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라는 우주의 심장부, 뤼 드 라 뻬 13번지… 장 콕토 “까르띠에, 태양의 실에 달의 은빛을 매다는 섬세한 마술사“
입력 2022.10.28 10:04

Cartier
‘빛의 도시’ 파리에 위치한 까르띠에 메종의 진원지

도시는 매일 다시 태어난다.
새 생명이 울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처럼, 도시 어딘가에선 새로운 탄생의 팡파레를 울리며 건물이, 혹은 골목이 세상의 빛을 받는다. 막 눈을 뜨고 외부 세계와 마주하는 아이를 보기 위해 모여드는 것처럼, 사람들은 문이 열리고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몰려든다.
도시(city)가 시민과 문명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 civitas에서 유래된 것처럼 인류 문명의 발전은 곧 도시의 기록이다. 사람들의 창의로 나이든 도시는 젊어지고, 활기를 찾은 도시엔 다시 사람들이 몰려든다. 치열한 삶의 공간이자 안식처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도시에 생명을 부여하기 위해 투자하는 이가 있다. 집을 만들어 분양하거나 빌딩을 지어 이윤을 창출하려는 부동산 개발업자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까르띠에 뤼 드 라 뻬 13번지의 아트리움. 건물의 수직축이 되는 동시에 여유로운 공간감을 선사한다. Moinard Betaille ⓒ Cartier /까르띠에 제공
프랑스 하이엔드 보석&시계 메종 까르띠에가 주인공이다.
성(城)과 같은 건물을 재단장하면서 ‘집’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인종도, 종교도, 성별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어 의견을 나누고, 문화를 교환하며, 창의와 예술을 발전시키는 ‘문명의 집’이란 뜻이다. 까르띠에는 최근 프랑스 파리의 ‘뤼 드 라 뻬 13번지(13 Rue de la Paix)’ 건물을 재단장해 새롭게 선보였다.
까르띠에가 런던 뉴 본드 스트리트, 뉴욕 5th 애비뉴와 함께 자신의 역사적인 장소를 지칭해 ‘템플’(Temple·사원)이라고 부르는 세 곳 중 가장 핵심이다. 1899년 아버지 알프레드와 합류한 루이 까르띠에가 파리를 가족 사업의 토대로 삼기로 결심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창의가 움트는 영감의 원천
“Cartier qui fait tenir - magicien subtil - de la lune en morceaux sur du soleil en fil(까르띠에, 태양의 실에 달의 은빛을 매다는 섬세한 마술사)”
장 콕토의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emie Francsaise) 학술원 회원 검. 까르띠에 파리, 1955년. Nick Welsh, Cartier Collection ⓒ Cartier
건물을 두고 이러한 표현을 쓴다니 위대한 시인은 다른 것 같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장 콕토(1889~1963)가 자신의 또 다른 ‘집’처럼 드나들었던 프랑스 파리의 까르띠에 본사, 즉 뤼 드 라 뻬 13번지에 대해 적은 글이다.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화가 파블로 피카소,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등 전방위적인 예술가들과 어울렸던 전위적인 작가인 그는 영감의 원천 중 하나를 까르띠에라고 설명했다.
장 콕토의 문장은 보석과 시계를 다루는 까르띠에의 화려함을 표현한 것만은 아니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서 말하듯, “관계(lien)를 맺는다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당시 근대성이 부흥하고 그 못지 않은 혼돈으로 도시가 재탄생한 파리, 뤼 드 라 뻬 13번지는 당대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집합지이자 풍요로운 창의성이 넘쳐흐르는 곳이었다. 빛의 도시 파리와 그곳에 집중된 문화 및 외교적 삶과 직접적으로 닿아 있던 부티크는 전 세계에서 온 특별한 인물들과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맞이했고,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영화 촬영 장소로 여러 차례 사용되기도 했다.
장 콕토가 태양의 실(fil)과 달빛을 연결한다고 이야기했듯, 사람과 사람의 만남의 장소이자, 그들에게 창작의 감흥을 떠오르게 했다. 창의성이 조각조각 모여 예술적 제품이 탄생하는 공간이라는 근원적인 태생과 함께 문명이 빚어진 공간이기도 했다.
