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판타스틱·패밀리… 당신이 사랑하는 많은 것을 의미하는 펜디의 F… K-컬처의 뒤를 이어 F-컬처의 따뜻한 세계관을 소개하고 싶어”
입력 2023.02.17 10:58 | 수정 2023.02.20 14:48

펜디 회장·CEO 세르주 브륀슈위그 인터뷰

최근 ‘팔라초 펜디 서울’ 오픈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펜디 CEO 세르주 브륀슈위그(Serge Brunschwig). / 펜디 제공
분명 서울 청담동인데 이탈리아 로마 여행 책자에서 봤던 장면들이 스치는 듯 하다. 지난 9일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이탈리아 럭셔리 하우스 펜디(Fendi)의 한국 첫 플래그십 부티크인 ‘팔라초 펜디 서울’. 715㎡ (216평) 면적을 아우르는 4층 규모 건물로, 1925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에도아르도와 아델 펜디가 선보인 작은 부티크에서 시작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최고급 브랜드로 성장한 만큼 건물에도 펜디 특유의 진취성이 돋보인다.
로마 검투사의 갑옷 같은 스테인리스 스틸 마감의 대각선 디자인은 마치 ‘전진’을 외치는 듯 피라미드 스타일의 모서리로 수렴한다. 언뜻 끝이 잘린 삼각형 같은 사다리꼴 외관 장식은 펜디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하늘로 솟구치며 완벽한 삼각형을 이룰 여지를 남겨놓은 듯 하다. 특히 16m 높이의 LED 아치는 펜디만의 상징적인 요소로 로마에 위치한 펜디 본사인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를 연상시킨다. 아치로 장식된 외관을 한동안 바라보다보면 어느 새 무릎을 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다리꼴 형태는 펜디를 상징하는 F로고의 비율과 균형감을 완벽히 살리고 있다. 모서리를 감싸는 듯한 외관을 종이접기하듯 접으면 F로고가 딱 맞아떨어지는 방식이다. 1965년 펜디에 합류해 지금의 펜디 상징이 된 더블F(FF)로고를 만든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1933~ 2019)의 발자취까지 다시금 느끼게 된다.
청담동에 문을 연 펜디 첫번째 한국 플래그십 ‘팔라초 펜디 서울’을 축하하기 위해 펜디 앰버서더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송혜교, 이민호, 김다미, 지코, 안유진이 방문해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최근 ‘팔라초 펜디 서울’ 오픈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세르주 브륀슈위그 펜디 회장이자 CEO를 ‘더부티크’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브륀슈위그는 “펜디의 F는 펀(fun), 판타스틱, 패밀리, 프렌즈 등 당신이 사랑하는 많은 것을 의미할 수 있다”면서 “지금 전 세계를 열광케하는 K-컬처의 뒤를 이어 F-컬처의 따뜻한 세계관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프랑스 남부 아를 출신으로 프랑스 특유의 엘리트 교육기관인 그랑제콜을 졸업한 그는 맥킨지를 거쳐 1995년 루이비통 아시아퍼시픽 회장을 시작으로 LVMH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06년 LVMH 그룹의 셀린느 CEO, 2015년 디올 옴므 CEO 등을 거쳐 2018년 2월 펜디 회장 겸 CEO로 임명되는 등 ‘직업이 CEO’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룹 내에서 탄탄 대로를 거쳤다.
◇'불가능은 없다’는 것이 이탈리아이자 펜디의 미덕
팔라초 펜디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 외관.
팔라초 펜디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
-공사기간 동안 이탈리아 로마 본사의 아치(arch·곡선형 구조물)형 구조물을 띤 가림막부터 화제였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공을 들여 추진한 프로젝트다. 펜디 본사인 팔라초 델라 치빌타에서 따온 아치 디테일과 같은 요소들을 로마에서 서울로 고스란히 가져왔다. 한국에 진출한 지 30여 년이 되었는데, 그동안은 백화점에만 입점해 있어 고객들에게 일부 제품군만 선보일 수 있었다. 좀 전에 백화점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기존 백화점 매장은 마치 선박 객실 같았다고 했다. 매우 잘 정돈되고 기능적으로 뛰어나지만 결국 선박 객실은 선박 객실 아닌가. 편안함을 느끼려면 제대로 된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성복, 남성복, 가죽 제품군과 액세서리 등 모든 카테고리들을 제대로 선보이고, 펜디를 사랑하는 고객들에게 ‘집’처럼 안락하게 맞이할 공간도 마련됐다. 우리는 ‘펜디 패밀리’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이제 집이 있으니 친구들을 편하게 초대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다.”
