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의 살아있는 미술관, 몰입형 전시의 진화
입력 2023.11.29 18:45

‘환상특급’이란 인기 시리즈가 있었다. 그 중 한 에피소드는 그림 속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남자에 관한 짧은 이야기다. 남자는 매일 미술관을 찾아가 평온한 숲 속 햇빛이 부서지는 잔잔한 호수 위 작은 배에서 낚시를 즐기는 풍경의 작품을 보며,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자신을 상상하곤 한다. 그 시간이 그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실제로 많은 관객들은 아름다운 그림을 발견하면, 그 그림 속에 들어가보고 싶다는 동화 같은 상상을 해보곤 한다.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마치 작품 속에 들어간 듯한 새로운 차원의 몰입형 전시(Immersive Art Exhibition)로 우리를 초대했다. 3D 그래픽과 LED 전광판이 펼치는 수백만 개의 촘촘한 빛이 된 명화들은 사면의 공간을 감싸고 관람객들의 몸 위에 빛으로 쏟아진다. 아름다운 음악과 생생한 음향, 때로는 바람과 공기의 향까지 더해져 그림 속의 숲이나 물과 하늘 한가운데에 공간 이동을 한듯하다.
‘라이트룸 런던’에 이어 전 세계 두번째로 에트나컴퍼니의 ‘라이트룸 서울’에서 진행되는 ‘데이비드 호크니: 비거 앤드 클로저(David Hockney: Bigger & Closer-not smaller & further away)’. 강동구 고덕동에 개관한 ‘라이트룸 서울’에서 2024년 5월 31일까지 진행된다./라이트룸 서울 제공

강동구 고덕동에 세워진 에트나컴퍼니의 라이트룸 서울(Lightroom Seoul) 오프닝 전시인 ‘데이비드 호크니: 비거 앤드 클로저(David Hockney: Bigger & Closer-not smaller & further away)’는 또 다른 차원의 몰입형 전시 세계로 안내한다. 현존하는 작가가 직접 기획한 전시이기에 대중에게 잘 알려진 명화를 반복하여 수십 개의 프로젝션으로 반사시키던 몰입형 전시와 다르다. 50분 동안 진행되는 전시는 데이비드 호크니 60년을 조명하며, 미국 작곡가 니코 뮬리(Nico Muhly)의 폭발적인 사운드트랙과 85세 데이비드 호크니의 내레이션으로 가득 채워진다.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와의 인터뷰에서 ‘이전 몰입형 전시들의 작가들은 세상에 있지 않지만, 나는 살아있는 예술가로 전시를 위해 실제로 일했다’고 말했듯, 이 전시는 데이비드 호크니가 내레이터이자 감독자로서 50분을 이끌어 간다. ‘라이트룸 런던’ 전시부터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전시답게, 이정재, 조여정, 고윤정, 윤상, 지올팍, 황정음 등 수많은 연예인들이 전시를 감상한 후 인증샷을 올렸다.
이번 전시는 ‘원근법 수업’, ‘호크니, 무대를 그리다’, ‘도로와 보도’ 등 6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아이패드 드로잉으로 작업하는 과정도 콘텐츠에 담겨, 마치 관람객이 작가의 등 뒤에서 작업 과정을 함께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라이트룸 서울 제공.

영국 팝 아트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 세계는 회화뿐 아니라 사진, 판화, 삽화, 무대 디자인의 장르를 넘나든다. 작업 방식이나 매체를 한정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과 디지털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을 창작해왔다. ⓒJustin Sutcliffe

데이비드 호크니는 영국의 팝 아티스트이자 사진작가이며, 무대 연출가다. 회화뿐 아니라 사진, 판화, 삽화, 무대 디자인의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 방식이나 매체를 한정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과 디지털 매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광대한 스펙트럼의 예술 세계를 창조해 왔다. 그의 작품은 장르를 아우르는 데이비드 호크니만의 유니버스와도 같다. ‘원근법 수업’, ‘호크니 무대를 그리다’, ‘도로와 보도’, ‘카메라로 그린 드로잉’, ‘수영장’, ‘가까이서 바라보기’의 6개 챕터를 그의 내레이션을 따라 감상하다 보면, 전문가가 아니면 알지 못했을 작품 탄생의 과정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 아이패드 출시 후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아이패드 작품 창작 과정부터, 사진, 무대 디자인의 창조 과정을 80대의 나이에도 열정 가득한 데이비드 호크니의 음성으로 듣다보면 깊게 몰입하게 되며 크리에이티브한 영감까지 선사한다. 예술에 전혀 무관심한 아이들조차 집중시킨다. 이보다 더 완벽한 도슨트가 있을까.
‘데이비드 호크니: 비거 앤드 클로저(David Hockney: Bigger & Closer)’는 현존하는 작가가 전시 기획부터 참여한 새로운 차원의 몰입형 전시다. ⓒMark Grimmer

