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개 부품 암호풀듯… 시간 흐름까지 계산하며 시간 찾아간다
입력 2023.09.22 09:58

브레게 클래식 미닛 리피터 7637 하나의 작품처럼 완성되는 과정을 엿보다

전 세계 브레게 직영 매장을 통해 극소수만 선보인 브레게 클래식 미닛 리피터 7637. /브레게 제공

스위스 고급 시계 브랜드 브레게의 창업자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당대 최고의 시계 기술자이자 천재적인 발명가였다. 아니 당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최고의 발명가이자 시계 연구가, 기술자다. 지금의 시계를 탄생시킨 수백개의 특허가 그의 손에서 나왔다. 좀 더 정확한 시간에 맞추기 위한 초인간적 노력은 이번 브레게가 이번 2023 프리즈 서울에서 보여준 ‘스트리밍 타임’과도 일맥상통할지 모른다. 바늘을 조정해 시간을 맞추지만 맞추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간다. 그 오차조차 허용하지 않으려는 워치 메이커들은 시간의 흐름까지 계산해 가며 시간을 찾아간다. 우리가 스트리밍을 하는 동안 빠르게 감기를 통해 시간을 거슬러 갈 순 있어도, 시간 자체가 뒤로 가지는 않는 것처럼, 시계는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과의 차이에 대한 명확한 수식을 수백개의 부품을 통해 마치 암호풀이 하듯 풀이해 간다.
클래식 미닛 리피터 7637. 로즈 골드 케이스에 블랙 그랑 푀 에나멜 다이얼을 적용한 버전과 화이트 골드 케이스에 브랜드를 상징하는 네이비 블루 에나멜 다이얼을 적용한 버전. /브레게 제공

◇이것은 시계인가 예술작품인가…클래식 미닛 리피터 7637
물리학 법칙과 수학적 공식 등을 품고 다층적 설계를 통해 탄생한 복잡 시계(컴플리케이션 워치) 그 자체도 연구감이지만, 브레게 같은 고급 시계가 위대한 건 여기에 예술성을 가미했다는 것이다. 마치 프리즈 서울에 등장할 법한 예술적인 작품처럼 아티스트의 디자인과 장인들의 마감이 더해져 흔히 말하는 ‘마스터피스’를 탄생시킨다. 하나의 위대한 예술 작품이 창작의 고통과 번뇌를 통해 수많은 시간을 들여 켜켜이 쌓인 땀의 흔적으로 완성되는 것처럼 시계 역시 오랜 시간을 들여 기계적인 완벽함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예술 혼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브레게의 특별한 발명은 어쩌면 프리즈의 상당 부스를 채울 정도로 다양하지만 최근 선보인 브레게 클래식 미닛 리피터 7637은 외관 만으로는 속내를 알기 어려운 현대 미술 같은 작품이다. 지난 8월 말 전 세계 브레게 직영 매장을 통해 극소수만 선보인 이 제품은 등장하자마자 전 세계 팬들에게 감탄사 그 이상을 절로 불러일으켰다. 간결한 외관 속에 고도의 기술과 예술이 집약된 모습은 예술 작품을 마주했을 때의 감흥 그 이상이다. 수백년 세월을 이어온 장인 정신과 예술혼이 빚어낸 경건함에 고개가 숙여지기까지 한다.
미닛 리피터는 이름 그대로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이다. 이렇게 소리를 내게 하는 작동을 구현하는 핵심 부품인 공 스프링(Gong-spring)을 바로 브레게의 창업자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발명했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1783년, 그때까지 사용되던 종 유형의 공 대신 스프링 블레이드를 타격하는 최초의 리피터 시계를 제작했다.
미닛 리피터는 ‘작은 기계식 마스터피스’라고 표현되는 주요 워치메이킹 컴플리케이션 중 하나로 손꼽힌다. 무브먼트 외에도 공 스프링을 타격하는 해머로 구성된 차이밍(chiming·차임벨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것) 메커니즘이 포함돼 있다. 디자인에 활용되는 다양한 소재는 분명한 음향 관련 특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모든 부품은 작은 사이즈의 케이스에 장착할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작아야 한다. 이는 정확한 기준, 다년간의 경험, 탁월한 손재주를 필요로 하는 기술이다. 미닛 리피터 제작에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리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다.

