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셀러브리티의 시간
  • <지큐 코리아> 패션 디렉터 박나나
입력 2023.07.28 13:23

“그저 이 시계가 좋았을 뿐인데.” 하나의 시계에 대해 진심인 유명인들

오데마 피게의 골드 로열 오크를 착용한 프로듀서 마크 론슨 /오데마 피게 제공

세계 3대 재즈 페스티벌 중 하나인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이 지난 7월 15일에 막을 내렸다. 모든 페스티벌이 그렇듯 클라이맥스는 단연 마지막 날의 피날레 공연. 이번 피날레는 마크 론슨이 그의 크루들과 함께 약 2시간 동안 공연을 진행했다. 마크 론슨은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프로듀서이자 DJ 중 한 명으로, 브루노 마스의 <업타운 펑크>를 프로듀싱하고 뮤직비디오에도 함께 출연했다. 오스카, 골든 글로브, 그리고 7개의 그래미 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이번 협업은 페스티벌의 스폰서인 오데마 피게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오데마 피게의 앰버서더이기도 한 마크 론슨의 협동 공연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데마 피게의 골드 로열 오크를 착용하고 기타와 마이크와 턴테이블 사이를 오갔다.
오데마 피게 골드 로열 오크 /파페치 제공

사실 그와 골드 로열 오크 관계는 오데마 피게의 앰버서더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다. 원래 피아제와 롤렉스 등 평소에도 시계에 관심이 많았던 마크 론슨은, 빈티지 골드 로열 오크를 구입한 이후 중요한 날에는 이 시계를 찼다. 패셔니스타이기도 한 마크 론슨은 댄디한 수트와 타이, 땀에 젖은 티셔츠, 쿨한 하와이언 셔츠의 변주에도 웬만해선 시계는 바꾸지 않았다. 브랜드의 고객이자 진정성 있는 유명인은 브랜드의 가장 이상적인 마케팅 방법 중 하나. 마크 론슨의 진심은 오데마 피게에 전달됐고, 결국 2년 전부터 오데마 피게의 가장 흥이 많은 앰버서더가 됐다.
유섭 카쉬(Yousuf Karsh)가 촬영한 파블로 피카소 /karsh.org 제공

예거 르쿨트르 트리플 캘린더 /예거 르쿨트르 제공

한 시계에 대한 유난한 애정을 가진 유명인은 마크 론슨 외에도 꽤 많다. 스페인과 미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인 파블로 피카소와 앤디 워홀은 아름다움을 탐하고 향유하는데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인 걸로도 유명하다. 피카소가 런던 섀빌로에서 수트를 맞추고 파리 루테티아 호텔에 머무는 동안 워홀은 뉴욕에 있는 팩토리에서 매일 밤마다 유명인들과 함께 파티를 벌렸다. 이런 둘에게 시계는 미학적인 사치를 충족시키는 대표적인 수집품이었고, 경쟁적으로 시계를 사들였다. 시계를 좋아한 것 외에 둘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본인이 애정하는 시계를 착용한 유명한 사진이 있다는 것이다. 1954년 유섭 카쉬(Yousuf Karsh)가 찍은 사진에서 피카소는 예거 르쿨트르의 트리플 캘린더 문페이즈 시계를 착용한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70년대 앤디 워홀이 직접 촬영한 폴라로이드 자화상에는 까르띠에의 탱크 루이를 착용한 워홀이 있다. 이 사진들이 공개된 이후, 두 시계는 세기의 두 아티스트의 ‘아이콘 워치’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까르띠에 뉴욕 플래그십 부티크 매장에 가면 영구 전시 중인 워홀의 폴라로이드 자화상을 볼 수 있다.
넷플리스 시리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에서 까르띠에 베누아를 착용한 샬롯 갱스부르 /넷플릭스