- 로마는 문화 유산의 시작점이자 종착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륙을 넘어 다른 제국과 왕국들이 흥하긴 해도 철학가, 예술가, 건축가, 정치까지 로마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펜디 역시 그 자부심이 상당할 것 같다.
“상당한 책임감이자 큰 기쁨이다.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태도(애티튜드)는 이탈리아의 미덕이자 펜디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얘기를 꺼냈을 때, 프랑스에선 ‘그건 어려운 문제야’라며 고심하는 반응이 주로 돌아왔다. 물론 끝까지 해내는 것은 틀림 없지만 말이다. 이탈리아 브랜드에 와보니 ‘해보자’ 정신이 있었다. 도전하고 시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 이탈리아의 차별점이자 펜디는 그 집합체다. 그 덕에 모든 진행 과정(프로세스)이 빠르고, 기분 좋고 탁월한 결과까지 만들어내는 것 같다. 아주 쉽게는 아니더라도 결국 해내는 프랑스 브랜드 같은 프로세스였다면 좀 더 오래 걸리고 어려운 과정을 요할 것이다. 도전과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펜디의 수용력 덕분이다.”
-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도시 아를(Arles) 출신의 프랑스인으로, LVMH의 수장인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졸업한 프랑스 최정상급 학교인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비롯해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까지 졸업하는 등 엘리트 중 엘리트다. 프랑스 인으로서 로마 브랜드를 이끈다는 것이 당신에겐 어떤 의미인가.
“고맙게도 내 고향인 아를을 언급해줬는데 아를은 과거 로마 도시였다. 그렇게 보면 운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럭셔리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럭셔리 브랜드의 90% 이상이 프랑스 아니면 이탈리아 브랜드인 건 사실이니까. 장인정신과 정교한 솜씨를 논할 때도 먼저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손꼽는다. 경영진조차 대부분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많은 부분에서 라이벌이고 다른 성향을 갖고 있지만 서로를 잘 이해하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측면도 있다. 나는 물론 매우 프랑스인이지만 이탈리아에서 일하고 사는 것이 즐겁고 이탈리아 동료들과도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어 매일이 즐겁다.”
브륀슈위그 회장이 말했듯, 프랑스 아를은 과거 로마 도시 아를라테로, 후기 로마 제국의 가장 중요한 항구 중 하나였다. 로마공화정 말기 삼두정치(三頭政治·3명의 실력자가 동맹해 국가권력을 독점한 정치)의 주인공인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간의 내전(기원전 49년)이 발발했을 당시 카이사르 편을 들며 정치적 거점 도시 역할도 했다. 아를에 고대 로마 유적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아름다움을 고루 간직한 덕에 네덜란드 출신 거장 예술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아를에 머물며 ‘포럼광장의 카페 테라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별이 빛나는 밤’ ‘우편배달부 룰랭’ 등 명작을 남긴 곳이기도 하다.
◇”한번 펜디 가족은 영원한 가족”
- 당신이 회사에 오고나서 펜디로선 생각지도 못한 슬픔이 있었다. 1965년부터 펜디 디자이너로 활동한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죽음이다. 나도 2019년 당시 밀란 쇼를 향해 비행기를 갈아타는 동안 사망 뉴스를 현지 TV로 보고 밀란에 도착해 부고 기사를 쓰며 당신의 올린 추도사 일부를 우리 지면에 싣기도 했다(“그는 늘 쇼가 끝나자마자 ‘이제 다음’이라 외쳤다. 결코 과거로 돌아가거나 스스로를 복제하지 않는 그의 집념을 존경한다”). 브랜드로선 고비이기도 하고 고뇌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가.
