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는 왜 아트 마케팅에 주목할까?
입력 2023.09.15 08:36

정원과 카페, 현대미술품이 어우러진 몽테뉴가 디올 플래그십 매장

작년 한 해, 프랑스 파리에서는 주목할 만한 오프닝이 몇 가지 있었다.
먼저 3월, 파리 몽테뉴가 30번지의 디올 플래그십 매장이 초대형 규모로 재개관했다. 디올의 심장부 답게 부티크 내부는 카테고리별로 특화된 조닝(zoning)이 아름답게 연출되었다. 다수의 VIP룸들은 각각의 용도에 맞게 최적화 된 모습으로 배치되었고 유수의 아티스트 작품들이 각 조닝마다 존재감을 드러냈다. 명품 플래그십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내부의 아름다운 정원과 카페에서는 독특한 생기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한 플래그십의 백미는 바로 옆 건물, 13개 테마의 방으로 이루어진 완성도 높은 전시 공간(La Galerie)이다. 올해 초 직접 방문했을 때 도슨트의 설명에 따라 크리스찬 디올의 생애와 수십년 간 의상의 역사를 새로 써온 기념비적 작품들의 아카이브를 관람할 수 있었다. 전시관의 역사 속 내러티브는 자연스럽게 플래그십 매장의 현재로 이어졌다.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자랑스러운 유산은 현 시대로 거슬러 올라와 쇼핑 공간에서 현현한다.
정원과 카페, 현대미술품이 어우러진 몽테뉴가 디올 플래그십 매장의 내부 모습

크리스찬 디올의 당시의 디자인 스케치

쇼가 열리던 계단의 당시 모습

쇼가 열리던 계단의 현재의 모습

같은 해 12월에 파리 퐁뇌프 2번가에서는 LV DREAM 이라는 이름으로 루이비통의 복합문화공간이 개관했다. 루이 비통의 초기 사진 자료부터 브랜드의 역사를 보여주는 제품들이 감각적인 연출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관람자에서 소비자로서의 이전은 여기서도 자연스럽다.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와 맞닿아 있도록 전시의 끝에는 루이 비통의 현존하는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숍과 연결된다. 아쉬움을 느낄 새 없이 루이 비통의 창의적인 발자취를 보여주는 이 전시관 앞에는 루이 비통 본사(LVMH)에서 설립한 사마리텐 백화점이 있다.
LV 드림 건물과 마주보는 사마리텐 백화점

LV 드림 건물과 마주보는 사마리텐 백화점

루이비통 제품 아카이브

22년 파리에는 또 다른 빅이슈가 있었다. 기존 파리상업거래소 건물이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감독 하에 4년간의 긴 공사를 거쳐 피노 컬렉션(Pinault Collection)으로 오픈한 것. 안도 타다오의 콘크리트 실린더 설치물이 기존 건물 내부의 고전미와 조화를 이루며 현대 미술을 위한 랜드마크로 새롭게 거듭났다. 대형 프로젝트를 실행한 장본인인 피노 회장(François-Henri Pinault)은 구찌, 보테가베네타 등을 소유한 케어링(Kering) 그룹의 창업주다. 그는 50년 동안 축적한 1만점 이상의 현대 미술품을 대중들에게 선보이고자 했다. 케어링 그룹 외에도 현대미술관을 운영하고 아티스트를 위한 미술재단을 운영하는 명품 브랜드는 에르메스, 루이비통, 까르띠에 등 사례가 많다.
피노 컬렉션의 외부와 내부 모습

피노 컬렉션의 외부와 내부 모습

HEC 경영대학원의 카프레르(Jean-Noël Kapferer) 교수는 그의 저서 ‘명품의 예술화’(The Artification of Luxury, 2014)에서 명품 브랜드들이 자사 기업의 역사와 전통을 숭상함과 동시에 오늘날의 소비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명품 브랜드의 예술화(artification)를 구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브랜드 스스로와 제품, 그리고 브랜드의 공간이 예술의 영역을 넘나든다.
실제 크리스찬 디올과 루이 비통의 전시는 갤러리의 큐레이션과 동일한 서사구조를 지닌다. 창립자 본인에 대한 소개로부터 시작되고 브랜드의 역사 속 아카이브가 시계열로 전시되며 혁신적인 제품들에 대한 강조는 빠지지 않는다. 시련과 극복, 성장과 성숙의 단계를 지나온 명품 제품은 예술품과 동질적으로 전달된다. 창립자 본인의 일대기는 구태를 깨뜨리고 혁신을 보여준 예술가의 생애와 다름없다. 한편, 피노 컬렉션과 같은 사례에서 고객들은 명품 브랜드가 현대 미술 또는 미술가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든든한 후원자의 역할이 될 수 있음도 확인한다.
명품 브랜드가 예술과 접목하는 시도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1965년 이브 생 로랑은 몬드리안 드레스를 제작했다. 몬드리안 추상화가 반영된 심플하고 대담한 룩을 통해 이브 생 로랑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미학을 드러냈다. 이후에도 시행과 발전을 거듭하며 현 시대에서는 현존하는 아티스트가 브랜드와 기획 과정부터 참여하는 적극적인 상품 콜라보레이션이 빈번하다. 무라카미 다카시, 쿠사마 야요이와 지속적으로 협업하는 루이 비통이 대표적이다. 브랜드의 제품이 예술가의 창작품과 동등한 지위를 확보해 나가는 또 다른 경로다. 명품 제품이 예술화되며 명품의 독창성은 예술의 권위를 갖게 된다.
이브 생 로랑의 몬드리안 드레스 /출처 : 파리 이브 생 로랑 미술관 홈페이지

