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게 리오넬 아 마르카 글로벌 CEO 인터뷰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한 비법? ‘타입 XX(타입20)’라는 이름 자체가 이미 베스트셀러다.”
스위스 고급 시계제조사 브레게의 리오넬 아 마르카 글로벌 CEO의 대답만큼이나 ‘타입 XX’를 설명하는 데 더 명쾌한 건 없는 것 같다. 시계 제조사가 마케팅을 위해 붙인 게 아니라, 이름 그 자체가 품질 인증이자 역사이며 전설이 된 시계. 브레게의 상징적인 타입 XX 탄생 70년을 맞아 4세대 버전을 선보이는 자리서 만난 아 마르카 글로벌CEO와 브레게 가문 7대손인 엠마누엘 브레게 부사장 겸 유산 책임자는 신제품에 대해 “미래를 준비하는 시계”이자 “새로운 모험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새롭게 선보인 타입20(군용 버전), 타입 XX(민간용 버전)은 1950년대 선보인 1세대 타입 XX를 기리기 위해, 1세대 타입을 현 시대에 맞춰서 재해석 했다. 하지만 이 시계를 보다보면, 또 그 시계의 역사를 따라 짚다보면, 과거를 얼마나 똑같이 따랐느냐, 속속들이 완벽하게 구현해냈느냐보다는 현재성에 어떤 방점을 두고 진화한 기술을 녹여낼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새로운 칼리버를 개발한 것. 기존 제품의 칼리버에 일부 기능 등을 추가하는 대신 아예 새로운 칼리버를 탄생시킨 것이다. 브레게는 이번 728 칼리버에 제로 리셋 메커니즘과 수직 클러치를 모두 적용한 새로운 푸셔 시스템을 개발해 어떤 작업을 하더라도 푸셔에 가해지는 압력이 균일하고 균형잡히도록 보장한다. 브레게는 최고급 시계 중에서도 기능과 편의성, 미학 모두 균형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장점. 특히 착용자의 관점에서 개발하는 것이 돋보인다. 브레게의 유구한 유산이 보유한 전통을 지키면서도 최대한 혁신적인 기능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타입 XX는 수직 클러치, 컬럼 휠, 60시간 파워 리저브 등 브레게의 다양한 자산을 한 제품에 담아냈다.
아 마르카 글로벌CEO는 “우리의 바람은 시계 소유자에게 수직 클러치 및 컬럼 휠과 같은 최첨단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었다”면서 “또한 크로노그래프로서는 매우 높은 60시간의 파워리저브도 제공했다”고 말했다. 아 마르카 글로벌CEO와 엠마뉴엘 브레게 부사장은 뜻을 모았다. “새로운 기술이 있었다면 아브라함-루이 브레게 자신도 오래된 시계를 리메이크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에 했던 것을 답습한다면 그건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창업자가 만약 여느 브랜드가 했던 일을 했다면, 브레게의 역사는 오늘날의 역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혁신가이자 전위적(아방가르드) 설계자이자 발명가로 시대를 앞섰던 아브라함-루이 브레게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취지였다. 과거의 원형을 이어받으면서도 큰 틀 안에서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한다고도 덧붙였다.
워치메이커 출신이기도 한 아 마르카 글로벌CEO는 마치 창업자처럼 시계 부품 하나하나부터 영수증의 숫자 하나하나 모두 익숙하다. 여느 CEO라면 응당 매출과 채산성을 따져보는 데 남다른 안목을 지녔겠지만 아 마르카는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시계 업계를 들썩이며 가장 주목받는 리더이자 시대의 트렌드를 재빠르게 읽어내는 뛰어난 리더로 각광받는 것도 감히 범접하기 힘든 이력이 바탕이 됐다. 숫자를 다루는 데 능해도 투르비용이 어떤 부품을 이용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명확하게 재현해 낼 수 있는 글로벌CEO는 그가 거의 유일하다는 얘기다. 창업자의 정신을 누구보다도 강조하는 배경엔 이러한 경력이 깔려 있었다.