“좋은 질문이다. 답변은 간단하다. 다시 가족 원칙(family principle)으로 돌아가는 것. 우리는 종종 펜디 패밀리를 선택한 가족(chosen family)이라 부른다. 친자녀들 뿐 아니라 입양한 자녀들도 함께 한 가족을 이루는 모던 패밀리다. 펜디는 2001년 LVMH그룹에 인수된 이후에도 여전히 펜디 가문이 경영에 참여하며 펜디의 DNA를 선보이고 있다. 칼 라거펠트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펜디에 합류해 가족이 되었다. 그 또한 펜디 자매에 의해 발탁되고 입양/영입(adopted)되었다. 그렇게 펜디 패밀리의 일원이 되어 생을 마감할 때까지 54년 간 가족이 되었다. 한번 가족이 되면 평생 가족이듯이. 수명을 다해 세상을 떠나도 남겨진 가족들은 계속 살아간다.”
- 그 이후로 루이비통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이자 현재 디올 남성복 총괄인 디자이너 킴 존스를 여성복 디자이너로 영입해 화제가 됐다.
“펜디 패밀리는 서로의 장점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다. 칼 라거펠트가 ‘입양(adopted)한’(장래성을 보고 브랜드 디렉터로 선택한) 창업주의 3대손인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는 오랜 기간 라거펠트를 보필하며 컬렉션을 디자인하고 가방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젠 실비아가 킴 존스를 가족의 새로운 일원으로 입양했다. 그리고 킴 존스가 합류한 이후, 그는 실비아의 딸인 델피나가 주얼리를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며 델피나를 ‘입양’(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는 것)했다. 그렇게 3세대의 아티스틱 디렉터들이 함께 펜디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렇듯 가족은 계속된다. 자연스럽게.”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라커펠트와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그는 늘 내일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언제나 다음을 강조하며 우리에게도 다음 챕터를 생각하도록 가르쳤다. 그래서 그가 떠났을 때 그 없이 다음 챕터를 어떻게 꾸려갈 지에 대해 생각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칼 자신도 그리했을 것이다. 칼의 가르침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소중한 교훈으로 남았다. 우리는 언제나 내일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렇게 했다. 나는 그와 1년을 함께 했는데 매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했고 그가 죽은 후 3일 후 열린 그의 마지막 쇼에는 라거펠트의 숨결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죽기 전날까지도 그는 실비아와 통화하며 준비에 차질이 없는지를 직접 확인했다.”
-당신이야말로 잠 잘 시간도 없을 것 같다.
“하하. 일 할 때는 일하고 쉬고 즐길 때는 충분히 쉰다.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일하는 것이 열정을 유지하는 비결인 것 같다. 27년 전 이 산업에 처음 발을 내딛고 느낀 점도 그것이었다. 모두 반짝거리는 눈을 갖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 새로움은 흥미롭고 활력을 가져온다. 펜디에 오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활력을 주고받으며 열정이 다시금 샘솟았다. 칼 라거펠트가 남긴 가르침처럼, 이미 했고 매우 잘하게 된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앞으로 다가올 것. 어쨌든 더 잘 해야 한다. 발전해야 한다. 모든 구성원이 이런 마인드를 갖고 무엇이 중요한지 안다면 무엇을 해야할 지 일일이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 알아서 직접 잘 하니까. 그들을 북돋우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내 역할이 아니다. 브랜드가, 회사의 그룹 컬처가 그 역할을 한다. 펜디에는 ‘넥스트, 투모로우, 베터, 모어’의 그룹 컬처가 있다.”
◇아르노 LVMH 회장과 칼 라거펠트, “언제나 미래만을 생각한다.”
- 2018년 취임후 2월 쇼에서 당신과 인연이 있었던 LVMH 그룹 소속 브랜드 CEO 들이 대거 출동해 당신을 응원했다. 상당수 대형 그룹사를 보면 서로간의 승진 경쟁과 견제 등이 적지 않은 것 같고, 특히 LVMH 그룹은 산하 브랜드끼리 매출 경쟁도 치열할 것 같다. 서로 격려하며 신뢰하고 의지하며 성장하게 만드는 비결은 무엇인가. LVMH 아르노 회장의 특별 CEO 수업 같은 것이 있는가.