◇필요가 명작을 탄생시킨다.
이 컴플리케이션은 무엇보다도 필요에 의해 고안됐다. 전기가 도입되기 전 17세기에는 날이 어두워지면 시간을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워치메이커들은 원하는 때에 소리를 울릴 수 있는 시계를 제작하기 위한 기발한 방법을 찾아내려 서로 경쟁했다. 1680년에 발명된 최초의 미닛 리피터 시계는 이에 대한 해결책이 됐다. 이 같은 혁신은 다른 혁신으로 이어졌고, 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것 외에도 15분 혹은 분 단위를 알릴 수 있게 됐다. 뛰어난 기술자였던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이에 대한 열정을 키워 나가면서 메커니즘을 개선할 방법을 찾았다. 이에 따라 그는 1783년, 그때까지 사용되던 종 유형의 공 대신 스프링 블레이드를 타격하는 최초의 리피터 시계를 제작했다. 초기에 직선형으로 뒷면 플레이트를 가로질러 배치되었던 블레이드는 이후 무브먼트를 감는 형태로 발전했다. 이는 차이밍 시계의 두께를 크게 줄이면서도 보다 맑고 조화로운 소리를 낸다는 장점이 있다. 대단한 인기를 끈 이 발명품은 당시 많은 워치메이커들의 선택을 받았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이외에도 다양한 쿼터, 하프 쿼터, 미닛 스트라이킹 메커니즘을 발명했다.
미닛 리피터 시계를 완성할 때는 초고도 복잡 시계를 완성하는 워치메이커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음향 전문가로서의 역량 역시 중요하다. 무브먼트를 조립한 후에는 배음 및 선율의 두 단계로 공의 조율 작업을 진행한다. 전문가는 이 워치메이킹 컴플리케이션을 위해 특별히 반향이 없도록 구성된 방에서 먼저 각 공의 공명 주파수를 파악하고, 음을 결정한 후에는 브레게 사운드 시그니처와 가장 닮은 멜로디를 찾아내기 위한 추가 작업을 진행한다. 재밌는 건, 모든 타임피스는 수작업으로 완성되기 때문에 시계 제품별로 음향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찍어내듯 만들어내는 ‘표준’이 아닌, 인간미로 창출되는 개인화의 최전선이다. 요즘 명품에서 가장 강조하는 유일무이성이 바로 이 제품에 담긴 것이다.


형용할 수 없는 깊이감이 느껴지는 블랙 다이얼을 구현하기 위해 소수의 장인만이 구사 가능한 그랑 푀 에나멜 기법을 활용한다. 이산화규소와 산화물 분말의 혼합물인 컬러 에나멜 파우더를 물에 녹여 일일이 수작업으로 플레이트 위에 여러 겹에 걸쳐 도포한 다음, 전통 방식 그대로 800°C 이상 고온의 가마에서 수 차례 소성(燒成)하는 과정을 거쳐 탄생된다. /브레게 제공

◇800도를 견뎌라…불이 빚어낸 또 다른 예술, 그랑 푀 에나멜
겉으로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7637의 미니멀한 다이얼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현재 소수의 장인만이 구사 가능한 그랑 푀 에나멜 기법이 필요하다. 이산화규소와 산화물 분말의 혼합물인 컬러 파우더를 물에 녹인 다음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다이얼에 적용한다. 진정한 비밀은 소성(firing· 조합된 원료를 가열하여 경화성물질을 만드는 것. 흔히 말해 광물을 굽는 것) 과정에 숨어 있다. 각각의 층과 컬러는 섭씨 800도가 넘는 특정 온도에서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시간 동안 추가 소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같은 열에 노출된 에나멜은 점화 후 용융되어 각각의 층을 형성하게 된다. 하나의 다이얼을 원하는 색조로 연출하기까지는 몇 주가 걸릴 수도 있다. 이 다이얼 위에 브레게 아라비아 숫자, 미닛 트랙, 브레게 로고가 파우더 실버 컬러로 완성된다. 시간과 분은 오픈-팁 골드 브레게 핸즈로 표시된다. 9시 방향에 있는 전용 슬라이드를 사용하여 미닛 리피터를 활성화할 수 있다.
직경 42mm의 시계 케이스는 로즈 골드 소재로 새롭게 만나볼 수 있다. 밸런스가 2.5Hz로 진동하는 칼리버 567.2가 장착돼 있다. 시계를 반대로 뒤집으면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백을 통해 전체에 수작업 디테일을 장식한 기계식 핸드 와인딩 무브먼트와 폴리싱 처리된 스틸 소재의 해머를 감상할 수 있다.
공, 공 홀더, 해머의 배치도 기발하다. 공은 플레이트가 아닌 케이스 미들에 고정돼 직접적으로 진동한다. 소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 또 공은 골드 소재로 제작돼 부분음이 풍부한 배음으로 조화로운 소리를 연출한다. 골드는 또 다른 장점을 제공한다. 케이스 역시 골드 소재로 제작된 만큼 부품은 음향적으로 동일한 임피던스(Impedance·매질에서 파동의 진행이나 도선에서 전기적 흐름을 방해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를 공유해 소리 전달 및 성능 면에서 우수하다. 역시 브레게가 특허를 취득했다.
새로운 클래식 미닛 리피터는 골드 트리플 블레이드 폴딩 클래스프를 갖춘 블랙 앨리게이터 스트랩이 장착된다. 같은 제품 라인에서 미드나잇 블루 컬러의 그랑 푀 에나멜 다이얼과 앨리게이터 스트랩을 장착한 화이트 골드 소재의 시계도 있다.
새로운 클래식 미닛 리피터는 골드 트리플 블레이드 폴딩 클래스프를 갖춘 블랙 앨리게이터 스트랩이 장착된다. /브레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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