시계를 제작할 줄 아는 글로벌CEO기에 마케팅적으로 부풀릴 수 있는 ‘거품’을 조장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날 군용 버전의 시계를 차고 있었다. 군용 버전은 알다시피 3시 방향에 있는 30분 토털라이저와 9시 방향의 60초 토털라이저 등 두 개의 토털라이저가 보인다. 민간용 버전이 보여주는 3개의 토털라이저보다 어쩌면 더 간결해 보일 수 있지만, 좀 더 복각에 충실한 군용 버전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평가도 있다. 아 마르카는 “둘 다 내 타입” 같은 류의 대답은 하지 않았다. 양손에 시계를 잔뜩 차고 와서 양쪽 다 포기할 수 없다고 권유할 수도 있을 텐데, 그는 명료했다. “개인적으로 간결한 디자인을 선호하기 때문에 군용 버전인 타입 20을 착용했다. 둘 중 어떤 제품을 선호하느냐는 전적으로 취향 문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제품 공개 이후 일부 열성팬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날짜창’에 대해서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1950년대 다이얼엔 없던 날짜창이 이번엔 4시반(4시에서 5시 사이)에 위치한다. 날짜창이 없는 것이 더 복원에 충실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또 일부 팬들은 3세대 제품에선 날짜창이 없는 버전인 ‘타입 레퍼런스 3800 아에로나발’과 날짜창이 있는 타입인 ‘레퍼런스 3820 트랜스애틀랜틱’으로 구별해 구입할 수 있었다는 의견도 내보였다. 아 마르카 글로벌CEO는 “순수주의(purist) 수집가들이 날짜창에 대한 의견을 내비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면서 “다만 날짜창(캘린더)을 포함하지 않았다면 카운터에 와서 날짜창이 왜 없느냐고 되묻는 젊은 고객들도 상당하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과거 당시엔 날짜를 넣어달라는 요청이 없었지만, 70년이 지난 지금 각종 고객 조사를 해보면 날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우리는 예전 모델을 그대로 복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의 니즈에 맞게 재해석 한다. 우리는 이번 2057과 2067 런칭을 시작으로 TYPE XX 컬렉션을 더 확장할 것이다.”
그의 답변이 힘을 얻은 것인지, 초반의 논쟁도 제품의 실물을 보게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점차 수그러들었다. 일부 사진이나 영상에서 봤을 때는 날짜창이 도드라지게 보일 수 있지만 실제 착용하고 나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온라인 유력 시계 전문 매체인 호딩키도 “한번 더 다시 들여다보거나 아니면 직접 와서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이 실물의 가치를 다 담지 못한다는 뜻이다. 기존 디자인 요소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새로운 버전을 만드는 작업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수월하게 해내는 능력을 다시 입증해 보였다는 의견이다. 이 시계가 국내 매장가 2470만원으로 브레게 중에선 ‘엔트리급’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초고가로 일부 소량만 생산하는 제품에 비해 좀 더 많은 대중이 접할 기회가 많다는 점도 고려할 수 있다. 마니아들의 취향이 전체를 대변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레게는 이미 날짜창이 없는 제품을 선보이며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력과 잠재력을 전 세계에 알린 바 있다.
좀 더 솔직해져야 할 시간. 말마따나 타입 XX가 70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상징적인 제품군이라는 것을, 프랑스 항공 역사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을 모르고 제품을 처음 접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현재 트렌드에 발맞추면서도 자신의 DNA를 되짚는 일은 브레게니까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돌아가면!(flyback), 기초 탄탄한 초우등생이 쓴 답안지를 보며 “이 문제를 이렇게 풀 수도 있구나”하고 감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란 말이다. 해외 유명 시계 전문 칼럼니스트들의 결론을 보자. “그만큼 브레게 신제품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한다. 뭘 해도 화제가 되는 것. 그게 바로 브레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