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면 우린 그동안 ‘패션’이란 단어에 갇혀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새로워야 하고, 이전과 달라야 하고, 보는 이를 놀래켜야하고, 진화해야 한다며 각종 채찍질이 가해지는 동안 다른 한편에선 ‘클래식은 영원하다’며 평생 입어도 지루해보이질 않을 스타일을 창조해내라고 한다. ‘인생이란 꺼내기 전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초콜릿 상자’라는 영화 대사를 빌자면 ‘패션이란 꺼내서 먹어보고도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초콜릿 상자’ 같은 것이랄까. 옷이라고 보기엔 고문 기구처럼 숨쉬기 어렵거나 휘청이거나 옴짝달짝하기 어렵게 만들어도 ‘패션’이란 단어 앞에선 경배하곤 했다.
패션쇼 역시 ‘더’ ‘더’ ‘더’라는 구호가 메아리쳤다. 단 15분 정도지만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한 경탄과 경이와 충격과 마법의 순간을 선사해야 그나마 사람들의 입에서 돌고 돌았다. 물론 대부분의 패션쇼가 예정시각보다 늦게 시작하는 걸 고려하면 한 시간짜리 짜리 영화와 맞먹긴 하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드는 것 이상의 예산과 시간, 제작 인원이 필요하니 그만큼 ‘흥행’ 여부에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가끔 저예산 예술 영화가 파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패션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예술적이면서 상업성도 갖춰야 한다. 상상력 올림픽’이라고 할 만큼 전 세계에서 ‘상상력 끝판왕’들이 모여 이를 대중성 있게 실체화시켜야 한다. 종이 위에선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인체라는 물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캔버스에 남았으면 ‘작품’이었을 것이 사람으로 옮겨오면서 ‘제품’이라 불린다.

◇마티유 블라지, ‘이것이 패션이다’
디자이너 마티유 블라지는 이런 관점에서 ‘패션’의 정의를 새로 쓰는 사람인 듯 하다. 지난해 이탈리아 럭셔리 패션하우스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 오른 그는 지난 9월 선보인 ‘2023봄여름 컬렉션’을 통해 ‘이게 바로 패션이다’라고 당당히 선언했다.
놀랍지 않은 듯 한데 놀래킨다. 제품이지만 작품이기도 하다. 항상 새로워야 하지만 클래식하기도 해야 하는 패션계의 ‘난제’이자 ‘숙원’을 하나씩 풀어내고 있다. 누가 봐도 통 넓은 청바지로 보였는데 알고 보니 누벅 가죽이었던 지난 데뷔쇼의 ‘충격’은 가죽에 대한 브랜드의 정통성을 이으면서도 지속가능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옷의 생애주기를 대폭 늘렸달까. 대를 이어 오래 입을 수 있고, 남녀노소 체형을 가리는 스타일도 아니다. 대량 생산돼 대량 폐기물이 되는 현 시대에 대한 가장 우아한 방식의 도전장이기도 하다. 물고기를 형상화한 그의 가방 손잡이처럼 그가 만들어낸 패션엔 펄떡이는 생명력이 있다. 손바닥 속 화면 속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마네킹에만 걸려 있는 것이 아닌, 실제의 사람들이 바람을 가르며 거리로 나오는 역동성이 옷에 그대로 담겨 있다.
건축적인 구조를 잃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이 입었을 때 더없이 자유로우면서도 행복해야 한다는 마티유 블라지의 철학이 곳곳에 담겨 있었다. 패션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강박적인 틀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고 있달까. 단지 눈에 보이는 화려한 볼거리가 아닌 착용자가 느끼는 사적인 즐거움이라는 ‘조용한 힘’을 옷으로 승화시켰다. 패션 또 디자인이라는 세계가, 재능뿐만 아니라 성실성이 필수적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도 한다. 그의 선보이는 패션에는 과거 그가 패션을 익히고, 배우고, 구현했던 디자이너와 패션 하우스의 숨결이 녹아 있다. 인체를 해체하듯 마네킹에 옷을 입힌 채 가봉하고 재봉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했던 메종 마르지엘라의 개념적 패션과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리워 하고 있는 디자이너 피비 파일로의 셀린이 보여준 전위적이면서 세련된 재단과 급진적 미니멀리즘의 최전방을 지휘하는 라프 시몬스의 비전이 그가 보여준 그물 스타일의 가방처럼 그들의 특징을 잡아채 여기저기 녹여냈다. 하지만 블라지는 과거에 갇히지 않고 그를 결합해 블라지 만의 패션을 선보인다. 좀 더 실용적이면서 시대를 초월하는 우아함으로 선보인다. 보기만 해도 속도감이 느껴지는 날렵한 구두에서부터 우아하게 재단된 바지 밑단, 원피스의 대담한 커팅, 역동성을 배가하는 드레스 장식 등은 공예적인 미학으로 끌어올리면서 미세한 차이로 평범함을 벗어난다.
단 두번의 쇼를 통해 보테가 베네타의 전통을 이으며, 명성을 최상위로 올려놓을 ‘스타 디자이너’로 쐐기를 박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보테가 베네타가 이번 주의 승자”라고 평가했고, 영국 가디언은 “호쾌한 슬램덩크를 내리 꽂으며 당해낼 자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고 표현했다. 지난 2월 선보인 컬렉션의 준비 기간이 짧았기에 사실상 이번이 그의 본격 데뷔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점점 호평 보다는 혹평이 많아지는 혹독한 패션계에서 그의 이름은 ‘생명수’ 같기도 하다.

