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구찌와 사랑에 빠질 시간… “패션을 기쁨으로 즐기기 위한 초대장”
입력 2023.09.22 10:03

구찌 GUCCI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사바토 데 사르노 인터뷰

지난 1월 구찌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임명된 사바토 데 사르노.

오는 22일 밤 10시(한국 시각) 전 세계를 뒤흔들 새로운 파격은 어떻게 전개될까. 지난 한 해 패션계를 가장 뜨겁게 했고, 쏟아진 응원 갈채 만큼의 우려 섞인 시선을 몰고 다녔던 구찌(GUCCI)가 이번 밀란 패션 위크에서 새로운 시대를 연다.
지난 1월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선임한 사바토 데 사르노의 데뷔 컬렉션이 첫 선을 보이는 것이다. 사바토 데 사르노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으로 2005년 프라다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돌체앤가바나를 거쳐, 2009년 발렌티노에서 패션 디렉터로 남성, 여성 컬렉션을 총괄했다. 발렌티노에서 예술적이면서도 상업성을 지닌 우아한 스타일로 브랜드가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4월 말 발렌티노의 CD 피엘 파올로 피치올리가 그를 위해 개최한 송별 파티에서 모든 참석자들이 I ♡ SdS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구찌 그룹을 소유하고 있는 케어링의 회장 겸 CEO인 프랑소아 앙리 피노는 “구찌오 구찌가 이탈리아 피렌체에 첫 번째 스토어를 연 지 102년이 지난 지금도, 구찌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유명하며 영향력 있는 럭셔리 하우스 중 하나로 남아있다”면서 “구찌는 사바토 데 사르노의 창의적인 지휘 아래, 가치 높은 제품과 컬렉션으로 끊임없이 패션과 문화에 영향력을 미치고, 모던 럭셔리에 대한 뛰어나고 현대적인 시각을 불러올 것이라 확신한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그가 이날 선보일 패션쇼명은 구찌 앙코라(Ancora). Ancora는 이탈리아어로 ‘여전한(영어로 still)’이라는 뜻이다. 우리 말로 옮기면 ‘여전히, 구찌’ 정도의 뜻이 될 것 같다.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찌는 계속된다’라고 할까. 한때 가장 영광스러웠고, 또 한번 다시 영광스러웠고, 패션이 과연 무엇인지 다들 혼란에 빠졌을 때 언제나 구찌가 있었다. 구찌오 구찌 시절부터 톰 포드가 그랬고, 최근 알레산드로 미켈레 역시 구찌 시대를 새롭게 정의한 인물이다.
사바토 데 사르노가 컬렉션과 함께 선보이는 아트북 ‘구찌 프로스페티베(Gucci Prospecttive·구찌의 시선)’ /구찌 제공

