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명품’ 구별해 내는 것도 결국 소비자의 힘
입력 2022.01.28 09:36

얼마 전 대선 후보자 패션을 취재하다 ‘터틀넥’의 전복적인 해석과 마주하게 됐다. 최근 터틀넥 하나가 극과 극의 이미지로 전도(顚倒)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007 스펙터’의 제임스 본드(대니얼 크레이그)가 오스트리아 설원에서 액션을 펼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스펙터의 본거지에 도착한 본드와 매들린(레아 세이두). /유니버셜 픽쳐스
터틀넥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쉽게 입고 벗기 편해 실용성의 상징으로 불린다. 게다가 겨울엔 목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효과도 있어 야외 활동이 많은 이들에겐 제격이다. 하지만 때와 장소, 사람에 따라 터틀넥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첩보 시리즈물 OO7 제임스 본드에선 ‘영원한 본드’ 숀 코너리를 시작으로, 피어스 브로스넌, 6대 제임스 본드였던 대니얼 크레이그까지 강한 액션 속엔 몸에 꼭 맞는 터틀넥이 존재했다. 그뿐인가. 터틀넥은 1970~1980년대 프랑스 지식인의 ‘유니폼’이었다. 미셸 푸코를 비롯해 연륜있는 철학자들에게서 터틀넥은 또다른 ‘펜(pen)’이었다.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헤밍웨이의 터틀넥 역시 패션 역사에 남을 만한 초상이다.
미셸 푸코/펭귄 클래식(Penguin Random House)
지난해 12월 23일 작고한 작가 조앤 디디온도 터틀넥 패션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영화로 만들어져 크게 히트한 ‘스타 탄생(A star is born)’ 시나리오를 쓴 그녀는 기자이자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로 풍부한 시대 정신을 글로 투영했다.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블랙 터틀넥을 입고 타이프라이터 위에 앉아있는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팬들의 행렬이 잇기도 했다. 2015년엔 81세의 나이로 프랑스 패션 브랜드 셀린의 캠페인 모델이 됐을 당시도 검은색 모크넥(목의 반정도 가린 의상) 드레스 차림이었다.
2015년 셀린느 광고 캠페인 모델이 됐던 작가 조앤 디디온
세대, 나이, 인종,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아늑하고 클래식한 모습에 가장 민주적인 의상으로도 꼽힌다. 이번 시즌 지방시, 파코 라반, 프라다, 오피신 제네랄 등 많은 브랜드들이 하이넥 니트를 강렬한 색조와 어우러 런웨이에 올렸다. 우리의 삶을 바꾼 천재적인 창업가 스티브 잡스의 터틀넥과 청바지는 ‘실리콘 밸리의 교복’처럼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 모든 터틀넥의 장점이 단 한순간 나락에 빠졌다. ‘여자 스티브 잡스’라 불린 테라노스 전 CEO 엘리자베스 홈즈 때문이다. 19세 때 스탠퍼드대학을 중퇴하고 바이오 스타트업인 ‘테라노스’를 창업한 홈즈는 11년 동안 연구에 매진한 끝에 2014년, ‘에디슨’이라는 자신의 성과물로 세계를 흥분시켰다. 피 한방울로 250개 질병 진단할 수 있다는 기술이었다. 결국 내부고발로 허구 드러나면서 기업가치는 11조원에서 휴지조각이 됐다. ‘여자 스티브 잡스’라는 수식어에서 보듯, 그녀는 마치 스티브 잡스처럼 검은 터틀넥을 줄곧 입었다. 미국 뉴요커지는 이에 대해, “검은 터틀넥이 사기극의 상징이 됐다”(Black Turtlenecks Are the Biggest Scam of All)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
일찍이 이미지 정치 시대를 알아챈 미국의 존 F 케네디는 1959년 그의 에세이에서 “정직함, 활력, 동정심, 지성이러한 자질들의 존재 또는 부족이 후보자의 ‘이미지’라고 불리는 것을 구성한다”면서 “정치캠페인도 게임쇼처럼 ‘조작, 착취, 속임수’를 위해 사용될 수 있다”고 경고한바 있다. 반신반의, 감정과 편견과 무지에 호소함으로써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케네디는 강조했다. “.속임수를 인지하고, 속임수를 차단하고, 정직함을 보상하고, 필요한 곳에서 입법을 요구하는 것은 당신의 힘에 달려 있다”고. ‘가짜 명품’을 구별해 내는 것도 결국 소비자의 힘이다. 이제 가면 속 ‘본질’을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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