이브생로랑의 몬드리안 드레스 /출처 : 파리 이브 생 로랑 미술관 홈페이지

루이 비통의 아티스트 콜라보레이션 /출처: 하이스노비티(Highsnobiety) 홈페이지, 스팟티드패션(Spottedfashion) 홈페이지

브랜드 제품이 전시의 외양을 하고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것. 브랜드 창립자 본인이 흡사 예술가와 같은 권위로 서사를 갖게 되는 것. 예술과 명품이 동일한 지위를 획득하고 나아가 명품 브랜드가 예술 산업에 대해 후원을 지속하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명품과 예술. 이 둘은 같은 성격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공통점이 있다. 예술 작품을 알아보고 향유하는 사람의 안목 또는 엘리트주의적 속성은 명품 브랜드 고객층의 제품에 대한 고상한 식견 또는 과시적 속성과 맞닿아 있다. 각각의 대상과 소비자는 상위 문화로서 그렇지 않은 문화를 능가하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배제시키게 된다. 상류층의 전유물이 된 고가의 명품 제품은 ‘값을 매기기 어려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존재와 가격의 정당성을 확인한다.
공간 역시 공통점을 갖는다. 예술과 명품 브랜드는 여전히 고풍스러운 오프라인 플랫폼을 주된 매개로 소통되고 소비된다.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와 모던 아트 갤러리 모두 미학과 자본이 집중 투입된 현대 건축물의 정점에 있다.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가 명품 플래그십 매장을 건축하고 내부를 유명 작가의 예술품으로 장식하며 플래그십 매장은 더욱 존재감을 갖게 되고 그 위계를 확고히 한다.
도쿄 아오야마 프라다(Herzog & de Meuron 건축) /출처: LVMH 공식 트위터

서울 루이비통 메종(Frank Gehry 건축)

명품과 예술의 공조가 각각이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배타적인 속성을 더욱 단단히 할 것이라는 염려는 당연할 수 있다. 명품은 그 자체로 계층을 구분하는 속성이 있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그 벽은 미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른 시각으로 볼 일만이 아니다.
새로운 소비 주체의 등장은 산업 곳곳에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팬데믹 시절 명품 산업은 20-30대의 급격한 유입으로 유례없이 큰 폭으로 성장했다. 새로 유입될 소비자들에게 명품은 능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본인의 취향을 저격한다면 어떤 경로로든 선택해버리고 만다. 예술 역시 문턱이 낮아졌다. 신진 아티스트 작품에 대한 관심이 넓어졌고 미술품과 갤러리는 대중의 일상과 적지 않게 맞닿아 있다. 경계없이 미학과 즐거움을 찾는 소비자의 등장으로 소비의 위계는 둔화되었다. 새로운 세대는 굳이 예술이라는 표피 없이도 브랜드 제품이 가진 진정성을 알아본다. 명품 브랜드는 브랜드만의 서사와 창의성, 품질만으로도 기꺼이 존중받고 소비된다. 이 변화는 주류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끼쳤다. 루이 비통이 올해 초 팝 뮤지션인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를 크리에이티브로 고용한 것은 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무거운 권위 없이도 브랜드의 독창적인 움직임에 중심을 두고 같은 무게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브랜드의 자신감으로 해석된다.
예술과 명품의 결속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자본주의의 도상을 뛰어 넘는 예술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지원을 응원한다. 창의적인 아티스트에 대한 후원을 하는 명품 브랜드의 예술에 대한 진의와 이것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한다.
국내의 경우, 도산 에르메스(Atelier Hermès), 루이비통 청담 플래그십(Espaces Louis Vuitton), 분더샵 청담과 같은 매장에서 전시관을 별도 운영한다. 명품 매장의 문턱이 높게 느껴지더라도 가벼운 차림으로 각 브랜드에서 선별한 미술 작품을 관람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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