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여름에 쓰던 향수를 바꾸고 싶어진다. 패션처럼 향기에도 계절성이 있어서, 사계절에 따라 향수를 새롭게 드레스업하게 된다. 가을에 맞게 향수를 바꿀 계획이 있다면, 새로운 니치 향수(niche perfume)들 중에서 찾아보는 건 어떨까.
니치 향수는 소수의 취향에 맞춘 프리미엄 향수를 뜻한다. ‘니치(niche)’는 이탈리아어 ‘니치아(nicchia)’에서 나온 말로 ‘틈새’를 의미한다. 매스 브랜드에서 대량 생산하는 향수들과 달리 전문 조향사가 자신만의 조향 비법과 철학을 담아 만들어지는 향수다. 차별화를 위해 희귀한 천연 원료를 주로 사용하고, 본연의 독특한 향을 보존해 개성 넘치는 향을 지닌다. 그만큼 가격도 비싸지만 자신만의 아주 사적인 향기를 소유할 수 있다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도대체 무슨 향기일까 호기심을 폭발시킬, 이 가을을 위한 니치 향수들을 먼저 눈으로 시향하며 오감을 열어 상상해보자.

먼저 만날 향기는 10월에 국내 런칭되는 피렌체에서 온 니치 향수 로렌조 빌로레시(LORENZO VILLORESI)다. 로렌조 빌로레시는 1980년대 처음 중동을 여행하던 중 향기, 향신료, 에센스에 매료되어 조향, 에센스, 증류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럭셔리 패션 하우스 펜디의 요청으로 첫 오 드 뚜왈렛인 ‘우오모(UOMO)’와 ‘돈나(DONNA)’를 출시하며 플레어 더 퍼퓸(Flair the Parfum)과 같은 권위있는 어워드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이페르보리아(IPERBOREA)’는 ‘로렌조 빌로레시’의 베스트셀러다. 은방울꽃, 미모사, 시클라멘의 플로럴 노트에서 시작해 만다린, 복숭아 등의 시트러스 노트가 더해져 포근하면서도 강렬한 향을 선사한다. 여기에 자스민과 화이트 플라워, 우드, 머스크가 더해지면서 더없이 따뜻하면서도 상큼한 파우더리 향으로 완성된다.

향기의 여정은 피렌체에서 런던으로 이어진다. 1925년에 처음 제작되어, 윈스턴 처칠의 향수로 알려진 ‘타운 앤 컨트리(Town & Country)’가 국내 니치 향수 컬렉터들을 찾아왔다. 고급 니치 향수로 유명한 클라이브 크리스찬(Clive Christian)의 철학으로 재해석된 향이다. 클라이브 크리스찬은 영국 왕실로부터 빅토리아 여왕의 크라운 모양을 사용하도록 허가받은 하이엔드 영국 럭셔리 퍼퓸 하우스다. 영국 왕실의 레드 컬러 향수 보틀 컬러가 고급스런 ‘타운 앤 컨트리’는 상쾌한 클라리 세이지, 향긋한 주니퍼와 부드러운 우드가 결합하여 세련된 향기를 자아낸다. 여기에 베이스에 얹혀 있는 우아한 허브의 상쾌한 노트가 런던 외곽의 자연미와 런던 타운의 우아함을 동시에 전하며 카리스마 넘치는 향을 표현해준다.

다음 여정에서 만나는 향기는 스웨덴의 언유주얼 뷰티 브랜드 바이레도(BYREDO)의 새로운 니치 향수 ‘루즈 카오티크(Rouge Chaotique) 익스트레잇 드 퍼퓸’이다. 희귀한 재료들을 베이스로 사용한 강렬한 향이 특징인 바이레도 나이트 베일스 컬렉션의 신작이자 첫 오우드(oud: 침향나무에서 추출한 향료) 계열의 향수다. 깊은 밤과 같은 오우드와 샤프란의 강렬하고 스파이시한 향, 달콤하고 부드러운 자두와 프랄린의 예상치 못한 만남이 불협화음 속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며 ‘루즈 카오티크’ 만의 황홀하면서도 독특한 향을 발산한다.

니치 향수를 찾는 여정은 유럽에서 서울로 돌아와 엉트르두(ENTRE D’EUX)를 만난다. 서울에서 기획하고 프랑스에서 조향한 엉트르두는 프랑스어로 ‘그들의 사이’를 뜻한다. 자연 향료와 인공 물질 몰리큘을 결합한 ‘콘트라스트 노트’가 특징이다. 프랑스 LVMH 출신의 프래그런스&코스메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레데릭 뷔르탱과 조향사 토마 퐁텐이 함께 향기를 설계했다. ‘비터 비테 오 드 퍼퓸(BITTER VITAE EAU DE PARFUM)’은 짙은 우디와 바닐라, 앰버가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삶의 밸런스를 향으로 표현해준다. 바닐라의 달콤한 향기 아래 강렬한 우디향이 정밀한 균형을 이루는데, 메인 원료인 가이악 우드는 고대 유럽에서 오랫동안 치유제로 사용됐으며 ‘트리 오브 라이프(Tree of Life)’로 불리웠다. 또한 ‘쿰바 플로스 오 드 퍼퓸(NKUMBA FLOS EAU DE PARFUM)’은 이국적이고 관능적인 스파이시 플로럴 머스크 향이 우아하면서 독보적인 자신감을 표현해준다. 베르트 그레즈 오 드 퍼퓸(VERTE GREZ EAU DE PARFUM)은 오우드 향, 스모키한 우드의 자취, 코끝에 상쾌하게 자극하는 아로마와 최상급 위스키 배럴의 기운이 코를 잠시 스친 뒤, 관능적인 머스크의 깊은 향기로 다가온다.

이 매혹적인 니치 향수들은 유럽과 서울 등의 곳곳에서 탄생했지만 ‘메이드 인 프랑스(Made in France)’ 향수다. 프랑스 럭셔리 패션 하우스들의 가죽 제품이 ‘메이드 인 이태리(Made in Italy)’ 인 것처럼 향수 제조의 성지는 변함없이 프랑스다. 그러나 향료를 수집하고 선택하고 조합하며 완성돼 가는 향기의 이미지와 철학은 각 퍼퓸 하우스만의 아이덴티티로 향기부터 보틀까지 깊게 배어 있다. 니치 향수는 굳이 패션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아도 향기만으로 스타일에 변화를 주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향기와 사랑에 빠지기 좋은 가을, 나만의 니치 향수를 찾아 ‘아주 사적인 향기 여행’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