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미아니의 정체성은”
입력 2023.09.22 09:58

이탈리아 하이엔드 주얼리 다미아니 귀도 그라시 다미아니 회장 인터뷰

다미아니 그룹 회장 귀도 그라시 다미아니. 창업자 엔리코 다미아니의 직계 3대손이자 보석 세공과 디자인까지 뛰어난 안목을 지닌 그는 세계적인 권위의 국제보석학연구소(IGI) 학위까지 취득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좋은 주얼리 회사는 여럿이어도 진짜 ‘명품’ 주얼리 회사는 손에 꼽힌다. 최고 품질의 원석 자체를 얻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보석 광산과 계약하거나, 각종 경매를 통해 희귀 보석을 구하며 업계에서 입지를 다져야 하는데 이 자체가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하다. 하고 싶다고 아무나 뛰어들 수는 영역이 아니란 얘기다. 돈이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최상의 제품을 알아보는 안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다로운 조건과 완벽하게 부합하는 이가 있다. 1924 년 이탈리아 발렌자 (Valenze)에서 설립된 이탈리아 하이엔드 주얼리 브랜드 다미아니(DAMIANI)의 귀도 그라시 다미아니(55) 회장이다. 창업자 엔리코 다미아니의 직계 3대손인 그는 보석 세공과 디자인까지 뛰어난 안목을 지녔던 다미아노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으며 세계적인 권위의 국제보석학연구소(IGI) 학위까지 취득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미아니 벨 에포크 컬렉션 중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가 세팅된 화이트 골드 목걸이. 벨 에포크 주얼리는 프랑스어로 ‘좋은 시대'를 일컫는 말로, 19세기 예술의 상징인 영화 필름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되었다.

1996년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사 경영에 직접 나선 귀도 회장은 기업 내실은 물론 외연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과 지휘력 아래 다미아니는 5000만 유로(약 710억원) 매출에서 지난 2022년 3월 발표 자료 기준 1억 8000만 유로 매출 규모 회사로 대폭 성장했다. 무엇보다 코로나 기간인 2021~2022년 기준 매출이 전년 대비 69%나 신장하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동시에 주얼리 채굴과 공급망 관리에 윤리적 책임을 철저히 지켜내는 등 이탈리아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2020년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다미아니 벨 에포크 릴 링.기존의 벨 에포크 컬렉션에의 혁신적인 디자인에서 더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진화됐다.

하이엔드 주얼리 회사 중 유일한 가족 경영 회사이기도 한 다미아니는 현재 다미아니 그룹 하에 하이주얼리 브랜드 다미아니를 필두로, 이탈리아 모던 주얼리인 살비니(Salvini), 젊은 층을 겨냥한 주얼리 브랜드 블리스 (Bliss) 등을 인수한 데 이탈리아의 유일한 하이엔드 주얼리 및 워치 공급처이자 세계적인 시계 브랜드 롤렉스, 파텍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등의 공식 딜러인 로카(Rocca), 1840 년에 설립된 이후 다이아몬드 판매에 전념하는 고급 스톤 브랜드 칼데로니(Calderoni), 그리고 세계적인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명성높은 무라노 유리 공예 브랜드 베니니(Venini) 등을 인수했다.

다미아니 자체로는 할리우드 스타 샤론 스톤, 틸다 스윈튼, 제니퍼 애니스턴. 기네스 펠트로, 브래드 피트 등 마니아 팬을 거느리며 지난 1976년을 시작으로 주얼리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다이아몬드 인터내셔널 어워즈를 18회 수상한 유일한 브랜드다. 최근 3년 만에 국내를 찾아 백화점 매장 등을 꼼꼼히 살핀 귀도 회장은 “한국에서의 눈부신 성장이 더 큰 야망을 키우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되고 있다”면서 “특히 브랜드 지식이 높고 스토리 유산에 관심이 높은 한국 고객들을 위해 광고와 홍보 예산을 늘리는 한편, 매장 경험을 향상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우리의 자산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면서 강조했다. 그는 또 회장은 “가족 경영 회사이기 때문에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이익에 앞서 적극적인 투자를 하는 게 다른 회사들과 특별히 차별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품질을 타협하지 않는 건 기본. 자신에게 돌아갈 마진을 줄여서라도 최고품질 제품의 제품과 최선의 고객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압도적으로 차별화되는 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내년이면 100주년입니다. 소감은요?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신가요?
“100주년을 생각하면 매우 흥분됩니다. 항상 앞을 내다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한걸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축하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밀라노를 시작으로 전 세계로 향하는 이벤트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특별 컬렉션도 준비 중입니다.”

