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음악 소비 트렌드에 맞춘 디자인 거장들의 신개념 오디오
오디오 업계에서 ‘라이프스타일’은 특정 제품군을 일컫는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단어이다. 전통적인 스피커나 앰프 같은 기기들을 지칭하는 ‘하이파이’ 또는 ‘오디오’라는 단어와 완전히 대칭점에 있는 용어처럼 사용된다. 흔히 오디오라고 하면 뭔가 덩치와 규모가 있는 여러 개의 컴포넌트로 구성된 풀 시스템을 떠올리게 만들지만, 현대인들의 오디오는 그런 거추장스러운 기기들이 아닌 1개의 스피커에 모든 기능들이 담겨 있는 제품이 되어버렸다. 그것을 대변하는 가장 보편적인 사례라면 블루투스 스피커 같은 기기들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일체형 스피커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오디오가 되면서, 오디오 업계에서는 전례가 없는 이런 제품들을 라이프스타일 오디오 또는 간단히 줄여서 라이프스타일 내지는 멀티미디어라는 제품군으로 부른다.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적인 스피커들은 오디오 업계의 판도를 뒤바꾸어 놓았다. 전통적인 하이파이는 마니아들의 취미 영역으로 고립되었고, 그 생명 유지를 위해 ‘하이엔드’라는 간판을 달고 소수의 부유층들이 즐기는 초고가의 영역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일부 오디오 업체들은 라이프스타일 영역에 걸맞은 새로운 하이파이를 만들기 위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전문적인 음향 기기의 이미지를 벗고, 세계적 디자이너들이 참여하여 럭셔리를 표방한 새로운 스토리의 제품을 내놓거나, 아예 현대인들의 음악 소비 패턴을 분석하여 라이프스타일에 녹아든 신개념 오디오를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오디오에 세계적 유명 디자이너의 영감을 불어넣어, 현대적인 매스티지 내지는 럭셔리로 만들려는 것이 이런 프로젝트들의 목표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애플과 아이폰의 디자인 책임자였던 조너선 아이브가 설계한 턴테이블이 있다. 애플을 떠나 프리랜서로 개인 작업을 하고 있는 그는 최근 스코틀랜드의 하이파이 업체, 린(LINN)과 공동작업으로 이 회사의 대표 모델인 턴테이블 LP12를 새롭게 디자인한 LP12의 50주년작 ‘LP12-50′을 내놓았다. 디자인이 아주 새롭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LP12의 고유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디자이너 특유의 디테일한 변화가 전통과 현대의 디자인이 매끄럽게 조화를 이룬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보편적인 가격과 합리적인 가성비를 자랑해던 LP12의 정체성에 걸맞지 않게 엄청나게 올라간 가격은 흠이자 단점이다.

또 다른 프로젝트로는 독일의 오디오넷(Audionet)이 내놓은 앰프 라인업이 있다. 오디오넷은 의료 기기용 신호 처리 기술을 오디오에 접목시킨 하이파이 오디오로 훌륭한 성능에 비해 독일식의 소박한 디자인과 가격으로 대중적인 오디오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술과 성능에 낮은 인지도를 뒤바꾸기 위해 이들이 선택한 것은 1980년대 초기 애플 컴퓨터 모델들부터 넥스트 컴퓨터까지, 스티브 잡스 제품들의 디자인을 담당했던 하르트무트 에슬링거였다. 그는 애플, 넥스트 외에도 소니의 트리니트론 TV 디자인, 루프트한자의 글로벌 브랜딩 및 디자인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브랜딩을 담당하기도 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의 영감이 더해진 오디오넷의 과학자 시리즈로 불리우는 앰프 라인업은 소박한 오디오넷 제품의 디자인을 마치 미니멀한 현대적인 오브제 느낌으로 탈바꿈시켰고, 하이파이의 영역에 머물렀던 오디오넷의 이미지를 초고가의 하이엔드 브랜드로 바꾸는 계기가 만들어주었다.

최근에는 디자이너가 아예 직접 오디오를 만든 경우도 있다. 영국의 유명 디자이너, 모튼 워렌은 필립 스탁, 알도 시빅과 작업했던 인물로 자신의 디자인 하우스, 네이티브 디자인을 통해 스피커 업체 B&W의 디자인 총 책임 역할부터, B&O, 네스프레소, 벤틀리 등의 디자인 컨설팅을 해왔다. 특히 B&W 스피커의 설계를 20여 년간 책임진 경험은 아예 개념이 다른 라이프스타일 오디오를 탄생시켰다.

영국의 스타트업, 주마(ZUMA)의 루미소닉(Lumisonic)은 모튼 워렌이 설계한 매립형 LED 전등이자 오디오이다. 공간 차지와 지저분한 케이블 노출로 번잡스런 오디오를 보이지 않도록 천장의 전등 속으로 아예 숨겨버린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천장의 LED 등뿐. LED 등 속에서 스트리밍 음악들과 TV의 사운드가 재생되는 루미소닉은 단순 기능성 아이디어 상품 정도로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모튼 워렌은 단순 전등이 아니라 고급 하이파이 오디오를 만들기 위해, 루미소닉 프로젝트에 B&W의 노틸러스 스피커를 탄생시킨 세계적 음향 엔지니어 로렌스 디키와 영국 네임 오디오의 앰프 설계 책임자 트레버 윌슨에게 음향 기술을 맡겼다. 로렌스 디키는 루미소닉을 위해 혼 로딩 기술이 더해진 실크 돔 트위터와 노틸러스 스피커의 기술을 활용한 알루미늄 우퍼를 개발해냈고, 트레버 윌슨이 설계한 75W의 class D 앰프와 최첨단 스트리밍 모듈이 더해져 가장 현대적인 무선 네트워크 스트리밍의 하이파이 오디오가 완성되었다.

현재 사용 중인 매립 전등을 빼내고 그 자리에 루미소닉을 끼우기만 하면 거실과 방, 부엌 또는 욕실은 세계적 하이엔드 오디오 엔지니어들이 만들어낸 음향의 놀라운 콘서트 장소로 탈바꿈된다. 눈에 보이는 오디오가 하나도 없이 말이다. 루미소닉의 동작은 스마트폰의 앱으로 제어할 수 있으며, 개수에 따른 모노/스테레오의 전환 또는 각 방에서 각자 개별 스피커로 사용하거나 전체를 하나의 오디오로 묶어 사용하는 멀티룸 오디오 시스템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루미소닉은 블루투스와 와이파이를 시작으로, 에어플레이(Airplay), 스포티파이 커넥트(Spotify Connect), 타이달 커넥트(TIDAL CONNECT)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그리고 룬 레디(ROON READY) 같은 하이파이용 네트워크 오디오 재생 기능까지 모두 제공하여 하이파이 오디오를 완벽하게 대체한다. 주마의 루미소닉은 기존 오디오의 디자인에 손을 본 제품이 아니라,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하여 진정으로 삶의 행동 패턴과 음악 소비 문화에 가장 부합하는 진정한 라이프스타일 오디오로 탄생되었다. 그런 신개념과 디자인 덕분에 루미소닉은 2022년 레드닷 어워드를 수상했다.

세계적 디자이너들의 합류로 그 개념을 바꿔가는 오디오들. 단순히 디자인을 넘어 진정한 라이프스타일 기기의 세계로 합류한 오디오는 더 이상 취미의 영역이 아니라 생활 속의 필수품이자 삶의 즐거움을 주는 컨버전스형 가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