국내에서 몰입형 전시의 서막을 연 건, 제주 성산에서 선보인 ‘빛의 벙커’라 할 수 있다. ‘빛의 벙커’ 전시 하나만을 위해서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끊을 만큼 수많은 이들이 매혹됐고 열광했다.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이라도 발견한 듯, 평소 미술관을 찾지 않던 이들까지 연령에 구분 없이 몰입형 전시의 관람객이 됐다. 그리고 주입식 미술 교육에 의해 뇌의 한편에 새겨졌던 세기의 명화들이 가슴으로 느껴지며, 인생의 명화가 되는 마법이 펼쳐졌다.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도 초대됐던 팀랩(TeamLab)의 전시는 아바타 행성으로 아예 행성 이동을 한 듯한 경이로운 체험을 선사했다. ‘팀랩 플래닛 도쿄’ 전시는 물길을 건너 물 속에서 프로젝션된 잉어를 따라 다니고, 대형 빛의 구체를 굴리는 등 상상 초월의 미디어 아트를 오감으로 경험하게 한다.
국내 몰입형 전시의 서막을 연 ‘빛의 벙커’. 현재 ‘세잔, 프로방스의 빛’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빛의 벙커’는 최초로 국내 작가 ‘이왈종, 중도의 섬’ 몰입형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TMONET

이제 몰입형 전시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하나의 전시 형태가 되어 릴레이로 이어지고 있다. ‘빛의 시어터’에선 ‘달리 & 가우디’ 전이 11월 30일까지 진행되고, ‘빛의 벙커’에선 ‘세잔, 프로방스의 빛’, ‘칸딘스키, 추상 회화의 오디세이’가 전시되고 있다. 디지털의 빛으로 재현된 명화와 음악을 조화시킨 몰입형 전시들은 상업적 엔터테인먼트가 됐다는 비평가들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반 고흐, 모네, 프리다 칼로 등의 대규모 몰입형 전시를 이끌었던 라이트하우스 이머시브(Lighthouse Immersive Inc.)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파산 신청을 했다는 소식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전시 패러다임의 등장이 처음부터 모두 성공적이며 완벽할 순 없을 것이다. 몰입형 전시는 다시 변화되고 진화하고 있다. ‘띠아트’에서 열리고 있는 ‘반고흐 인 서울’은 ‘스토리몰입형 미디어아트’로, 전문가들이 내레이션과 함께 반고흐의 작품을 설명하는 스토리텔링 전시로 새롭게 관람객을 만난다. 11월 26일까지 전시됐던 ‘그라운드시소 명동’의 ‘모네 인사이드’는 명화와 다큐멘터리가 만난 스토리텔링 몰입형 전시로, 모네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듣는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
‘빛의 시어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달리, 끝없는 수수께끼’와 ‘가우디, 상상의 건축가’ 전시. ⓒTMONET

‘그라운드 시소 명동’에서 진행된 ‘모네 인사이드’는 명화와 다큐멘터리가 접목된 스토리텔링 방식의 내레이션을 더해 모네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 그라운드 시소 명동 제공.

‘띠아트’의 ‘반고흐 인 서울’. 반 고흐 생전 200여점의 작품과 프랑스인의 현지 내레이션을 담아 몰입감을 높인, 스토리몰입형 전시로 기획됐다. 띠아트 홈페이지.

‘라이트룸 런던’에 이어 두 번째로 오픈된 ‘라이트룸 서울’의 ‘데이비드 호크니: 비거 앤드 클로저(David Hockney: Bigger & Closer)’는 스토리텔링에서 더 나아가 현존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동행하게 한다. 작가와 함께 영감의 근원을 만나고, 구상하고, 고민하고, 수정하며, 마치 작가의 등 뒤에서 그림 그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듯하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전시를 통해 ‘즐길 수 없다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If you’re not playful, you’re not alive)’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아티스트도, 전시의 기획자도, 관람객도 모두 ‘즐거울(playful)’ 수 있을 때 ‘살아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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