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후 기다리는 새로운 챕터들… 이전과는 또 다른 삶의 진폭을 확장시키지 않을까 싶어요”
입력 2022.09.30 10:00

“앞으로 남은 인생이 더 길지만(웃음) 살면서 선수 시절 경험이 가장 강렬했잖아요. 제10대 20대를 모두 바쳤기도 했고요.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남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운동화에 짧은 치마, 긴 점퍼 차림의 김연아(32)가 사뿐 거렸다. 단지 몇 발짝 뗐을 뿐인데, 마치 빙판 위로 미끄러지듯 등장하는 그녀의 경기가 시작된 것처럼 웅성이던 이들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최근 서울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 1층에 마련된 미국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 팝업 공간. ‘피겨 여왕 김연아’가 등장하자 주변 공기가 달라졌다.
현장에서 마주한 김연아의 호기심 가득한 표정은 과거 올림픽 시상대 위에서 벅차게 눈물지으며 웃던 모습 그대로였다. 예전과 똑같다는 이야기에 “저도 이젠 건강을 위해 운동한다”며 그녀 특유의 털털한 웃음을 짓는다. “강도 높지 않게 PT(퍼스널 트레이닝) 받아요. 건강을 유지하고 예쁜 자세 만드는 정도로 하루 한 시간쯤? 사실 운동이란 게 길게 한다고 효과가 좋은 게 아니기 때문에…(웃음).” 양옆으로 길게 땋아 늘어뜨린 머리칼이 찰랑일 때마다, 공중을 가로젓던 그녀의 두 긴 팔이 겹쳐졌다.
2014년 공식 은퇴 뒤, 피겨 스케이트화 대신 일반 신발을 신은 김연아를 보는 게 더 익숙하다. 각종 국제 스포츠행사나 국내외 패션 브랜드 홍보 대사로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김연아가 이곳을 찾은 이유도 지난 2016년부터 뉴발란스 우먼스 앰버서더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 김연아가 착용하는 제품마다 ‘완판’을 기록할 정도로 이젠 패션계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한다.
“스포츠 선수로서의 모습을 많은 분이 사랑해주셨잖아요. 뉴발란스와도 그런 이미지가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1906년 세워진 뉴발란스는 일하는 발에 무리가 가는 사람들을 위해 아치 서포트(ARCH SUPPORT·지지대가 있는 신발 깔창)을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NEW BALANCE라는 회사명과 브랜드명은 ‘불균형한 발에 새로운 균형을 창조한다’ 라는 의미에서 유래됐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 스티브 잡스 등이 뉴발란스의 열렬한 애호가로 잘 알려졌다.
김연아는 단지 브랜드 얼굴로만 나서는 게 아니다. 피겨를 비롯해 국내 스포츠계 발전을 위해 도움을 주려는 속내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김연아의 각종 개인 기부금액만 50억원이 넘는다. 홍보 대사를 맡은 뉴발란스의 경우 국내 전개사인 이랜드를 통해 국내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을 후원하고 있다. “조금이나마 후배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제가 당장 직업적으로 ‘지도자’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안무 동작을 조금 가르치고 있거든요. 좋은 후배들도 계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코칭 작업은 앞으로 꾸준히 할 것 같아요.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하하.”
그녀 앞에도 오는 10월이면 또 다른 미래가 펼쳐진다. 크로스오버 그룹 포레스텔라 멤버이자 팝페라 가수 고우림(27)과 3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식을 올리는 것. ‘결혼’ 등 관련 사적인 단어는 질문에서 피해달라는 사전 요청이 있었지만, 다가올 인생에 대한 설렘은 숨기지 않았다. “제가 일곱살 때부터 피겨를 해서 은퇴할 때까지 운동만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거든요. 선수부터 은퇴까지가 ‘김연아 챕터 1′이었다면 이제 ‘김연아 챕터 2′, ‘챕터3′ 같은 새로운 챕터들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이전과는 또 다른 경험으로 삶의 진폭을 확장시키지 않을까 싶어요.”
대범한 ‘멘탈 장인’으로 유명한 김연아도 얼마 전 “멘탈이 생각보다 그렇게 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메달(점수) 하나만 바라보던 과거와 달리 고민하고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란다. 그는 “그래도 극복은 잘해내는 것 같다”고 웃으면서 새롭게 꾸릴 가정에 대해 “기대되는 것이 많아서 오히려 떨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를 지탱하는 원동력은 결국 선수 시절 힘에서 나왔다고 했다. “저한테는 운동이 직업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치열하게 해내야 했죠. 매일매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냐고 하면 사실 아예 안 돌아가고 싶을 정도거든요(웃음). 하지만 극복해냈잖아요. ‘해낼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달까요.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가려 합니다. 여태껏 해온 것처럼 매 순간순간 열심히 잘 살다 보면, 지금처럼 웃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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