코트에서 중요하건 새로워진 버버리 로고다. 그는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있던 시기의 ‘버버리 프로섬’ 로고를 아카이브에서 꺼내 새로운 버버리 시대로의 전진을 상징적으로 선포했다. 선명한 로얄 블루의 승마 기사 (Equestrian Knight Design, EKD) 디자인은 1901년 경 새로운 로고를 위해 개최됐던 공모전 수상작에서 유래되었으며, ‘프로섬(Prorsom)’은 라틴어로 ‘전진’을 뜻한다.


100여 년 넘게 이어져온 버버리 트렌치코트의 매력은 자신만의 개성을 자유롭게 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패션 전문가들은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를 완전히 빈 캔버스와 같다고 표현한다. 하늘거리는 시폰이나 프린지 드레스, 트레이닝 팬츠, 데님 팬츠, 클래식한 팬츠부터 화려한 세퀸 장식의 파티 드레스까지, 다양한 패션 아이템들과 경이로운 조합을 보여준다. 버버리 트렌치코트는 나이와 시대에 관계 없이, 가장 클래식하며 동시에 가장 혁신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일생을 동행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