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앞 복도에 서 있는 남성이 미니 백을 메고 있다면? 아직도 화장실에 들어간 여자 친구의 백을 대신 메고 기다려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마도 그 미니 백은 ‘그녀’가 아니라 ‘그’의 백일 것이다. 이제 미니 백이 여성들을 위한 패션 아이템이란 고정관념을 완전히 벗어던질 때가 됐다. 몇 시즌부터 나오기 시작한 남자들의 미니 백이 패션 스트리트의 흔한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미니 백은 트렌드에 민감한 젠지(Gen-Z: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Z 세대) 남성들로부터 지지를 받기 시작했고, 그 나이의 영역이 30-40대까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성의 경계가 없는 젠더리스(Genderless)와 성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젠더 플루이드(Gender Fluid)가 시즌 유행을 넘어 하나의 스타일로 정착하며 미니 백도 성의 경계에서 자유해졌다. 디자인도 숄더 백, 벨트 백, 크로스바디 백 등 포멀과 캐주얼을 넘나들며 다양한 스타일이 동시에 인기를 얻고 있다.




처음에는 ‘남자의 백이 이토록 작아져도 되는가’라는 의구심을 패션 전문가들까지 지녔다. 그러나 발렌시아가, 발렌티노, 돌체 앤 가바나 등과 같은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내놓고 있는 남자의 미니 백이 현대 남성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매우 잘 부합한다는 뜻밖의 사실을 깨달았다. 먼저, 큰 지갑으로 인해 바지나 재킷 라인이 망가지는 것을 방지해준다. 소지품을 잔뜩 넣어 불룩해진 바지나 재킷 주머니는 아무리 좋은 브랜드를 입었다 해도 패션 테러리스트로 만든다. 또한 이제는 남성들이 가지고 다녀야 하는 소지품의 가짓수가 줄었다는 것이다. 외출할 때는 에어팟과 카드 한두 개, 휴대폰이면 충분하다. 결국 미니 백의 등장은 현대 남성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적용된 트렌드라는 뜻이다. 미니 백도 유행으로 지나가는 아이템이 아니라 남자들의 일상백으로 정착할 것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만약 아직도 미니 백을 든 남자친구, 동생, 아들 또는 남편을 보며 내적 갈등을 느끼고 있다면 더 이상 얼굴 찌푸릴 필요가 없다. 그대신 이번 가을, 겨울 시즌을 위해 멋진 미니 백을 같이 골라주고 쇼핑하거나 선물해 보자. 그동안 말성이다 미니 백 군단에 합류하고 싶은 남성들이라면, 스타일 좋은 패션 인플루언서들의 미니 백 스타일링을 참고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