◇블라지가 확장하는 가죽 세계관
마티유 블라지는 쇼노트를 통해 “‘움직임’과 ‘조용한 힘’에 대한 우리의 탐구가 계속되는 동안, 이 대조적인 두 세계가 나란히 공존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영감을 받았다는 이탈리아 조각가 움베르토 보치오니의 조각은 조형미의 원천이면서 생명력에 대한 고민도 느껴진다. 보치오니의 미래파가 속도감에 대한 찬양에서 시작해 시대에 대한 봉기와 전복으로 해석되는 걸 감안하면, 블라지의 ‘다이나믹’은 이를 좀 더 개인화 구현했다고 해야할까. 옷을 입는 착용자가 각자의 삶의 주인공으로서 역동성과 속도감으로 인생을 개척하자는 의미로도 느껴진다.

획일화를 경계하면서도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사회 분위기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각자의 속도로 살아가자는 것이다. “전형적인 것과 개성적인 것 사이를 고민하며, 특정 한 명의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모든 여성과 남성을 위한 옷을 디자인하고 싶었어요. 일상 속의 누벅룩의 비뚤어진 평범함부터, 테일러링을 통한 세련된 에로티즘, 과거 부르주아의 룩, 교양있는 세계 여행가가 착용한 기념비적인 룩까지… 마치 작은 공간 속에 세계를 담는 것처럼 말이죠.”
그는 첫 여섯 의상으로 그의 가죽 세계관을 확장한다. 청바지와 폴로셔츠, 니트, 격자무늬 플란넬 셔츠 등으로 보이는 그 모든 것이 가죽이다. 실제 만져보면 부드러우면서도 탄성이 살아있어 다시 만져보고, 다시 바라보게 된다. 수백번도 더 봤던 니트인 줄 알고 지극히 평범하다고 스쳐지나갔을 법한 옷이 바로 극사실 프린트를 한 가죽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절로 웃음이 나온다. 셔츠와 청바지처럼 보이는 가죽 누벅으로 된 의상을 입고나온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가 여섯 번째로 등장하며 마치 ‘누벅 라인’의 피날레 같은 느낌마저 준다. 슈퍼마켓 종이봉투(브라운백) 같은 것이 사실은 가죽 가방이었다는 것은 일상에서 ‘패션’을 끌어낸 ‘의도된 평범함’이기도 하다. 가죽으로 제작됐기에 적지 않은 가격일 듯하지만, 사실 다른 유명 컬렉션의 청바지 가격도 입이 쩍 벌어질 숫자 아닌가. 청바지 원단도 나름대로 질기고 오래간다지만, 가죽의 내구성을 고려해보면 계산기를 두드릴 수고까진 필요 없을 듯하다. 플라스틱 봉투를 대체한다지만 금방 폐지가 되는 브라운 백을 진짜 ‘천연 가죽 브라운 백’으로 만든 가방의 내구성 역시 마찬가지다.