“아르노 회장은 기대치를 설정하는 스타일이다. 직간접적으로 아르노 회장 밑에서 일한 지 27년이 되어간다. 그렇게 아르노 회장에 대해 몇 가지 알게 된 부분이 있다.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무한한 야망을 가졌고 (어떠한 일을 이루는 데 있어) 시간과 투자는 필요한 만큼 걸린다는 것을 인정하고, (즉, 기한이나 예산을 구체적으로 미리 정해 두지 않는다는 것)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다. 특히 언제든 새로운 시도를 하고 과정에서 실수를 범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절대 흡족하다는 말(that he’s happy)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 법칙(룰)만 안다면, 아르노를 위해 일하는 것이 극도로 어려우면서도 극도의 만족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위에서 말한 이탈리아식 추진력과 프랑스식 목표 해결 방식이 골고루 결합된 스타일 같다.
“아르노 회장은 늘 최고만을 원하고 더(more) 원하고 그것을 위해 투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펜디를 성장시키라는 과제를 맡긴다면 그건 당신에 대한 신뢰가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도 칭찬은 듣지 못할 수 있지만, 그런 게 당신을 평가하는 데 특별히 상관없다는 것을 알면, 언제나 미래만을 생각했던 칼 라거펠트와 비슷한 면이 있다. 새로운 플래그십 오픈을 지시하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 5분 간 칭찬을 하느니 바로 베이징 스토어 오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르노 회장의 스타일이다. 27년을 보내고 나니 나도 얼굴이 두꺼워지고(웃음) 어떤 책임을 맡기든 기꺼이 맡아 브랜드를 위한 장기적인 가치를 창출 해야겠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당장 내일까지 더 나은 수치를 가져오라는 무리한(stupid) 요구는 하지 않는다. 서울 플래그십을 오픈 하는 것처럼 실질적인 요구를 한다. 그것이 펜디를 위한 옳은 일이기 때문. 많은 비용이 들고 당장 내일 이익을 볼 수는 없지만, 빨리 질러가는 대신 제대로 된 길을 가자. 이런 비전을 가진 사람을 위해 일하는 건 멋진 일이다.”
-LVMH그룹이 CEO정년을 75세에서 80세까지 늘렸다는 기사도 봤다. 당신처럼 오래 일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도 놀랍다.
“아르노 회장은 우리를 하나의 대가족, 입양한 가족으로 여긴다. 그리고 진짜 가족처럼 대한다. 친자녀들은 아마도 훨씬 혹독한 취급을 당할 것이다. ‘내 뒤를 이어받겠지만 아직은 안 돼, 아직은 아니야. 더 더 더, 더 나은 걸 가져와’ 하면서 쉼없이 몰아 부칠 것이다. 이렇듯 장기적으로 점점 더 커지는 신뢰와 요구를 감내하며 하나의 가족이 된다.”
◇”각자의 분야에서 우린 최고의 장인(匠人)이 되어야 한다.”
- 한국의 z세대는 브랜드에 관한 관심과 지식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동시에 펜디 측에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도 대단한 것 같다. 배우 송혜교를 지난 2021년 일찌감치 앰버서더로 발탁했고, 최근엔 ‘4세대 걸그룹’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아이브의 안유진을 앰버서더로 발표해 화제가 됐다.
“동료들이 덧붙일 부분도 있겠지만 펜디는 늘 ‘넥스트 원’을 지향한다. 혁신을 중시하는 브랜드의 가치를 바탕으로 담당자들이 발굴한 차세대 인물들을 발탁하는 것. 우리는 어제가 아닌, 펜디의 내일을 대표할 차세대(next) 얼굴이 누구인지에 늘 관심을 기울인다. 모험보다는 안전한 선택을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는 반면, 우리 같은 브랜드는 함께 만들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에 중점을 둔다. 좀 더 모험적이랄까. 우리는 앰버서더들도 확장된 펜디 패밀리의 일원으로 여긴다. 한국의 패밀리로 선택한 송혜교, 이민호, 지코, 김다미, 안유진은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 탁월함을 발휘하고 각자의 작업에서 혁신과 창의성을 펼친다. 펜디의 DNA와 일맥상통한다. 우리와 공통된 가치관과 미래의 잠재력을 가진, 그리하여 우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인물들을 펜디 패밀리로 영입한다.”
