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K아트에 주목한다.
  • 안수연 갤러리 박영 대표
입력 2023.09.01 09:16

로스앤젤레스카운티뮤지엄(LACMA)에서 박대성작을 관람중인 RM. /출처: RM인스타그램

2023년 9월 초, 대한민국은 미술 축제 속에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 한국국제아트페어, 키아프 서울(Kiaf Seoul)과 영국의 프리즈(Frieze Seoul)의 동시 개최가 작년에 이어 2회째를 맞아 미술계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전 세계 아트피플들의 한국 방문은 단순히 두 페어를 통해 미술작품을 쇼핑하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다. 동방예의지국인 한국의 문화를 경험하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선보이는 아트 신에 대한 호기심, 한국 작가들의 아트웍을 기대하며 방한을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나의 예측은 단순한 사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미술관에書’:한국 근현 서예전은 대 견고하게 준비했던 기획전이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관람자가 거의 없어 안타깝게 잊힐 뻔한 전시다. 온라인 뷰잉 전시로 시스템을 바꾼 이후 반전이 일어났다. 20만 명 이상 전시를 관람했으며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클릭 수가 많았다는 통계가 나왔다. 위기가 기회가 된 사례였다. 어쩌면 이러한 붐이 한국의 문화예술이 세계인들에게 깊은 관심을 끌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게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 한류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를 비롯한 한국 작가들의 특별전이 미국과 유럽의 유명 뮤지엄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시기 나의 다이어리에는 한국의 문화와 미술을 동시에 알릴 수 있는 전시 기획을 해야겠다는 버킷리스트가 생겼던 것 같다.
2022년,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V&A)에선 대대적인 한류 전시를 개최했다. 대부분은 한국미술사와 현대미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지만,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K팝, K 드라마와 같은 대중문화였고 그 카테고리 안에 비춰진 미술이 집중 조명되었던 전시 사례로 평가되었다. 같은 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뮤지엄(LACMA)에서는 한국 작가 특별전, ‘박대성 개인전’이 한국 역사 500년 이래 최초로 LACMA의 선제안으로 이뤄진 전시였다는데 큰 의미를 더했다. 미국 언론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호평 기사를 접하며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대성 화백은 우리나라의 지·필·묵 문화를 현대화한 수묵화의 거장이다. 도불화가 중 생애 마지막 날까지 프랑스 파리에 남아 한국 미술의 독창성을 알리며 꾸준한 작업을 이어온 고암 이응노 화백 또한 유럽에서 지금까지 유명세를 잇고 있다. 2022년 이응노 미술관에서의 전시, ‘파리의 마에스트로’展을 접하며 그가 남긴 한국 미술의 맥은 사후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올해 3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한국 채색화의 대가, ‘박생광 박래현’展은 한국 채색화의 잠재적 역량을 재구현했다는데 의미가 큰 전시였으며, 이번에도 많은 해외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한 흐름을 이어 이번 2023 키아프 서울 (2023 Kiaf Seoul) 특별전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되지 않았던 박생광, 박래현 화백의 7점이 추가로 소개될 예정이라 한국 미술의 오방색 문화를 더욱 널리 알릴 전망이다. 미국에서 계획된 앞으로의 전시 스케줄러를 보면 그 행보가 이어지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올해 11월에는 성파, 김종학, 박생광 작가의 한국 채색화전이 샌디에고 뮤지엄에서 예정되어 있으며, 오는 9월부터 내년 1월 7일까지는 ‘한국실험미술1960~1970′展이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의 1~3층에서 열린다. 강국진, 김영진,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굵직한 작가들의 작품이 4개월간 전시될 예정이며 같은 전시가 2024년 5월~7월 로스앤젤레스 해머미술관에서도 이어진다고 한다. 한국 미술이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걸 대변하는 희소식이다.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한국의 실험미술 1960-1970전 소개. /출처: 구겐하임 홈페이지.

한국 미술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은 단색화에서 채색화까지 광범위해지고 있으며 한국의 오브제와 문화에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우리나라의 고유의 건축물인 ‘한옥’이 미국 조지아 주에 수출이 확정되었다는 소식과 2019년에 있었던 낭보인 ‘한지’에 대한 위대함이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뮤지엄에 소장된 로스차일드 컬렉션 중 ‘성 캐서린의 결혼식’작의 판화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복원하기 위해 지류를 선택할 때 일본의 화지를 제치고 우리나라의 경북 문경전통한지가 채택되었다. 지류 작품 보존 분야에서 한지의 안정성과 우수성을 세계인들로부터 인정받은 셈이다. 나는 가끔 현대미술만을 앞서가는 미술 장르로 규정하고 외국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려는 한국의 컬렉터들, 서구의 현대미술의 트렌드를 의식하며 작업에 투영하려는 작가들의 캔버스를 마주할 때면 공허함을 느끼곤 한다. 한국적인 것을 지루하게 생각하는 컬렉터들의 기호도 인정하지만, 우리 것이 위대하고 소중하다는 생각도 함께 가지고 미술의 트렌드를 읽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프랑스 파리 시슬리재단에서의 한국작가 8인전. / 출처: 한지 작가 서정민 작가 사진 제공.