또 다시 변혁적 변환점에 선 구찌가 앞으로의 100년을 위해 어떤 결단을 보여줄 것인가. 더 부티크는 이날 쇼에 앞서 신임 CD인 사바토 데 사르노를 국내 처음으로, 단독 인터뷰 했다. 전 세계 일부 매체를 대상으로 이뤄진 이번 사전 인터뷰에 그는 긴장감이 가득한 느낌을 한 글자 한 글자 이메일에 옮겨놓았다. “패션은 항상 나의 일부였다”면서 “위로부터의 강요가 아닌, 패션을 즐기기 위한 초대장”이라고 컬렉션을 즐겨달라고 피력한 그는 “구찌에서 하는 모든 선택이 나의 가치들 사이에서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100년 넘은 역사적인 브랜드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습니다. 구찌의 새 시대를 여는 사람으로서 책임감도 막강할 텐데요. 첫 컬렉션을 선보이는 기분은요?
“누구가 저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켜줄 때에만 압박감이 생기곤 하는데, 동시에 기대감도 생깁니다. 사실 저는 첫날부터 최선을 다해 제 아이디어를 표현해 내는 것에, 그리고 매일매일 구찌를 창조해 내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구찌 CD가 된 걸 알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혹시 당신의 첫 마디는요?
“저는 언제나 저 자신이었고 가장 진실한 방법으로 저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이런 좋은 기회가 온 유일한 길이었다고 생각해요.”
-지난 5월부터 구찌에 새롭게 합류한 뒤 여정을 조금 이야기해주신다면?
“수많은 인터뷰와 브랜드에 대한 저희 비전을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한 다양한 프레젠테이션이 있었던 그런 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프레젠테이션들은 곧 공개될 구찌에서의 제 첫번째 패션쇼, 구찌 앙코라로 구체화된 것이죠. 지난 몇 달간의 시간은 매우 강렬했지만, 곧바로 제 집 온 듯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처음 몇 일 동안은 팀들이 저와의 만남을, 저와 함께 일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지만 전 다 함께 일하면서 모든 것을 보고, 직접 경험하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우리가 모두 한마음이 되는 데 까지 불과 몇 일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가족은 저의 전부입니다. 구찌와의 모든 여정이 가족과 나누는 것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패션에 대한 저의 생각이 바로, 그들이 누구이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과 많은 연관이 있습니다.”
-구찌에서 선사할 야망 혹은 포부는요?
“밀란 구찌 허브에서 공개될 구찌 앙코라 패션쇼에서 선보일 첫 번째 컬렉션으로 이를 보여줄 예정입니다. 패션에 대한 새로운 생각, 욕망과 이에 대한 공유를 바탕으로 한 미학. 마치 유니폼처럼 정해진 대로 입는 것이 아니라, 제안된 패션을 활용해 나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는 컬렉션 ‘구찌 앙코라’에 앞서 예술과 패션 사이의 대화를 강조하는 아트 북 ‘구찌 프로스페티베(Gucci Prospettive·구찌의 시선)’를 선보인다. 이 아트 북은 앞으로 구찌의 컬렉션과 함께 출판할 예정이다. 이 안에 담긴 예술 작품들은 문학, 음악, 영화, 패션, 그리고 역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전후 시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밀라노의 문화와 예술, 그 역사의 조각을 살펴본다. 이런 흐름을 이어받은 다양한 아티스트들은 밀라노를 아름다움과 속세의 장소로 기억하며 전통적 서사 너머의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자아로 표현한다.
-1921년 구찌가 설립된 이래 여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시대를 거쳐 다양한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바토 데 사르노의 구찌 시대를 새롭게 열면서 영감받은 시대적 아카이브가 있을까요? 어떤 패션의 이정표를 세우고 싶으십니까?
“재키와 홀스빗 백은 모두가 알고 있듯 가장 상징적인 구찌의 아카이브입니다. 첫 번째 패션쇼를 위해, 저는 이 제품들의 본질을 다시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GG 벨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상징적인 조던도 있습니다. 그다음, 조금 덜 알려져 있지만 저에게 영감을 준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1970년대의 마리나 체인 주얼리 컬렉션인데, 그 실루엣은 다리아 워보이와 함께한 캠페인에 등장한 제품과, 그리고 런웨이에서 선보일 제품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 밖에 미니-드레스를 위한 프레셔스 자수 장식들에 영감을 준 1950년대의 프레셔스 클러치 제품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쇼로 넘어가 볼까요? 이번 쇼의 영감은요?
“구찌 앙코라는 함께 나누는 사랑의 선언입니다. 이것이 이번 패션쇼를 거리에서 진행하기로 한 이유죠. 거리는 그것이 제가 살고 있는 도시의 거리이든, 이제까지 여행하며 만난 장소의 거리이든, 제가 영감을 발견하는 장소입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예술 학교, 브레라 아카데미입니다. 저의 미학과 가장 맞닿아 있는 작품을 만드는 네 명의 졸업생들과 함께 협업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밀란 패션 위크 동안 임시 갤러리에서 전시할 예정입니다. 또 저의 미학에 대한 영감을 따라가는 아트 북인 구찌 밀라노 앙코라의 첫 번째 챕터라고 할 수 있는 프로스페티베에도 수록됐습니다.”
- 패션계에 발을 들여놓은지 20년이 됐습니다. 그간 패션 트렌드도 많이 변했지요.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남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그동안 패션계에 몸담으며 배운 건 무엇인가요.
“시장의 수많은 요구에 휩쓸리거나, 가능한 많은 것들을 하려는 마음에 사로잡히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만의 미학을 창조해 사람들이 이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나 자신과 패션에 대한 나 자신의 생각을 충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최근들어 포용성(inclusivity· inclusion)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패션에 구현하실 생각인가요?
" 저는 저의 작업이 제가 믿는 것들을 대변해 주었으면 합니다. 어떤 발언이나 성명을 내려는 것은 아니지만, 구찌에서 하는 모든 선택이 저의 가치들 사이에 나침반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번 쇼를 즐기기 위한 팁(tip)이 있다면요?
“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오롯이 경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위로부터의 강요가 아닌, 패션을 기쁨으로 즐기기 위한 초대장입니다. 구찌에 합류한 후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하고 있고, 저의 많은 부분을 쏟아붓고 있는데, 이 점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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