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OUTIQUE BEHIND
오메가 X 스와치 ‘문스와치’

지난 3월 12일 조선일보 광고국에 한 이메일이 도착했다. 스위스 베른주 비엔에 있는 고급 시계 브랜드 오메가 본사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비밀’(confidential)이 대번에 눈에 띄었다. 내용인즉슨, 오메가 광고 시안이었다. 단, 3월 17일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이와 관련된 내용을 알리지 말라는 당부도 덧붙여 있었다.
지면 광고와 관련된 사안은 보통 한국 측 대행사를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 이렇게 본사에서 ‘직접’, 그것도 ‘비밀’을 강조하며 보낸 적은 없었다. 그만큼 긴밀하고, 특수하다는 이야기였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프로젝트라는 것을 짐작게 했다.
비슷한 시각 오메가 코리아 측에도 스위스 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마치 오메가가 후원하는 영화 ‘007′ 속 ‘특급 작전’ 같았다. 내용물을 보내는 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은 채, 무얼 보내겠다고 했다. 아주 특별하고 중요한 것이란 걸 알 뿐이었다. 통관을 위해 내용물에 대해 문의했을 때 스위스로부터 돌아온 답은 ‘메탈’. 다른 자세한 설명 하나 없이, 무엇임을 유추하기도 어렵게 추상적이고도 포괄적인 답변이었다.
이후 17일 지면을 통해 공개된 문구. ‘3월 26일, 당신의 스와치(SWATCH)를 바꿔야 할 때입니다.’ 오메가와 스와치 시계와의 협업을 뜻했다. 세계적인 시계&주얼리 그룹 스와치에 속한 두 메가 브랜드의 만남을 뜻했다. 하이엔드 브랜드인 오메가와 대중 브랜드인 스와치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관심이 뜨거웠다. 각자의 정체성을 지키며 어떤 시너지를 낼 지의 여부도 촉각을 곤두세우게 했다.
드디어 26일 오메가X스와치 제품이 대중 앞에 등장했다. 이른바 ‘문스와치’(MoonSwatch). 오메가의 대표적인 제품 ‘문워치’를 오마주한 제품으로 30만원대(국내 33만1000원). 오메가 문워치는 1969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와 함께 역사적인 달 탐사 여정에 동행한 시계다. 롤렉스와 함께 명품 시계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신품 가격은 900만원이 넘는다.
‘문스와치’는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디자인을 빼닮았다. 게다가 다이얼에 오메가 로고가 크게 새겨져 있다는 점부터 눈길을 끈다. 협업 제품이기에 오메가 밑에 스와치도 적혀 있지만 언뜻 보면 ‘오메가’가 더 눈에 띄기도 한다. 오메가 문워치를 오마주한 스와치 시계이기에 국내 오메가 매장에선 판매하지 않고, 스와치 매장에서만 구할 수 있다.
또 이번 제품에 ‘문스와치’란 제품명 옆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 바이오세라믹이란 단어다. 케이스 소재를 강조하기 위해 붙은 단어다. 이 제품의 케이스 소재로 쓰인 바이오세라믹은 세라믹 원료인 산화지르코늄 파우더와 정제된 생분해성 바이오플라스틱을 2 대 1 비율로 결합한 신소재다. 스크래치에 강하고 가벼우면서도 탄력성과 내구성이 뛰어나다. 직경은 42㎜, 두께는 13.25㎜. 스와치그룹 산하 무브먼트 제조사인 ETA의 쿼츠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사용했다.
스와치 하면 생각나는 다채로운 색상도 이 제품의 특징. 문워치 디자인에 바탕을 두고 11개 행성(태양 수성 금성 지구 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 왕성 명왕성) 이미지를 디자인 요소로 활용했다. 옐로우/화이트는 태양을, 딥 그레이/블랙은 수성을, 파우더리 핑크/아이보리는 금성을, 블루/그린은 지구를, 그레이/블랙은 달을, 피어리 레드/화이트는 화성을, 브론즈/오렌지는 목성을, 다크 베이지/브라운은 토성을, 페일 블루/화이트는 천왕성을, 아이스 블루/딥 블루는 해왕성을, 그레이/버건디는 명왕성을 상징한다.
제품 출시와 동시에 전 세계에선 ‘밤샘 줄서기’에 텐트가 늘어설 정도였다. 지난달 26일 국내에서 출시 당시에도 명동 스와치 매장 앞에 수백미터 줄이 서는 듯 당일 ‘완판’됐다. 미국, 유럽, 아시아 등에 위치한 110개 매장에서 ‘오픈런’(매장 문이 열자마자 물건을 사기 위해 달려가는 행위)이 이어졌다. 영국 이베이에서는 지난 26일 출시 당일 오메가와 스와치의 문스와치에 대한 검색이 256% 이상 증가했으며, 6초마다 1건씩 검색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한정판은 아니었지만 1인당 2개까지만 살 수 있었다. 원하는 사람은 많고, 소유한 사람은 적은 전형적인 구도. 인기가 높아지다 보니 국내 재판매 시장도 들썩였다. 33만원짜리가 중고거래가 580만원까지 치솟은 것이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온라인 구매가 불가능한 대신 소비자들은 2차 시장에 몰렸다.
온라인 경매 및 거래 플랫폼 스톡엑스(StockX)가 대표적. 스톡엑스가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오메가X스와치의 문스와치는 일주일도 안 돼 2000개가 거래됐다고. 낙찰가격이 평균 원가의 3~4배를 기록하며 지금까지 최고의 프리미엄으로 자리잡았다고 했다. 이는 기존 협업 제품 중에서도 아주 인기가 높았던 오프화이트 x 나이키나 배드 버니 x 아디다스 같은 경우에서나 볼수 있는 뜨거운 반응이었다.
한정판도 아니고, 꾸준히 출시되는 데에도 이러한 수치는 업계에서도 놀랍다는 표정이다. 일부에선 애플 제품이 꾸준히 출시되는 데도 매번 긴 줄이 서는 것과 비슷한 현상으로 자리 잡는 게 아니냐는 평도 있다.
물론 재판매(리셀) 가격이 치솟은 문스와치를 살 바엔 돈을 더 모아 오메가 문워치를 사는 게 낫다는 소비자 의견도 당연히 있다. 어쨌거나 스와치를 통해 오메가의 느낌을 경험하고, 문워치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다 오메가 제품까지 소비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만약 스와치 그룹에서 이를 겨냥한 것이라면, 이번 협업은 성공이다. 스톡엑스 관계자는 미국 야후 스타일에 “문스와치(MoonSwatch) 협업 제품의 공급이 늘어나면 재판매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지만, 수요 역시 많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상당한 가격 프리미엄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시계 브랜드가 함께 이룰 수 있는 것에 대한 믿을 수 없이 훌륭한 사례로 입증되면서 시계 분야에서 더 독특한 파트너십이 형성될 수 있는 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