까르띠에를 사랑한 건 앤디 워홀 뿐이 아니었다. 까르띠에의 베누아는 영원한 파리지엥인 샬롯 갱스부르의 시계로도 유명하다. 샬롯은 지금의 파트너이자 배우인 이반 아탈에게 베누아를 선물 받은 후로, 손목 위에서 거의 내려놓질 않았다. 니콜라 게스키에르의 뮤즈 시절부터 안토니 바카렐로의 친구가 된 지금도, 영화 <멜랑콜리아>와 넷플릭스 시리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스크린 속에서도, 칸 영화제의 레드 카펫과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 중에도, 샬롯의 손목에는 늘 베누아가 있었다.
까르띠에 베누아 미니 /까르띠에 제공

올해는 까르띠에 베누아가 새로운 형태로 다시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작고 화려해진 특징의 뉴 베누아 뮤즈는 아이러니하게도 샬롯의 이복동생인 루 두아용. 둘 다 파리지엥을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샬롯 갱스부르가 뉴 베누아의 모델이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리처드 밀의 홍보대사인 라파엘 나달 /리처드 밀 제공

리처드 밀의 홍보대사인 라파엘 나달 /리처드 밀 제공

브랜드의 제안으로 시작된 만남이지만, 둘의 관계가 아주 오랫동안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 혁신적인 기술력과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리처드 밀은 마니아 층이 시계 만큼이나 단단한 브랜드다. 1999년 시작이라는 다소 짧은 시계 역사 동안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나달의 시계’라는 타이틀이 한몫 했다. 작년 롤랑 가로스 오픈 테니스 대회의 우승으로 이 대회만 14번째 우승에 이어 토털 22개의 그랜드 슬램 타이 기록을 갖게 된, 남자 단식 최다 우승자인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 나달과 리처드 밀의 시작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균 180km/h의 순간적인 속도의 파워로 서브하는 그의 손목에 시계를 얹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위해 제작한 리처드 밀의 가볍고 강력한 시계에 만족한 후로 나달은 지금까지 리처드 밀의 시계만을 고집하고 있다.
리처드 밀 라파엘 나달 에디션 RM 35-3

시계 브랜드와 스포츠 선수와의 관계가 15년 이상 지속된 건 흔하지 않은 일. 현재까지 라파엘 나달 에디션만 총 9개가 만들어졌고, 나달이 트로피를 들어올린 손에 이 모든 시계가 채워져 있던 셈이다. 골프광으로도 유명한 나달은 지난 5월 은퇴 선언을 했다. 리처드 밀을 찬 나달을 코트에서는 볼 날이 얼마 안 남았지만, 대신 골프 필드에서 그의 시계를 볼 날을 기대해 본다.
다큐멘터리 에서 스와치 옐로 시계를 착용한 아티스트 데이비드 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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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치 레모나타 /스와치 제공

유명인이라고 모두 고가 시계만 선호하는 건 아니다.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트윈 픽스>의 감독인 데이비드 린치는 2016년, 그의 아트 라이프를 담은 다큐멘터리 <The Art Life>를 공개한다. 약 1시간 30분 길이의 이 영화는 오롯이 데이비드 린치의 작업 과정을 담은 화면과 농담 하나 없는 내레이션만으로 구성된다. 다행히 이해하기 어려운 심오한 작품 세계 속에서도 관심이 생기는 게 있다. 물감이 묻은 구깃한 검정 셔츠 소매 아래로 보이는 민들레색 스와치 시계. 미간의 주름과 한껏 솟은 그의 흰머리를 달래주는 듯한 오브제였다. 이 화면을 본 젊은 세대들은, 인상 고약한 할아버지의 스타일을 추종하며 스와치 시계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린치 덕에 대중적인 이미지의 스와치는 스타일리시함을 획득했고, 스와치 덕에 데이비드 린치는 스타일리시한 원로 지성인으로 불리게 됐다.
특별한 조건이나 관계와 상관없이 그저 본인의 취향으로 시작한 시계에 대한 애정은, 브랜드와 유명인의 관계를 끈끈하게 묶어주거나 가끔은 서로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브랜드와 모델명 외에 ‘000의 시계’라는 닉네임까지 갖게 되는 건 그 어떤 광고보다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이 되니까. 그저 좋아서 시작한 진심은 누구에게나 통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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