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담은, 사랑을 위한… ‘꿈’의 향수
입력 2023.03.10 10:13 | 수정 2023.04.10 15:25

시슬리 Sisley

그것은 기억이고 추억이며 사랑에 대한 헌사다. 몸으로 그려낼 수 있는 한 편의 시(詩)이자 눈 감기 전까지는 잊히지 않을 대상이기도 하다.
그동안 만난 여러 위대한 조향사들에게 ‘향수(香水·fragrance)에 대해 물을 때 돌아오는 답변은 비슷했다. 향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도 하고, 문득 익숙한 향을 맡으면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도구도 된다. 엄마 품을 기어이 파고들며 잠을 청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언제나 내 편이 돼 주셨던 당신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자기도 모르게 찾았던 골목의 낡고 작은 카페에서 무언가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향에 첫사랑 그녀의 맑은 웃음소리를 떠올리기도 한다. 향을 통해 과거를 되새김질하게 하는 우리의 행위는 우연찮게도 향수(鄕愁·nostalgia)란 단어로 귀결된다. 향수(香水)가 향수(鄕愁)를 부르는 것이랄까. 그 반대일까.
'꿈' (Dream) 에서부터 영감 받은 새로운 향수 '로 레베 오 드 뜨왈렛뜨' 콜렉션. /시슬리 화장품 제공
프랑스 고급 화장품 브랜드 시슬리가 파리에서 선보인 향수 ‘로 레베 뒤베르(L’eau rêvée d’Hubert) 오 드 뜨왈렛뜨’를 맞닥뜨리는 순간, 그 강렬함은 더욱 강해졌다. 향수의 이름을 따져보면 ‘위베르의(d’hubert)’ ‘꿈(rêvée)’이라는 뜻. 프랑스어에서 ‘de(d’)는 영어의 ‘의(of)로 위베르라는 주인공이 꿨던 꿈이나 희망 등을 담았다는 내용이다. 어딘가 익숙하지 않는가. 시슬리 화장품 마니아라면 바로 기억날 그 이름. 창립자 위베르 도르나로(1963~2015)의 이름을 딴 제품이다. 작가가 글로, 음악가가 노래로 사람을 추억한다면 화장품을 만드는 이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명작 중 하나는 어디든 쓰일 향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남기는 게 아닐까.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프랑스 백작 가문의 위베르 도르나노와 폴란드 라비지우 여왕의 후손인 아내 이사벨이 만나 탄생한 시슬리 화장품.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향수는 아내가 지금은 고인이 된 남편에게 쓰는 연애 편지이자, 궁극의 아름다움과 고급스러움을 추구했던 ‘위베르의 꿈’처럼 여자든 남자든 상관 없이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누구나에게 어울리는 향이기도 하다.
최근 보그 폴란드판 특집 기사에 따르면 ‘로 레베 뒤베르 오 드 뜨왈렛뜨’의 기본 향을 구성하는 요소는 흔히들 ‘남자의 장미’로 불리는 제라늄. 관능적이면서도 ‘신사의 향’이라는 느낌이 드는 절제미가 담긴 향이다. 이사벨 백작 부인은 보그 폴란드판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시골 집 테라스에는 거대한 제라늄 덩굴이 두 개 있었다”면서 “남편은 향상 벨벳 같은 제라늄 잎사귀를 문지르며 향을 음미하고는 ‘제라늄 향이 나는 향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고 말했다. 둘의 이야기가 더욱 동화 같은 건 이미 남편 위베르가 아내를 위해 ‘오 뒤 스와르(Eau du Soir·저녁을 위한 향수)’ 등을 선보인 적 있기 때문. 어릴 적 아내가 살던 스페인 지역의 관능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상큼한 향을 모아 탄생시킨 향이다. 지금은 시슬리 화장품의 베스트 셀러 중 하나가 됐지만, 아내의 향수를 채워주면서 그녀의 향을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사랑꾼’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기도 하다.
그에 화답하듯 아내 이사벨 역시 남편이 그녀에게 보여준 사랑을 바탕으로 친환경적인 환경에서 더 안전하고 아름다운 피부를 지향했던 남편의 실험적이며 도전적인 정신을 반영해 이번 작품을 선보였다. 프랑스의 유명 조향사 알렉시스 다디에가 조향에 참여해 수 천번의 테스트를 거쳤다. 그 벨벳 같은 제라늄을 문지를 때 순간적으로 얻는 환상적이면서도 몽환적인 고유의 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게 꿈을 주제로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남녀 공용의 여섯 가지 향수 컬렉션이 나오게 된 것이다. 제라늄의 섬세하고 다양한 향은 강렬하면서 아로마의 순결이 느껴지는 페퍼민트, 깨끗한 그린 노트, 그리고 촉촉한 땅의 향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의 유명 조향사 알렉시스 다디에. 이번 시슬리와 협업하며 가장 자연에 가까운 제라늄 향을 추출하는 등, '조향사의 꿈'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시슬리 화장품 제공
여섯 가지의 향수로 구성된 '로 레베 오 드 뜨왈렛뜨' 콜렉션. 남녀 공용이다. /시슬리 화장품 제공
탑노트는 강렬하면서도 한번에 화려하게 와닿는 그린 노트로 피부에 닿으면서 점차적으로 따뜻하게 감싸준다. 이 탑 노트와 함께 상쾌한 시소(shiso 잎, 그린 베톨리나 (betolina)와 박하 향이 퍼진다. 미들 노트에서는 제라늄 중에서도 최고급으로 꼽히는 이집트 제라늄의 꽃향이 흔히들 시더우드라고 말하는 향나무의 담백하면서도 드라이한 향, 흙과 나무 향이 조화롭게 섞여 퍼진다. 베이스는 상큼한 향으로 꼽히는 패출리와 눅진한 이끼, 또 이국적인 용연향(龍涎香·향유고래에서 채취하는 송진 비슷한 향료. 사향과 같은 향기가 있다. Ambroxan이라고도 불린다)이 섞여 자연스러운 잔향을 남긴다.
식물 추출 성분에서 발전한 피토테라피를 주축으로 성장한 시슬리 화장품 답게 지속가능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외신은 “시슬리 화장품은 파리 지역에서 가장 큰 태양열 발전소 중 하나를 보유해 공장에서 소비하는 에너지의 75%가 태양열”이라면서 “향수 성분 역시 필수 합성성분 일부를 제외하곤 피부에 더 잘어울리는 식물 성분을 90% 이상으로 더 늘려 차별화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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