-다미아니의 정신이나 정체성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무엇일까요?
“우선은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사업 그 이상입니다. 우리는 사업가이기 때문에 수익성 있고 건강한 회사를 찾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이끌어가는 것이 더 중요해요. 우리가 어렸을 때 회사 본사가 곧 집과 연결돼 있어 우리는 말 그대로 다이아몬드와 금 사이에서 성장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한 층이나 두 층 아래로 내려가 어머니 사무실이나 아버지 사무실에 가서 금과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놀곤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하루 종일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지 않을 때에도 말 그대로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업에 대해 생각하고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일합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에게 주신 열정이 우리에게도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 단어로만 표현해야 한다면 열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굳이 덧붙이자면 가치, 품질, 유산, 뿌리에 대한 존중도 있습니다.”
-업(業)에 대한 의지와 열정은 사랑에서 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정말 좋아한다고 느꼈던 처음은 언제였고, 어떤 이유에서였습니까?
“솔직히 언제라고 말할 수 없기도 합니다. 태어나서부터 함께 성장했기 때문이지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사랑하게 됐다고 할까요?(웃음) 아,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그는 휴대전화 갤러리를 검색하더니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이게 세 살 때 저의 모습입니다. 루페(시계·보석상에서 쓰는 확대경)를 눈에 끼고 보석을 보고 있지요. 또 예를 들어 제가 6살 무렵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인도에 다이아몬드를 사러 갔을 때가 기억납니다. 가족 사업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휴가와 사업을 혼합하곤 했습니다. 인도에서 휴가를 봄베이 다이아몬드 증권 거래소에 들러 보석을 거래하곤 했습니다. 열정적인 부모님 덕분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금융, 경제 등 보통 남자아이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그래서요? 그 호기심 많던 꼬마는 나이가 들어 회사를 인수하고 회사 경영을 하게 됐지요.(웃음)”
귀도 그라시 다미아니 회장의 어렸을 적 모습.다미아니 가문의 후계자들은 어린 시절부터 주얼리의 제작 과정을 접하며 자연스레 주얼리에 대한 열정과 감각을 지니게 되었다.