까르띠에 이미지, 헤리티지 & 스타일 디렉터인 피에르 레네로는 이렇게 설명했다. “뤼 드 라 뻬 13번지가 천 번의 삶을 살았다면, 이번 레노베이션은 규모 면에서 1910년과 1913년 사이에 같은 길의 11번지까지 부티크를 확장한 역사적 사건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전설의 주소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고, 시대와 관습에 적응해왔습니다. 특히 고객과 방문객이 더 많은 공간을 이용하며 둘러보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열정에 부응하고자 했습니다. 주요 주얼리 스타일 트렌드가 탄생한 요람으로서 언제나 전 세계 까르띠에 메종을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까르띠에 뤼 드 라 뻬 13번지 내부 전경. Moinard Betaille ⓒ Cartier
까르띠에 뤼 드 라 뻬 13번지에 위치한 역사적 살롱 중 하나 ‘장 콕토’ 살롱. 시인 장 콕토에게 헌정한 이 살롱에서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학술원 회원 검을 만나볼 수 있다. Moinard Betaille ⓒ Cartier
레네로 디렉터는 “과거 이곳을 거점으로 상인들은 러시아, 이란, 중국에 진출했다”고 설명했다. “1899년 문을 열면서 루이 까르띠에가 메종의 수장으로 취임했고, 디자인 스튜디오를 설립했습니다. 모던 주얼리의 초석을 세우고 현대적인 손목시계의 발명과 팬더의 탄생을 목격한 이곳이 2022년 레노베이션되며 반짝이는 파리에서 본연의 위상과 역할을 계승하고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전 세계에서 일종의 기준이 되는 특유의 취향과 노하우를 지닌 도시, 파리에서 말입니다.” 이 주소에서 모든 것이 시작하고, 언제나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야말로 진정한 집(Home)이라는 설명이다.
까르띠에
◇개방감과 자연채광, 레지던스…한국과 프랑스를 관통하는 나비의 날갯짓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번 재단장을 두고 “나비로 다시 태어난 애벌레처럼 변화의 정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블랙 컬러의 대리석이 특징인 뤼 드 라 뻬 13번지의 전설적인 파사드는 그대로 보존된 대신, 숫자 13을 메종의 살아있는 상징으로 재해석했다. 광채, 수직성, 현대성 세 가지 요소를 토대로 까르띠에와 협업 경험이 있는 세 팀의 건축가가 함께 레노베이션했다.
첫 3개 층의 레노베이션은 20년 이상 까르띠에 부티크를 디자인해온 모이나르 베타유 에이전시가 맡았다. 까르띠에 뤼 드 라 뻬 13번지의 핵심을 이들은 한국의 ‘까르띠에 메종 청담’ 레노베이션을 주도한 건축가이기도 하다. 또 아트리움에서 이어지는 두 대의 승강기를 통해 까르띠에가 제공하는 서비스(관리, 수선, 퍼스널라이징 등)를 받을 수 있는 3층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다. 4층의 하이 주얼리 아뜰리에, 건물 꼭대기의 아카이브 공간과 함께 3층 레노베이션은 스튜디오파리지앵 에이전시가 맡았다. 또 건물의 최상층인 5층에는 로라 곤잘레스에게 장식을 의뢰한 다이닝 룸, 살롱, 넓은 주방, 겨울 정원을 갖춘 생활 공간 및 리셉션인 ‘레지던스’, 그리고 메종의 아카이브가 자리한다.
새로운 설계를 통해 지상층부터 한층 확장된 개방감으로 고객을 맞는다. 레노베이션의 핵심인 자연 채광이 ‘빛의 도시’를 더욱 빛나게 한다. 특히 시인 장 콕토에게 헌정한 살롱에서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학술원 회원 검을, 메종의 스타일과 국제적인 명성을 창조한 루이 까르띠에를 기리는 살롱에는 그의 집무실을 재현해, 희귀본 장서와 고문서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장 콕토의 유명한 시구인 ‘까르띠에, 태양의 실에 달의 은빛을 매다는 섬세한 마술사’는 아뜰리에 미다베인에서 제작한 칠기 패널 위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이름이 붙은 살롱에 놓여 있다.
전체 3000 ㎡(약 908평)중 절반이 안되는 1400 ㎡가 상업 공간으로 그만큼 제품과 매출만 강조하기 보다는 함께 어울리고 즐기며 쉴 수 있는 공간을 지향했다. 그 중 레지던스(the Residence)는 최근 한국 ‘까르띠에 메종 청담’에서 선보인 ‘라 레지당스’와 유사하다. 각종 문화 이벤트 등을 위한 전용 공간으로 특별히 고안됐다.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도인 BREEAM의 가장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한 모든 조건을 만족시켰다. 미국 패션전문매체 WWD는 “뤼 드 라 뻬 13번지는 메종의 진원지이자 파리에 위치한 7개의 다른 부티크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을 잇는 심장부”라면서 “마치 북극성처럼 까르띠에 은하계 전체를 영원히 환하게 밝힐 것”이라고 설명했다.