- 펜디는 로마의 정신을 이어 트레비 분수 복원에도 투자하는 등 많은 문화 투자를 해왔다. 동시에 코로나 시기에 펜디 본사를 배경으로 시작된 글로벌 스트리밍 프로젝트 ‘펜디 르네상스-아니마 문디’ 역시 인상 깊었다. 로마를 시작으로 서울 DDP를 배경으로 클래식 아티스트 그룹인 세종 솔로이스츠의 연주가 전 세계로 울려퍼졌다. 침체된 예술계를 살리고, 예술을 통한 ‘재생(再生)’이란 희망적 메시지를 담았다.
“최근 유행하는 용어로 ‘로마, 불경함(irreverence)’이 있는데 이는 로마를 바라보는 새롭고 흥미로운 시각이다. 우리는 클래식한 교회나 건축물 같은 로마의 전통적인 요소들이 물론 아름답다는 것도알지만, 이러한 과거의 것보다는 펜디 본사인 팔라초 델라 치빌타 같은 건축물에 더 흥미로운 매력을 찾는다. 독특하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로마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로마의 물, 로마의 공기, 로마의 빛, 로마의 모더니티 등 닫히지 않은 곳에서 숨쉬는 로마의 아름다움에 영감을 받는다. ‘제 3의 로마’(로마 제국이 분할되고, 멸망하는 과정에서 ‘과연 누가 로마 제국을 계승한 나라인가?’에 대해 제기된 주장들)는 정치적인 이야기므로 하지 않고, ‘제4의 로마’, 내일의 로마를 지향한다.”
-펜디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불가능은 없다’, ‘STORY OF NEXT’ 등이 있다. 유명한 일화지만 칼(라커펠트)은 쇼가 끝날 때마다 백스테이지에서 다같이 비디오로 모니터를 하고, 모두 박수 치면 자리에서 일어나 “And now, the next!”라고 외치곤 했다. 이건 끝났으니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다음 행보에 집중하자는 의미였다. 그것은 펜디의 매우 중요한 가치다. ‘선택한 가족(chosen family)’도 펜디의 중요한 정신이다. 또 하나의 정의는 ‘소재의 마스터’로서의 펜디. 펜디의 특징은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를 연구하고 혁신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펜디 레이디와 펜디 맨. 펜디 레이디는 매우 강한 여성이다. 펜디의 다섯 자매들, 실비아, 델피나, 그리고 펜디의 고객들. VIP 디너에 가보면 꼭 여성 기업가들이 있다. 펜디 레이디가 강한 여성들이라면, 펜디 맨은 ‘해방된’ 남성들로 묘사할 수 있겠다. 나 또한 자유롭고 입고 싶은 대로 입는다. 마초라기 보다는 틀에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남자가 펜디 맨이다.”
-펜디의 ‘내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아르티장(artisan·장인)이다. 멋진 아이디어도 좋지만 매일 결정을 내리고 실행한다. 이런 매장을 새로 오픈할 때 작은 디테일까지 직접 점검하고 확인한다. 펜디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대단한 브랜드다. 더 많은 고객들에게 다가가 감동을 주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 새로운 매장을 연다면 가장 아름다운 매장이어야 하고, 새로운 가방을 론칭한다면 최고의 가방이어야 한다. 새로운 캠페인은 완벽해야 한다. 어찌 보면 같은 노력의 매일 같은 반복이다. 거기서 가치가 창출된다. 펜디는 마케팅이 아닌 전문성과 노력이다. 우리는 전통 공예를 전수받는 장인들처럼 교육받고 일한다. 그 분야가 매니지먼트일 수도 있고 커뮤니케이션일 수 있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장인정신을 발휘하여 장인의 방식으로 일한다. 장인들이 도제 시스템으로 기술을 익히듯, 모두 최고와 일하면서 장인의 기교를 배운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어쩌면 나도 장인/마스터가 되었을 것이고 같은 방식으로 후임들을 가르치고 양성할 것이다. 그들이 미래의 마스터가 될 수 있도록. 그 과정을 통해 이 기술(craft) 즉, 전문성을 후대에 전수한다. 과정은 겸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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