가죽에 이어 다양한 색상과 이국적인 패턴이 쇼를 화려하게 반전시킨다. 이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가에타노 페세가 이번 쇼를 위해 만들어낸 400개의 의자와도 연결된다. 비슷한 모양이지만 서로 다른 색깔과 패턴 등을 품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이젠 너무 많이 나와 때론 당연하게 들리는 ‘다양성’에 대해 인종적 포용성이나 성별 차이 같은 걸 넘어 개별화된 존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포스트 인스타그램 시대를 위한 행진곡
약간 목선이 올라선 듯하면서 유연한 곡선으로 떨어지는 볼케이노 실루엣 재킷은 ‘정중동(靜中動)’의 원리를 보여주는 듯 다양한 움직임의 의상들 속에서 자기만의 우주 속을 유영하는 듯 우아하게 시선을 빼앗는다. 남성, 여성 모두에게 적용된 디자인으로 재킷 디자인의 고정관념과 격식을 파괴한다. 당장 가서 집어 입고 나오고 싶을 정도의 충동을 느끼게 한다. 블라지가 원한 ‘움직임’이란 이런 마음의 충동까지 고려한 게 아닐까. 물론 기자가 런웨이에 침입했다면 ‘난동’으로 전세계 뉴스를 장식할 일이지만 말이다. 때문에 블라지는 이러한 ‘절제의 미학’도 함께 가르치는 것 같다.
그의 의상과 신발, 가방 등에는 보테가 베네타 특유의 가죽을 꼬아만드는 인트레치아토 기법이 자연스레 녹아있다. 인트레치아토 기법으로 된 구두에서부터 느슨한 메쉬 느낌의 가죽 구두로 변용됐다. 어깨에 툭 하고 자연스레 둘러멘 칼리메로 백과 동그란 볼링백은 간결한 디자인에 더욱 시선 장악. 하지만 보테가 베네타만의 전통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이탈리아 예술가나 공예가의 특징을 담아 외연을 확장한다. 보치오니의 역동성은 날렵한 구두뿐만 아니라 모델들의 옆모습에서 더욱 확연히 구현된다. 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유리 공예 브랜드 베니니의 화려한 크리스탈 샹들리에를 연상케 하는 샹들리에 드레스에 장인들이 한땀한땀 지어 비즈와 털실로 된 꽃장식으로 화사함을 입는다.

블라지는 공예와 패션의 경계를 넘나든다. 치마와 바지 끝단은 비즈로 이어지며 손으로 표현하는 장인 정신의 위대함을 재확인하게 한다. 가죽, 실크, 면, 비즈 등 재료의 다양한 혼합은 서로의 물성을 잘 아는 마티유의 확신을 바탕으로 그의 호기심과 실험정신을 돋보이게 한다. 가죽을 꼬아 만들 듯 천을 꼬아서 찰랑이게 하고, 겉에선 프린지(실을 꼬아 만든 술 장식)로 보이는 것이 안에는 가죽을 서로 빈틈없이 꼬아 만들어놓기도 했다. 안과 밖이 이렇게 다르다니! 다양성에 대한 블라지의 연구는 겉과 속이 다른 인간성에 대해 가장 예술적인 방식으로 풍자까지 해내는 것 같다.
마지막 드레스는 풍성한 볼륨감이 공중을 가르는 듯 경쾌한 속도감과 함께 가벼운 느낌을 자아내지만, 공예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의 가죽 장인들의 손길이 담겨 있다. 55m 혹은 155m 가죽을 꼬아서 바느질 한번 없이 오로지 장인들의 손길로 무봉제로 만들어낸 인트레치아토 가방 역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나 루브르로 향해도 손색없어 보인다.
착용자와 만드는 사람 간의 감수성을 나누려고 하는 블라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인간의 터치’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소셜 미디어에 적당히 포장되고 재빠르게 소비되는 기존의 패션과는 거리를 두려는 듯하다. 마치 동반자처럼 함께 하고 오래 간직될 수 있는 존재를 내보이려는 것 같다. 포토샵과 각종 보정으로 만들어낸 이미지 대신 ‘진짜’를 입고, 느끼고, 즐기는 것이다. 이번 쇼는 포스트 인스타그램 시대를 맞이하는 보테가 베네타의, 마티유 블라지에 의한, 우리를 위한 개선 행진곡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