까르띠에 뤼 드 라 뻬 13번지의 앙드 살롱에 설치된 아뜰리에 릴리크포(Atelier Lilikp)의 모자이크 작업 과정. Pierre-Olivier Deschamps / VU’ⓒ Cartier
◇40여개 예술 워크샵이 모인 프랑스 예술 장인의 결정체
28일 공식 오픈 전에 일부 기자들에게 공개한 자리에서 까르띠에 인터내셔널 CEO 시릴 비네론은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재단장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여행이자 어느 한 곳에 고정되지 않고 모든 시대를 존중하며 창의와 영감을 발휘하는 원천”이라면서 “타임리스, 즉 영원하다는 것은 잘 나이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루이 까르띠에의 뒤를 이어 1933년부터 1970년까지 디자인 수장으로서 까르띠에의 전설적인 브로치 디자인 등을 선보인 쟌느 투상 살롱 등을 비롯해 전통과 현재가 한 곳에 녹아있다.
까르띠에 뤼 드 라 뻬 13번지 건설 과정 스케치 일부. Laziz Hamani ⓒ Cartier.
까르띠에 뤼 드 라 뻬 13번지의 에티엔느 레이삭(etienne Rayssac)의 부조. Pierre Olivier Deschamps / VU’ⓒ Cartier
‘레지던스’ 등을 선보이며 좀 더 ‘집’에 가깝게 설계한 로라 곤잘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뤼 드 라 뻬 13번지 심장부의 ‘레지던스’는 목적과 규모 면에서 건물 나머지 부분과 대비를 이루는 특별하면서 친밀한 공간입니다. 그곳에는 대조와 놀라움을 활용한 좀 더 색다른 접근이 필요했습니다.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이 아파트는 친밀함과 부드러움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환상적인 창조적 놀이터입니다.” 곤잘레스는 “장인들과 함께 까르띠에의 상상력과 창조력을 발휘해 메종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특정 피스나 스타일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은 가구들을 제작했다”면서 “벽 위나 훌륭한 자수가 돋보이는 가림막, 테이블의 대리석 상감 세공에서 까르띠에의 동물 세계, 식물 모티프, 주얼리 디자인 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대로 수십 명의 프랑스 예술 거장들을 포함해 40여 개에 달하는 예술 워크샵이 한데 모였다. 칠기, 목공, 가죽 혹은 밀짚 상감 세공, 모자이크, 금속 공예, 카펫, 유리, 벽지 혹은 석고 작업, 맞춤 제작 가구, 파티나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른다.
아뜰리에 미다베인의 대형 칠기 가림막은 까르띠에의 조형 유산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극도로 섬세한 모티프가 특징이다. 많은 보석으로 구성한 생명의 나무와 날고 있는 새들은 1940년대에 제작된 새 모양 브로치를 연상시킨다. 또 에티엔느 레이삭은 까르띠에의 전설적인 아트 디렉터 쟌느 투상이 디자인한 유명 브로치에서 영감받아 회반죽 새 부조를 탄생시켰다. 하이 주얼리 아뜰리에 방 중 하나를 장식한다. 1909년 제작된 몸통 전면부 주물을 다시 재현한 이 석고 작품은 184cm 길이 패널로 확대됐고, 현재 아카이브 부서를 장식하고 있다. 또 에르베 오블리기의 스톤 상감과, 아뜰리에 릴리크포 모자이크, 장-다니엘 개리의의 장식 유리와 상감세공한 리송 드 카우네의 밀짚 상감 세공 패널 등 다양한 장인들의 작품과 공방이 함께 하고 있다.
또 환경보호와 생물 다양성 보존을 우선시한 기업 철학에 맞춰 친환경 건물 인증인 BREEAM 인증에서 ‘매우 좋음(Very Good)’(점수 55% 이상)을 획득했다. 파리에서 가장 생태적으로 책임 있게 재건된 건물 중 하나가 될 것이란 설명이다. 시릴 비네론 CEO는 “아폴로적 아름다움과 디오니소스적 아름다움, 순수함과 풍요로움을 담은 건축적 비전은 아름다움과 보편성을 포착하기 위해 모든 시대와 문화에서 고유의 힘을 찾는 까르띠에의 총체적인 스타일”이라면서 “충분한 볼륨감과 빛에 대한 찬사가 돋보이는 삶과 만남 그리고 창조와 상상을 위한 공간인 뤼 드 라 뻬 13번지가 까르띠에라는 우주의 심장부로 향하는 소중한 여정으로 초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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