-3대째인 당신에 이르러 다미아니가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
“시작은 어쩌면 비극적이었습니다. 제가 27살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릴 때 회사를 맡았어야 했습니다. 아버지 생전에 저는 회사에서 이탈리아 영업을 책임졌습니다. 이젠 글로벌 그룹을 맡고 있지요. 자신의 창조물이 성장하고 점점 더 국제화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아드레날린이 솟구칩니다. 저는 매일 아침 전날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의지로 일어납니다. 피곤한 적이 없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래요.”
-다미아니는 가족이 소유하고,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장점도 있겠지만, 형제·자매들 사이에 갈등이나 의견 불일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조율하십니까.
“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보통 가족 사업에서는 많이 싸우고 때로는 그 싸움 때문에 회사가 망하기도 합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금융 등에 관심이 많아 신문을 읽으면서 이러한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미래를 명확히 계획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들에게 동의를 구했지요. 저는 ‘모든 것이 너무 좋고 아름다운 이때에 서로의 원하는 지점을 맞춰 동의하는 게 좋다’고 말했습니다.
회사에서 우리는 주주입니다. 경영자이기도 하지요. 관리자, 주주, 형제·자매 세 가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는 세 가지가 될 수 있지만 규칙은 달라야 합니다. 가족 경영 회사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저희 남매들은 제가 더 많은 역량을 가질 수 있게 힘을 실어주고 동의했습니다. 그 사실 뿐만 아니라 저는 지분에 의해서도 리더가 되었습니다. 누나와 동생이 저에게 대부분의 지분을 줬어요. 저를 많이 믿어주었죠. 그래서 누나와 동생에게 정말 고마워요.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언이 없었기 때문에, 저희 남매에게도 무거운 결정이었고, 그들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아내 혹은 남편은 회사에서 일할 수 없다는 등의 다른 규칙도 정했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같이 있으면 더 많이 싸우거나 질투를 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금지했습니다. 그 외에 우린 대부분의 것을 함께 합니다. 휴가용 주택을 구매하기도 했고, 휴가를 같이 가거나 주말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는 모두를 위한 명확하고 공유된 규칙을 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은 항상 함께 있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존중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운이 좋습니다.”
-다미아니는 200시간 2000시간을 들여 보석을 완성하는 장인정신도 유명합니다. 최고의 작품을 내놓기 위한 의지도 높이 사지만, 소비자에게 납득할 수 있는 가격 사이에는 어느 정도 간극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조 및 원자재의 품질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소비자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면 생산하지 않기도 합니다. 저는 원석의 무게와 품질에 대해 거짓말을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천연 다이아몬드와, 혼합된 산업용 다이아몬드(랩 다이아몬드 혹은 모이사나이트 등)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조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천연 다이아몬드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요. 저는 다미아니와 함께 하는 것은, 다이아몬드(등의 희귀 보석)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최고의 재료로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전통의 수공예품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할리우드 스타 샤론 스톤과 함께 2001년부터 아프리카 클린 워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최근엔 윤리적 채굴 등을 철저하게 지키고 관리하는 아소젬의 윤리 위원회(Assogemme’s Ethics Committee) 위원장으로 발탁됐습니다.
“데스몬드 투투(남아공 성공회 대주교·노벨 평화상 수상자·1931~2021)와 넬슨 만델라(1918~2013) 같은 저명한 분들께도 클린 워터 프로젝트를 설명했더니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가족 회사라는 사실이 모든 것을 연결시켜주는 것 같습니다. 가족으로서 우리는 연대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항상 베풀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도 마찬가지지요. 예를 들어 우리가 설립하고 성장한 발렌자 시에선 몇 년 전 본사 주소의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딴 ‘다미아노’로요. 지역 사회에 대한 공헌을 높이 사 지역 이름을 아버지 이름으로 헌정한 것이지요. 지역 학교(보육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어머니 이름을 따 가브리엘라 다미아니라고 이름을 바꿨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결혼할 때도 선물을 바라지 않으니, 차라리 아프리카 등지에 깨끗한 물을 끌어올 수 있는 기구를 만들기 위해 기부해달라고 요청한 적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하나를 가지면, 가장 소외되고 빈곤한 이들에게 다른 하나를 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매우 흔한 일입니다.”
■ 다미아니는?
다미아니는 1924년 창립자인 엔리코 다미아니가 이탈리아 주얼리 전통의 중심지인 발렌차 지방에 설립한 금세공 장인 지역에서 최초로 탄생했다. 엔리코는 당시 그의 탁월한 금세공 기술력을 바탕으로 귀족 가문에 고유한 주얼리를 디자인해 제작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34년 가업을 이어받은 엔리코의 아들 다미아노 다미아니는 체계적인 산업화를 도입하고 시장을 확장했다. 디자인을 연구하고 기술 혁신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회사가 성장하도록 했다. 다미아니 주얼리는 당시 가격 안정화를 보장하고 전체 컬렉션을 카탈로그화하는 획기적인 판매·마케팅 방식을 도입하며 명성을 넓혀갔다. 1990년대 사업을 물려받은 다미아니 3대손 실비아, 귀도, 조르지오 삼남매는 본격적으로 기업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시킨다. 실비아 다미아니는 제품구매와 커뮤니케이션을, 동생 조르지오는 수출을, 텔 아비브에서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감별 기업에서 경력을 쌓던 귀도는 영업 대표로 재직하는 등 명확한 역할 분담과 서로간의 시너지를 통해 다미아니 브랜드를 현재 글로벌 주얼리 기업으로 키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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