반면에 한국적인 정서를 모티브로 하거나 한국적인 재료를 소재로 작업하는 미술 작가들, 특히 ‘한지’를 이용한 고집스러운 작업을 이어가는 내 머릿속 작가 리스트를 떠올리게 된다. 얼마 전 파리에서 한국 작가 8인 특별전을 기획한 오랜 역사의 프랑스 뷰티 브랜드, ‘시슬리(Sisley)’의 크리스틴 도르나르 부회장이 한국 작가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크리스틴 부회장은 폐기된 한지를 말고 깎아 붙이며 형상을 만들어가는 노동집약적인 작업이 기반이 되는 서정민 작가의 ‘선(LINE)’ 시리즈작, 그리고 이것이 담은 메시지에 특별히 공감했다고 평했다. 한지로 작업하는 많은 작가가 있지만, 서정민 작가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숭고한 정신마저 느끼게 하는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자연으로의 회귀, 시작, 겸손, 나눔, 명상 등 동양 사상에 입각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이것이 유럽인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게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한지 위에 채색 꼴라쥬 작업. 김선형 작가 작품. / 출처: 갤러리박영 제공.

한지 위에 채색 꼴라쥬 작업. 강운작가 작품. / 출처: 갤러리박영 제공.

한지 위에 채색 꼴라쥬 작업. 구본아작가 작품. / 출처: 갤러리박영 제공.

문경한지로 프린트한 사진작업, 이동춘작. / 출처: 갤러리박영 제공.

코팅이 안된 아사천에 천연염색 된 한지와 얇은 한지를 붙이는 과정으로 공기의 층을 만들어 구름과 바람을 형상화시킨 강운 작가의 작품도 한지의 질감이 배어나와 따뜻함이 느껴진다. 한지 위에 블루 색채만을 사용하여 드라마틱한 정물을 드로잉하는 김선형 작가의 캔버스는 보는 순간 엄청난 아우라와 힐링을 느끼게 해준다. 한지 위에 채색 후 공단을 올리고 바느질 드로잉 작업을 이어가는 노신경 작가의 작품 또한 유럽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트 퍼니쳐를 가장 한국스럽게 디자인하여 한지와 모시 삼베 소재로 창을 만들고 가구를 완성시키는 이현정 작가의 작업도 단아한 한국의 아름다운 선이 느껴진다.
한지 위에 채색과 바느질 드로잉. 노신경 작가 작품. / 출처: 갤러리박영 제공.

자개 위에 드로잉. 문이원 작가 작품. / 출처: 갤러리박영 제공.

한옥의 미디어 파사드. 김혜경 작가 작품. / 출처: 갤러리박영 제공.

한지 모시를 이용한 가구. 이현정 작가 작품. / 출처: 갤러리박영 제공.

한국의 길상적인 정물화. 최재혁 작가 작품. / 출처: 갤러리박영 제공.

한지, 먹, 붓 등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작업하지만 콜라주를 접목하여 한국화에서는 쉽게 느끼지 못하는 마띠에르를 보여주는 구본아 작가, 조각진 자개를 붙이고 그 위에 검은 식물의 움직임을 스케치하듯 그려내는 문이원 작가의 공예적 회화, 경북 안동의 한옥을 문경한지로 프린트하는 이동춘 사진작가, 그리고 최재혁 작가가 그려내는 다양한 한국의 골동품은 길상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정물이 주는 정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아부다비의 거대한 미디어 파사드전에 한옥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영상으로 제작한 김혜경 작가의 미디어 영상작 등 고집스럽게 한국을 드러내는 작품을 이어가는 작가들을 한국인들은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 한국 화랑이라면 아껴야 하는 작가들이라 생각한다. 황란 작가는 단추를 소재로 한옥과 매화, 거미, 샹들리에 시리즈를 선보여 인생의 덧없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세계적인 작가다.
두겹 한지 단추로 꽃잎의 형상을 재구현한 황란 작가의 매화 시리즈작. / 출처: 갤러리박영 제공.

황란 작가의 작품 세계는 그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유니크함을 지니고 있다. 작업의 심볼 소재인 플라스틱 단추 외에 두 겹을 올린 한지 단추로 변화를 추구하며 더욱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어려운 작업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옛부터 내려온 한국의 미술은 지필묵, 문방사우를 두고 아름다운 산수를 그려온 고미술의 화폭에서 시대사적 풍류와 고단했던 한국 역사의 시기를 예술로 극복하고자 했던 조상들의 삶이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예술의 깊은 맛을 지금은 전 세계인들이 인정하고 감동과 위안을 받고 있다는 것도 대중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원고에 진심을 다했다. 갤러리 운영자로서의 바람이라면, 현대미술에 열광하는 한국의 미술 애호가들이 한 번쯤은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과 위대함에 집중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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